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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65
브램 스토커 지음, 이세욱 엮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애초에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목적은 호러소설의 고전을 한번쯤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서 였다. <프랑켄슈타인>,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와 같은 작품들 역시 <드라큘라>와 마찬가지로 영화로나 귀동냥으로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일 뿐 실제로 책을 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적이 없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19세기에 쓴 호러소설이 뭐 특별한 것이 있겠느냐 싶어서 읽었는데, 19세기, 다윈니즘, 빅토리아시대의 정서에는 어떤 공통점이 느껴진다. 사혈법과 수혈, 빈혈과 같은 의학적인 용어들과, 이리와 쥐를 부리고, 박쥐로 변신하는 초인적인 힘을 가진 불사귀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퇴치하려는 반헬싱 박사의 접근법은 이성의 힘을 철저하게 믿었던 19세기인들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빌헤이스는 <5리터>에서 이 소설 속에 나온 수혈 장면이 외과의사인 브램스토커의 형 숀리 스토커의 의학적인 자문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알게 되는 것도 즐거운 일이고, 숫하게 영화화 되었던 작품의 원작소설을 읽는 것도 보람있는 일이지만, 소설이 마음에 쏙 들지는 않는다. 우선 너무 산만하다. 왜 작가는 일인칭이나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일관되게 소설을 기술하지 않고, 여러 주요인물들의 일기와 신문기사, 편지를 통해서 이야기를 기술하는 방식을 택했을까? 조나단 하커에서 미나 하커로, 수어드 박사의 일기에서 반헬싱 박사의 일기로 옮겨 다니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독자의 집중을 방해한다.
두번째는 주요인물들이 불사귀와 싸우는 방식이 너무 정적이라는 점이다. 이리와 쥐떼를 끌고 다니는 불사귀와 직접 싸우는 장면이 한번도 없다는 것은 독자로서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리와 쥐떼가 인간들을 덮치고, 십자가와 성수로 그들이 재가 되는 장면이 한 장면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불사귀의 능력을 묘사한 보람이 있으니까. 사실 그것말고도 아쉬운 점은 많다. 아마도 이 모든 아쉬움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 소설이 택하고 있는 산만한 시점과 기술방식(일기, 편지등등) 때문일 것이다. 용 빼는 재주가 있다 한들 편지와 일기를 쓰면서 어떻게 다이내믹한 장면을 묘사할 수 있겠는가!
세번째는 이 소설의 결말이 겨우 드라큘라 백작의 관을 찾아서 죽어있는, 또는 자고 있는 그를 죽이는데서 끝난다는 점이다. 마지막에는 그래도 크게 한 번 싸우지 않을까하는 독자의 기대를 여지없이 저버린다. 드라큘라 찾고 죽이고 끝.
참, 궁금한 게 하나 생겼다. 그건 이전에 <고스트스토리>를 읽으면서도 느낀건데 불멸을 꿈꾸는 것은 왜 '악'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