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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의 작품은 영화화 되기 참 쉽다는 생각을 했다,

발랄하고 톡톡 튀는 대사들 하지만 그 속에 꽉꽉 들어찬 의미들

휙휙 바뀌는 장면들이 영화로 만들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게하는 매력이 있다.

완득이도 그랬고 이번 우아한 거짓말도 그렇다.

원작을 충분히 살리면서 영화가 보여 줄 수 있는 섬세함도 잘 살렸다.

세 아이의 연기도 좋았고 마지막의 다섯번째 털실 뭉치도 좋았다.

그 뭉치가 누구를 향한것인지 누구를 위로하는 것인지 의견이 분분한 것까지 좋았다.

그러고 보니 온통 좋은 것 투성이구나....

 

아줌마들끼리 한번 그리고 아이와 한번 두번을 보았는데 솔직히 울지 못했다.

함께 간 아줌마들이 휴지 한통을 다 쓰면서 울어대는 동안 그저 먹먹하구나 하는 감정을 느끼면서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악착같이 참고 있었던 거같기도 하고 이렇게 허물어질 수 없다는  참 필요없는 자존심인것도 같다.

 

괜찮다는 천지의 거짓말에 모두는 괜찮은 줄 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순 개뻥이다.

내가 낳은 아이라도, 한 배를 타고 난 자매끼리도 그리고 천하에 없는 베프도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사람은 신이 아니기때문에 독심술을 할 줄 모른다. 그저 미루어 짐작하고 말 뿐이다, 그 짐작조차 나조차 모르는 사이에 나한테 유리하게 작용할 뿐이다. 괜찮다니까 괜찮을거야.. 괜히 아닌게 아닐까 고민할 필요없지.. 괜히 성가시게 일 만들 필요없어. 정말 힘들면 말하겠지.. 그때 가서 봐줘도 괜찮아. 독립심을 키워야지. 내 삶도 허덕거리는데 누굴 위로하겠어...

잘못된건 아니다. 누구나 내 손톱밑에 상처를 가장 아파한대도 이기적이라 말할 수 없다.

삶이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그렇게 팍팍하고 건조하고 하루하루 견디는 힘만 남겨줄 뿐이다.

천지 엄마도 천지의 순진한 표정을 믿었고 만지도 천지나 자기나 별 다르게 없을거라 생각했을 것이고 화영이 조차 자신을 견뎌내는 천지가 더 강해보여서 더 미웠을 수도 있다.

미라는 제 무게에 허덕이고 있으니 조금 더 무게가 가벼워보이는 천지가 어쩌면 가장 밉고 싫었다는게 이해가 간다.

사실 소설을 보면서 난 미라가 참 싫었다.

다 알고 있다는 듯, 자기가 가장 정의롭다는 듯 난 너를 도와주려고 했지만 니가 거절한거야.. 하는 값싼 자존심을 내세우는 캐릭터였다. 흔히 왕따가 있는 교실에서 내가 아니니까 난 나쁘게 한건 아니까. 난 뭐라고 충고라도 했으니까.. 하고 자기위안 자기 변명에 만족하는 젤 저질스런 계집애처럼 보였다. 화연이조차 그럴만한 이유가 보였고 상처가 보였는데.. 사실 미라의 상처를 나는 보지 못했다. 자기 못난 아비때문에 친구에게 그럴 수 있을까는 생각 못했고 (책에서 그 아비가 어떤 인물인지 보여주지 못했기때문이라고 변명하면서...) 절대 자기는 나쁘지 않다고 믿는 젤 재수없는 기집애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죽은 천지못지않게 그리고 화연이 못지 않게 상처가 깊은 아이가 미라였다.

그 어린아이는 자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고 그래서 누군가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고 내가 받은 아픔이 너무 커서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었다. 천지가 얼마나 아픈지 몰랐으니까

그저 아직도 철없고  화연이를 견뎌내는 천지가 더 무섭고 재수없다고 느끼는 평범하지만 상처가 더 깊은 아이였다.

미라의 아픈 속을 들여다 봐주는 건 그래도 언니 미란이여서 참 다행이란 생각도 했다.

만지와는 다르게 엄마처럼 동생을 보듬는 미란이가 있어 미라도 조금은 위안이 되겠구나 싶어 다행이라 싶었다.

 

영화에서는 책에서보다 만지가 입체적으로 나왔다.

책에서는 동생의 죽음을 알고 싶어하는 언니.

동생과는 다르게 교우관계나 성격도 괜찮고 만사 쿨한 멋진 하지만 조금 냉정한 언니고 딸이란 생각을 했었다. 꽤 괜찮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지는 만지도 참 많이 아팠다.

겨우 열여섯 정도 된 아이가 보여주는 쿨한 모습이 아팠다.

쿨하다는 건 좋은 거 아니다.

난 상처받고 싶지 않다. 난 거부당하고 싶지않다. 내가 따를 당하는 거 아니구 내가 너희 모두를 따 시키는 거라고 그렇게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한 채 세상에 맨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가장 소심하고 처절한 몸부림일 뿐이다.

저 어린게 얼마나 상처가 깊으면 쿨하게 사는 법을 배웠을까

이상한 친구는 안사귀면 되고 그래서 친구가없으면 혼자 다니면 되고 먹기 싫으면 안먹으면 그만이고 싫은건 안하면 그만이고...

상처가 없는 만큼 관심도 없는 거고 ...

만지도 천지만큼 아프고 힘든 아이인데 그 요령까지도 이미 알아버린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린 아이같았다. 엄마도 이해해야하고 동생도 보살펴야하고 그래서 내 감정같은 건 이미 박제시켜 버려야 하고... 친구도 상처받지 않을만큼 거리를 두고 있고..

차라리 화연이처럼 극악스럽게 굴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더라도 자기의 약한면을 화려하게 포장해서  해소해버리는게 정신건강엔 낫지 않을까 싶을 만큼..

화연인 크게 너무 사악하고 그래서 자기가 다시 공격받고 욕을 먹은 만큼 자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만지는 이미  욕을 먹거나 실수를 하거나  하지 않은채 자라버려서 그게 마음이 아프다.

 

함께 영화를 본 작은 아이가 그랬다.

천지 언니가 꼭 우리언니같애.

그닥 친구한테 잘하는 것도 아닌데 친구도 많고 쿨하고 뭐든 나보다 나은거 같고 잘아는 거 같은게 우리 언니같애.

그래 나도 만지를 보면서 그 생각 했어.

썩 만족할만큼은 아니지만 알아서 잘하는, 그래서 손이 덜 가서 편하다고만 생각했고 가끔 기집애가 냉정하고 깍쟁이같다고 여긴 내딸이 어쩌면 내가 신경 더 쓰는 막둥이보다 더 아픈건 아닐까. 내가 못보고 안보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친구문제로 징징거리고 소리치고 아파하는 딸은 뭐라고 조언도 하고 함께 욕도 하면서 견디게 했는데 어떤 문제도 입밖에 내지 않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큰 딸을 내가 너무 믿고 둔건 아닐까  싶어졌다.

아직 채 15년도 못산 아이들은 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 찌질해도 상관없고  대책없이 굴어도 상관없고  미친듯이 빠지고 상처도 입고 또 돌아서면 좋아라 웃어제끼기도 했으면 좋겠다.  저게 정말 호르몬의 문제가 많구나. 미친 중딩 맞구나 싶게 그렇게 드러내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걸 견디는 힘도 내게 있으면 좋겠다. 다 지나가리라... 하고 도를 닦을 힘도..

 

결론은 영화가 꽤 괜찮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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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사라 폴리는 돌아가신 어머니 다이앤에 대한 여러사람의 기억을 모은다. 이 영화는 어머니를 기억하는 사람들- 가족 친구 그리고 동료들이 모여 자신이 아는 그녀에 대한 모든 것들을 이야기하며 진행된다. 배우였고 자유분방했고 언제나 자유로웠다는 다이앤 그러나 간혹 사람들은 ㄱ  ㅡ녀가 뭔가를 감추고 드러내지 않은 면도 있다고도 한다. 다이앤은 여러사람들의 기억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흩어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의 농담처럼 사라는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는 말을 듣곤 했다. 그 농담에 대한 진실을 찾아가는 도중 뜻하지 않게 사라 폴리는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자유분방한 다이앤은 외도로 첫번째 결혼을 실패하고 아이들의 양육권도 빼앗기고 그 당시 신문에 날 만큼 부도덕한 여자로 비춰졌다. 두번째 결혼한 사람이 같은 배우였던 현재 폴리의 아버지였다. 두번째 남편은 조금 재미없을지라도 가족을 위해 배우를 포기하고 보험 세일즈를 할만큼 책임감이 강한 남자였다. 그리고 다이앤은 연극공연을 하기위해 집을 떠나 있던 동안 또다른 남자를 만나고 폴리를 임신한다.

이 모든 사실을 다이앤이 죽은 후 가족들에게 밝혀진다 하지만 이 비밀이 이 영화의 중심은 아니다.

가족들은 어머니 아내 친구였던 다이앤을 기억하면서 저마다의 기억이  각자의 호불호에 의해 왜곡되고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을 기억하고 과장한다.하지만 각각의 기억속 다이앤 역시 다이앤의 본모습이다. 자유롭고 덜렁거리는 다이앤 그러나 헤어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헤어질 때면 언제나 눈물을 보이던 다이앤 남편과 맞지 않다고 느끼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다이앤

어쪄면 각자는 다이앤을 기억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속에 쌓였던 뭔가를 털어버리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비밀이 드러난다.

순간 카메라 앞의 가족들은 모두 놀라 아무말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이 길지 않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아하.. 그런 일이 있었구나.  역시 그랬었구나.

가족들의 표정은 우리 정서로는 너무나 쿨하고 단순하다.

특히 가장 배신감을 느낄 아버지의 반응은 감동적이었다.

덤덤하게 듣고 있던 아버지 하지만 아무것도 변할 건 없다며 안아주는 딸에게 애정과 감사를 느끼는 아버지. 그 아버지가 말했다.

너의 친부가 누구이든 너가 너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않니.

너는 여전히 우리의 막내 딸이고 가족이라고 아버지는 말없이 말한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이 영화의 나레이션을 쓰고 읽어준다.

아버지의 목소리로 이어지는 영화는 그래서 더 따뜻하고 뭉클하다.

 

 

지금 정작 당사자인 다이앤은 없다. 단지 그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 있고 기억이 남았을 뿐이다.

그래서 정작 본인은 한 사람이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다이앤은 제각각이었다.

기억은 불완전하고 주관적이다. 하지만 그 모든 기억이 거짓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제각각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 간직하고 싶은 것들을 선택해서 기억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억은 각색되고 포장되고 퇴색하기도 한다. 하지만 각자가 다이앤을 기억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그 감정들 역시 거짓이 아닐것이다. 기억은 변하고 사실에서는 멀어지겠지만 진실은 여전할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왜 감독이 이런 내밀하고 사적인 문제를 영화화 했는지 의아했다.

우리 정서로는 전혀 맞지 않은 이야기였고 결국 내 엄마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 아닐까 했지만 딸은 용감하게 앞으로 나가고 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용기앞에 가족은 사랑을 드러내고 함께 감싸안고 모두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한다.

그래서 영화는 아름다웠고 감동적이었다.

마지막 이젠 늙고 쪼글거리는 아버지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할때는 눈물이 났다.

그 아버지에게는 긴 시간동안 쌓인 미움 그리움 회한 등등이 뒤섞였을 감정이 있을 것이고 이제 그것 모두가 사랑이라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담담하고 차분한 그 아버지의 나레이션이 더 없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예전에 읽었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에 대한 팟캐스트를 들었다.

불완전한 기억 그리고 잃어버린 사실들이 오해를 만들고 진실을 왜곡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가 가진 것을 믿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삶이라는 것이고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살아가게 되는 것 그리고 후회하고 반성하며 그래도 사랑이었고 추억이었다고 믿는 것들이 있을 거란 생각도 잠시 했다.

 

나는 지금 이순간 무엇을 오해하고 잊고 살아가고 있을까. 나의 오해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질 안았으면 좋겠고 나중에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억속에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것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영화 말미 정말 긴장이 팍 해소되는 짧은 장면이 나온다. 절대 놓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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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이 불편한 이유는 내가 딸을 둘 키운다는 사실때문만은 아닐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왕에게는 딸이 둘 있었다.

척 보기에도 큰딸은 단정하고 지혜롭고 자상하다.

작은 딸은 세상의 모든 막내가 그러하듯이 활발하고 호기심이 강하고 충동적인 면도 있다.

아이를 키워보면 안다.

내 속에서 나온 아이들이고 각각을 보면 둘다 나를 혹은 나의 배우자를 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정말 다르다.

큰 딸 앨사는 능력을 타고 났다. 만지는 것들을 얼음으로 만드는 능력

그건 동생에게 즐거운 눈놀이를 하게 만들 수도 있고 언제나 신나게 스케이트를 즐기게 할 수도 있지만 한편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기도한다.심지어 사랑하는 동생까지도

그 능력이 어떠한가는 일단 제쳐두고

왕에게는 능력을 가진 첫째와 평범한 둘째가 있었다.

왕과 왕비는 그 능력의 비범함과 무서움을 알고는 그 능력에 집중한다.

엘사를 누구와도 접촉시키지 않고 그 능력으로 누구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 하면서 아이를 키운다. 하지마나 동생 안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이미 지워진 기억으로 언니의 능력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언니랑 놀지못하는 쓸쓸함과 외로움만 가지고 있다.

공부 잘하는 큰 아이가 있다. 언제나 일등이고 백점이다. 부모는 당연히 욕심을 낸다.

조금만 더 뒷바라지 하면 우리가 조금 더 노력을 하면 충분히 잘 될 수 있고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아이... 그 아이에게는 그 아이만의 특별한 교육과 훈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길로 매진한다. 아이도 성실하고 순종적이다. 자신의 능력을 잘 알고 부모말에 따른다. 훌륭한 커리큘럼 좋은 선생님 우수한 코스를 따라 아무런 저항없이 순순히 따른다.

아이의 빛나는 미래는 멀지 않았다.

그리고 또다른 아이가 있다. 평범하고 명랑하고 에너지가 넘친다. 그나이때 아이들처럼

아이는 늘 제 형제와 놀고 싶다. 눈싸람을 만들고 물장난을 하고 소꼽놀이를 하고 수다를 떨고 싶다. 하지만 엘리트코스에 들어선 언니는 시간이 없다. 늘 문  저 너머에서 무언가에 몰두한다.

언니가 그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으면 누구도 떠들거나 뛰어다닐 수 없다. 언니를 방해하면 안된다. 언니가 무얼하는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나와서 나와 놀아주기를 한없이 목을 빼고 기다린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한 아이는 점점 자기에게 얹혀진 기대감이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도망치고 싶지만 이미 늦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하기엔 이제 두렵다. 나보다 나은 경쟁자가 보이기 시작했고 내 한계를 알것도 같고 무엇보다 그 모든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그들이 나에게 실망하는 것이 가장 두렵다.

그래서 이젠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갈 수가 없다. 이방에 숨어서 계속 나를 다그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한 아이는 외롭다. 혼자 뛰고 노래하고 놀지만 외롭다. 자유로운데 뭔가가 부족하다. 그냥 자유롭지 못한 잔소리를 듣는 누군가가 부럽다 어쩌면 그 잔소리는 사랑의 다른이름이고 관심의 또다른 얼굴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쩌면 자유로운것이 아니라 버려진게 아닐까.. 아닐거라고 스스로 되내이지만 뭔가 나만의 것을 가지고 싶다.

그리고 왕과 왕비가 죽고 성문이 열린다.

이제 두 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언제나 성문을 꼭꼭 닫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한 아이는 자신의 본모습이 들킬까 두렵다.

누구에게도 본래 얼굴을 보일 수 없어서 외롭고 무섭다.

한 아이는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한다. 그게 누구이든 무엇이든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있다면 나를 던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세상이 두려운 한 아이는 누구도 믿지 못한다. 그래서 첫눈에 사랑에 빠진 제 형제를 경계하고 힐난하고 반대한다.

오로지 관심만을 원하던 한 아이는 제 형제의 거부가 너무나 충격이다. 나는 왜 사랑을 할수가 없는가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거부하는가

그래서 사건이 터지고 자매는 헤어진다

 

큰 아이가 태어나고 나도 다른 부모처럼 기대가 컸다.

아이가 자라 무엇이 될까 나와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

아이를 보면서 나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아이는 영리하고 순종적이었다. 나름 고집이 강했었는데 그래도 꺽을만큼이었고 내가 잘 콘트롤 할만큼의 호기심도 있었다.

자라면서 아기나라를 하고 한글을 배우고 수를 배우고 영어를 배우고

순간순간 삐끗거리는 순간이 있었지만 아이는 잘 따라오고 있었다.

다행히 책도 좋아하고 혼자서도 잘 읽었고 호기심도 많았고 또래에 비해 조숙한 편이었다.

이렇게만 가면 꽤 괜찮을거라고 나는 스스로 만족했다.

그리고 둘째가 있었다. 한창 큰애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무렵에 태어난 둘째였다.

세살터울... 어쩌면 가장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는 터울이었다.

막 세상에 호기심을 보이고 공부를 시작하는 아이에게 집중하려면 동생은 조금 성가셨다.

다행히 둘째는 잘 잤다. 혼자서도 잘 자고 깨서도 울지 않은 아이였다.

낮잠을 3시간씩 자는 둘때덕에 큰아이에게 집중하는 게 가능했다.

어느정도 나이가 되어 둘째도 큰아이처럼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자꾸 뒤로 쳐졌다.

조금 늦어도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

학교에 들어간 큰 아이는 모범생이었다. 수줍고 소극적이긴 하지만 영리하고 따라가는데는 문제가 없었고 기대에 어긋나지도 않았다.

둘째는 조금 문제였다. 어느 순간 낯을 가리기 시작했고 낯선 환경에서 마구 소리를 지르고 제멋대로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가족이외에 누구와 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을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하고싶지 않다는게 강하게 느껴졌다.

수건없이는 스트레스가 심했고 외출시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기도 하고 고집스럽고 누가 뭐라고 하든 어디서든 고집을 피웠다. 어느순간 순한 큰 아이가 둘째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그 전부터 나도 그랬던거 같다. 힘든 아이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했다.

큰아이때 하지 않던 아기학교를 다니고 문화센타를 다니고 아이 친구엄마와 어울리고  아이는 조금씩 나아졌다. 고집은 여전하지만 점차 사회성은 길러졌고 나름 매력이 있어 미움은 받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작은 아이가 편해지면서 나는 큰 아이와 함께하는 긴장감과 경쟁을 작은 아이앞에서 풀었다. 그냥 그 아이랑 있으면 늘어졌고 편해졌고 내버려뒀다. 나도 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큰 아이가 전투라면 작은 아이는 휴식이었다. 남들보다 많이 늦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손끝조차 꼼짝 하기 싫었다. 어쩄든 되겠지 싶은 마음만 들었다.

 

큰 아이는 어느순간부터 평범해졌다. 나도 잘하고 싶지만 엄마의 기대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고 소리쳤다.

작은 아이는 엄마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했다. 언니랑은 싸우든 언쟁을 하든 항상 말을 하고 상대를 하는데 나랑있으면 늘 피곤하고 가만있기만 한다고 했다.

틀린말이 아니라는 사실에 화가 났다. 하지만 그렇게 화를 내는 내게 더 화가 났다.

갑자기 내가 실패했다는 생각만 들때도 있었다.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아이는 초등때 반짝하는 전형적인 중학생이 되었고

작은 아이는 학습이 느리고 욕심과 하고싶은 건 가득한데 현실은 소심하고 부끄러운 고민을 가졌다. 나는 두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다.

어느 순간  이렇게 아이들이 내 손을 떠나는 순간이 온다는 게 아니라 원래 내가 가진 능력이 아이에게 몰두하는 에너지나 능력이 없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아이는 엄마의 관심이나 능력으로도 자란다.

하지만 가장 쉬우면서 중요한건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걸 나는 몰랐다.

어정쩡하니 아이에게 몰입하는 부모 흉내나 낼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의 삶을 살았어야 헸다.

그랬더라면 큰아이에 대한 기대감은 조금 가벼웠을 것이고 작은 아이에 대해서는 관심과 훈육이 들어갔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몰두하고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방임해버린것

그것이 지난 10녀년간의 나의 불찰이다.

하지만... 정말 다행이도..

내 아이들은 아직 문제는 없다.

사회적 기대나 어떤 목표치에는 한없이 못미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은 착하고 바르고 평범한 아이다.

내가 조금 덜 기대하고 비범하기 바라는 욕심만 내려놓는다면

뭐 단점이야 있겠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아이들이다.

 

영화에서 왕과 왕비가 조금더 현명했다면  아니 여전히 나처럼 어리석었더라도 조금 더 살았다면 두 딸들이 그렇게 모진 고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 형제를 오해하고 내 능력을 믿지 못하고 세상을 온통 얼려버리는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가 내 아이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어쩌면 이것도 욕심이지만)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고

세상에 감사하지만 아닌것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으며

둘이 사이 좋게 의지하며 세상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요즘 세상엔 부모가 둘려쳐줄 수 있는 울타리가 많다. 내가 조금 더 돈이 많다면 능력이 있다면 지위가 있다면 내 자식들에게 물려줄 것이 많아진 이상한 세상이다.

하지만 내가 줄 수 있는 어떤 눈에 보이는 건 하나도 없다.

내 노년조차 불확실한 부모에게 태어난 내 아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거라면

그건 어쩌면 행복했던 기억과 그래도 자랑스러운 부모의 모습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영화관을 나오면서 결심했다.

내 삶을 좀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말고 또 있을까?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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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말이 많은 영화 변호인을 드디어 봤다.

영화를 보러간건 온전히 배우 송강호 때문이었다.

언젠가부터 그가 하는 아버지의 역이 눈에 들어왔다.

뭐 잘 생긴 멜로형 배우가 아니니까 나이를 먹으면서 늘 총각역을 할 수도 없고 자연스럽게 나이에 맞는 역을 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버지 역을 하는거지만.. 이상하게 그가 하는 아버지는 자꾸 자꾸 생각이 났다.

이번 영화에서도 사실 변호인으로서의 송우석보다는 한집안의 가장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송우석이 자꾸 눈에 밟혔다.

내 기억으로 그는 " 우아한 세계"에서도 아버지였고  "설국열차"에서도 아버지였고 "관상"에서도 아버지였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 희미해진 "효자동 이발사"에서도 아버지였다.

이 영화에서 송우석은  몇년전 "효자동 이발사"에서의 그 아버지를 자꾸 떠올리게 한다.

뭘랄까 중반이후 사회에 눈뜨고 정의에 대해 온몸으로 말하던 그 말고 초반부분 한집안의 가장으로 조금은 비굴하고 뻔뻔하게 하지만 치열하게 살아가는 그 모습이 자꾸자꾸 떠오른다.

잘난것도 없고 대단하게 내세울것도 없는 사람. 오직 내가 가진 몸뚱이와 기술 (변호사란 직업도 기술이라면 기술이다) 로 세상과 맞짱뜨고 내 가족을 지키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사람 그래서 간혹 불의에 눈을 감고 손가락질에도 묵묵히 침묵해야하는 사람

효자동 이발사의 그도 그랬고 이 영화의 전반부의 그도 그랬다.

정의로운 변호사 송우석도 정말 좋았지만 그 이전의  초라하고 속물적인 가장 송우석도 송강호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었을까

조금은 체념하고  부끄러운 마음따위는 애써 누르면서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 그래도 전작들과 다르게 세상에 휩쓸리고 상처받고 혼자 다독이는 가장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한발 내딛는 아버지여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변호인이라는 영화는 비겁할 수는 없지만 비굴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가장이 조금씩 비겁함을 거부하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기를 읽었다.

어딘가 아큐를 닮았고 대지의 왕룽을 닮은 허삼관

작가의 말처럼 그는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게 사는 것에 큰 의미를 두었던 사람이다. 다른 사람처럼 소리치고 욕심을 내는 것에는 함꼐 욕심을 내고 화를 내는 것에는 함께 화를 내고 다들 맞고 빼앗기고 살면 그러려니 하고 맞고 빼앗기는 것 그게 틀리지 않다고 믿고 사는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못배우고 어리석은 자라 대가리라 욕해도 별 수 없다고 여기고 받아들이고 가족에게 욱하고 화를 내지만 결국 가족을 위해 피를 팔기도 하는 가장

세상에 바짝 엎드려서 순종하고 살 수 밖에 없고 저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잘난척 하고 고함치는게 전부지만 욕할 수 없는 사람 그가 허삼관이다.

그도 어쩔 수 없이 비굴하게  살아야 하는 아버지였다.

 

" 일락아 오늘 내가 한 말 꼭 기억해뒤라.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난 나중에 네가 나한테 뭘 해줄 거란 기대 안한다. 그냥 내가 늙어서 죽을 때 그저 널 키운 집 생각해서 가슴이 좀 북받치고 눈물 몇 방울 흘려주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이렇게 소박하고 단순한 사람이다.

 

아버지들도 소년시절이 있었고 꿈이 있었고 정의를 꽃피울 씨앗을 품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내 등에 가족을 짊어지게 되면 내가 우리 가족의 가장 앞에 서서 바람을 막아야 하는 입장이 된다면 내 속에 품은 꿈은 잠시 잊어도 좋을 것이고  세상과 맞장뜰 용기도 일단은 눌러두고 세상에 나를 맞추어 끼워넣어야 하는 입장이 되는 것 그것인가보다.

그래서 누구보다 외로운 어깨를 가지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기대 울 수 없고 늘 꼿꼿하게 등을 세우고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나가야 하는 사람

희화화된 그들의 모습을 보고 키득거리거나 피식 웃음이 터지지만 한켠 마음이 아리고 짠해지는 때도 있지만 왠지 그들에게 그런 감정을 내보이면 오히려 그들을 모욕하는게 될 거 같은 기분도 든다.

 

영화속의 송우석은 껍질을 깨고 세상으로 나왔다. 그래서 가족들은 조금 불편하고 힘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비겁하지 않고 비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허삼관은 여전히 제 껍질속에서 가족을 단단히 보듬고 떄로는 납작 엎드리고 때로는 허세도 떨면서  삶을 이어나간다. 그가 피를 팔아서 가족은 평안해졌고 그가 두 다리를 딛고 단단하게 서 있어 주어서 가족은 안전했다.

누가 더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

기왕이면 좀 더 정의롭고 용감한 선택을 한 사람이 더 옳고 좋다는 건 당연하지만 그들을 아비로 놓고 봤을 때는 우열을 매기고 싶지 않다. 둘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 최선을 다한 건 맞을 테니까

하지만 내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는 건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허삼관을 욕할 수는 없지만 송우석을 더 존경할 수는 있는 것이다

다만 아비로서 누가 더 낫고 못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인 나는 할 수 없을 거 같다.

그냥 그렇다.

 

 

 

어쩌면 나도

여담인데

중국에 허삼관이 있다면 우리에겐 송강호가 있다,

막 책장을 덮고 보러간 영화여서일까 자꾸 두 작품이 중첩되면서 속에 쌓인다.

사람들은 영화에서 그 누군가를 떠올리고 생각하고 그리워하지만 나는 영화를 보면서 송우석이라는 사람에게 오롯이 송강호를 대입해본다.

그도 짧은 학력에 (정확하지 않지만 어딘가에 그도 고졸로 프로필이 되어있었다) 지방색이 강한 사투리에  알아주지 않던 연극배우에서 이제는 없어서는 안될 영화배우가 되어 흥행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인물이 되어버린 사람.  외모는 여전히 두리뭉실하고 어딘가 시골 돌멩이같지만 그래서 더 질리지 않고 어디서든 맞춤하든 잘 들어맞아 기가막히게 그 인물이 되는 사람

살아남기 어렵다는 영화판에서 어쨌든 제 이름 석자를 걸고 꼭대기로 오른 사람

그 송우석이 송강호여도 상관없을거같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했다는 것도 그렇고

한때 그가 하는 멜로가 보고 싶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 나이가 보이는 그 얼굴에서 그만큼 고단하고 비굴하지만 세상에 당당할 수 있는 아버지 . 가장을 할 수 있는 배우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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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여덟의 주인공은  우연히 들은 고향에서 어머니의 묘앞에서 잠이 든다.

그리고 깨어나보니 14살이 되어있었다.

왜. 어떻게  무엇때문에 이런 타임슬립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주인공은 마흔 여덟의 정신을 가진 열넷이 되어 다시 그 해 여름을 지낸다.

 

그 당시 주인공에게 가장 큰 사건은 아버지가 말없이 집을 나간거였다.

어느날 조합모임에 갔던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고 누군가가 역에서 돗토리로 가는 표를 끊었다는 제보가 나왔고 어머니와 할머니는 의외로 담담했던 기억. 그리고 그 이후 가정을 지키느라 고생한 어머니 그리고 가족들의 기억이 주인공에게 남아있다.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나기 몇달 전으로 주인공은 돌아갔다.

이번엔 아버지를 막을 수 있을까

아니 아버지가 왜 가출을 했어야 했는지 왜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를 알 수는 있을까?

 

STILLCUT

 

어바웃 타임.. 이 영화도 타임슬립에 관한 이야기다.

다행히도 여기서는 아버지가 대대로 내려오는 비밀로서의 타임슬립을 알려준다.

그리고 주인공은 위기때마다 혹은 결정적인 순간에 시간을 오가며 삶을 꾸려나간다.

우리의 주인공은 너무나 소박하고 착실하여 복권번호를 맞춘다거나 주가조작을 한다거나 뭔가 대박을 치는 일에 사용하지는 않는다. 가장 크게 도박을 한건 여동생의 삶을 바꾸어 주려는 것였지만 그것조차 본인의 의지가 아니며 안된다는 것을 알고 곁에서 조언하는 선에서 그쳐야 하는 걸 배운다. 단지 사랑하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간다.

 

 

만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을까?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가서 그때를 다시한번 누리고 싶을까?

아니면 가장 불행했던 혹은 잘못되었던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가 모든것을 되돌리고 싶을까?

내가 되돌아가서 건드린 시간은 그 흐름을 바꾸어서 이 후 내가 살았던 삶을 모조리 흔들어 놓고 나의 선택이나 행동들을 뒤죽박죽 만들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도 내가 살았던 그것과는 많이 달라진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내가 바꾸고 싶은 과거가 있을까.

없지는 않을 거다.

고등학교때로 돌아가 좀 더 열심히 공부할 걸 했던 것들

대학때 치열하게 고민하고 과감하게 연애할것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기다려 볼걸..

느리더리도 조금은 뒤쳐지더라도 뭔가 내가 원했던 것을 찾을걸.. 타협하지 말걸..

내가 조금 더 사랑한다고 말할걸

결혼을 하지 말걸? 혹은.. 뭐 그런거

그래서 바뀐 삶은 지금보다 행복할까?

나도 이제 "열네살" 만화속 주인공의 나이에 가까워 오면서 그게 자신이 없다.

바뀐 삶을 산다고 해서 내가 더 만족할까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은 다 허상이고 거짓이고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불만투성이고 실수 투성이어도 내 삶이고 내것이고 그게 나니까... 이젠 바꾸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어쩌면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아서 드는 자기 위안인지도 모르겠지만...

 

만화속 주인공도 영화속 주인공도.. 무엇하나 바꿀 수는 없었다.

열네살로 돌아간 소년은 아버지의 가출을 막겠다고 결심하고 그 날을 기다리지만 결국 아버지의 모습에서 나이든 현재의 나를 보게 되고 이해해버린다. 그의 말이 맞다. 열네살의 나였다면 악착같이 아버지를 막아서고 붙잡았겠지만 이미 아버지의 나이를 살아본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절절하게 이해해버렸다. 누군가를 이해해버렸다는 것이 이렇게 슬프기는 처음이다.

영화속의 인물도 이제 더 이상 타임슬립을 하지 않겠다고 선택하게 된다. 더이상 살아계신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운명을 뒤바꿀 기회를 갖지는 못하겠지만 그 동안 살아온 내 삶이 ,. 상처많고 못난 그 삶이 내것이어서 내가 살아낸 것이어서 소증하다는 걸 알게 된다.

 

만화나 영화가 말하는 건 결국

시간을 되돌린다고 하더라도 변할 수 있는 건 없다고.. 그래선 안된다는 걸 알려준다.

시간은 정말이지  냉정하고 당찬 녀석이라 이미 보내고 나면 뒤돌아보지 않고 되돌리려하면 모든 것을 흔들어놓겠다고 위협한다. 그리고 그렇게 충분히 할 녀석이다.

그저 그 시간속에서 조금이라도 후회를 줄이고 그 순간을 즐기고 집중하자 할 뿐이다.

 

그래도 만약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면

아버지가 계신 시간으로 가서..

정말 고마웠다고... 감사하다고 사랑했고 한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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