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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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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국가'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 것은 2005,6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 즈음에 아버지와 함께 평택 2함대에 들를 적이 있었다. 2함대 내에는 연평대 해전 전사자 기념비가 있는데, 그해 기념식 때는,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을 것이다,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심지어 국방부 장관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사자 유족중의 누군가는 한국이 아닌 어딘가로 이민을 갔다고도 했다.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 분들은 '국가'의 변심에 분노했다.

 

그 때 내가 깨달은 것은 '국가'라는 존재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서류상의 단어가 아니라 문맥을 생각하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인격적인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자신을 위해서 죽은 이들을 위해 애도를 표하기 위해서도 정치적인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관계망 속에 있는 존재, 그것이 그 당시에 내가 느꼈던 국가라는 존재였다.

 

언젠가 '국가'라는 존재에 대해서 누군가 설명해주길 기다려 왔는데, 제대로 된 선생님을 만나게 것 같다. 이 책은 국가라는 존재에 대한 철학적 해석과 그 역사를 다루고, 그 설명들 사이에 한국이라는 국가와 그 국가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전의 그의 책에서도 느꼈지만 명쾌하고 시원시원한 설명과 논리전개는 여전하다.

 

고등학생 시절 내게 국가는 곧 학교였고, 학교는 감시자이면서 절대자였다. 대학생 때는 있는지 없는 지 알 수없는 존재였고, 나와 전혀 별개의 조직체였다. 사회에 나와서 직장을 다니면서 부터는 국가는 의지해야 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아쉬움의 존재이기도 하다. 내 국가관의 변화도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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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사이클 필로소피 - 손으로 생각하기
매튜 크로포드 지음, 정희은 옮김 / 이음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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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것인가? 라는 물음을 요즘처럼 자주 자신에게 물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 말고도 많은 이들이 이 문제를 고민하리라 생각이 든다. 만약 직장이 없는 사람이라면 어떤 직장을 구할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할 것이고, 직장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일과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고민할 것 같다.

 

내가 하는 일? 새로운 직장으로 옮긴지 사년 째이고 한 직장에 이렇게 오래 있기는 처음이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내가 살고 싶은 삶과 하고 싶은 일이 다르다는 것. 이런 와중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왜 하필 이 책을 골랐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글을 쓰고 책을 쓰는 일 말고 뭔가를 만들거나 연주하는 일을 하려는 계획이 어렴풋하게 머릿 속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저자가 하려는 얘기는 크게 두가지 정도로 보인다. 그중 첫번째는 오토바이 정비에 관련된 세부적인 부분이다. 철학자였던 자신이 오토바이 정비사가 된 이유와 자신의 일의 가치의미, 덧붙여 진자 수리과정을 꼼곰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손으로 일하는 즐거움에 관한 것이다. 교육이 기술의 중요성과 기술 수업을 무시하고 이론과 형식에만 치우침으로써 일, 손으로 하는, 의 즐거움을 빼앗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나누고 육체 노동을 정신노동 보다 열등한 것으로 은연중에 교육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자에서 오토바이 정비공이 된 저자의 개인사는 이러한 주장을 아주 잘 뒷받침 해준다. 그리고 정신 집중을 동반하지 않은 육쳬노동이란 것이 있을 수 없고, 정신집중을 하지 않고도 가능한 정신노동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세상의 많은 사무직들의 정신노동이 그럴 수도 있다.

 

책의 초반부에 비해서 중반과 후반부의 오토바이 수리에 관한 묘사가 길어지면서 다소 집중력을 잃었지만 손으로 일하는 삶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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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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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저자인 앙드레 고르가 자신의 아내인 도린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남자가 여자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살아있는 자가 죽어가는 자에게 바치는 사랑의 편지, 그러니까 그 무엇보다도 이 편지의 정체는 러브레터인 것이다. 채팅과 벙개의 시대에 러브레터라는 단어를 말하는 것이 좀 구식이긴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을 고백하고, 그(그녀)의 답(답장)을 기다리는 일만큼 아름답고 설레는 일이 있을까? 

사랑에 관한 편지, 또는 사랑에 관한 소설, 아니면 사랑을 다룬 모든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뭘까? 국문학과 수업 시간에 들은 바로는 그건 바로 기다림, 또는 일정기간의 포즈(pause)이다. 편지하면 떠오르는 것이 러브레터이 듯이, 어쩌면 채팅과 벙개가 없던 몇 십년 전에는 사랑하면 떠오르는 것이 러브레터였을 지도 모를일이다. 고백하고 기다리고, 답을 듣고, 사랑에 빠진 이들이 겪는 과정이 고스란히 러브레터를 쓰는 이들이 겪게 되는 과정과 동일하다고 하면 좀 과장일까?

83세의 저자는 죽어가는 자신의 부인에게 러브레터를 보낸다. 하지만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행복했던 과거나,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죽음이다. 그러니 이 편지는 러브레터라기 보다는 오히려 유언장에 훨씬 더 가까워 보인다. 고르의 희망은 평생을 함께 해온 아내이자 애인이자 동지인 자신의 아내와 같은 날에 죽는 것이다. 운명적인 사랑을 했던 수많은 허구 속의 연인들 보다 더 허구같은 죽음을 택한 고르의 편지가 내게 알려준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아름답게 살 권리와 함께 아름답게 죽을 권리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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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삼국지 三國志 세트 - 전10권
고우영 지음 / 애니북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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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네번째, 또는 네종류째의 삼국지다. 박종화, 이문열 삼국지와 최훈의 삼국전투기 이후에 읽게 된 삼국지이다. 박종화의 삼국지는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나지 않고, 이문열의 삼국지를 읽었던 기억을 더듬어서 판단하건대, 고우영의 삼국지는 후반부가 많이 생략되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관우의 죽음 이후에 나오는 내용들이 굉장히 많이 생략되어 있는 편이다. 고우영의 삼국지를 읽다보면, 작가가 관우에게 굉장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눈치채게 된다. 우선 관우에 관한 그림이 가장 멋있다. 두번째는 관우와 제갈량에 관한 보이지 않는, 또는 다른 삼국지에는 드러나 있지 않은 경쟁관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비교적 자세하게 드러나 있다. 작가는 제갈량이 관우의 죽음에 대해서 어느정도는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근데, 어차피 삼국지연의가 픽션인데, 이런식의 해석이 왜 필요한 지 잘모르겠다. 여몽에게 잡혀서 죽을 것을 제갈량이 알았으나 일부러 구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되어 있다. 세번째는 관우의 죽음 이후에 가장 큰 사건인-이문열의 삼국지에서는 굉장히 자세하게 나온다-제갈량의 북벌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너무 빼곡하고 자잘하게 편집이 되어 있어서 보기 편하지 않았지만 인물의 특징을 잘 살린 단순한 그림과 다양한 인물들이 인상적이다. 작가의 농담이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맛이 있긴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그것이 이 오래된 만화의 매력이기도 한 것 같다. 덧붙여 원작 삼국지에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은 이야기들을 원작의 이야기 흐름과 균형을 맞추어 엮어 낸 노력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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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긴 만남 - 시인 마종기, 가수 루시드폴이 2년간 주고받은 교감의 기록
마종기.루시드폴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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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 폴? Paul? Fall? 누구지? 그가 누군지는 몰랐지만 마종기 시인의 시를 좋아해서 구입한 책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같이 하는, 또는 예술가이면서 과학도(의사와 화학자?)인, 구체적으로는 시인과 가수인 두 사람의 편지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런 정도는 책 설명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무엇을 기대하면서 읽는 걸까? 그건 곧 내가 이 책을 산 이유이기도 하고, 동시에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기대한 것이기도 하다. 때론 어떤 책들은 이런 목적 의식을 의식하면서 읽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러한 대표적인 책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아닌가 싶다. 오랜 감옥생활로 부터 깨닫게 된 세상의 삶과 일상과 넘치는 자유와 평범한 것들이 주는 경이,기쁨들......   

어쩌면 좋은 책이라는 것은, 또는 좋은 글이라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지나쳐 버린 삶의 의미들을 포착해서 다시 보여주는 것, 아니면 그런 포착을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것. 그런 면에서 보면, 편지나 일기와 같은 글들은 어떤 개인이 깨달은 사적인 통찰을 볼 수 있는 좋은 양식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예술가들의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아니 그래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기대했던 것은 이 들의 편지 속에서 그들의 통찰들이 조금이나마 묻어 있지 않을 까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기대가 지나쳐서 인지는 몰라도, 이 둘의 편지는 인공적이고 작위적인 냄새가 난다. 마종기 시인이 시에서 보여줬던 섬세한 감각들은 편지 속 산문에서 무뎌지고 평범해졌고 루시드 폴의 편지 글은 동어반복으로 가득하다. 통찰도, 영감도, 날카로운 질문도 없다. 그래서 지루하다.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편지 속에서 심심치않게 등장하는 나르시즘을 견디는 것이 더 괴로운 일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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