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일렛

 

"그래서? 그게 중요해?  그렇다고 해도 지금까지 잘 살아 왔잖아??"

 

극 중 주인공 레이의 연구소 친구의 대사다,

영화의 마지막 몇분을 남겨놓고 레이는  자기가 이들과 진짜 가족이 아니라는 진실을 마주한다,

사실 공황장애가 있는 형도 이기적인 여동생도 어쩌면 타인이 아닐까 의심했던 할머니 마저 알고 있는 사실을 자기만 몰랐다는 것.  알고 보니 자기가 타자였다는 것을 마주하고 고민하며

어렵게 연구소 동료에게 털어놓았을 때 그 인도출신의 친구는 무심하게 그렇게 내뱉는다,

듣기에 따라 정말 인정머리없고 공감능력 제로에 남의 감정따위는 알아주지 않은 사이코패스거나 냉혈한 같은 소리다,

그러나...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레이가 몇 살인지는 모르겠으니 30년 가까이 가족이라고 믿고 그래서 어떤 어려운 일이나 문제없이 살아왔던 사람들이 내 가족이 아니라는 사실이 지금 와서 무슨 상관이겠는가

다른 가족들도 레이를 친 가족처럼  만만하게도 여기고 기대기도 하고 편도 들고 무시도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게 가족인데,.물론 레이의 충격이 별 거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등을 쓸어주고 위로해주고 마음이 풀릴 때까지 울어~ 라고 하거나 가족 모두를 모아놓고 왜 나에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따지고 원망하고 포용하는 단계를 거치더라도 변하는 건 냉정하게 없다.

 

누군가는  훅 들어와서 안아주고 만져주는 위로와 공감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옆에서 가만히 봐주고 기다려주고 괜찮다고 한마디 툭 던지는 위로에 마음이 편하다.

내가 원하는 위로와 공감이 다르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위로와 공감도 각각 다르다,

그냥  내 마음이 풀릴 때까지 기다려주고 모른 척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훅 들어와서 안아주고 충고하고 조언하고 만져주는 사람은 어렵고 부담스럽고 또 반대의 경우 그건 위로도 공감도 아니고 냉정하고 재수없는 충고일 수도 있다,

누가 무엇을 어느때 원하느냐는 내가 그 당사자가 아니면 모르는 것이고 나도 가끔 원하는게 다른 수 있다,

 

영화속에서 그 동료의 무심한 한마디가 다른 모든 인물이나 상황보다 내게  훅 들어왔다.

냉정하기도 하고 현실적이지만 어저면 그래서  더운 날 얼음이 가득한 냉수 한 잔을 마시고 난 후의 쨍하게  각성되는 느낌이다,  난 개인적으로 그게 좋다,

그냥 아무 말 없이 아무 일도 아닌 듯이 옆에 가만히 앉아 잇어주기만 하는 것

내게 가장 좋은 위로는 그것이고 내가 가장 잘 하는 위로도 그것이다,

그래서 가끔 누군가 타인이 볼 때 나는 참 못됐고 이기적이고 냉정하게 보일 수도 있나 보다,

더구나 가까운 가족이라면 더욱 그렇게 느껴지겠구나 하는 마음

한마디 대사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사실 영화속의  다른 가족 구성원들도 다정하지는 않다,

서로가 서로를 자기의 틀로 바라본다,

레이는 형은 장애가 있는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고 동생은 이기적인 사람이고 할머니는 그저  낯선 타인이다,. 리사 입장에서도 모리는  난감한 애물단지고 레이는 이기적이다. 다행히 할머니는 할머니지만  조금 잊고 있을 뿐이다,

모두가 서로를 알지 못하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대로 맞추어 그의 말과 행동이 그런 이유가 내가 아는 그것때문이라고 규정짓는다,

그리고 누구나 내가 가장 참고 있고 내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한다,

다른 구성원에 비해 가장 정상적인 레이가  어찌 보면 가장 단단하고 견고한 틀을 가지고 있다.형을 돌봐주어야 하고 동생은 안도와주고 할머니는 그 정체가 의심스럽다,. 엄마가 남긴 한마디 " 레이 너만 믿는다" 그 말의 무게 만큼 레이를 누르는 압박감은 가기 가진 틀의 무게였다,

그는 가장 희생적이고 책임감을 느끼고 혼자 모든 짐을 다 짊어지고 있는 고난자다

3000불을 자기를 위해 쓸 수도 없이 끊임없이 망설이고 있을 뿐이다,. 책임감과 나의 만족은 절대 같은 것이 될 수 없는 딜레마에 놓여 있다,

 

차라리 내가 가장 힘든데 이것들이 도와주지도 않는다고 집어던지고 쥐어뜯어가며 싸우면 차라리 마음에 들지 않고 원수가 되더라도 저 인간은 저런 인간이었구나 하고 알텐데 그들은 우아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규정하고  보이는대로 받아들이고 생각하는대로만 본다,

가족이 그런 오해가 가장 심한 집단이 아닐까

말하지 않아도 알거라는 기가 막힌 오해와 편견에서 가족은 어쩌면 내게 가장 먼 타인이고 나를 가장 모르는 외부인이다,

나는 우리 부모를 아는가? 나는 내 자식을 아는가

그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취미를 가지고 어떤 성격인지 알 수는 있다,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위로 받기 원하는지 어떻게 공감받기 원하는지 그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는 서로 모르지 않을까 어쩌면 서로는 가장 친절하고 다정한 얼굴로 잘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를 오해하고 있다,

가족들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위안을 얻는다,

모리는 엄마의 재봉틀로 치마를 만들고 리사는 우연히도 에어기타에 빠지고 레이는 피규어에 빠져 있다. 각각의 위안은 할머니의 만두를 구심점으로 함께 만나고 서로의 영역에 조심스럽게 들어간다.

마지막무렵  모리의  대회에 참가하는 것  레이가 할머니를 위해 변기를 바꾸어 주는 것  정도로 그들은 서로에게 다가간다. 그건 무심함이 아니라 예의를 기반한 배려고 위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영역에 훅 들어오지 않고  바라보고 내가 훅 들어가지 않아도 이기적이라고 뭐라하지 않고 서로의 바운더리 속에서 서로 바라보며  힘들면 손을 내밀고 그때 잡아주는 사람

그냥 든든하게 바라바주는 사람이라는 게 좋은.. 그런 가족을 원했다는 그리고 가만히 등을 쓸어주는 사람을 원했다...

이기적인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레이의 동료처럼 시원하게 무심하게 한마디 해주는 것 그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간절히 원한 것이어서 나는 남들도 그만큼이면 된다고 믿었다,

그것이 가장 적정선이라고 믿었는데 사람은 제각각의 위로와 공감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사람이 모두 다를 수 있다는 걸 몰랐다. 하물며 가족이라도...

 

 

 

이 책이 내 울음이 터진 최초의 책임을 언젠가 고백한 적이 잇는데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그거였다. 가족들이 누구나 동구에게 혹훅 들어와서 감정들을 배설했다, 할머니도 그랬고 아빠도 그랬고 심지어 엄마도 그랬다. 어린 동구에게 가장 약하고 여린 동구에게 훅훅 들어와 감정을 쏟아놓고  아직 어리니까 뭘 모르니까 멍청하니까 라는 변명으로 훌훌 돌아간다. 동구가 원하는 건 어쩌면 여동생처럼 자기를 가만히 들여다 봐주고 기다려 주는 사람이었을 텐데 그 가족은 너무 잔인했다. 물론 이유가 있다. 시어머니의 구박에 서러운 엄마나 중간에서 어쩌지 못하는 엣날 가장 아빠나 시골에서 상경해 모든 것이 낯설지만 두려운 티를 내기 싫고 얕잡아 보이기 싫은 할머니까지  모두 이유는 있다. 가족이니까 이유가 있으니까 이정도는 서로 받아줄 만하니까 서로 훅훅 상대방의 영역으로 시도때도 없이 들어왔다.  가족이니까 뭐든 가능하고 가족이니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게 동구에게는 두려움일텐데 그 바보같은 아이는 모든걸 인내하고 자기가 무서운 할머니와 시골에 가겠다고 한다. 바보같이...

 그래서 그 어린 아이가 모든 걸 감당하고 견디며 나를 위한 판단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판단을 해야했을까? 그래서 동구는 착한 아이가 되었는가? 누구를 위해서 착한건지....

괜찮다고 무엇이든 들을 수 있다고 그리고 그냥 흘려보낼 수도 있으니 말하라고 ... 이정도는 가족끼리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픈 건 아픈거다. 힘든 건 힘든거다,

다른 가족들이 너무 착해빠져서 나중엔 할머니까지 너무 늙고 약해버려서 마냥 마음놓고 미워할 수도 없다는 것이 너무 서글펐다, 화가 났다,

거절 하지 않는 둥구 모든 것을 품어주는 동구의 상처는 왜 아무도 봐주지 않을까 가족이라면서...

가족이어서 서로 함께 뒤엉키고 받아들여지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한다는 강박이 가장 약한 존재에게는 버거운  무게이고 상처가 될 수 있다. 가족이라고 모두가 같은 취향과 성향을 가진 건 아니다. 내가 낳아도 다른 아이가 태어나고 형제도 제각각인걸  자꾸 잊어버린다,

배려와 공감이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 상대가 바라는 것으로 해야한다는 말이 너무 냉정하게 들릴까?

 

간혹 내가 너무 감정이 매마르고  심하게 말하면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약한 사이코패스인가 하는 고민을 한다. 누군가 훅 들어오는 것이 몹시 불편하고 누군가에게 아무렇지 않가 훅 들어가기도 어렵다. 가장 가까운 관계일수록 가장 예의가 필요하다는 것.. 그게 틀린 것인지 가끔 고민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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