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의 미녀
커트 보네거트 지음, 이강훈 옮김 / 금문 / 200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90년대 초반 대학가에서 홍수처럼, 혹은 전염병처럼 번지던 말은 이른바 '포스트 모더니즘'이었다. 하지만 이 용어의 실제 쓰임새는, 본래의 의미야 어찌되었든 간에, 뜻이 알쏭달쏭하다는 의미로 훨씬 더 많이 쓰였던 것 같다. 알쏭달쏭한 소설이라는 말이나 포스트 모던 소설이란 말은 같은 의미였고, '어, 그거 포스트 모던한데' 라고 말하면 그 말은 곧 '글쎄, 잘 모르겠는데'라는 말과 같은 의미였다.

커트 보네것이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90년대 중반 포스트 모던의 유행이 아직 막을 완전히 내리지 않은 시점에 나온 웅진 출판사의 단편집에서였다. 그가 쓴 단편은 SF풍의 블랙 코미디였는데 아마 그 단편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 '제일버드'와 '갈라파고스'를 읽었지만 그 단편을 읽었을 때처럼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 당시 표현대로라면 포스트 모던했다. 그래서 인지 그 후로 한참 동안 잊어버리고 있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였다. 좋았던 옛 추억 때문에 책을 사게 되었지만 이 책은 여전히 단편을 읽었을 때의 그 재미에 미치지는 못한다.

커트 보네것을 좋아했던 것은 그의 신랄한 블랙유머가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작가는 이 작품 속에서도 그의 장기를 살려 그 화성과 지구를 배경으로 구세주 혹은 기독교에 대한 조롱을 서슴치 않는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우주적 농담이라는 그의 유머가 재미있지만은 않다. 왠지 낯설고 불편하다. 동기를 알 수 없는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의미를 알 수 없는 여러가지 해프닝들은 독자를 불편하게 할 뿐이다.

물론 그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뜻을 어렴풋하게 알 것 같기도 하다. 기독교나 구세주에 대한 인간의 환상과 허위의식. 뭐 이런 것 아닐까?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나쁘다는 것인지,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지. 또 왜 이런 얘기를 하는데 화성과 지구와 외계인을 끌어들여야 하는 지... 작가의 뜻보다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된 방법들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이런 걸 '포스트 모던(?)'한 소설이라고 해야하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