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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문학과지성 시인선 2
마종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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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대화
(전략)
내 집도 자동차도 없는 나라가 좋아?
아빠 나라니까
나라야 많은데 나라가 뭐가 중요해?
할아버지가 계시니까.
돌아가셨잖아?
계시니까.
그것뿐이야?
친구도 있으나까.
지금도 아빠를 기억하는 친구 있을까?
없어도 친구가 있으니까.
기억도 못 해 주는 친구는 뭐 해?
내가 사랑하니까.
사랑은 아무 데서나 자랄 수 있잖아?
아무 데서나 사는 건 아닌 것 같애.
아빠는 그럼 사랑을 기억하려고 시를 쓴거야?
어두워서 불을 켜려고 썼지.
시가 불이야?
나한테는 등불이었으니까.
아빠는 그래도 어두웠잖아?

등불이 자꾸 꺼졌지.
아빠가 사랑하는 나라가 보여?
등불이 있으니까
그래도 멀어서 안보이는데?
등불이 있으니까.

-아빠, 갔다가 꼭 돌아와요, 아빠가 찾던 것은 아마 없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꼭 찾아 보세요. 그래서 아빠, 더 이상 헤매지 마세요.

-밤새 내리던 눈이 드디어 그쳤다. 나는 다시 길을 떠난다. 오래 전 고국을 떠난 이후 쌓이고 쌓인 눈으로 내 발자국 하나도 식별할 수도 없는 천지지만 맹물이 되어 쓰러지기 전에 일어나 길을 떠난다.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마종기, 문학과 지성사)에 실린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 중 3. 對話 에서-

갑자기 시를 읽고 싶어져 마종기 시인의 시들을 읽었다.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와 <이슬의 눈>을 읽었는데, 첫번째 시집이 더 좋다. 이 시집의 시중에서 '戀歌 9'과 '안보이는 사랑의 나라 중 3.대화'를 수업 시간에 읽었다. 마종기 시인의 시들은 이민자의 삶과 의사의 삶 사이에서 방황한다. 해부학 교실에서 사랑을 노래하고('연가 9'),  강의실에서 생명을 떠올리고('第 3講義室에서'), 정신과 병동에서 죽음과 계절을  연결시키고(精神科 病棟), 한국이 아닌 곳에서 한국의 친구들과 한국말과 한국을 끊임없이 그리워한다. 그의 시들은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더 쓸쓸하다. 

아빠가 사랑하는 나라가 보여?
등불이 있으니까
그래도 멀어서 안보이는데?
등불이 있으니까

왜냐하면 그의 나라가 보이지조차 않기 때문이다. 그의 소망은 그의 나라를 보는 것이다. 물론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다. 단지 그는 '본다'는 행위를 '보인다'는 현실로 믿고 싶어할 뿐이다. 멀어서 안보이는 나라가 어찌 등불을 든다고 보이겠는가! 등불은 '본다'와 '보인다'를 연결시키는 일종의 주문에 불과할 뿐. 등불을 드는 순간! 환하게 그의 눈앞에서, 아니 마음 속에서, 또는 희미한 기억속에서 그의 나라가 나타난다, 아니 나타날 것이다.  

누구에게나 '보이기' 위해서 '봐야' 하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잊지말고 등불을 꼭 준비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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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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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 뿐이었구나
그리하여 우선 나는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내가 쓰고 있는 글의 제목은 기형도의 시 <포도밭 묘지 1>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기형도의 시의 매력은 전체적이라기 보다는 지엽적인 부분에서 나온다. 기형도 시인을 좋아하는 이들은 어느 한 문장만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문장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이것이 시에 달린 화려한 장식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화려한 장식'이라고 쓴 뜻은, 적절한 설명이 생각나지 않지만, 그가 시에서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들이 크리스마스 트리의 장식 전구들처럼 화려하다는 의미이다. 영원할 것 같은 그 찬란함! 하지만 이런 찬란함,눈부심들이 왠지 금방스러질것만 같다. 햇빛에 반짝이는 눈처럼 말이다. 그래서 난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반짝이는 전구를 볼 때마다, 혹은 전나무 가지에 녹지 않은 채 남아서 햇빛을 반사시키는 잔눈들을 볼 때마다 기형도의 시가 항상 연상되었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그런 생각을 가끔씩 했다, 고 하는 것이 실상에 가까울 것 같다.  

'빈 기쁨'? 이 단어도 <포도밭 묘지1>의 전체적인 느낌과는 관련없이 굉장히 인상적이고 멋지지 않은가! '어떻게 기쁨이 비어있을 수 있지?'라는 생각을 잠시 접어둘 정도로 이 말이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목으로 택했다. 굳이 이 말을 어법에 맞도록 해석해본다면, 기쁘기는 하지만 뭔가 허탈한 상황이 아닐까? 제목에서 인용된 싯귀가 인상적인 것은 '참담했던 가을-빈 기쁨-친구'로 연결되는 정서에 있다. 난 이것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었던 절망과 깨달음을 연상시킨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사랑에 실패한 기억이나 친구나 가족의 죽음, 그리고 무수히 많은 절망에 대한 기억들과 당시에 느꼈던, 지금은 의미없어진 기쁨의 기억들에 대한 늦은 깨달음들은 청춘이라는 짧지만 강렬했던 시간을 지나온 모든 이들에게 남아있는 보편적인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은 대상은 부모도 연인도 아닌 바로 '친구'이다, 누구에게나. 

<질투는 나의 힘>은 이 시집에 실린 시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이다. 내가 이 시에서 제일 좋아하는 구절은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 뿐이었구나'라는 구절이다. 무엇인가를 희망한다는 것은 늘 누군가를 질투한다는 것이라는 이 가슴 속 깊은 곳을 푸욱 찌르는 듯한 진실. 이 시를 읽고 나면 이 말이 늘 귓속을 맴돈다.

내희망의내용은질투뿐이었구나내희망의내용은질투뿐이었구나내희망의내용은질투뿐이었구나내희망의내용은질투뿐이었구나내희망의내용은질투뿐이었구나내희망의내용은질투뿐이었구나내 희망의내용은질투뿐이었구나내희망의내용은질투뿐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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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 시인선 97
황지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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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게눈 속의 연꽃> 문학과 지성사. 황지우 중에서

<게눈 속의 연꽃>은 황지우의 네번째 시집이다.  이 시집이 나온 것은 90년대이지만 그는 분명 8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아니 이었다. 한국의 80년대 문학의 주류는 민중문학이었다. 물론 이건 나의 견해가 아니라 어디선가, 또는 누구에겐가 주워들은 이야기이다. 내가 별로 좋아한 적도, 좋아할 기회도 없었던 민중문학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다. 단지, 아니 오로지 알고 있는 것은 박노해라는 이름 석자와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이다. 민중문학, 좀 더 구체적으로는 민중시를 대표하는 인물은 단연 박노해이다. 그의 이름 '노해'는 가명이다. 노해가 노동해방의 약자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그가 무슨 일을 했을지 대강 감이 잡히지 않을까. 한때 얼굴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던 그는 사노맹의 주도적인 인물이었고 91년 사형이 구형되었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물론 박노해 말고도 수많은 시인들이 민중 시인으로 등단을 하고, 숨어서 시를 쓰고, 시집을 내고, 감방에 들어갔었지만... 정작 현재 그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시인들의 시가 과연 읽히고 있을까? 때론 시간이 좀 무섭다는 것이, 그 수많은, 얼마인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지만, 몇백편의 어쩌면 몇천편의 시들 중에서 지금까지 읽히는 시가 고작 몇십편밖에 안 될 것이라는 것이다. 아마 시인의 수를 꼽으라면 그보다도 훨씬 더 적을 테지만!

하지만 놀랍게도 그 수많은 민중시들을 제치고 지금 읽어도 당대의 위용을 간직하고 있는 시인들이 있으니 딱 두 명만 꼽으라면 그 중 한명은 황지우이고 나머지 한 명은 이성복이다. 아마도 문학사를 정리하는 이는 1980년을 민중 문학의 시대로 명명할 것이지겠지만 정작 내가, 혹은 우리가 198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기억하는 이들은 민중시인들이 아닐 것이다. 물론 박노해는 예외이다. 
사실 위에 언급된 시는 내가 개인적으로 무지하게 좋아하는 시이기는 하지만 황지우를 대표할 만한 시는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황지우는 '묘사'에 능한 시인이다. 시인이 '묘사'에 능하다는 것이 좀 이상한 이야기지만 진짜 그렇다. 황지우는 묘사를 통해 자신이 묘사하는 상황과 정반대의 또는 그 너머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한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시집에 나오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라는 시와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라는 시집에 나오는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를 보라.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역시 '너를 기다리는 나'를 묘사하면서 '너에게 가고 있는 나'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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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을 받다 장정일 문학선집 6
장정일 지음 / 김영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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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이 달린 시집, 그럼 좀 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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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새벽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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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되어 버린 시집. 아무도 이런 시를 다시는 쓸 수 없으리라, 박노해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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