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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즈데이 북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코니 윌리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개는 말할 것도 없이>를 통해서 였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대책없이 웃기는 소설을 쓴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 나왔을 때, 그 순간을 정말이지 얼마나 기다렸던가!, 주저없이 샀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이지만 책을 받음과 동시에 읽기 시작했다, <개는 말할 것도 없이>의 후속편쯤 되는 소설일꺼야라는 터무니없는 기대를 하면서.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으나 점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내가 알고 있는 그 코니 윌리스가 맞는 걸까? 동명이인일수도 있잖아. 근데 같은 작가가 쓴 소설이 왜 이렇게 달라. 그 유머러스하고 수다스럽고 현학적인 아줌마는 어디갔어? (책의 표지와 작가 약력을 다시 한 번 읽는다) 이럴 수가! 그 사람 맞네. <둠즈데이 북>을 읽고 있는 내내 내가 그리고 있던 나의 모습은 실없이 낄낄거리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근데 이게 왠일. 낄낄거리기는 커녕 슬퍼지려고 하잖아.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 소설은 절대로 코미디가 될 수 없다.
주인공 키브린은 페스트가 유럽을 휩쓸던 시대에 떨어지고 자신이 떨어진 마을에서 자신과 관계를 맺었던 모든 이들이 페스트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사실 이정도는 책소개를 읽으면 다 나오는 내용이다. 페스트가 휩쓸던 시대에 떨어진 주인공이 벌이는 코미디라니! 정말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하지만 책장을 덮기 전까지 나는 이 소설이 코미디이기를 원했다. 그래서 이 소설의 끝이 당황스러웠다. 인플루엔자와 페스트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이 소설은 까뮈의 <페스트>에 대한 코니 윌리스 식 버전이다. <페스트>가 치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치료를 해야만 하는 오랑 마을의 의사 리우의 이야기라면 <둠즈데이 북>은 페스트로 모두가 죽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도와야만하는 키브린의 이야기이다.
절망할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희망을 갖는 사람들, 아니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더할 나위없이 좋은 책이다. 까뮈의 <페스트>를 감동적으로 읽은 독자라며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코니 윌리스의 유머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