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징조들 그리폰 북스 2
테리 프래쳇.닐 게이먼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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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더글러스 애덤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천만의 말씀. '별 없음'을 표시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하나를 준다. 한 권의 책을 두고 이런 식으로까지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결과야 어찌되었든 간에 저자는 나름대로 노력을 한 것이고 역자도 그에 못지 않은 노력을 했을 테니까. 적지 않은 분량을 창작하느라 번역하느라 애쓴 두 분, 아니 세 분의 노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 분들에게 죄송하긴 하지만 이 책은 올해 아니 최근 몇 년 간 읽었던 소설들 중 최악의 작품이었음을 고백해야 겠다. 그리고 여기에 저주같은 한 마디를 더 보태자면 향후 오 년 간, 내가 그들의 작품을 다시 읽지 않는다는 가정아래, 이 불명예스러운 꼴찌의 자리를 굳건히 지킬 것임을 단언할 수 있다.

책장을 덮는 순간 속았다는 분함과 함께 심지어 이런 의문이 생겼다. 저자는 자신의 작품이니 판단하기 그렇다치더라도 역자 정도면 이 책이 얼마나 엉성하고 조악한 작품인지 정도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역자도 역자 나름대로 자신의 번역물을 몇 번은 읽어봤을 것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이런 결과물을 세상에 보여줄 생각을 했을까? 저자와 역자, 두 사람은 이 작품이 웃기지도 않는 유머와 어영부영 횡설수설하는 이야기의 범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 정말?

이 엉성한 출판물을 읽고 서평을 쓰는 이유는 하나다. 이 책을 고르는 독자들은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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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의 전쟁 - 역사상 가장 격렬했던 생명과 권력의 투쟁사
핼 헬먼 지음, 이충 옮김 / 바다출판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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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역사를 다룬 재미있는 책이 없을까하는 생각에서 사게 된 책이다. 대중들에게 과학을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는 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수학이나 물리학같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딱딱한 분야도 대중을 위해 쉽게 씌어진 책들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대중을 위한 책이지만 그 책 속에 소개된 내용을 일반인들이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략적인 의미만 전달된다면 책의 목적은 다한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의학이 수학이나 물리학 보다 결코 더 복잡한 학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의학이 수학이나 물리학보다 더 이해시키기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 경험으로는 재미있는 수학이야기나 재미있는 물리학이야기는 읽어봤지만 재미있는 의학이야기를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물론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고 경험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분야의 책들을 찾아본 독자라면 내 이야기에 어느 정도 공감할 것이다.

의학사를 다룰 것, 그리고 재미있을 것. 이 두 가지가 내 요구조건이지만 이런 책을 찾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그냥 재미있는 책을 찾는 것 만해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내 선입견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중 첫 번째는 이 책의 내용이 과거에서 출발해서 현재로 끝나는 의학사의 흐름을 지루하게 나열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간에 따른 단선적인 서술은 자칫 지루해지기가 쉽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 책은 시시콜콜한 역사적인 사건을 미주알 고주알 주워섬기는 대신 굵직굵직한 사건들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의 갈등을 위주로 서술하고자 했다. 두 번째는 이 책의 내용이 과거보다는 현재를 훨씬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소아마비 백신 논쟁이나 에이즈는 의학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귀가 솔깃해 질만한 소재들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책의 참신한 구성방식에 비해 내용이 기대이하라는 점이다. 사건을 위주로 서술한 이야기는 박진감도 없고 왠지 신빙성도 떨어져 보인다. 이 책이 좀더 흥미진진해지려면 저자는 의학적인 발견에 비중을 적게 두고 인물들에게 훨씬 더 많은 비중을 뒀어야 했다. 설명보다는 묘사에 충실했어야 했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꼭 필요한 것이 있다. 풍부한 자료, 하지만 이 책에서 제시된 자료들은 너무 빈약하다. 번역의 문제를 떠나 원서 자체가 꼼꼼한 조사와 자료를 바탕으로 구성된 것이 아님을 느끼게 만드는 대목이다.

역사라는 것은 이미 지나가 버린 이야기다. 하지만 지나간 것을 근거없이 횡설수설 이야기하는 것은 자칫 '나도 왕년에는 말이지......'로 시작하는, 술좌석에서 오가는 무용담처럼 진부하고 구태의연한 것이 되기 십상이다. 역사가 읽는 이에게 의미있는 것은 그것의 현재성 때문이다. 따라서 흥미있는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펄떡펄떡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야 한다. 마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인양. 그렇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풍부한 자료이다. 이것 없이는 누구도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 의학사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다소 안이한 책의 내용에 실망하며 책을 덮었다. 아마도 의학사를 소재로 한, 재미있는, 책을 읽기 위해서는 당분간 더 기다려야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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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경감 듀 동서 미스터리 북스 80
피터 러브제이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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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고 스릴 넘치는 이야기를 읽으며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것도 후덥지근한 한여름 밤을 나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웃기면서 스릴 넘치는 이야기를 읽는 것. 뭐? 웃기고 스릴 넘치는 이야기? 에이 그런 이야기가 어딨어, 라고 섣불리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함부로 속단하지 마시라. 짜짠.

물론 나 자신도 얼마 전까지는 그런 독특한 이야기가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가짜 경감 듀>를 읽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에 도대체 뭐가 들어 있길래? 일단 <가짜 경감 듀>는 추리소설이 갖고 있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이 있다. 그리고 엉뚱한 인물들과 그들이 엮어내는 예상을 뛰어넘는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이 있다. 뭐가 하나 빠진 것 같은데... 참 여기에 하나 더 보태서 극적인 반전, 이 존재한다. 물론 이런 재료들을 두루 갖춘 것이 이 소설만은 아니다. 분명히 그렇다. 좋은 요리가 좋은 재료로만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이것말고 무언가가 더 있다.

이 웃기고 스릴 있는 이야기를 빛나게 하는 요소는 몇 가지가 있지만 그중 첫 번째는 굉장히 정교하게 짜여진 이야기라는 점이다. '정교하다'라는 의미는 완벽한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에 대한 것도 아니고 섬세하고 멋진 해결을 해내는 탐정에 대한 것도 아니다. 소설 전체가 말 그대로 한 올 한 올이, 아니 한 장면 한 장면이 정교하게 얽힌 이야기라는 것이다.

고전적인 추리소설들이 보여줬던 단서 제시를 위한 군더더기 장면들이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전개는 없다. 찰리 채플린이 영국에 입성하는 첫 장면이나 대서양 횡단 여객선 난파 사건등 시대 묘사를 위해 삽입된 것 같은 군더더기 장면들도 결국 끝까지 읽어보면 모두 제시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때문에 소설이 끝나는 순간 독자들은 손뼉을 치며 '아하!'하는 감탄사를 신음처럼 내뱉게 된다.

이 소설을 빛나게 만든 두 번째 요소는 추리소설의 함량을 최소한도로 줄인 것이다. 어떤 추리소설이건 간에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방식은 비슷하다. 서두에 암시와 단서가 조금씩 나오고 그 후에 살인사건, 혹은 살인사건들이 터진다. 그리고 이후에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전개된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 지 몰라도 대부분의 추리소설은 이런 방식을 택하게 된다. 하지만 <가짜 경감 듀>는 이런 전통적인 전개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 소설을 빛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커다란 이유이다.

엄밀히 말하면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소설 속에 미스터리가 약간 가미된 것이라고 보는 게 이 작품에 대한 훨씬 정확한 설명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소설 속에는 범인도 있고 살인도 있지만 멋진 추리나 명석한 탐정은 없기 때문이다. 2% 부족한 추리 소설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 부족한 2%를 대신해 찰리 채플린과 대서양 횡단 여객선 난파 사건과 잭 사건이라 불린 토막살인 사건이 들어있다. 덧붙여 경감 월터 듀 같은 멋진 탐정은 없지만 대책 없는 인물들과 그들이 엮어내는 황당한 해프닝이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정말 만족스럽다. 98%? 아니,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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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의 미녀
커트 보네거트 지음, 이강훈 옮김 / 금문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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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 대학가에서 홍수처럼, 혹은 전염병처럼 번지던 말은 이른바 '포스트 모더니즘'이었다. 하지만 이 용어의 실제 쓰임새는, 본래의 의미야 어찌되었든 간에, 뜻이 알쏭달쏭하다는 의미로 훨씬 더 많이 쓰였던 것 같다. 알쏭달쏭한 소설이라는 말이나 포스트 모던 소설이란 말은 같은 의미였고, '어, 그거 포스트 모던한데' 라고 말하면 그 말은 곧 '글쎄, 잘 모르겠는데'라는 말과 같은 의미였다.

커트 보네것이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90년대 중반 포스트 모던의 유행이 아직 막을 완전히 내리지 않은 시점에 나온 웅진 출판사의 단편집에서였다. 그가 쓴 단편은 SF풍의 블랙 코미디였는데 아마 그 단편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 '제일버드'와 '갈라파고스'를 읽었지만 그 단편을 읽었을 때처럼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 당시 표현대로라면 포스트 모던했다. 그래서 인지 그 후로 한참 동안 잊어버리고 있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였다. 좋았던 옛 추억 때문에 책을 사게 되었지만 이 책은 여전히 단편을 읽었을 때의 그 재미에 미치지는 못한다.

커트 보네것을 좋아했던 것은 그의 신랄한 블랙유머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도 그의 장기를 살려 그 화성과 지구를 배경으로 구세주 혹은 기독교에 대한 조롱을 서슴치 않는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우주적 농담이라는 그의 유머가 재미있지만은 않다. 왠지 낯설고 불편하다. 동기를 알 수 없는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의미를 알 수 없는 여러가지 해프닝들은 독자를 불편하게 할 뿐이다.

물론 그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뜻을 어렴풋하게 알 것 같기도 하다. 기독교나 구세주에 대한 인간의 환상과 허위의식. 뭐 이런 것 아닐까?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나쁘다는 것인지,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지. 또 왜 이런 얘기를 하는데 화성과 지구와 외계인을 끌어들여야 하는 지... 작가의 뜻보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된 방법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이런 걸 '포스트 모던(?)'한 소설이라고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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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거미 클럽 동서 미스터리 북스 92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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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프라는 이름은 SF장르에서는 거의 전설에 가깝다. 물론 로봇 시리즈에서 보여준 추리소설 작가로서의 그의 능력도 무시할 수 없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단편 SF들에서 보여준 단편작가로서의 능력과 로봇시리즈에서 보여준 미스터리에 대한 그의 감각을 기대하고 고른다면 분명히 실망할 것이다.

솔직히 말한다면 이 책은 완성된 단편들을 모은 것이라기 보다는 습작들을 모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 같다. 물론 시간적으로 뒤에 쓰여진 이 단편들이 앞서 발표된 장편들에 비해서 좀 떨어진다는 것은 좀 이해가 안 되는 점이긴 하다. 어쨌거나 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은 하나다. 기대치를 낮추는 것. 아시모프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높은 기대치를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 읽는다면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실린 모든 단편들이 한없이 지루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단편집도 나름대로 특색이 있다. 이 책의 전체적인 형식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화요일 클럽의 살인'과 거의 비슷하다. 흑거미 클럽의 급사인 헨리는 아가사 크리스티 '화요일 클럽의 살인'의 미스 마플같은 해결사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는 미스 마플처럼 살인만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 주는 일 같은 일상사들을 해결해 준다. 살인에 국한시키지 않고 자질구레한 일상사들을 다룬 점은 아시모프답다. 결말이 싱거운 전반부의 단편들보다는 후반부의 단편들이 훨씬 더 재미있고 완성도도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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