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드 6 - 끝의 시작 밀리언셀러 클럽 78
스티븐 킹 지음, 조재형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까뮈는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도시에서 일어난 '페스트' 대유행을 소재로 <페스트>를 썼다. 까뮈가 스토리 텔링에 능하지 않다는 것은 이 소설을 읽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소설 <페스트>가 굉장히 단조롭고 지루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과연 까뮈만의 잘못일까? 실제로는 어떤지 몰라도 질병의 대유행을 소재로 한 소설들은 페스트말고도 몇편 더 있다. 사실 내가 읽어본 것 중에서도 여러편이니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 같다.   

우선 생각나는 것은 주제사라마구 <눈먼자들의 도시>, 코니 윌리스의 <둠즈데이북>이다. 두 작품 모두 우울하고 단조로운 편이다. 수다쟁이 아줌가 코니 윌리스 조차도 '페스트'라는 소재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당대 최고 이야기 꾼인 스티븐킹은 어떨까? 사라마구의 소설이 <페스트>의 중남미 소설 버전이고, 코니윌리스의 소설이 SF버전이라면, <스탠드>는 <페스트>의 호러버전 쯤 된다.

무대는 미국이며 캡틴트립스라는 인플루엔자로 미국인의 99.8%가 죽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거두절미하고 초반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이 순식간에 죽어버리는 빠른 진행은 스티븐 킹 답지만, 그 다음이 부실하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서부와 동부로 나뉘어서 선과 악으로 갈라지는 것도, 다크맨이라는 인물이 상징하고 있는 절대 악도, 악을 이루는 세력들이 무너지는 계기와 과정도 모두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1권과 2권까지 좀 집중해서 읽을 만하고, 나머지 책들은 뭔가 나오겠지하는 기대만 하다가 끝나 버린다.  

이 소설의 핵심을 이루는 캡틴 트립스라는 인플루엔자, 산자와 죽은자, 선과 악이 전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따로 논다. 인플루엔자 대유행으로 미국인의 99.8%를 죽이는 것이 이야기 전개상 꼭 필요한 것이었을까? 그냥 전쟁이나 핵폭발로, 기상이변으로 하면 안 될 이유가 있을까? 선과악의 이분법은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다크맨이 의미하는 것은 뭘까? 사실 이 모든 질문들은 소설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독자가 파악할 수 있는 것이어야하고, 그래야지 이야기가 유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소설의 경우는 그러한 점들이 부족하다. 내가 너무 대충 읽어서 그런가?  

2011년을 호러소설로 읽는 해로 정했는데, 시작이 좋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은 것은 '질병대유행'을 소재로 한 작품을 하나 더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재미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리고 하나 더 질병대유행을 소재로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내 개인적인 의견은 <페스트>의 여러 버전 중 그나마 가장 좋은 소설은 사라마구의 작품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jude5480 2015-05-19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제사라마구는 중남미 작가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