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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인의 방문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지음 / 예니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산 것은 2002년이나 3년 일 것 같다. 대충이나마 시기를 기억하고 있는 것은 내가 희곡을 열심히 읽었던 시기와 이 책을 산 시기가 겹치기 때문이다. 책을 산 장소는 대전이었고, 대전 시내의 어느 대형백화점 안의 서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대부분의, 공연을 하거나 수업교재로 선택한 특별한 몇몇 작품은 제외하고, 희곡이 그렇듯이 이 작품 역시 한 번 읽고, 그 자리에 주욱 꽂혀 있었던 것 같다. 최근에 이 작품을 다시 읽게 된 것은 후배가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고 해서이다. 무대에 작품을 올린다고, 그래서 조언을 구한다고, 그러니 조언을 하기 위해서는 안 읽을 수 없지 않은가!

 

서평을 남기지 않아서 전에는 어떻게 읽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작품의 두드러진 특징은 장점과 단점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장점은 작품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이 어렵지 않고 읽으면서, 무대화하면서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이 많다는 점이다. 무대, 분장, 연기, 조명, 음향 모두가 만드는 사람, 특히 연출,에게 달려있다. 나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작품의 해설을 참조하면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그렇고, 한국에서 만든 연극도 그렇고, 모두 이 작품의 멜로드라마에 무게를 많이 실어줬다고 한다. 이것은 마치 카프카의 <성>을 성을 찾아가는 K의 여행기로 파악한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부인의 방문>은 뒤렌마트가 노부인의 방문이라는 사건을 중심에 둔 이야기를 통해서 어떤 '감동'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방문'이 가져다 준 '변화'를 해석하라고 요구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작품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따뜻한 감성이 아닌 냉철한 '이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이 작품의 단점이다. 감동이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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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j 2022-07-10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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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사람들·계엄령 알베르 카뮈 전집 1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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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페스트'로 수업을 할 일이 있어서 '계엄령'을 읽기 위해서 구입했는데, '정의의 사람들'을 더 열심히 읽게 되었다. '계엄령'은 '정의의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더 길고 복잡하다. 근데,이렇게 긴 연극을 어떻게 올렸지? 하는 생각이 잠깐 든다.   

정의의 사람들을 읽다 보면 까뮈는 역시 냉철한 이론가 타입의 인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깔리아 예프를 보면 사회주의 동맹보다는 알제리의 미래를, 조국 알제리 보다는 어머니를 구하겠다던 밉상(?)의 혁명가가 보인다. 죄없는 애들을 죽일 수 없어서 폭탄을 던지지 못한 깔리아예프의 행동을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것이 연극이 아닌 현실이고, 내가 관객이 아닌 동지 였다면, 그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어쩌면 이 작품의 제목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정의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참고하면, 까뮈가 생각한 혁명과 테러, 정의에 관한 관점이 이미 제목 속에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하면 혁명이고 의거고 남이 하면 테러고 폭동인 것이 현실적인 논리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까뮈의 관점이 그리 이상한 것만은 아니다. 적어도 그에겐 기준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만약 현실 속에 깔리아예프가 진짜 존재했다면, 그건 바로 까뮈 자신일 것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좋게말하면 인간애고 나쁘게 말하면 감상주의가 넘쳐 난다. 진짜 러시아 테러리스트들이 황제의 조카 때문에 테러를 미뤘을까? 

<정의의사람들>은 재미있는 희곡이긴 하지만 끝이 다소 미흡하다. 황제의 부인이 깔리아예프를 설득하러 간 이후에 이야기가 좀 엉성하게 결말을 맺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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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
빌 브라이슨 지음, 황의방 옮김 / 까치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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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작품에 관해서 토론을 할 때 참고하려고 산 책이다. 사실 이 책 이전에 셰익스피어에 관한 많은 책들을 읽어봤지만 이 책만큼 쉬운 책은 드물다. 내가 읽은 셰익스피어에 관한 책은 크게 세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내가 읽어 본 책들을 임의로 구분한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 우선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에 대한 작품론들이다. 두번째는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에 관한 것이다. 세번째는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에 관한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읽기 쉬울 것 같으면서도 별 내용이 없는 책이 바로 두번째,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에 관한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에 대해서 잘 알려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 절대적인 정보의 부족! 이 책의 첫 장은 이 책의 표지 그림이기도 한 셰익스피어의 초상화에 관한 '진위'를 이야기 하면서 시작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의 초상조차도 믿을 만한 것이 없다니!  

이 책의 저자인 빌브라이슨의 기술 방식은 확실한 정보나 자신의 주장을 증명한다기 보다는 가장 진실에 근접한 것이 무엇일까를 독자와 함께 추론해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읽기 편하다. 그에 대해서 알려지지 않은 것들과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지 않은 것들, 덧붙여 어처구니 없는 주장들-예를 들면 셰익스피어의 희곡들의 저자가 셰익스피어가 아니다라는 주장, 셰익스피어를 다룬 여러 책들에 이 주장이 언급되어 있는 걸로 봐서 꽤 지지세력이 있는 주장인 것 같다-에 관해 꼼꼼하고 논리적으로 기술한다.  

결국 이 책은 셰익스피어라는 인물보다는 셰익스피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발생한 모든 담론-스캔들, 정설, 음모론, 역사, 작품론-들을 다루고 있다. 물론 그 담론들이 셰익스피어의 행적들을 추론하기 위한 도구로 기능하고 있긴 하지만.  

덧붙여 빌브라이슨의 글 솜씨에 대해서 또 한번 박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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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의 수수께끼를 풀다
가와이 쇼이치로 지음, 임희선 옮김 / 시그마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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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큰 기대를 하고 읽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실망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책이 갖고 있는 결정적이면서도 근본적인 한계는 햄릿의 심리를 단순한 수수께끼로만 보았다는 것에 있다. 햄릿이 생존했던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라 희곡 속에만 존재하는 허구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햄릿이 왜 그랬을까? , 다시 말해서, 왜 복수를 지연할까? 에 대한 정답을 구하려는 행위는 의미없는 일이다.  

역사가 무한한 증거를 제시하는 열린 텍스트인 반면에 희곡이라는 텍스트는 막이 오르면 시작하고 막이 내리면 끝나는 닫혀져 있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역사에는 컨텍스트가 존재하지만 희곡의 콘텍스트는 독자가 상상하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연'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 예술, 특히 햄릿처럼 해석이 모호한 작품을 올리는 재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전제부터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정답이 없는 수수께끼를 정답이 있는 것처럼 가정하고 시작하였으니 결론이라는 것이 있을리 없다. 그건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도' 무엇인지를 알려주겠다는 책과도 같은 것이다.

이를 조금 다른 측면에서 보면 햄릿이라는 작품을 수수께끼를 풀겠다는 측면에서 출발한 것은 너무 편한 선택이다. 그보다는 당대에 유행했던 수많은 복수극 중에서 햄릿이라는 작품이 가진 특징, 또는 셰익스피어가 복수극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전달하려고 한 것이 무엇이었을까를 검토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복수극이라는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단순한 복수극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평자들도 정작 왜 복수극이라는 형식이 왜 유행하였고 왜 셰익스피어가 이러한 형식을 빌어서 햄릿을 만들었는지는 잘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나만 모르는 건가? 

수수께끼를 알려주마 했는데 그 수수께끼에 관심이 없으니 영 읽을 맛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끝까지 다 읽었다. 하지만 여전히 저자의 답에 동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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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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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읽었던 햄릿은 범우사판 이태주 번역의 햄릿이었다. 감히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라면, 이번에 읽은 김정환 번역의 햄릿이 더 좋은 것 같다. 물론 읽기가 편한 것이 잘 된 번역의 유일한 기준은 아니다. 하지만 실제로 공연 대본으로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때도 김정환 판이 더 나은 것 같다. 왜냐하면 김의 것이 글 속에 리듬이 잘 살아 있기 때문이다.  

<햄릿>은 그 유명세에 비해 가독성은 떨어지는 작품이다. 하지만 햄릿을 위대하게 만든 것이 의도된 '모호함'이라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유명세와 가독성이 일치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하다. 그러니까 <햄릿>을 읽기 위해서는 작가가 짜놓은 모호함을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다른 말로 바꾸면, 햄릿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복수를 완성시키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읽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읽어버리면 햄릿은 너무 단순한 이야기가 될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의도된 모호함을 즐길 수 없다는, 또는 모호한 의도를 생각해보는 즐거움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삼촌이 아버지를 죽이고 햄릿을 죽이려고 해서 결국 삼촌을 죽인다?   

이런 식의 서사 전개에는 아무런 문제도 애매모호한 구석도 없다. 따라서 햄릿의 모호함을 즐기기 위해서는 햄릿의 심리를 따라가면서 읽어가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복수극이 아닌 심리극으로 읽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도된 모호함의 중심에 있는 것이 '햄릿'의 심리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프로이드의 분석 역시 햄릿의 심리에 관한 것이다.  이 작품을 좀 더 입체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햄릿 뿐아니라 '복수'라는 행위와 관련된 인물들의 심리적인 변화들을 추측하고 상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형을 죽인 클로디어스는 자신의 죄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조카를 죽이는 음모를 치밀하게 계획하고, 선왕 햄릿과 사이가 좋았던 거트루드는 선왕이 죽은 뒤 두 달도 되지 안아서 시동생인 클로디어스와 재혼을 한다. 완벽한 햄릿왕 암살은 유령으로부터 햄릿에게 누설되고, 클로디어스를 완벽하게 죽일 수 있는 순간에 햄릿은 말도 안되는 이유로 복수를 뒤로 지연시킨다. 클로디어스를 향했어야 할 칼은 엉뚱하게도 커튼 뒤의 폴로니어스를 찌르고, 영국왕에 의해서 제거되었어야 할 햄릿은 죽지않고 로젠크란츠와 길덴스턴이 죽게되며, 햄릿을 겨냥하고 있던 독배와 독이 묻은 칼은 거트루드와 레어트즈로 향한다.  

인물들의 계획은 조금씩 어그러지고 빗나간다. 빗나간 계획들은 점점 더 많은 인물들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결국 이 희곡이 보여주는 것은 어긋나는 계획들, 흔들리는 인물들, 모호한 동기들이다. 그리고 독자들이 상상하고 추측해봐야 하는 것 역시 왜 계획은 어긋나야 하고, 왜 인물들은 흔들리는가이다. 덧붙여 모호한 심리적인 동기들을 추측하는 것 역시 독자의 몫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 즐길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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