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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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었다.
그저 피아노 콩쿨이 주요 무대고 거기 참가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이야기는 예선에서 본선까지의 과정이다.
이미 누가 어떤 성격이고 어떻게 흘러갈지 뻔했고 무리수를 두는 억지전개도 나오지 않았다.
어찌보면 심심하고 단순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 궁금해진다는게 놀라웠다.
사실 세명의 천재 아이들은 매력적이진 않았다.그들을 통해 작가가 그려주는 음악에 대한 묘사가 아름다웠고
각기 다른 모습의 천재성과 고뇌와 노력이돋보였지만 딱 거기까지!!!
참가자중엔 직장을 가지고 일상을 살던 아카시의 고민과 환희가 그리고 아야의 매니저를 자처한 좋은 귀와 감을 가진 아라데 그리고 콩쿨 진행을 하던 무대 매니저와 조율사가 더 궁금했다.
누가 주목하지 않아도 묵묵하게 제몫을 해내는 사람들
그들이 누군가의 반짝이는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조용히 응원하고 스스로를 분발한다.

작가의 <밤의 피크닉>이 좋았던 건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이 평범하다는것과 주인공 이외의 인물들이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거였다.
그 소설도 거저 야간보행 1박2일이 전부임에도 계속 보게되는 힘이 있었구나...
이번 소설도 그 전작을 연상시켰다.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누구나 고민과 불안이 있다는것과
소소하고 무심하게 보고 넘길 수도 있는 콩쿨이라는 행사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다는걸 ...
책을 통해 또 배운다.

세상 모든 아이들은 제각각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재능이 반짝반짝 빛을 낼 수 있을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사그라지고 있는지...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는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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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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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었다.
그저 피아노 콩쿨이 주요 무대고 거기 참가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이야기는 예선에서 본선까지의 과정이다.
이미 누가 어떤 성격이고 어떻게 흘러갈지 뻔했고 무리수를 두는 억지전개도 나오지 않았다.
어찌보면 심심하고 단순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계속 궁금해진다는게 놀라웠다.
사실 세명의 천재 아이들은 매력적이진 않았다.그들을 통해 작가가 그려주는 음악에 대한 묘사가 아름다웠고
각기 다른 모습의 천재성과 고뇌와 노력이돋보였지만 딱 거기까지!!!
참가자중엔 직장을 가지고 일상을 살던 아카시의 고민과 환희가 그리고 아야의 매니저를 자처한 좋은 귀와 감을 가진 아라데 그리고 콩쿨 진행을 하던 무대 매니저와 조율사가 더 궁금했다.
누가 주목하지 않아도 묵묵하게 제몫을 해내는 사람들
그들이 누군가의 반짝이는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조용히 응원하고 스스로를 분발한다.

작가의 <밤의 피크닉>이 좋았던 건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이 평범하다는것과 주인공 이외의 인물들이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거였다.
그 소설도 거저 야간보행 1박2일이 전부임에도 계속 보게되는 힘이 있었구나...
이번 소설도 그 전작을 연상시켰다.
음악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누구나 고민과 불안이 있다는것과
소소하고 무심하게 보고 넘길 수도 있는 콩쿨이라는 행사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다는걸 ...
책을 통해 또 배운다.

세상 모든 아이들은 제각각의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재능이 반짝반짝 빛을 낼 수 있을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사그라지고 있는지...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는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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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 - 제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화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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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가 가졌던 크고 어리석은 편견

 

나도 편견을 가지고 있었더라.

폭력 피해자라면  힘없고 자존감이 낮고 누구든 눈치를 보고 약하고 보호해야할거 같은 이미지

그래서 그저 당하기만 할 거 같아서 애처럽고 안타까울거라는 것

이런 편견을 뒤집어 본다면 조금이라도 내가 상상하는 이미지에서 벗어난다면 폭력에 어떤 이유가 있을거라고 믿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저렇게 거짓말을 해대니까... 남자한테 꽃뱀처럼 들러붙어 이용해먹으니까

남 험담이나 하고 잘난 척 해대니까

들어올 여지를 주고 헤프니까..

나의 이 편견은 예전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받는다"는  기막히고 코막히는 판결과 다르지 않다.

마땅히 보호되어야 하고 존중받아야 할 피해자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듯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되바라진 계집아이거나 해픈 여자들이거나 건방지고 거짓말장이고 뒤통수치는 여자들도 충분히 폭력의 대상이 된다.

천하의 호랑이도 여우의 이간질에  속아서 덫에 걸린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나도 모르게 이분법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매스미디어가 보여준 것이든 책이나 동화속에서 내가 상상한 것이든 부러질듯 연약하고 저항 할 수 없는 어떤 순결한 피해자를 상상했던 모양이다,

이 책에서 나는 그렇게 한방 맞았다. 너도 별 수 없구나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거였군

 

 

내 아이가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하는 말이 있었다.

남자애들에게는 절때 여자애는 때리는 게 아니다 아니다라고 가르치니까 그나마 참고 있는데

기가 쎈 여자에들은 절대 손은 올리지 않으면서 애를 약올리고  말로 따박따박 이겨먹고 우겨대니까 결국 남자애들이 한대 쥐어박게 만들고 결국 남자애들만 혼나게 한다.는 말...

때린애도 잘못이지만 그렇게 만드는 영악한 여자애들이 정말 잘못되었다고...

딱 맞을 만한 짓을 하는데 그걸 안때릴 남자애들이 있겠냐고.

하긴 딸키우는 입장에서도 얄밉고 어른 뺨치는 애들이 안보이는 건 아니고 어른입장에서도 한대 쥐어박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게 결국은 맞을짓을 하니까 맞지.

먼저 시비를 거니까 맞지

면전에 대고 약을 올리니까 맞지..

아이들 문제라 별 거 아니지만 그런 작은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세상에는 맞을 이유가 정말 많다고 각인될 수도 있다.

나를 건드리고 화나게 하니까 한대 쥐어박는 건 폭력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여서 화를 돋우는 말들도 또 폭력이다.

폭력을 당하는 사람은 내가 상상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내가 모르는 내가 절대 아닐거라고 믿는 사람들도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그들이 어떻든 폭력을 행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야기는 데이트 폭력을 당했던 진아가 그 일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다시 이차 폭력을 마주한다.

sns에 올려진 진아의 글에 응원하고 지지하는 글 만큼이나 맞을 만 하니까.. 문제가 있으니까 라는 글이 올라오고  데이트 비용을 전혀 내지 않았다거나 명품백을 선물로 받았다거나 하는 말들이 올라오면서 다시 구석으로 몰린다.

세상이 두렵고 의욕을 잃은 진아는 어떤 댓글을 보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때 친구들을 다시 만나보며 자기를 돌아본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진아. 수진 유리..는 사실 매력적이지 않다.

등장인물로서는 다양한 성격을 드러내는 까닭에 꽤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실제 내 주위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가능한 함께 엮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솔직하다.

어둡고 우유부단하고 조금 이기적이기도한 진아나

동네왕따였고 악착같고 잘난 척 해대는 수진과

헤프고 정신없고 왠지 함꼐 있으면 나조차 창피하고 부끄러워지는 유리의 모습은

그냥 나랑 멀리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현재 모습과 말과 행동은 그가 경험한 것들과 느끼는 것들 그리고 억눌러 놓은 것들이 함꼐 뭉쳐져서 드러난다. 지금의  말과 행동뒤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지금 내 앞에서 내가 보는 이 곳에서 그가 하는 말이나 행동만을 두고 우리는 판단하고 결정해버린다.

 

각 장마다 저마다 다른 인물들이 화자가 되어 자기의 이야기를 하고 자기가 본 타인의 이야기를 한다. 자기가 바라보는 자기는 그럴 수 없이 괜찮은 사람이다.

이만하면 누구에게나 왠만하고 여자들에게도 신사적인 편이고 어떤 문제될 행동을 하진 않았다고 믿는 동희역시 야망이 있어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면이 있지만 그래도 나쁘다고 할수만은 없는 인물처럼 보인다. 어쩌면 현실에서 동희를 만났더라면 젠틀하고 목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또다른 면을 만나지 않았으므로 그저 보이는 것만 믿었을 것이다.

 

구취를 가진 박강현에 대한 입장도 다르지 않다.

성공을 위해 차갑고 이기적이고 독선적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남자중심의 질서를 받아들이는 게 결국 성공한 측도냐고.. 입만 나불거리며 비판했을 것이다. 그가 가진 아픔은 내가 볼 수 없다.

그는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남성의 질서를 받아들이고 준남성이 되어버린 인물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이영은 너무 성급하고 까탈스럽게 문제를 만들어내는 인물일 뿐이다.

별것도 아닌 일을 드러내서 자기도 상처받고 오히려 더 곤란해질지도 모를 일에 그렇게 열을 내는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

왜 스스로 이겨내거나 털어내지 못하지?

일단 그의 말을 들어주고 어느정도 맞추어 주었다면 만족할줄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제얼굴에 침 뱉는거란 걸 모르는 거야!!

그러면서 모두 읽고는 진아와 수진을 한심해 한다.

그렇게 당했으면 노! 라고 할 줄도 알아야 하는거 아닌가?

좀 영악해질 필요가 있는게 아니냐고

나는 하나도 공감하지 않고 그렇게 비판만 한다.

나라고 그런 일이 없었나? 그러나 단호할 필요가 있지 안그래...

하지만. 나는 그때 단호했을까? 아니라고 말하고 이러는게 아니라고 했을까

나 역시 놀라고 화나고 부끄러워서 애써 별일 아니라고 별일 아닐거라고 덮고 모른 척 하고 없던 일처럼 굴었으면서 말이다

진아도 수진도 스스로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다만 그 사정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혼자 감당하기에 벅차지만 그저 혼자 끌어안고 잊어버리거나 없었던 일처럼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유리의 상황은 말 할 것도 없고.

 

2. 조하리의 창

조하리의 창 이라는 검사가 있다.

내만 아는 내 모습, 나도 알고 타인도 아는 내모습, 나는 모르는데 타인이 아는 내모습 나도 타인도 모르는 내 모습

간단한 검사를 통해 얼마나 나 자신을 잘 알 수 있겠냐 만은 중요한 건 나의 모습도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의 존재를 나만 모를 수도 있고  아무리해도 타인에게 보일 수 없는 모습이 있고 저 깊은 심연속에 존재하는 아무도 모르지만 결국 나일 수 밖에 없는 내가 있다.

진아도 수진은 자기 자신에 대해 몰랐던 부분이 있었다

경험했지만 잊어버렸거나 잊으려고 눌렀거나 부지불식간에 보여지는 모습들이 있다

내가 입은 상처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어제일처럼 생생하지만 내가 준 상처는 까맣게 지워지고 오히려 계속 무언가를 되씹고 있는 상대를 탓한다. 니가 몰라서 그래

니가 자꾸 그런건 자격지심아니야?

저 사소해 보이는 검사에서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내가 모르는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 내모습이었다.

나는 모르는데 다른 사람은 알고 있다? 그것도 나에 대해서?

그거 편견아니야? 저들이 어떻게 나를 알아?

나에 대해서 뭘안다고 떠들어 댈 수 있지?

내 고통을 내 경험을 내 감정을 니들이 알아?

하지만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모르는 내모습이 하나하나 수면위로 떠오르는 건 우선 고통이다.

내가 그랬니?

내가 그렇다고?

내가 그래서 너희들이 그런거야?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이 그런거였나?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에게 폭력을 당하는 순간 진아는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한다.

니가 그때 그런 말을 하지만 않았어도 나를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거야

그런 뻔뻔한 변명에 진아는 그저 아 하고 수긍해버린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해 다른 사람의 판단과 기준을  아무런 저항없이 받아들인다,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그걸 얼른 가져오기에 급급하다.

이런 모습을 들키다니...

나도 몰랐던 걸 그가 먼저 알아버리다니 창피하고 모욕스럽다,그러나 거부할 수 없다,

내가 스스로에 자신이 없기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내모습이 이런게 있구나

이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점점 폭력에 길들여지고 한바탕 폭력이 지나가면 오히려 안도하는 모순에 빠진다.

이게 아닌데 싶지만 상대의 말에는 늘 혹해서 그대로 믿어버리고 자기탓을 한다.

내가 모르지만 남이 아는 내모습... 그건 진실일까

그걸 부정하기엔 자신이 없고 그렇다고 마냥 믿기에는 무언가 억울하지만 반복적으로 듣게되면 믿을 수 밖에 없다. 왜냐구

내가 나를 믿을 수 없기때문에

내가 나를 확신할 수가 없기 때문에

 

수진은 스스로를 잘 안다고 믿는다. 어떻게 해야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을지 당하지 않을지를 안다고 믿지만 정작 스스로 어떻게 보여지는지를 몰랐다.

남이 알고 내가 모르는 나를  가장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남편에게 들킨다.

그의 눈에 비친 내모습이 그가 말하는 내자신이 너무 낯설어서 거부하고 싶다.

아니려고 그렇게 발버둥을 쳤는데... 잘 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는데 어디서 구멍이 나서 그렇게 새고 있었을까

어쩌면 누구나 내가 아는 모습이 아닌 남이 보는 혹은 남이 보고 싶어하는 다른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나만 아는 내 모습

누구에게도 절대 말할 수 없는 벙어리가 되어버린 내모습

남자들의 질서와 법칙을 따르는 것이 살아남는 것이라 여기며 유사 남자가 되는 것

애교와 여자짓이라는 행동을 무기로 장착하는 것

그렇게 다양한 외피를 뒤집어 쓰고 나를 꽁꽁 방어하지만 사실 나는 거짓말쟁이고 겁쟁이고 비겁자이고 머리만 감춘 어리석은 꿩이다.

내가 쓴 가면 아래 내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다,

그건 강간당하고 폭행당하고 그러고도 아무런 저항도 못한 멍청하고 약한 내 모습이다,

들키면 손가락질 받고 외면받고 비난 받을 일 뿐이니까

 

다양한 내 모습이 하나로 모이지 못하고 그저 제각각 둥둥 떠다닐 뿐이다,

그렇게 내 모습이 분열된다,

 

3. 강간 이야기

 

소설에서 가장 아픈 부분은 강간당한 이후 수진이 강간에 대한 이야기를 집요하게 찾아 읽는 부분이었다. 누구에게도 제대로 들은 적이 없고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내 감정과 상황을 알기위해 수진은 닥치는대로 글을 읽었다

강간을 묘사하고 폭력을 묘사하고 어떻게 당하는지 어떻게 휘두르는지를 읽으면서 처음에 수진은 그들에게 공감하고 이해하고 있다고 믿었다. 나도 그랬어 나만 그런게 아니었어..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이상하다.

가해자를 옹호하지도 않고 그들이 얼마나 나쁜 새끼인지를 묘사하고 있고 피해자를 안타까워하고 있지만 뭔가 이상했다.

이들은 강간 당한다는게 무엇인지 모른다.

 

 

소설의 괄호가 묘사하는 건 피해자의 고통이 아니었다. 가학의 정도였다. 가학성의 핍진함이 그 묘사를 생생하게 만들었다. 지독하게 끔찍한 장면들  그건 피해자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알기는 알겠지. 나쁘다는 것도 알겠지. 그러니까 나쁜 놈들을 나쁘게 그리는 거겠지. 나쁜 놈들에게 비난을 쏟아내기 위해 (괄호)를 퍼붓는거겠지.

하지만 정말로 알까 신체의 어느부분이 억지로 벌어지고 찢겨지고 으스르질때의 그 물리적 느낌을 정말로 알까? 몸에서 가장 부드럽고 예민한 부위가 상처 입을 때의 그 고통을 정말 알까

(중략)

정말로 (괄호)같은 사건이 벌어졌다면 절대 "아팠다" 라는 것으로 끝날 수는 없을 것이다. 보다 더 끔찍하고 지독한 고통이 뒤따를테니까 강간은 그런 것이다.

 

 

그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힘들었겠구나 아팠겠구나 ... 라고 말할 수 있고 안아줄 수 있고 함꼐 할 수 있겠지만 그 절절한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얼마나 아팠을지 상상할 수 있을까?

때린 놈은 발 뻗고 자도 맞은 놈은 웅크리고 악몽에 시달리는 게 폭력이고 강간이다.

(물론 모든 때린 놈이 그렇진 않겠지만)

아파서 아프다고 말하면 2차 폭력이 시작된다

아프다고 말할 수도 없다면 그저 혼자 이상한 년이 되어버린다.

강간당하지 않기 위해 강간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겠다고 결심하는 괴물이 되거나

모든게 내 탓이니 내가 잘못한 것이니 감안할 수 밖에 없다는 바보가 되는 수밖에 없다.

 

모두가 이상하게 얽히고 오해하고 이해하려고 조차 하지 않았던 관계들은 시간이 흘러 드러나고 서로 말하고 알게 된다.

칼을 들고 덤빈게 아니어서

주먹으로 때려가며 덤빈게 아니어서

상대는 분명 나의 의사를 물어왔고 나는 거부할 수 없었을 뿐이고

어쩌면 약간의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매번 아니라고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으니까

마음과 달리 몸과 말은 침묵으로 받아들였으니까 그건 폭력이 아니고 강간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 술자리에 나오고 왜 그렇게 입고 왜 밤늦도록 집에 가지 않고 왜 함께 택시를 탔으며

왜 쉬어가자는 말에 거부하지 않았느냐고.. 왜?

그 모든 것이 섹스를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들은 그 모든 질문에 예스라고 하면 그건 한방향으로 흐를 뿐이다

그래서 맞은 사람은 있지만 때린 사람은 누른 사람은 없다.

 

왜 세상에 강강당했다고 성추행을 당했다고 내가 원치 않은 폭력을 당했다고 말을 꺼낼 수가  없을까? 가족도 친구도 국가에도 하소연 할 수 없다.

나부터 검열하고 뒤집고 또 뒤집어 봐서 정말 나는 결백했던가를 먼저 생각해야한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은 차곡차곡 쌓이면서 나는 입을 닫고 가면을 쓰고 그리고 정신을 놓아버린다

 

 

세상에는 순결한 피해지만 있는게 아니다

머리에 뿔이 달리고 상종도 못할 괴물같은 가해자만 있는게 아니다.

내 옆에 욕먹어도 싼 누군가가 아픈 상처를 가진 피해자이고

점잖고 세련된 매너를 가진 멋진 누군가가 또다른 얼굴을 가진 악마일 수도 있다.

 

 

누구나 괜찮은 사람이다,

당연하게 누구도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후벼팔 수도 있다,

내가 아프지 않아서 니가 아프지 않을거라는 마음이 아니다,

내가 아프지 않아도 누군가는 아플 수 있다,

 

성폭력은 "성'의 문제가 아니라 "폭력"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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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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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앞둔 나 김지영은 김추봉이 될 뻔한 과거가 있으며 원하는 일 대신 원하는 일로 이어질 수도 모르는 막연한 기대로 아카데미에서 인턴 사원으로 일한다.

그리고 만나게 되는 3명의 찌질한 인물들과 함께 즐겁게 사회를 전복시키려는 계획에 말려들고 무모하며 동시에 가소로운 계획들을 세우고 하나씩 실천한다. 지영과 만난 숭고과 무인과 아저씨는 그렇게 세상의 물의에 작고 찌질하게 대응하며 카타르시스를 맛본다.

그러나 그래서 바뀌는 것은 없다. 변하지도 않고 나아지지도 않는다.

비장하지도 않은 영웅심과 치기어린 장난 순간의 헤프닝같은 일들로 바뀔 세상도 아니다.

이들과 반대점에 지영의 남동생이있다. 지독히도 현실적인 인간이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먼저 익히고 경쟁이 과연 공정한 것인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조금의 평형성에서 벗어나버리면 못참으면서 한번 정해진 레일이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동시에 모든 것이 완전히 바뀌기를 바라는 것

그건 어쩌면 그 네명의 찌질한 인물들도 가지고 있는 속성이다.

다만 그 경쟁의 레일위애 올라탈 용기가 없거나 올라타도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그냥 그렇게 바뀌기를 바라며 동시에 바뀌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지영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산다. 그렇다고 바뀌는 건 없고 그것밖에 다른 도리도 없다.

존재하지 않은 정진씨에게 위로받고 찌질한 장난에 아니예요 아니에요 하며 부정하면서도 다가가고

내가 욕했던 부장이 아카데미를 그만두는 일에 잠시 뭉클했다가 그로 인해 정직원이 되면 심드렁하면서도 싫지는 않은 그리고 조금씩 여유가 생기면서 가까이 있는 무옥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까지 그는 그저 평범하고 평범한 소시민이다

노력하고 도전해서 성공한 이야기는 바늘구멍만큼 적다는 걸 알지만

행여 그 행운이 내게도 올지 모른다는 기대를 비리지도 못하고 스스로 채찍질 하며 살고 있는 삶

 

이야기를 읽으며 일본 소설<붕대클럽>이 떠올랐다.

거기는 십대 청소년들이 자기가 상처받았던 장소에 찾아가 붕대를 감는 이벤트를 벌이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치유한다. 붕대를 감는 행위가 뭐 대단한 거냐고 하지만 누군가 내 상처에 많이 아팠겠구나 하고 한 번  바라봐 주고 알아준다는 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를 보여준다.

남들 눈에는 거리를 어지럽히고 더렆히는 붕대쪼가리지만 그 곳에 잠입헤서 아무도 모르게 붕대를 감고 사진으로 남기는  사소하고 무의미한 일이 그들에게는 큰 의미다. 다만 그 소설의 주인공들은 결국 멋진 어른이 되었고

지금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여전히 알 수 없이 불안하고 조금은 찌질하다.

 

결국 우리가 사는 모습을 너무 투명하게 보여줘서 섬뜻했다.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게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결국 그렇게 될 걸 그렇게 치열하게 아둥바둥 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뭐 그렇다.

 

"가진 게 있으면 보수적이 된다.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서..."

모두가 그렇지 않겠지만

부모가 되면 결국 보수적이 된다.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를 지킬 사람은 나밖에 없다. 세상의 비바람앞에 작은 우산이 되어주기위해 발버둥치고 찌질해지고 비굴해지면서 조금씩 날카로운 모서리를 갈아가며 둥글게 자족한다.

너를 위해서라고...

그게 나라서 많이 공감하고 부끄럽다.

 

변하고 싶지만 변하지 못하고

변하는게 두려운 내 모습을 본다.

나는 이모양이어도 아이야 너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해야할거 같은

나 속의 찌질함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사족)주인공 친구 다인과  동생 지환이와 윤차장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들의 입장에서 4인의 찌질이들은 어떻게 보일지 그래고 그들은 어떤 찌질함을 숨기고 열심히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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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플라워 - 삶의 가장자리에 서 있으면, 특별한 것들을 볼 수 있어
스티븐 크보스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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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장소설을 참 좋아하는 모양이다.

아직도 미숙한 부분이 많아서일까?

어떤 모퉁이를 돌고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그래서 쨍한 빛과 마주하고 미지의 어딘가로 향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살았답니다 하고 끝! 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직도 지나야할 많은 모퉁이들과 많은 터널과 많은 골짜기와 많은 습지가 남았지만 그래도 괜찮단다고 스스로 다독이는 힘을 가지는 그런 성장드라마.....

어쩌면 이런 이야기들을 만나고 내가 접해야할 그런 나이에 나는 너무 소극적으로 틀에 갇혀서  그게 옳다고 믿으며 내가 잘하고 있는 중이라고 착각하며 그 좋은 시간들을 다 보내버렸던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키는 크고 몸무게는 늘고 뼈마디는 점점 삭아가지만 나는 여전히 어리고 유치하고 서투른 그때 그자리에 있기 때문일것이다.

 

미숙한 주인공 찰리가 자기의 과거를 마주하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세상에 나아가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찰리앞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있고 많은 불안과 미쳐 알지 못하는 세상에 놓여있다. 여전히 넘어지고 우울하고 도망갈 일도 남았겠지만 그래도 한 고비는 넘겼다.

산다는 건 멈추지 않은 이상 계속 고개를 넘어가고 물을 건너고 평지는 걷고 쉬기도 하는 일이다.

하나의 고개를 넘어서 이제 직진대로가 놓이게 되는 게 아니다 늘 만나는 그 고비마다 우리는 조금씩 성장할 수도 있고 점점 고립되고 딱딱하게 굳어갈 수도 있다.

어쩌면 굳었다가  너무 굳어 감각이 없어져버린 그 부분이 아픈 줄 모르고 베어져 나가기도 하고 다시 말랑말랑 새 살이 돋기도 하고 어느 순간은 팔이 자라고 어느 순간은 몸통만 자라시 기이하고 불균형한 순간을 겪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 책 이야기를 해야지...

갓 고등학교에 진학한 찰리는 모든 것이 새롭고 두렵다.

중학교때 친했던 친구가 자살한 경험이 있고 이야기에 제대로 드러나진 않지만 무언가 우울하고 충격적인 경험을 했었고 그래서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

그러나 찰리의 주위 사람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다정하고 화목한 부모님이 있고 현실적이지만 다정한 형과 누나가 있고 샘과 패트릭이라는 절친을 만나게 된다.

흡연 마약 섹스 따돌림 동성애 등등의 여러가지 코드가 등장하며 학교 생활 교우관계가 쉽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지만 찰리는 잘 적응해 나간다.

무언가 어두운 그림자가 있을 거 같은 가정도 생각보다 밝고 건전하다.

보여지는게 전부는 아니다.

내가 보기엔 무탈해 보이고 화목하기만 한 가족이라도 무언가 어두운 그림자가 있고

문제가 많을거 같은 가정도 의외로 작고 단단한 안전둥지가 있다.

 

아들의 첫 데이트에 콘돔 사용법과 상대가 싫다는 것은 정말 싫은 것이므로 하지 말아야 하고 내가 내키지 않은 것도 하지 말아야한다고 조언하는 아버지도 멋지고

늘 다정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단호하게 말하고 늘 일관성을 유지하는 엄마도 멋지다.

툴툴거리는 현실남매지만 꼭 필요한 순간에는 곁을 지켜주는 형제들도 대단하다.

그리고 보기엔 날라리에 또라이같지만 늘 적절한 순간 적절한 거리에서 딱 맞는 조언을 해주는 패트릭과 샘도 멋지다

찰리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 둘의 입장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들도 참 흥미롭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생의 문제를 문제로 다가가지 않고 책읽기를 통해서 관계를 맺고 성장을 도와주는 선생님도 멋지다. 내가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책을 읽고 꾸준히 기록하는 것도 꽤 멋질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에서도 꽤 좋은 장면이라고 기억하는데

크리스마스때 비밀산타놀이를 하면서  찰리가 주는 것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놀라고 좋아해주는 패트릭의 모습과 작가는 의당 멋져야 한다면서 받은 수트를 입은 어색하지만 괜찮았던 찰리의 모습 그리고 멋진 수동 타자기 선물 .. 장면은 소설로도 따듯했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선물을 준비했을 그 마음이 글 속에서 장면속에서도 너무 착하고 따뜻했다.

 

월플라워처럼 벽에서서 사람들을 바라보기만 하던 찰리는 점점 사람들 속에서 함께 행동하기 시작한다.

늘 생각하던 것이지만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만큼 가슴에서 발까지의 거리가 멀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은 의외로 쉽다.

관찰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이 어느 순간 느껴지고 이해되고 공감되는 순간이 오면 순간 내 속에 불이 하나 반짝하고 켜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 순간까지 월플라워다.

그냥 서서 바라보고 생각하고 느껴지는 것 표현하지 못하거나 소극적으로 하는 순간

그리고 그 가슴에서 천천히 발로 이어지는 순간 발이 움직이고 한걸음 벽에서 떨어지는 순간 나는 더이상 벽에 선 한 송이 꽃이 아니다. 방관자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니고 관찰자도 아니다.

그때 나는 행동하는 우리가 되고  주체자가 되고 비로소 내가 된다.

 

성장 소설은 그런 것이다. 내가 머뭇거리는 한걸음을 내딛는 것.

아기가 첫 걸음을 땟다고 바로  길을 떠날 수는 없다.

그냥 한걸음 내디뎠을 뿐이다 그게 처음이니까 의미가 있을 뿐

그 다음 한걸음 또 다른 날 의 한걸음의 반복된 훈련이 필요하다.

그렇게 찰리도 한걸음 한 걸음을 연습하기 시작했고 이제 길을 떠날 수도 있다는 마음을 품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알고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도 경험하고 그리고 어두운 자기속의 기억과도 마주한다.. 걸음도 내것이고 넘어져서 생기는 생채기도 내것이므로..

여전히 벽에 서서 생각하고 느끼는 나에게 그래서 성장소설은 늘 매혹적인 모양이다

한걸음을 내딛는 일.... 이건 나이를 먹었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늘 첫걸음은 두렵고 불안하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성장소설이 좋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거라는  기대를 하게 되는 이야기에 끌린다.

 

별을 하나 뺀 이유는 너무 좋은 사람들만 나오기 때문이다.

 

<마천루>를 읽고 했던 이야기였던가

너를 위해 죽을 수는 있지만 너를 위해 살 수는 없다는 말... 가장 좋았다.

결국 살아가는 일은 내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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