토일렛

 

"그래서? 그게 중요해?  그렇다고 해도 지금까지 잘 살아 왔잖아??"

 

극 중 주인공 레이의 연구소 친구의 대사다,

영화의 마지막 몇분을 남겨놓고 레이는  자기가 이들과 진짜 가족이 아니라는 진실을 마주한다,

사실 공황장애가 있는 형도 이기적인 여동생도 어쩌면 타인이 아닐까 의심했던 할머니 마저 알고 있는 사실을 자기만 몰랐다는 것.  알고 보니 자기가 타자였다는 것을 마주하고 고민하며

어렵게 연구소 동료에게 털어놓았을 때 그 인도출신의 친구는 무심하게 그렇게 내뱉는다,

듣기에 따라 정말 인정머리없고 공감능력 제로에 남의 감정따위는 알아주지 않은 사이코패스거나 냉혈한 같은 소리다,

그러나...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레이가 몇 살인지는 모르겠으니 30년 가까이 가족이라고 믿고 그래서 어떤 어려운 일이나 문제없이 살아왔던 사람들이 내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이 지금 와서 무슨 상관이겠는가

다른 가족들도 레이를 친 가족처럼  만만하게도 여기고 기대기도 하고 편도 들고 무시도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게 가족인데,.물론 레이의 충격이 별 거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등을 쓸어주고 위로해주고 마음이 풀릴 때까지 울어~ 라고 하거나 가족 모두를 모아놓고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따지고 원망하고 포용하는 단계를 거치더라도 변하는 건 냉정하게 없다.

 

누군가는  훅 들어와서 안아주고 만져주는 위로와 공감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옆에서 가만히 봐주고 기다려주고 괜찮다고 한마디 툭 던지는 위로에 마음이 편하다.

내가 원하는 위로와 공감이 다르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위로와 공감도 각각 다르다,

그냥  내 마음이 풀릴 때까지 기다려주고 모른 척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훅 들어와서 안아주고 충고하고 조언하고 만져주는 사람은 어렵고 부담스럽고 또 반대의 경우 그건 위로도 공감도 아니고 냉정하고 재수없는 충고일 수도 있다,

누가 무엇을 어느때 원하느냐는 내가 그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는 것이고 나도 가끔 원하는게 다른 수 있다,

 

영화속에서 그 동료의 무심한 한마디가 다른 모든 인물이나 상황보다 내게  훅 들어왔다.

냉정하기도 하고 현실적이지만 어저면 그래서  더운 날 얼음이 가득한 냉수 한 잔을 마시고 난 후의 쨍하게  각성되는 느낌이다,  난 개인적으로 그게 좋다,

그냥 아무 말 없이 아무 일도 아닌 듯이 옆에 가만히 앉아 잇어주기만 하는 것

내게 가장 좋은 위로는 그것이고 내가 가장 잘 하는 위로도 그것이다,

그래서 가끔 누군가 타인이 볼 때 나는 참 못됐고 이기적이고 냉정하게 보일 수도 있나 보다,

더구나 가까운 가족이라면 더욱 그렇게 느껴지겠구나 하는 마음

한마디 대사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사실 영화속의  다른 가족 구성원들도 다정하지는 않다,

서로가 서로를 자기의 틀로 바라본다,

레이는 형은 장애가 있는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고 동생은 이기적인 사람이고 할머니는 그저  낯선 타인이다,. 리사 입장에서도 모리는  난감한 애물단지고 레이는 이기적이다. 다행히 할머니는 할머니지만  조금 잊고 있을 뿐이다,

모두가 서로를 알지 못하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대로 맞추어 그의 말과 행동이 그런 이유가 내가 아는 그것때문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리고 누구나 내가 가장 참고 있고 내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한다,

다른 구성원에 비해 가장 정상적인 레이가  어찌 보면 가장 단단하고 견고한 틀을 가지고 있다.형을 돌봐주어야 하고 동생은 안도와주고 할머니는 그 정체가 의심스럽다,. 엄마가 남긴 한마디 " 레이 너만 믿는다" 그 말의 무게 만큼 레이를 누르는 압박감은 가기 가진 틀의 무게였다,

그는 가장 희생적이고 책임감을 느끼고 혼자 모든 짐을 다 짊어지고 있는 고난자다

3000불을 자기를 위해 쓸 수도 없이 끊임없이 망설이고 있을 뿐이다,. 책임감과 나의 만족은 절대 같은 것이 될 수 없는 딜레마에 놓여 있다,

 

차라리 내가 가장 힘든데 이것들이 도와주지도 않는다고 집어던지고 쥐어뜯어가며 싸우면 차라리 마음에 들지 않고 원수가 되더라도 저 인간은 저런 인간이었구나 하고 알텐데 그들은 우아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규정하고  보이는대로 받아들이고 생각하는대로만 본다,

가족이 그런 오해가 가장 심한 집단이 아닐까

말하지 않아도 알거라는 기가 막힌 오해와 편견에서 가족은 어쩌면 내게 가장 먼 타인이고 나를 가장 모르는 외부인이다,

나는 우리 부모를 아는가? 나는 내 자식을 아는가

그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취미를 가지고 어떤 성격인지 알 수는 있다,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위로 받기 원하는지 어떻게 공감받기 원하는지 그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는 서로 모르지 않을까 어쩌면 서로는 가장 친절하고 다정한 얼굴로 잘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를 오해하고 있다,

가족들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위안을 얻는다,

모리는 엄마의 재봉틀로 치마를 만들고 리사는 우연히도 에어기타에 빠지고 레이는 피규어에 빠져 있다. 각각의 위안은 할머니의 만두를 구심점으로 함께 만나고 서로의 영역에 조심스럽게 들어간다.

마지막무렵  모리의  대회에 참가하는 것  레이가 할머니를 위해 변기를 바꾸어 주는 것  정도로 그들은 서로에게 다가간다. 그건 무심함이 아니라 예의를 기반한 배려고 위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영역에 훅 들어오지 않고  바라보고 내가 훅 들어가지 않아도 이기적이라고 뭐라하지 않고 서로의 바운더리 속에서 서로 바라보며  힘들면 손을 내밀고 그때 잡아주는 사람

그냥 든든하게 바라바주는 사람이라는 게 좋은.. 그런 가족을 원했다는 그리고 가만히 등을 쓸어주는 사람을 원했다...

이기적인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레이의 동료처럼 시원하게 무심하게 한마디 해주는 것 그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간절히 원한 것이어서 나는 남들도 그만큼이면 된다고 믿었다,

그것이 가장 적정선이라고 믿었는데 사람은 제각각의 위로와 공감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사람이 모두 다를 수 있다는 걸 몰랐다. 하물며 가족이라도...

 

 

 

이 책이 내 울음이 터진 최초의 책임을 언젠가 고백한 적이 잇는데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그거였다. 가족들이 누구나 동구에게 혹훅 들어와서 감정들을 배설했다, 할머니도 그랬고 아빠도 그랬고 심지어 엄마도 그랬다. 어린 동구에게 가장 약하고 여린 동구에게 훅훅 들어와 감정을 쏟아놓고  아직 어리니까 뭘 모르니까 멍청하니까 라는 변명으로 훌훌 돌아간다. 동구가 원하는 건 어쩌면 여동생처럼 자기를 가만히 들여다 봐주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었을 텐데 그 가족은 너무 잔인했다. 물론 이유가 있다. 시어머니의 구박에 서러운 엄마나 중간에서 어쩌지 못하는 엣날 가장 아빠나 시골에서 상경해 모든 것이 낯설지만 두려운 티를 내기 싫고 얕잡아 보이기 싫은 할머니까지  모두 이유는 있다. 가족이니까 이유가 있으니까 이정도는 서로 받아줄 만하니까 서로 훅훅 상대방의 영역으로 시도때도 없이 들어왔다.  가족이니까 뭐든 가능하고 가족이니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게 동구에게는 두려움일텐데 그 바보같은 아이는 모든걸 인내하고 자기가 무서운 할머니와 시골에 가겠다고 한다. 바보같이...

 그래서 그 어린 아이가 모든 걸 감당하고 견디며 나를 위한 판단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판단을 해야했을까? 그래서 동구는 착한 아이가 되었는가? 누구를 위해서 착한건지....

괜찮다고 무엇이든 들을 수 있다고 그리고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으니 말하라고 ... 이정도는 가족끼리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픈 건 아픈거다. 힘든 건 힘든거다,

다른 가족들이 너무 착해빠져서 나중엔 할머니까지 너무 늙고 약해버려서 마냥 마음놓고 미워할 수도 없다는 것이 너무 서글펐다, 화가 났다,

거절 하지 않는 둥구 모든 것을 품어주는 동구의 상처는 왜 아무도 봐주지 않을까 가족이라면서...

가족이어서 서로 함께 뒤엉키고 받아들여지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한다는 강박이 가장 약한 존재에게는 버거운  무게이고 상처가 될 수 있다. 가족이라고 모두가 같은 취향과 성향을 가진 건 아니다. 내가 낳아도 다른 아이가 태어나고 형제도 제각각인걸  자꾸 잊어버린다,

배려와 공감이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 상대가 바라는 것으로 해야한다는 말이 너무 냉정하게 들릴까?

 

간혹 내가 너무 감정이 매마르고  심하게 말하면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약한 사이코패스인가 하는 고민을 한다. 누군가 훅 들어오는 것이 몹시 불편하고 누군가에게 아무렇지 않가 훅 들어가기도 어렵다.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가장 예의가 필요하다는 것.. 그게 틀린 것인지 가끔 고민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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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런 영화가 다 있어???

뭐 이런 청춘들이 다 있지?

도데체 이게 뭐야? 영화야? 다큐야? 장난해?

영화를 보는 초반에 내 머리속을 스쳐간 것들이다,

 

 

파리, 로마, 이스탄불, 런던까지…
 전 유럽을 발칵 뒤집어 놓은
 무일푼 잉여들의 물물교환 유럽 평정기!
 
 스스로를 '잉여인간'이라고 부르는 호재(24), 하비(22), 현학(20), 휘(20).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잉여로운(?) 20대 보내기를 위해 네 친구들은
 단돈 80만원과 카메라 1대만 들고 무작정 유럽 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잉여4’는 숙박업소 홍보영상을 찍어주고 '물물교환'으로 무료숙식을 제공받아
 1년간 전 유럽을 일주하겠다는 야망과 동시에,
 마지막에는 뮤직비디오를 한편 만들어 보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드디어 프랑스 파리에 첫발을 내딛는 데…
 
 하지만 처음 계획과 달리 이들을 찾아주는 곳은 한 곳도 없고,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추위를 피해 남쪽인 이탈리아 로마까지 히치하이킹을 떠나게 되고,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가며 히치하이킹을 이어가던 이들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오는데...
 
 터키의 이스탄불, 그들의 마지막 종착역인 영국의 런던까지
 단 한편의 ‘홍보영상’으로 ‘전 유럽 호스텔계의 슈퍼스타’가 된 ‘잉여4’
 이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것이 남았다. 뮤직비디오 제작… 남은 여행일정은 단 5일.
 
 과연 이들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이들의 파란만장한 365일간의 여정이 지금부터 시작된다.

 

 

 

잉여: 쓰고 남은 나머지

        어딘가 쓰여야 하는데 쓰일 곳이 없어 남아도는 것

        할일 없다, 쓸일 없다, 필요없다.

        (네이버 어학사전및 지식인 인용)

 

이런 무모한 짓을 실제로 하는 청춘이 있구나

이런 무모한 도전이 통하는 세상이 아직 존재하는구나

어디서 어떤 스펙을 가지고 어떤 경험이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낯선 나라의 청년에게  동영상제작을 맡기는 숙박업자들도 대단하고 도 적은 장비 적은 인워너 열악한 환경에서 그 동영상을 만들어 내는 청춘들도  대단하다

도데체???

라는 의문으로 시작된 영화는 열악한 사운드와 영상에도 몰입도가 대단하고 나중엔 뭉클한 감동까지 남긴다,

그들이 성공해서 뭉클한게 아니다,

결국 계획대로 모든일이 진행되어서도 아니다,

누구나 귓등으로 흘려넘길 일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꾸역꾸역 해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잉여짓 조차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대단하다,

사실 고난을 겪고 험난한 여정을 겪은 주인공은 나중에 환골탈퇴해서 새사람이 되어야 하는게 우리가 아는 교훈의 정석이건만 이들은  모든 일을 겪고도 여전히 잉여처럼 여유롭다

이게 나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친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무한도전이다,

 

내가 젊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내가 20대에 이걸 봤다면 질투와 부러움으로 미치고 팔짝 뛰었겠지만 이제 불혹도 얼마 남지 않은 나이에서는 그저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거.....

내 아이가 이런 길을 떠나겠다고 선언하면 나는 어떻게 할까,,,

 쬐끔 고민하고 등을 멀어줄 준비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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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전

 

말은 태어나고 개중엔 죽어가는 것도 있죠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변해가는 말도 있습니다,

말의 의미를 알고 싶다는 건 누군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정확히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 아어지고 싶다는 소망은 아닐까요?

그래서 저희들은 지금 살아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전을 만들어야만 합니다,

대도해는 지금을 살아가는 사전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말의 바다

그것은 끝없이 넓지요

사전이란 그 대해에 떠 있는 한척의 배

사람들은 사전이란 배로 바다를 건너고 자신의 기분을 적절히 나타내는 말을 찾습니다,

그것은 바로 유일한 말을 찾는 기적

누군가와 이어지고 싶어서 서대한 바다를 건너려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사전

그것이 '대도해'입니다,

 

 

사전- 사람들 사이에 쓰이는 말을 규칙적으로 정의하는 것

 

 

사람들 사이의 틈을 메우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도구는 말이다., 그러나 때로 말을 오해를 부르기도 하고 '말'의 의미가 나와 그가 다를 수 있다, 서로의 말을 짐작하기만 할 뿐 진심을 알 수 없어서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모르면서 그 모른다는 것 조차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

사람들을 이어주는 것 그것은 말이고 그 말의 쓰임을 알려주는 건 사전이다,

'말"은 내가 경험한 것 만큼 알 수 있다는 건 아이러니 하기도 하다,

사전적 의미의 말을 알고는 있지만 그 말의 진짜 의미는 내가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것이 된다, 마지메가 연서를 쓰고 가규야를 기다리고 그리워하고 용기내어 마음을 전하고 난 뒤에 그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처럼 말이다,

"말'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경험으로 익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경험한 말들 내 몸을 통해 받아들인 말을 모아서 나만의 사전을 만드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미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어들 - 사랑, 행복, 아이, 꿈 , 지루함, 즐거움, 질서, 식사 등등의 단어를 새롭게 생각해보는 경험을 하면 어떨까

 

무심코 본 영화는 정말 정말 좋았다,

나는 일본 영화가 좋았다 별거 아닌걸 세심하게 들여다 보는 그 지독함이 좋았고 어떤 클라이막스 없이 그저 작은 떨림으로 이어지는 플롯도 좋았다,

더구나 이 영화는 그런 일본영화 특성에 사전만들기라는 정말 세심하고 아날로그적인 작업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아 사전은 저렇게 만드는 것이구나

모든 것이 기게화가 되고 컴퓨터와 로봇의 작업이 일반적이 되어버린 지금 저렇게 사람의 손끝에서 머리속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진중한 엉덩이의 힘으로 완성되는 작업이 있다는 것이 새로운 신기술을 보는 것 이상 경이롭고 황홀했다,

내가 변태스러운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극 세심하게 들어가는 작업의 치밀함과 진중함이 무지하게 매력적이고 섹시해 보인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다,

각각 인물의 섬세함은 영화에 나온 배우들이 더 잘 표현하고 매력적이지만 (꼭 오다기리 조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책 속의 인물은 어딘가 엉성하고 경박하고 비어있지만 그래서 고민하고 노력하는 인간적인 면을 자세히 보여주기도 한다.

다만 사전을 만드는 세세한 과정은 책을 통해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영화에서는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장면들이 왜 그런것인지를 잘 알 수 있게 되었으나 흐름이 매끄러운건 영화쪽이다.

 

마지메의 연서를 전달하고 기다리는 장면이나  니시오카의  술마신 후의 프로포즈  등을 보면 굳이 말이 아니어도 서로에게 전해지고 싶은 마음이 절절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행동으로는 한계가 있다, 비 언어적인 것들이 더 많은 것을 전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국 언어가 함께 일때 더 풍성하게 해준다는 것이지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결국 말을 통해 글을 통해 즉 언어를 통해 두 사람은 각자의 인연과 연결되고 마음을 드러낸다,.

 

마지막 대도해가 완성되고 그 축하하는 자리에서 우리의 마지메군과 아라키선생은 다시 새로운 개정작업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시작을 또 이야기한다,

사전을 만드는 일은 끝이 없는 일인 모양이다,

이제는 누구도 뒤져 보지 않아서 서가 한 쪽에 먼지만 뒤집어 쓰고 자리만 차지 하고 있을 사전이 이렇게 의미있고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바칠 일이라는 것이 세삼스럽고 이런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일을 글로 쓰고 영화로 만드는 그들의 행동이 부럽다,

 

나는 말을 통해 누구와 소통하고 있을까

그 소통은 나의 일방적인 전달이 아니고 서로에게 닿아서 이어지고 있는 걸까

말이  글이 세삼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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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통제가 어떤 때는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

 

위와 같은 인용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러고 보면 주인공  폴의 아빠는 아틸라 마르셀이고 폴을 치유해주는 부인이 프루스트이다.

두 사람의 이름을 합치면 마르셀 프루스트가 되고  폴이 과거의 기억을  꺼집어 내는 낚시 도구로 쓰이는 것이 차와 마들렌이다.

들은 풍월로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도 주인공이 홍차와 마들렌을 먹고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들었다.

멋진 오마주라 생각된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폴은 쌍둥이같이 닮은 두명의 이모와 함께 산다.  이모들은 폴을 피아니스트라고 하고 젊은 연주가상  대회에 늘 내보내지만 이제 서른 두살 그 대회 자격이 되는 것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폴은 어린 시절의 충격으로 말을 잃었고 (간혹 말을 하기는 했다) 그저 이모들의 댄스교습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공원에서 빵을 먹는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갈 뿐이다.

우연히 알게된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에 가게 되고 거기서 마담을 만나 독한 차와 마들렌으로 순간 정신을 잃으며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무의식적으로 기억의 수면아래에 꼭꼭 넣어두었던 기억을 하나 둘 기억해낸다.

폴이 프루스트 부인을 만나기전 두 이모와 노신사들의 대사에서 얼핏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확실하진 않지만 부모의 죽음을 그렇게 묻어두고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하지만 지금 현재 어떤 문제도 없으니 굳이 꺼집어 내어 상처가 될 지 모를 문제는 묻어두자고 두 이모는 말한다.

그래서 조금의 문제는 있지만 나름 평화롭게 살던 폴이었지만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면서 자신의 기억을 마주하고 혼란스러워진다.

자기의 기억속에 무섭기만 했던 아빠의 모습 그리고 어렴풋한 엄마에 대한 아빠의 폭행 기억앞에서 폴은 흐느껴 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내가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은 나의 모습이다. 그걸 마주하는 것은 몹시 힘들기때문에 누구나 가능하면 외면하고 회피하려고 한다. 지금 이순간 직면하지않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상처는 어쩌면 마주하기 두려워서 속에 꾸역꾸역 눌러담아두기때문에 쉽게 딱지가 앉지 않고 늘 짓무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눌러진 상처나 외면하는 과거는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것이다, 내가 외면하고 모르기때문에 지금이 편안하고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건 나의 온전한 삶이 아닌지도 모른다. 폴처럼 자기의 과거를 모르고 기억을 알지 못해서 늘 무기력하고 어딘가 비어버린 모습이다.

영화에서 폴의 과거는 뮤지컬처럼 경쾌하고 예쁜 색감으로 표현된다.

갓 태어난 폴에게 각자의 이루지 못한 꿈을 담아 미래를 예언하고 소원하는 이모들이나 아빠와는 달리 엄마는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게 할거라고 한다.

좀 더 자라 해변에서 엄마는 부모에게 강요받은 피아노 대신 다른 삶을 살거라고 하며 행복한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불안한 개구리들의 연주와 합창은 아빠와 엄마를 오해하게도 하지만 그것도 폴의 기억이고 과거의 한 부분이므로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폴의 과거는 꼭 인도영화처럼 노래와 춤이 곁들여지며 행복하고 아름답다. 음악도 좋지만 나는 그 색감이 끝내준다고 생각했다.

모든 기억을 찾고 콩쿨에서 멋지게 연주도 해낸 폴은 마지막 프루스트 부인이 떠나기전 남겨준 차를 먹고  이모가 그토록 숨기고 싶은 모든 것을 알아낸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는 않지만 폴은 행복하다.

새롭게 알게된 아빠의 모습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행복했으며 자기를 사랑했는지를 알고 꽤 괜찮은 아빠가 된다.

 

꾸역꾸역 눌러담아놓은 기억은 치유가 될 수 없다.

심리분석에서도 나의 내면을 직면하라고 한다. 심리치유가 별것 아니다 내가 나를 용기있게 마주 볼 수 있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이면 된다,.

과거의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처받은 나를 돌아보고 마주하면 더이상 그 아이에게 끌려다니지 않아도 된다. 가만히 바라봐 주고 모듬어주고 나면 현재를 살아갈 힘도 생긴다.

상담에 관한 책이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 상처받은 아이를 바라보고 그때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 자기를 표현하면서 눌렸던 억압을 해소하라고 하지만 그게 전부여서는 안된다.

나는 과거를 사는게 아니고 현재를 살고 있으니까 그 아이를 보듬어주고 나서는 현실에 발을 디디며 건강하게 살아내야하는게 더 중요한 거라 믿는다.

폴도 상처받은 아이를 마주하고 이제 피아노를 치지 않아도 행복하고  이모들이 혐오하는 중국인 아내와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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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에는 물리적 신체적인 접촉도 있고 눈빛 무언의 몸짓 사람들의 고정된 사고방식 타인에대한 오해등도 있다. 어떤 관습이나 오래 묵은 상식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봉도 폭력이 될 수 있고 나 아니면 상관없다는 방임과 무관심도 폭력이다.

세상 어떤 것도 폭력이 될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다양한 폭력이 나온다.

 

외딴 바닷가 마을 엄마가 도망가고 의붓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사는 도희는 모든 폭력에 노출되어있다. 술만 마시면 두들겨 패는 아버지와 할머니만이 아니라 그런 사정을 눈감아주는 마을 사람들 그러다보니 무시해도 그만이라고 믿어버리고 함부로 대하는 학교 친구들 모두가 폭력이다.

그 마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좌천된 파출소장 영남이 내려온다.

이곳에서는 타인인 영남의 눈에는 도희에게 가하는 다른 모든 사람의 행동이 비정상적이고 그런 오랜 관습과 행동에 익숙해져버린 도희조차  정상이 아니다.

영남의 도희의 상처를 처음으로 들여봐 준 사람이다.

하지만 영남역시 자신의 상처와 아픔이 너무 커서 밤마다 소주를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만큼 피폐한 상태이다.

그러나 직업윤리인지 개인적인 상식과 가치관에서인지는 몰라도 영남은 도희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맞서고 마을에 관습처럼 무심해진 폭력에 맞서면서 점점 외로워진다.

영화에는 다양한 폭력이 나온다

도희가 당하는 물리적인 폭력

나와 다르고 약한 존재라고 해서 함부로 대해도 그만이라는 암묵적인 폭력(이주 노동자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태도)

다르고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배타적이고 편견 가득한 태도들( 영남의 취향에 대한 마을 사람들 경찰동기들의 태도들)

그리고 편하고 익숙하다는 이유로 도덕적 법률적인 사소한 위반이나 타인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마을 사람들의 오래된 구습까지 영화  구석구석 너무 폭력적이어서 충격적인 장면이 없음에도 보는 내내 너무너무 아프다.

영화는 내내 보여지는 것만으로 전체를 판단하고 타인을  평가하는 모든 종류의 폭력을 보여준다.

그렇게 폭력이 오래 노출되고 익숙해지고 그 익숙함은 점차 별거 아닌것이 되고 별거 아닌것은 무시해도 상관이 없는 것이 되면서 남이 당하는 건 나만 아니면 그만이고 내가 당하는 건 무언가 내게 잘못이 있을거라는 죄책감과 무기력으로 되풀이된다.

도희는 폭력이 익숙해져서 너무나 무감하고 당연하다.

도희가 말한다. 아무리 맞아도 춤한번 추고 나면 다 잊을 수 있다고...

그건 극복이 아니고 그냥 덮어두는 것일뿐이고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이는 것일뿐이다.

그렇게 피해에 익숙해진 도희는 자기도 모르게 점점 괴물이 되어간다.

자기는 나쁜 아이니까 맞아야 한다는 자학적인 행동이나 마지막의 반전은 그런 도희를 잘 보여준다. 살기위해서 괴물로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도움을 받고 지지를 받을 경험이 없었던 도희는 스스로 괴물이 되면서 자기를 방어하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려한다.

폭력이 얼마나 나쁘고 잔인한지 도희는 온몸으로 모든 행동에서 보여준다.

 

영남은 자신도 혼자 서기 힘들만큼 피폐해졌다.

자기 잘못은 아닌데 대다수와는 다른 정체성으로 불이익을 받고 손가락질을 받는다.

그렇다고 자신의 다름을 당당하게 드러낼 수없는 폐쇄적이고 고지식한 사회에서  본능과 이성사이에서 힘들다. 밤마다 소주를 벌컥거리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고 점점 그녀가 둘러싼 껍질을 두껴워지기만 한다.

하지만 내 고통에 흔들리는 영남은 내가 힘들고 아직 미성숙한 상태에서도 도희에게 손을 내민다. 처음에는 아는척 단단한 척 손을 내밀었지만 도희와 함께 할수록 그리고 그녀가 찾아와 흔들릴때도 도희에게 내민 손을 잡아준다.

성숙하고 바르게 서있을 힘이 없는 상태에서도 누군가에게 의지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부족한 내 도움을 바라는 상대를 보면서 나도 강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영남이 참 아픔답다.

 

살기위해 괴물이 되는 건 도희만이 아니다.

불법체류자가 되어  아픈 어머니에게 가고 싶어하는 외국인 노동자도 스스로를 위해 순간 괴물이 된다. 살기위해서 내 속에 있던 눌러놓았던 괴물을 꺼내야 하는 순간은 얼마나 또 비참할까... 괴물을 꺼집어 내어 순간을 넘기지만 그 괴물이 다시 사라지고 원래의 나로 돌아오는 순간은 비참하고 부끄럽다.

그래서 철창에 갇힌 노동자의 눈빛이 슬프다.

스스로 괴물처럼 영악하게 굴어  영남을 구해낸  도희도 너무 슬프고 부끄러울 것이다.

내가 괴물이 되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한게 없다는 것

자꾸 아니라고 하고싶지만 살기위해서 괴물이  또 될 수도 잆다는 생각과 그러다 영영 괴물이 되어 나로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나하는 갈등으로 괴물은 무서우면서 슬픈 존재가 된다.

영남도 괴물이 되었었던 도희를 떠나려고 한다.

하지만 순간 깨닫는다.

내가 지금 그 아이와 눈을 맞추고 그 괴믈을 바라봐 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그리고 나는 괴물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직 완전하지 못하고 서툴고 불안하지만 둘은 함께한다.

영화에서는 보여준다

누군가는 살기위해 괴물이 된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은 그 괴물을 두려워하고 마주 보지 않는다는 것

내가 피하고 방임하면서 괴물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슬프게 발톱을 세우고 있을 거라는 것...

그러다 내가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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