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플라워 - 삶의 가장자리에 서 있으면, 특별한 것들을 볼 수 있어
스티븐 크보스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나는 성장소설을 참 좋아하는 모양이다.

아직도 미숙한 부분이 많아서일까?

어떤 모퉁이를 돌고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그래서 쨍한 빛과 마주하고 미지의 어딘가로 향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살았답니다 하고 끝! 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직도 지나야할 많은 모퉁이들과 많은 터널과 많은 골짜기와 많은 습지가 남았지만 그래도 괜찮단다고 스스로 다독이는 힘을 가지는 그런 성장드라마.....

어쩌면 이런 이야기들을 만나고 내가 접해야할 그런 나이에 나는 너무 소극적으로 틀에 갇혀서  그게 옳다고 믿으며 내가 잘하고 있는 중이라고 착각하며 그 좋은 시간들을 다 보내버렸던게 아니었을까

그래서 키는 크고 몸무게는 늘고 뼈마디는 점점 삭아가지만 나는 여전히 어리고 유치하고 서투른 그때 그자리에 있기 때문일것이다.

 

미숙한 주인공 찰리가 자기의 과거를 마주하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세상에 나아가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찰리앞에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있고 많은 불안과 미쳐 알지 못하는 세상에 놓여있다. 여전히 넘어지고 우울하고 도망갈 일도 남았겠지만 그래도 한 고비는 넘겼다.

산다는 건 멈추지 않은 이상 계속 고개를 넘어가고 물을 건너고 평지는 걷고 쉬기도 하는 일이다.

하나의 고개를 넘어서 이제 직진대로가 놓이게 되는 게 아니다 늘 만나는 그 고비마다 우리는 조금씩 성장할 수도 있고 점점 고립되고 딱딱하게 굳어갈 수도 있다.

어쩌면 굳었다가  너무 굳어 감각이 없어져버린 그 부분이 아픈 줄 모르고 베어져 나가기도 하고 다시 말랑말랑 새 살이 돋기도 하고 어느 순간은 팔이 자라고 어느 순간은 몸통만 자라시 기이하고 불균형한 순간을 겪으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 책 이야기를 해야지...

갓 고등학교에 진학한 찰리는 모든 것이 새롭고 두렵다.

중학교때 친했던 친구가 자살한 경험이 있고 이야기에 제대로 드러나진 않지만 무언가 우울하고 충격적인 경험을 했었고 그래서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

그러나 찰리의 주위 사람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다정하고 화목한 부모님이 있고 현실적이지만 다정한 형과 누나가 있고 샘과 패트릭이라는 절친을 만나게 된다.

흡연 마약 섹스 따돌림 동성애 등등의 여러가지 코드가 등장하며 학교 생활 교우관계가 쉽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주지만 찰리는 잘 적응해 나간다.

무언가 어두운 그림자가 있을 거 같은 가정도 생각보다 밝고 건전하다.

보여지는게 전부는 아니다.

내가 보기엔 무탈해 보이고 화목하기만 한 가족이라도 무언가 어두운 그림자가 있고

문제가 많을거 같은 가정도 의외로 작고 단단한 안전둥지가 있다.

 

아들의 첫 데이트에 콘돔 사용법과 상대가 싫다는 것은 정말 싫은 것이므로 하지 말아야 하고 내가 내키지 않은 것도 하지 말아야한다고 조언하는 아버지도 멋지고

늘 다정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단호하게 말하고 늘 일관성을 유지하는 엄마도 멋지다.

툴툴거리는 현실남매지만 꼭 필요한 순간에는 곁을 지켜주는 형제들도 대단하다.

그리고 보기엔 날라리에 또라이같지만 늘 적절한 순간 적절한 거리에서 딱 맞는 조언을 해주는 패트릭과 샘도 멋지다

찰리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그 둘의 입장에서 풀어내는 이야기들도 참 흥미롭겠다는 생각을 했다.

학생의 문제를 문제로 다가가지 않고 책읽기를 통해서 관계를 맺고 성장을 도와주는 선생님도 멋지다. 내가 다시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책을 읽고 꾸준히 기록하는 것도 꽤 멋질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에서도 꽤 좋은 장면이라고 기억하는데

크리스마스때 비밀산타놀이를 하면서  찰리가 주는 것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놀라고 좋아해주는 패트릭의 모습과 작가는 의당 멋져야 한다면서 받은 수트를 입은 어색하지만 괜찮았던 찰리의 모습 그리고 멋진 수동 타자기 선물 .. 장면은 소설로도 따듯했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선물을 준비했을 그 마음이 글 속에서 장면속에서도 너무 착하고 따뜻했다.

 

월플라워처럼 벽에서서 사람들을 바라보기만 하던 찰리는 점점 사람들 속에서 함께 행동하기 시작한다.

늘 생각하던 것이지만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만큼 가슴에서 발까지의 거리가 멀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은 의외로 쉽다.

관찰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이 어느 순간 느껴지고 이해되고 공감되는 순간이 오면 순간 내 속에 불이 하나 반짝하고 켜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 순간까지 월플라워다.

그냥 서서 바라보고 생각하고 느껴지는 것 표현하지 못하거나 소극적으로 하는 순간

그리고 그 가슴에서 천천히 발로 이어지는 순간 발이 움직이고 한걸음 벽에서 떨어지는 순간 나는 더이상 벽에 선 한 송이 꽃이 아니다. 방관자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니고 관찰자도 아니다.

그때 나는 행동하는 우리가 되고  주체자가 되고 비로소 내가 된다.

 

성장 소설은 그런 것이다. 내가 머뭇거리는 한걸음을 내딛는 것.

아기가 첫 걸음을 땟다고 바로  길을 떠날 수는 없다.

그냥 한걸음 내디뎠을 뿐이다 그게 처음이니까 의미가 있을 뿐

그 다음 한걸음 또 다른 날 의 한걸음의 반복된 훈련이 필요하다.

그렇게 찰리도 한걸음 한 걸음을 연습하기 시작했고 이제 길을 떠날 수도 있다는 마음을 품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알고 친구들과 지내는 시간도 경험하고 그리고 어두운 자기속의 기억과도 마주한다.. 걸음도 내것이고 넘어져서 생기는 생채기도 내것이므로..

여전히 벽에 서서 생각하고 느끼는 나에게 그래서 성장소설은 늘 매혹적인 모양이다

한걸음을 내딛는 일.... 이건 나이를 먹었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늘 첫걸음은 두렵고 불안하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성장소설이 좋고  계속 앞으로 나아갈거라는  기대를 하게 되는 이야기에 끌린다.

 

별을 하나 뺀 이유는 너무 좋은 사람들만 나오기 때문이다.

 

<마천루>를 읽고 했던 이야기였던가

너를 위해 죽을 수는 있지만 너를 위해 살 수는 없다는 말... 가장 좋았다.

결국 살아가는 일은 내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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