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니엘 블레이크

 

시스템은 점점 정교해진다,

자본주의는 굳이 인간의 노동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어쩌면 자본주의는 인간의 노동위에서 성장하고 몸집을 불려왔지만

그 자본주의가 완성된 곳에서 인간은 없다.

 

완벽한 시스템속에서 인간의 목소리를 듣기 힘들다,

무언가 문제가 있거나 의문이 있어서 물어보고 싶어도 우리는 먼저 기계음을 들어야 한다,

전화 버튼을 누르고 나면 녹음된 기계음을 듣고 또 한참을 유료로 기다린다,

그리고 몇번의 질문에 목소리없이 대답하는 순간을 지나야 사람을 만난다,

때로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을 처리해야할 경우도 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가장 편리한 인테넷 그리고 넷망을 통해 정보처리가 되고 물물교환이나 매매가 이루어진다, 우리는 하루종일 누군가를 만나지 않고 모든 일을 처리할 수도 있다, 먹고 자고 소비하는 일을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가능한 세상이다,

 

주인공 다니엘 브레이크는 40년을 목수로 일한, 지금은 심장병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아마 60대 백인 남성이다, 그는 한번도 컴퓨터를 사용해본적이 없고 연필이 익숙하고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마우스를 몇번 클릭하고 드래그를 해야 실업수당을  신청할 수 있고 의료수당의 문제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세상에서 다니엘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첨단의 기술로 편리하고 세련된 세상에는 사람이 없다,

I  나 라는 존재는 없다,

영화 첫 장면에서 화면없이 대사가 나온다,

의료수당을 위햔 면접에서 면접관의 질문과 다니엘의 답변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질문은 예와 아니오로 이루어진다, 뭐든  다른 말이 첨언되면 에러가 된다, 보충설명이나 다른 구체적인 상황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저 묻는대로 예 아니오 두가지뿐이다,

컴퓨터가   0 아니면 1 두가지만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상은 그것을 발달이라고 하고 기술혁신이라고 하고 편리함이라고 한다,

 

그러나 다니엘은 아날로그 인간이다,

자기처지도 어려운데 더 어려운 싱글맘 케이티 가족을 돕는다,

집안 곳곳을 손봐주고 전기료를 내라고 돈을 주기도 하고 아이들을 인간대 인간으로  말을 걸고 귀를 기울인다,

케이티는 다이엘보다 더 처지가 딱하다,

돈이 없어 아이들에게만 식사를 주고 자기는 과일로 연명하고 식료품 배급소에서  허기를 견디지 못하고 통조림을 따서 손으로 허겁지겁 먹어버린다, 배가 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배급소에서 정작 케이티가 필요했던 것은  생리대였다,

그녀가 어렴게 뱉은 질문은   '혹시 생리대는 없나요?" 였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의식주만 필요한게 아니다,

의식주는 기본일 뿐이다,

사람답게 숨쉬고 살기위해서는 필요한게 또 더 있다, 풍족하게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인간답게 생존하기 위해서  또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것이다,

언저리로 밀려난 싱글맘 케이티에게 생리대는 음식 이상의   절박한 무엇이다,

결국 그녀는 슈퍼에서 물건을 훔친 것을 들키고 급기야 매춘으로 나서게 된다,

젊고 아직은 아름다운 여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마지막 선택은 결국 자신을 놓아버리고 자신의 자존감을 무시하는 것이다,

 

시스템은 잘못이 없을 것이다,

입력되고 세팅되어진대로 일을 행할 뿐이다,

네 아니오의 대답만을 세팅했으니 그 이상의 말들은 과부하가 걸릴 수 밖에 없고

인간을  알지못하고 의뢰인 고객 사용자 만 알 수 밖에 없고

제각각의 개성이나  심성을  넣지 않아서 보험번호나 사회보장번호따위로  분류할 뿐이다,

결국 그 시스템은 편리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배제한다,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엄마는 매춘을 결심하고 권리 하나 얻기위해 여기저기 시혜를 구걸하던 다니엘은 결국 자긴을 구직수당 대상자에서 이름을 빼라고 한다,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한바탕 저항의 뭄부림을 치지만 결국 순응할 수 밖에 없다,

승소가 확실한 항고를 앞두고 다니엘은 어이없이 숨을 거둔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나는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도둑도  아닙니다,

나는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난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그가 항고할때 말하려고 준비했던 것이 그의 유언이 되어버렸다,

 

사람이 편하려고 개발된 시스템에서 정작 사람은 없었다,

함리적이고 신속한 과정이라는 것이 사람을 소외했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었고 자기 처지를 사실적으로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구걸하지 않았고 누군가의 것을 빼앗지도 훔치지도 않았고  어떤 일확천금을 꿈꾸지도 않았지만 다니엘 블레이크는 그렇게 가버렸다,

사람이니까 여기 사람이 있으니 사람의 말을 들어달라고 했을 뿐인데 아무도 듣지 않고 절차를 거치고 인터넷을 거치고 기다리고 맞추라고만 했다,

사람이 너무 흔해서일까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사람으로 대우받는 일이 정말 어렵다,

 

 

아직 삼성동 집 (사저라는 말도 쓰고 싶지 않다, 사저는 무슨..) 난방이 되지 않아서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아직 추운계절이라 난방이 필요하고 도배가 필요하고 인터넷망이 필요하단다,

그래서 일개 개인이 되어버린 인간이 일개 개인은 쉽게 들어갈 수도 가까이 갈 수 도 없는 청와대에서 빼대고 살았다 ( 경상도 울 할머니 말투인데 이렇게 딱 맞을 수가 없다)

인간적인 호의로 그정도는 봐주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인간적인 호의 인간적인 도리, 정... 그래 좋다

그런데 누구는 인간적인 호의를 받아 마땅하고 누구는 인간적인 흐의따위는 불공정한 예외조항이 되니까 하면 안되는 일이 되나?

누구는 춘삼월 보일러가 안되서 집에 못들어가고

누구는  같은 봄날 차가운 바다에서 나오지도 못하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누군가는 길거리에서 내 목소리를 우리의 말을 들어달라고 그렇게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도  법에 어긋나고 원칙에 어긋나고 시스템에 맞지 않아서  들은 척도 하지 않나?

전세집을 옮길때도 칼같이 만기날을 맞춰야 하고 혹시나 하루 이틀 더 있어야하면 돈을 더 내야 하는 법이다,

돈내고 들어가는 호텔이나 여관방도 체크아웃 시간을 넘기면 추가요금이 붙는다,

인간적인 도리도 있겠지만 그래도 원칙이니까 지켜야 한다고 다들 동동거리는데

누구는 저 삐졌다고 온동네 티 다내면서 입 딱 다물고 엥돌아서 버티고 버티다  나간다,

누구는 사람이고 누구는 짐승인가

 

 

 

 

 

 

 

 

 

 

 

 

 

 

책을 읽고 어떻게 리뷰를 써야햐나  굳이 쓸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나같이 마르크스는 이름만 알고 들은 풍월이 전부인 사람에게 마르크스의 여러가지 사상과 삶을 보면서 하나 내게 닿은 것은 사람이 우선이다,,, 라는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노동과 자본으로 부가 축적되는 시기를 보면서 자본이 축적되면 될 수록 사람은 희미해진다, 자본이 자본을 낳는다, 그것은 선명한데 그 자본을 움직이고 생산을 하는 노동은 점점 희미해지고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그 사회에서 사람이 만드는 노동 자본때문에 소외되는 노동을 먼저 보자고 하는게 마르크스라고 읽었다,

그게 맞는지 아닌지 아리송한 가운데 영화를 보았다,

 

다니엘은 아이의 방에 뽁뽁이를 발라주며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모여 따뜻해질거라고 말해준다,

손으로 만든 물고기 모양의 모빌을 주면서 세상에서 가장 환한 바다속이라고 말해준다,

아이는 노인을 찾아가 이젠 우리가 돕게 해달라고 말한다,

아이가 노인을 안아준다,

그렇게 사람을 위로하는 건 사람일 뿐이다 사람의 체온이고 사람의 마음이다,

 

영화는 다니엘에 항고판정을 받지도 못하고 사망한다,

항고가 잘 되더라도 다니엘이 승리하는 건 아니다, 그저 의료수당을 받을 뿐이다,

그러나 그나마도 보지 못하고 다니엘은 사망한다,

어떤 작은 승리도 없이 그냥 그렇게 허망하게 영화는 끝이 난다,

결국 어떤 것도 작은 마무리도 없이 여전히 진행중이라고 감독은 말하고 싶었을까

 

탄핵이 되고 청와대가 비었다고 모든게 마무리가 된것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처웃으면서 자기 잘못은 손톱만큼도 모른다는 얼굴이고

변화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어떻게 될지 나도 너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긴장해야하고 생각해야하고 말해야하고 행동해야할 읾이 계속될 뿐이다,

이젠 좀 쉬자는 마음을 지난 일요일밤 야간도주하듯 돌아와 쳐웃던 그 얼굴을 보고 화들짝 다잡게 되고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 아직도 계속이구나,,,  생각한다,

아직은 화를 풀어야 할 시간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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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다리   흔들리는 바람 흔들리는 빨래 흔들리는 암실의 액체

흔들리는 마음..마음.. 마음

 

영화는 음악이 없었던거 같다,

너무 고요해서 깜빡 졸거 같았다,

나오는 사람도 단출하다

 

타케루와 미노루형제  그 윗대인 이사무와 오사무형제

누군가는 고향에 남아 고향을 지키고 누군가는 타지로 떠난다,

남은 이는 자유롭게 훌훌 떠난 이가 부러웠고 혼자 고향에 남아 모든 걸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떠난 이는 자기가 고향으로부터 팽개쳐졌다고 믿는다,

 

너는 떠난 이였다,

고향에 남아 아버지의 주유소를 함께 경영하는 형은 남아 있는 이였다,

도회지에서 패션사진작가로 성공했지만 어쩌면 너의 마음속에는 큰아버지  오사무처럼 내팽개치고 혼자 잡초처럼 살아남았다는 억울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음 좋은 형은  속없는 형은 그저 아버지 그늘아래서 다만 아버지의 그 불같은 성정만을 받아주기만 하면 안전하고 평화롭다고 적당히 무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너는 고향에서도 늘 겉돌았다,

어머니 기일에 맞춰 모두가 상복을 입을 때도 너는 혼자 튀는 옷을 입었다,

어머니의 유물은 필요없었고 옛 여자친구도 처음엔 모른 척했다,

고향은 그립지만 지겨운 곳이고 나를 버린 곳이고 이젠 필요없는 곳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너에게 고향이란 적당히 때맞춰가야하는 곳 이상도 아닐것이다, 이젠 어머니마저 없으니 더 그렇다,

형이 마음에 두는 낌새에 어쩌면 순간 욕심을 부렸을 것이다,

여자친구였던 치에코에게 관심을 보이는 형

내가 갖긴 싫지만 남에게 주기는 더구나 형에게 주기는 싫었던 욕심에 너는 치에코와 하룻밤을 보내지만 어쩌면 그 일이 발목을 잡을까봐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치에코의 방에 있는 너의 사진집이 어떤 집요함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함께 놀러갔던 계곡에서 너는 무엇을 보았을까

흔들리는 다리위의 형과 치에코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재판진행중 변호사인 큰아버지에게 노상 말했던 것처럼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았다는 너의 말은 과연 진실이었을까

너는 형제간의 우애로  형을 도와주는 것이고 순수하고 착한 형이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고 믿었고 형은 결백하다고 믿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순간까지는 형도 너에 대해 그 착하고 순박한  표정과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형이 치에코를 밀었는지 떨어지는 치에코를 잡지 못했는지는 정확히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니 형 미노루도 모를지 모른다,

그 찰라의 순간 나는 치에코를 잡고 싶었을까 아니면 그대로 떨어지기를 바랬을까

내가 손을 내밀어도 내 의지가 없는 거였으면 내가 민것이나 다름잆을테고

내가 차마 손을 뻗지 못해도 마음이 다했다면 그건 노력한 것일테니까

어쩌면 미노루도 모르는 마음을 너는 진심으로 믿었을까

 

구치소 면회시간에 형을 만나면서 형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너도 변했다,

치에코가 술을 마지시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던 형

내가 그 날 밤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던 형

형이 모든 것을 차지하고 너가 내팽개쳐진 것이 아니라

너는 모든 것을 형에게 얹어주고 자유롭게 탈출했다고 형이 믿고 있다는 걸 알았을때

형 때문이 아니라 너 때문이라고

서로가 서로에게 말할 수 없었던 그래서 여태 말하지 않았던 말들이 오가고 드러났을 때

너는 다른 것을 기억한다,

 

그 날 그 다리위에서 나는 떨어지는 치에코를 보았다,

그리고 손을 내밀지 않은 형을 보았다,

누구나가 알듯  너가 있던 그 곳에서는 형과 치에코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너는 너가 본 그것을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너가 본 것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그 장면의 의미는 달라져버렸다,

형이 차마 구할 틈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일부러 구하지 않았다, 밀지는 않았을지라도 구하려고 들지도 않았다고 그 사실이 다른 진실을 가진다,

그게 형을 위하는 길이라고 너는 법정에서 말한다,

사실을 말하고 진실을 알려서 형이 다시 좋은 형으로 돌아오라고....

 

그리고 7년이 흘렀다,

이제 바람부는 고향에서 늙은 아버지는 빨래를 널고 빨래를 걷고 애를 쓴다,

너는 아마 그동안 고향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떠났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래서 찾아온 주유소 직원에게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형의 출소일에 가지 않겠다고

여전히 형이 다시 주유소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그 직원을 보면서

아직도 형이 모든 것을 가진거라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빼앗긴건 형이 아니라 너라고...

그러나 우연히 보게된 어머니의 유품

그건 어린 시절 그 계곡으로 놀러갔던 가족의 모습이었다,

환등기속의 어린 너와 어린 형은 너무 다정했다,

 

나는 너무 겁이 많아서 흔들다리는 건너지도 못했지

그런데 타케루는 어려도 용감하게 건넜는데 나는 건너질 못했다고

형이 그 날 치에코에게 말했었다,

그런데 환등기속의 어린 너와 형은 둘이 손을 꼭 잡고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형은 한손은 너를 잡고 한손은 흔들다리의 난간을 꼭 잡고 한발 한발 너랑 건너고 있었다,

내게 꽇을 주고 손을 잡아주고 웃어주던 먀냥 좋아 보이던 형이 그때도 그랬었다,

 

너는 그 장면을 보고 왜 울었는지 나는 모른다,

짐작은 가지만 그게 틀렸을 수도 있다,

 

너는 너가 보고싶으 대로 보이는대로 보았고 그렇게 말했다,

세상사는 인간관계는 사진처럼 사물이 객관적을 적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어서 어떤 사실을 인지해도 결국 내가 가진 감정과 그 상황에서의 감각들 빛과 바람  냄새와 공기에 따라 다르게 저장한다,

사실은 내게로 와서 내가 걸러내고 첨가한 상태로 저장된다,

사람들은 그것을 기억이라고 부른다,

내가 보았으니 사실이다,

그러나 아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속의 상황은 아무것도 사실이 아니다,

진실은 있을 수 있겠지만 저마다의 진실일 뿐이다,

 

너는 어쩌면 그걸 알았을 것이다, 똑똑했으니까

사진을 찍는 사람이니까...

그러나 모른 척했다, 아니 그땐 그렇다고 믿었을 것이다,

진실은 형이 손을 내밀지 않은 것 그래서 치에코가 사망한 것이라고....

그것이 사실일 지도 모른다,

어쩌면 형이 그 순간 치에코를 미워하고 너에게 질투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사실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도 가끔 착각을 한다,

내가 보았고 내가 들었고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므로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기억한다고...

그러나 가끔 나도 나를 믿지 않아야 할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내 모든 기억을 뒤엎고 누군가를 그대로 믿어주어야 하는 순간이 분명이 있을 것이다,

사실이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내마음이 그의 마음이 더 중요한 순간이 있다고

너는 내게 말해주고 있다,

 

 

덧붙여

 

이 영화는 오다기리 조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보여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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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평이 많았던건 어쩌면 남성입장에서 많이 불편한 영화였기때문일 것이다,

스릴러이고 정치판이 나오고 홈홈 스위트 홈이 나오고 소녀들이 나오고 실종이 나오고 야심이 큰 남자가 나오고 에쁘고  환상적인 여성이 나온다,

그렇다면 남자들이 기대하는 건 가족간에 생긴 갈등을 야심이 큰 남자가 자기 야심을 죽이고 해결해나가고 그 과정에서 딸이 가진 또다른 소녀소녀한 모습을 발견하고 예쁘고 환상적인 여자는 옆에서 울부짓으며 부들 부들 떨면서 남자에게 기대야 하고 그리고 남자는 모든 악을 물리치고 피가 흥건한 붕대를 감은 채 복근을 드러내며 마무리를 지어야 하건만,.....

이 영화는 당취 그런 기대감을 부숴버린다,

 

중학생 엄마를 하기에 손예진은 여전히 예쁘고 젊지만  어릴 적 좀 놀았고 공부머리 없고 가수가 되겠다고 대책없이 굴다가 한때는 영부인이 되는 속물적인 꿈을 꾸었던 전라도 광주출신의 여자 연홍은 경북 대산시 (아마도 대구?)에서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슈퍼히어로가 되어간다,

그러나 따뜻하고 정의로운 슈퍼히어로는 아니다,

딸이 실종됨에도 선거에만 몰두하는 남편과 맞장뜨고 난 후 한번도 화를 풀지 않는다,

무표정하고 화난 얼굴로 미친년처럼 머리를 풀어해치고 여기저기 해집고 다닌다,

학교로 경찰로 종횡무진 다니고 심지어 굿판에서 엎드려 빌거나 무당과 함께 쌍욕을 해댄다,

누구에게도 애둘러 말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고 하고 싶은 것 해야할 일은 그대로 밀고 나간다,

그리고 마지막... 범인을 죽임으로서 끝나는게 아니라 두고두고 수치감을 느끼고 살아가도록 배려(?)한다.

 

어딘가 친절하지만 살벌한 금자씨 같기도 하지만 금자씨만의  으스스한 나긋나긋함은 없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 나오는 김혜자 엄마도 생각난다, 그러나 그 엄마는 아들을 위해 나긋나긋하게 떄로는 비굴하게 웃어가며 결국은 원하는 걸 성취하지만 결국 스스로 그리고 아들이게도 지옥을 선사할 그런 끔찍한 엄마라면

손예진의 엄마는 두눈 부릎뜨고 딸을 위해 미친년이 되는 걸 마다하지 않고 오직 직진만을 고수하며 여기저기 부딪치고 그리고 통쾌하게 해결해버린다,

김혜자의 엄마는 의외로 나긋나긋 여성성을 드러내며 문제를 해결하지만

손예진의 엄마는 보라색 원피스를 입어도 가슴이 깊이 패인 원피스를 입어도 그냥 무대뽀 로 진실만을 향하는 엄마다, 대책이 좀 없다,

 

결국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되는 두 엄마의 삶은 어떠할까

김혜자 엄마는 잘생긴 아들 원빈과 그냥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을까

문득문득 순진한 아들의 얼굴에서 섬찟한 무언가를 발견하거나 자신에게서 지울 수 없는 괴물을 발견하고 힘들어 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그 엄마는 그래도 엄마는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내 아들을 더 지키려고 도끼눈을 뜨고 있지 않을까 싶다,

반면 손예진 엄마는 .. 이미 가정은 깨졌고 딸은 죽었고 추문은 남았고 자신도 망가졌다,

무엇하나 남지 않은 대산에서 그는 어떻게 살까

어쩌면 바다건너 케빈의 엄마처럼 그렇게  단순하게 조용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살아갈까

 

군데군데 거칠고 화면도 내내 어두워서 이제 노안이 온 나로서는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고 봐야했던 영화였다, 그럼에도 오기지니가 부르던 와일드 로즈 힐 노래는 처량하면서도  섬뜻하고 애잔하면서 아름답다,.

이렇게 여자가.. 그것도 강한 여자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영화는 얼마만알까

주위에 저마다 속셈을 가지고 눙치면서 계산하는 남자들과 달리

이 영화는 여자가 사건을 일으키고 문제를 만들고 자기만의 방식을 고수하며 사건을 풀어간다,

연홍도 민진도 여교사도 모두자 스스로 움직인다,

솔직히 여기서 남자들은 모두 찐따다,

 

불편하고 불쾌할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는 통쾌하고  아름답다.

세상엔 너희가 원하는 아름다움만 있는 건 아니니까

무식하고 단순한 화가 난 직진이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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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하루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이 '최악의 여자'라고 한다,

영화를 보기전 여러가지 정보를 종합해보면

주인공 은희가 제각각의 남자들에게 하는 거짓말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후 생각은

은희가 언제 거짓말을 했지?

은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제각각의 대상에게 제각각 어울리는 역할을 한 것 뿐이다,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나도 엄마로서 아내로서  학생으로서 친구로서 동료로서 제각각 다른 모습을 보인다,

친구들에게 엄마처럼 굴 수  없고 내 아이들에게 동료처럼 대할 수도 없고 남편에게 딸처럼 어리광을 부리지 않는다, 그건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도 할 수 있다,

맞는 상황에 맞는 에디튜트를 갖추는 것

그건 상황과 장소에 맞는 옷차림처럼 당연한게 아닐까

그리고 종합해보면 현오나 운철에게 각각 다른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다,

대상이 다르지 않은가?

같은 사랑하는 애인이라고 해도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르고 관계가 다르다, 그렇다면 상대에게 맞게 맞춰 줄 수 잇다,

그게 어떻게 거짓말인가

그리고 어째서 은희가 최악의 여자란 말인가

은희는 찌질하고 철없고 자기만 아는 남자를 만난 최악의 상황에 처한 여자일 뿐이다,

어쩌면 현오도 운철도 은희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남자들은 자기 언행은 생각하지 않고 양다리를 걸치고 서로에게 다른 말을 한 은희를 거짓말장이로 만들고 쌍년으로 만들어버린다,

은희 하나가 희생하고 욕을 듣게 되면서 스스로는 괜찮은 남자가 되고 교모하게 상황을 빠져나간다 은희에게 땅을 파고 들어가라고 막말을 해대면서 자기는 매우 선하고 아무 잘못이 없는양 군다,

현오는 철이 없다, 철없음이 젊음이라고 착각한다. 자기의 거짓말이나 자기의 혼돈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자기가 은경이라고 부른 사실은 냉큼  잊어버리고 은희에게만 타박이다,

운철도 이혼도 안한 자기 상황을 무슨 순애보처럼 꾸미고 운명앞에 거부할 수 없는 순정남처럼 행동한다, 그렇게 보이고 싶어하고 은희가 그렇게 받아주길 바라면서 은희에게 젊은 애인이 있음을 알고는 은희만 타박이다,

두 사람은 전혀 자기의 본 모습을 볼 수도 없고 볼 생각도 없고 알려는 의지도 없다,

그냥 은희 하나 이상하고 최악의 여자로 만들고 유유히 빠져나간다,

 

은희는 그렇게 혼자 남산에 남겨졌다,

물론 은희가 두 사람에게 진실하고 진정성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살면서 매순간 진성성을 보이나?

나를 꾸미고 싶고 내가 다른 사람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또 그게 난가? 하는 착각도 하면서 사는 거 아닐까

은희에게 최악이란 하필 자기가 가진 여러가지의 페르소나를 한꺼번에 마주햇다는 우연같지 않은 우연뿐이다,

그게 뭐 어쨌다고.....

료헤이의의 대화에서는 낯선 언어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 없지만 의사소통은 언어만 있지는 않다, 거짓말을 하고 속이려면 언어는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은희는 그 앞에서는 조금 진실하고 본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보여지는 모습을 기대하지 않는 그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때때로 나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가장 편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이 하루가 은희에게 료헤이에게 현오에게 더구나 운철에게도 최악의 하루일 수는 있다,

제각각의 이유로

하지만 은희가 최악의 여자라는 건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이런 아침 극장안은 달랑 두명의 관객이  있었다,

두 명은 앉혀놓고 상영해서 뭐가 남을라나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지만 대형 멀리 플랙스에 대한 걱정까지 할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둘 다  비슷한 나이의 동성이라.. 정말 편안하게

먹어가며 눈치보지 않고 웃음을 터뜨려가며 영화를 봤다,

주로 현오나 운철을 보며 기가 막혀 웃고

은희의 영악하게 굴어도 아직 세상을 모르는구나 하는 모습에 혀를 차며 웃었다,

니네들 세상을 더 살아봐야겠구나

겨우 그걸로 최악이니 어쩌니 하는 걸 보니... 하는 아줌마스러운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

말은 나누지 않았지만 또 한명의 관객 역시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우리는 같은 포인트에서 웃었으니까...

 

삶이란 가까이서 보면 최악이고 더할 수 없는 비극이겠지만 멀리서 물을 마시고 오징어를 씹어면서 보면 더 할 수 없는 코메디고 희극이더라

타인의 최악의 하루에 웃어댄게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주인공들이 10년 정도 더 살고 나면 웃을 수 밖에 없겠구나 하고 알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예리는 예쁘진 않지만 참 매력적이다,

어디에 있어도 참 잘 어울리고 스며드는 배우다,

 

영화는 최악의 하루지만... 그날 나의 하루는 영화로 인해 최악만은 아니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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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모양새는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색하고 피하고 싶은 상대는 가족이다,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불편하고 동시에 나를 너무 몰라서 외롭다,

 

일찍 죽은 형의 기일에 맞춰 오랜만에 료타네 가족은 부모님 집으로 간다,

아이가 달린 여자와  결혼한 이후  아직 어색한 관계인 모양이다,

그러나 더 어색해 하는 건 아내나 아들보다 료타 자신이다,

어떻게든  하룻밤을 자고 싶지 않다고 핑계를 궁리하지만 오히려 아내는 담담하다.

 

집에서 늙은 어머니는 음식을 하며 수다를 떤다,

그 수다의 상대는 결혼한 딸이고 남편은 언제나처럼 무뚝뚝하고 본인 관심이 없으면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주가 오면 할머니는 깍듯하게 맞이한다,

서로가 예의바르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

함꼐 음식준비를 하면서 어릴적 추억을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처음엔 어색해하다가 쉽게 어울린다. 음식이 모자를까 스시를 주문하고 배달온 오랜 이웃인 스시집 아들과 수다를 떨고 함께 식사를 하고 맥주를 마신다,

사위는 어색함인지 무사태평인지 식사후 잠들어버리고  아버지와 료타는 둘만 남을까 전전긍긍이고 어머니는 그래도 부자지간에 무언가 대화를 하기를 바라며 자리를 비운다,

그러나 어색하게 피하거나 무의미하게 부딪칠 뿐이다.

서로는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 아니 어떻게 다가가는지 알지 못한다,

형의 무덤을 다녀오고 아들이 출세해서 뭔가 뻐기가 싶은 어머니의 속물이 드러나기도 하고 그런 어머니가 귀찮고 부담스러우면서 동시에 죄스러운 아들도 있고  무심하게 엄마의 도움을 당연시 하는 딸이 있고 어색한 가운데서 예의는 다하려고 하지만 마음을 나누기는 힘든 며느리도 있다,

오후 큰 아들의 죽음의 이유가 되는 사내가 찾아온다,

큰 아들이 구해준 그때 물에 빠졌던 소년은 이제 청년이 되었지만 뭐하는 제대로 된 것이 없고 취직도 안되는 하찮은 인간일 뿐이다,

이런 하찮은 인간을 위해 내 귀하고 잘난 아들이 죽었다는 걸 부모는 아직도 못견뎌하면서

잔인하게 그 청년의 죄책감을 건드린다,

 

자식은 부모곁은 떠나면서 마음편하게 안도하고 부모는 또 다시 찾아올 자식을 벌써 기다리기 시작한다,

언제나 그렇게 상대를 향한 마음은 늘 엇갈리고 같은 물질 같은 성질을 가지면서도 그 부피와 색 냄새가 미묘하게 달라서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고 어려워한다,

그게 가족이다,

감독이 그려내는 가족은 나쁘다고도 좋다고도 할 수 없는 현실 그 자체다,

사람은 누구나 악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하고 악해보이기도 하고 선해보이기도 하다,

료타도  아내도 그저 부모들이 보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느 정도 이상은 허용하지 않는다,

외로운 누부부는 자식을 기다리고 기다리지만 막상 마주하면서는 데면데면하다,

 

 

따로 살면서 늘  엄마는 아빠에게 자주  전화 좀 드리라고 했었다, 자주 내려오지는 못해도 전화라도 자주하라고.. 꼭 내가 하라고 하라고 해야 마저 못해나냐고... 늘 잔소리였다

어느순간 아버지가 나이가 들면서 이번에는 아버지가 엄마에게는 전화를 자주하라고 어색하고 무심하게 말했다, 나는 괜찮지만 니 엄마는 얼마나 너들  걱정하는지 아느냐,. 늘 니들 생각밖에 없는 엄마인데 목소리라도 자주 들려줘라,

그냥 흘려들었다,

영화속에서 료타도 늙은 아버지의 갑작스런 그 잔소리를 세삼스러운 표정으로 듣지망 아마 나처럼 흘려들었을 것이다,

자식도 살아가는 무게가 만만치 않다,

젊다고 모든 게 다 견딜만한것도 아니고 이제는 젊은 나이도 아니다,

그래서 내 앞의 삶에 허덕이다보면 지금 이순간 눈에 보이지 않은 부모는 가족은 잊히기 마련이다, 마음이 없는게 아니라  여우가 없다, 속을 비워야 무언가가 들어올텐데 이것저것 정리되지도 못한 것들이 뒤죽박죽 속을 꽉 채우고 있다, 그 복잡하고 찌질한 속내를 부모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건  그 나름의 상대에 대한 배려였다,

그러나 그 배려가 부모에게는 무심함이고 무관심이고 서운함이다,

조금만 조금만 걸어도 걸어도 둘 사이의 거리를 가까워지지 않는다,

영화속 긴 계단과 언덕길처럼 그렇게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어보인다,

저 계단 위에 부모가 있고 저 언덕위에 그가 있음을 알지만 그 아득한 계단을 오르기도 전에 지치기 시작하거나 언젠가 다시 갈  시간은 충분하다고 믿고 있다,

 

영화는 별다른 사건이 없이 물처럼 흘러가지만

계속 무언가 위태롭고 아슬아슬했다,

터져봐야 별거 아닌 거라는 걸 알지만 그 갈등의 고조가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알아서

꼭 내 부모와 나의 관계처럼 예리하게 다가온다,

가족끼리만 아는 지뢰밭이 있고 가족끼리만 아는 지름길이 있다,

어떤 부분을 건드리면 안되는 지 모두가 알지만 모른 척 해야하는 지점이 어니딘지 진심이 담기지 않아도 이렇게 말하거나 행동하면 된다는 지침같은 것들

이미 익숙해진 가족끼리 모두 알아서 제대로 피하고 모른 척하고 있지만 무심코 본 모습이 드러나거나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감정들로 어느 순간 지뢰를 밟아버리거나 지름길을 놔두고 돌아가버리는 용심을 부릴 때가 있다,

그냥 이젠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혹은 이젠 괜찮지 않을까  행여 변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

그러나 모든 것을 덮어두고 모른 척 하는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라고 변명하고 싶다,

내가 잘 안다고 여기는 내 엄마의 섬뜩한 모습 혹은 정신 나간거 같은 모습이 순간 낯설어지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알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다,

언제나 벽같은 아버지는 늙고 쪼그라들어가고 있고 어쩌면 지금 내가 가장 의지하는 배우자나 내가 든든하게 지켜줘야 할 내 아들도 언젠가 타인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나도 그렇게 보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이 뭘까 한 참을 생각해본다,

가장 가까운 존재

가장 잘 아는 존재

가장 의지 되는 존재

그래서 가장 알 수 없는 존재

그냥 내가 아는 걸 인정하고 모르는 건 새롭게 알아가고

또 그렇게 그러려니 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우리가 아는 이상적인 가족이란 언제나 화목하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웃고 미소짓고 걱정하고 그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도와준다,

언제나 다독이고 이해하고 배려한다,

우리는 그런 만화를 보고 책을 보고 드라마를 보면서 가족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가족이니까 남이 아니니까

가족이라고 묶이는 순간 그런 화목함은 저절로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했고

우리가족이 그런 이상적이지 않은 것은 내가 아니라 상대가 노력하지 않고 이상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당연히 가족이라면 따라와야하는 풍경이 우리에겐 없다는 것은 내탓이 아니었고

그건 왠지 죄스러움이기도 했고 불만이기도 했지만 그게 노력을 필요로 하고 간혹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걸 몰랐다,

그냥 데면데면할 수도 있고 서로 서운 할 수 도 있고 목청을 올리며 싸울 수도 있고 속물스러움을 나누면서도 그려려니 하고 그러면서도 직설적으로 충고도 하고

누구보다 조심스러워야 하고 누구보다 진심이어야 하는게 오히려 가족이라는 걸

가족속에서 태어나고 또 가족을 이루고 살아온지 40년이 넘어서 조금씩 알아간다,

가족은 힘이지만 독이다,

잘 쓰면 약이 될 수도 있지만 치명적이고 내게 든든한 뒷배경이지만 언제 그 힘이 나를 압도해버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의 가족관이 꽤나 비관적이고 냉소적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관계든 노력없이 애씀 없이 이뤄지는 건 없다,

하루하루 나이들면서 계속 꺠달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그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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