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용과 관계 없는 거지만 문득 든 생각이 사람들인 참 하고 싶은 말이 많구나.. 라는거

누구나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사실 기회가 된다면 말들이 누에가 실을 풀어내듯이 줄줄 나오지 않을까  싶었어

할 말이 뭐가 있냐고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나는 사람들도 막상 기회가 된다면 풀어낼 이야기가 끝도 없을 거야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그 이야기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지

누군가가 듣기를 원하는 말이나 필요한 말이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

사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

듣는 사람은 상관없이 그냥 내 속에서 술술 나오는 말들

등장인물들의 진술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

평소 남의 일에 관심이 많아서 여기 저기 말을 전하는 사람도  그저 신앙에 매달려 한번 숭앙하는 사람은 하늘이 두쪽나도 숭앙하는  사람도 누구든

평소에 말이 많았건 적었건 누구나 제각각 자기 이야기는 갖고 있는 셈이지

심지어 거룩하신 하느님도 할말이 많더라구

게다가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말처럼 다 하는 것도 참 인간적이야

 

그래서 누가 불을 낸거지? 이게 사고가 아닌건 맞지? 단순한 합선은 아닌거지? 하면서

사람들의 말을 따라가보면 사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어

마을의 중심인  최근직 장로와 그의 아들 최목사 그리고 목사 사모님 지역 다 그렇고 그렇게 하는 관례를 주장하는119 소방교 할일없는 이십대에 전도라라는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된 절은 청년 ,신앙에 푹 빠진 분식점 주인 불만이 가득한 전통한과직원  목사에게 새로운 직업 독서실 총무를 권했던 곰탕집 사장 좁고 지루한 동네의 청소년들  그리고 무직인지 아리송한 하느님까지

모두를 소환에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만 이야기는 중구난방 제각각 하고 싶은 말로 흘러간다.

이기호의 소설들이 그렇듯이 등장인물의 말빨에 홀려 정신없이 흘러가다보면 허망한 결말에 다다른다. 그래서 뭐? 이게 뭐야? 하는 마음이 든다

키득거리고 웃으며 한심하게 여기며 책장을 넘기다가도 마지막엔 뭔가 큰 한숨이 나오는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한 마을에 살았고 서로 자주 보고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생각을 품고 있고 저마다 자기 행위에 당위성을 주장한다. 그 당위성은 그저 자기를 향할 뿐이고 타인에게는 방해이고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모른다.

 

성경에 대해 무지해서 욥기를  전혀 알지 못하지만

사람의 일이라는게 의도치 않게 흘러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결국은 흘러간 이후에 그 행위에 의도를 갖다붙이는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뭐. 사는데 큰 지장은 없으니까

내가 들은 것 내가 본것을 내가 아는 범위안에서만 해석하며 판단하고 결정하는게 삶이라

좀 한심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별 일없이 살고 있다는건 결국 그게 뭐 크게 나쁘지도 않다는 것일까.. 문뜩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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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개가 온다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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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 대한 관심의 시작.
다만 이전작보다 인물은 평면적이고 내용은 추리물을 읽었다싶은 이들에겐 예측가능했음 그 모든 걸 덮고 몰입감을 준건 우울증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든 치밀함 좌절된 자기효능감과 소속감 거기에 치명적 가해가 가능한능력의 습득=죽음!! 그리고 관계의 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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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페미니즘을
초등성평등연구회 지음 / 마티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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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연구회가 있다는 걸 첨 알았고 신선했다.
폭력예방교육 인권교육과도 연관지어 생각해 볼 거리들이 많았네요. 거창하지 않게 내주변부터 살펴보고 생각한다는 게 좋구요. 확 바뀌진 않겠징산 자꾸 질문하고 나누는동안 조금씩 몸에 익힐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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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설뒤에 추모 산문은 없는게 차라리 나을 뻔했다.

다른 작가들의 글은 그랬다.

남편의 글은 그의 작가로서의 치열한 삶과 생활인으로서의 정갈함을 잘 보여주어 작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소설가 정미경은 독자인 나에게 다가오는 그 모습 그대로 충분했다.

"너만  힘든 건 아니었지? 다들 마찬가지지

  사람때문에 외롭고 서럽던 것들이 결국 사람에게서 위로받고 치유받아야 한다는게 참 지랄 맞은 일이야"

조용히 속삭여준다.

 

내가 알지만 내가 잊고 있는 혹은 잘 드러내지 않고 모른 척 했던 내 모습이 무의식적으로 불쑥 올라오는 상황이 작품속에 서늘하게 묘사된다.

모든 것을 놓아버림으로써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는 금희 그녀는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고 요구하지 않는다. 다가오는 것을 막지 않고 떠나가는 것을 잡지 않는다.

유순하고 있는 듯 없는듯 존재감이 희미한 그녀가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물병원에서 냉정하게 돌아서 나오고 세차장에서 다시 올까 하는 그의 말에 무심하게 대답한다

"다음? 다음은 없어"

그런 모습은 지레 포기하고 욕십내지 않은 그녀의 습성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단호하고 냉정하다. 한 번 뱉고 돌아선 이상 절대 되물릴 수 없는 단단함

다양하고 의외의 모습이 모두 일관된 금희

그래서 그들의 만남이 끝났을 때 이상하게 환하고 좋았던 순간은 금희가 만들어 낸 순간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못>

 

중산층 아니 상위층의 허위?

보여주기 식의 삶속에 숨은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이 드러난다.

그건 나쁘다라기 보다 익숙하다는 점에서 더 무섭다

< 엄마 나는 바보예요>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불행과 불안을 드러내면 위로와 공감이 오는 것이 아니라 약점을 공개하게 되고 뒷말과 무시가 따라올 뿐이다.

누가 가르쳐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요즘 가장 강한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사람이다.

어떤 공격에도 자신이 있지 않으면 가장 가까운 이에게 드러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니까

공감과 위로 뒤에서 내가 그래도 낫구나 하는 우월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사이에서

자기의 약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가지고 있으면서 성장한 송이는 나중에 거인이 된다.

그래서 옛 성현들도 나를 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을까?

 

그렇다면

멀리있는 알지 못하는 이에게 털어놓는 내속은 어떨까?

어쩌면 그건 배설에 가까울 것이다.그냥 털어내고 비워버리고 싶은 마음

다시 되돌려 받을 필요 없고 뒷말이 있다해도 내 귀에 닿지 않는다. 염려없는 편안함

그러다 불쑥 돌아오는 타인의 속내는 쿵! 하는 경계로 바뀔 수도있다.

이런게 아니었는데

결국은 거기까지...

가까워지게 되면 기대하게 되고 기대하게 되면 약해진다.

결국 내가 견딜 일이다.

나만 견딜 일이다.

그게현실이다.

<새벽까지 희미하게> <목놓아 우네>

 

사랑스러운 쉼표같은 이야기

희망적이라는게 부질없지만 캔디가 영양가는 없어도 가끔 절실하게 필요하듯이 단순하고 희망적인 이야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장마>

 

그녀의 이야기를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것이 몹시 슬프다.

그곳에서 편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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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목소리
시오타 타케시 지음, 임희선 옮김 / 비앤엘(BNL)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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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흠뻑 빠지 읽지는 못했다.

읽어나가다 보면 앞부분이 기억나질 않고 이 사람이 저 사람인 헷갈리기만 했는데

중간에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막 다음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는 것도 아닌데

읽다가 다른 일이 생기면 주저없이 책을 덮고 튀어나갈 만큼의 흥미지만 끝까지 읽고 싶었다.

한 페이지를 몇일이나 계속 읽기도 하고 몇일동안 일지 않기도 했다.

두 주인공 이름이 비슷해서 이게 누구인제 좀 분간이 안가다가

이 사람들을 두 주인공 중 누가 만났었는지 혼란스러운건 나이탓일 거다.

 

토시야가 사건을 파헤치다 그만 둔 건 납득이 갔다.

가족이 얽혀있다면 그리고 앞으로 함께 살아가야할 가족이 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저 뺀질거리는 문화부 기자라고 봤던 야쿠쓰가 취재를 해가면서 기자로 성장해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취재가 깊어지면서 과연 야쿠쓰는 어떤 시각으로 기사를 쓸지가 궁금했다.

누가 범인인가라는 사실을 추리해나가는 취재에서 점차 윤곽이 드러나고 거대하고 미해결로 마무리된 사건  게다가 경찰과 언론이 크게 비웃음을 당한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들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궁금해하다가 그게 실소조차 할 수 없는 인간들이라는데 이르러면서 취재의 방향이 궁금했다.

결국은 사람. 그들의 장난같던  혹은 허무맹랑한 대의사이에 낀 사람들 특히 자기 결정권이 없던 어린아이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추적해가기로 한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의 규모와 원인 결과에 시선을 빼앗기느라

정작 그 사건에도 사람이 관여되어있음을 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 이외 그들과 얽힌 사람들 그들의 가족 친지 혹은 무관하지만 그 순간 그곳에 있어서 우연히 끌려들어간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는다.

지루한 르뽀처럼 이어지는 글이 결국 사람이다.

 

이전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사카린 살포 사건에서 사건보다 그 사건에 연루된 무관하지만 무관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결국은 사람들이었다.

기억을 하든 잊히든 혹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이 항상 있었다.

 

오사카 여행을 가면 늘 인증샷을 찍은 촌스런 런닝셔츠 차림의 달리는 아저씨 구리코 가 이 소설속 깅만사건의 실제 모델이라니... 참.. 알고 갔더라면 좀 달랐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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