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콜드 블러드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트루먼 카포티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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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거의 다 저물어 간다. 올해 읽은 독서 목록을 보니 40권 정도의 책을 읽은 것 같다. 아마도 독서목록에 누락되거나, 전에 읽었던 것을 중복해서 읽은 것들이 있을 것 같다. 올해 새롭게 읽은 분야 중의 하나는 '야구'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기아타이거즈의 성적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각설하고, 알라딘 서점을 포함하여 '올해의 책'을 뽑느라 분주하다. 비단 알라딘 뿐이 아닐 것이다. 아니, 어디 책뿐이랴, 수많은 영화제들과 방송 대상들과, 올해의 선수, 골든 글러브, 올해의 교수등을 여기저기서 곧 뽑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모두 나랑 관련이 없는 일이고...... 그래서 나만의 올해의 책을 뽑아 보기로 했다. 만약 나의 '올해의 책'을 꼽으라면,  

그전에 후보작을 먼저 얘기해야 하나?  

에잇, 그냥 넘어가자. 

둥둥둥둥둥  

바로,  

이 책, <인콜드블러드>이다. 올해 읽었던 책들 중에서, 문학, 비문학을 통틀어서 가장 훌륭한 책이다. 내인생의 책장- 물론 내 마음 속에 있는-에 꽂아 놓기로 했다. 2008년 최고의 책이었던, 물론 내게, <나쁜사마리아인들>옆에 평생토록 꽂혀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뛰어난 점은 여러가지 인데, 우선 첫번째 점을 꼽으라면, 그건 디테일이다. 이 소설이 묘사하고 있는 상황, 살인자들과 살해된 자들, 그리고 그들 주변의 인물들의 심리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너무나 치밀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논리적인 추리력으로 무장한 탐정이 등장하지도, 화려한 첨단 과학을 무장한 과학수사대가 등장하지도 않음에도 이 책이 흥미진진 한 것은 바로 이 '디테일'때문이다.  

두번째는 이 책의 스타일이다. 대체 이 '책'은 뭔가? 소설인가? 아닌가? 추리소설인가? 아닌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답을 하기 어려운 것은 작가가 이 책을 기술한 방식이 독창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실제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또 실제의 인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씌어졌지만, 철저하게 작가의 기억에 의해서 재구성 되었다. 살인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실제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재구성된 이야기이다. 트루만 카포티는 실제와 허구를 적절하게 조화시키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다. 실제 증언만을 가지고 책을 구성하면 헛점이 많아지고, 상상력만을 가지고 재구성하면 디테일이 약한 평범한 소설이 되어 버린다. 이 두가지 약점들을 보완하기 위한 기술 방식이 바로 작가가 택한 방식이다. 왜냐하면 소설가 김영하의 말처럼 실제는 허구보다 훨씬 더 허술하고 비논리적이기 때문이다. 덧붙여 작가가 택한 스타일 속에 이 책의 주제가 담겨 있다.  

허구보다 더 허술한 현실!  

세번째는 디테일과 형식을 통해서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은 살인의 동기에 있다. 대체 그들은 어째서 얼굴도 모르는 가족들을 몰살시킨 것일까? 가족의 몰살은 아주 단순한 이유였다. 이 책의 제목이 '냉혈한(인콜드블러드)' 인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자신들이 놓여 있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비루함. 이 책 속의 비극은 살인을 계획할 때부터 차근차근 준비된 것이 아니라, 일확천금을 꿈꾸면서 침입한 그들이 동전 몇푼만 가지고 돌아가야 하는 자신들의 운명을 깨닫는 순간애 갑자기 시작된다. 믿을 수 있는가! 단지 비루한 자신의 처지 때문에 다른 이들을 죽일 수 있다니. 끔찍한 살인의 중심에 이런 하찮은 동기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 어마어마한 돈과 명예와 여자가 연관되지 않고도 끔찍한 살인들이 얼마든지 일어난다는 것.  

덧붙여 삶과 죽음이라는 것이 그리 거룩한 이유들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트루만 카포티씨, 올해의 책에 당선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상품이나 상금은 없지만 제 마음 속의 책장에 평생 꽂아 놓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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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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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소설들의 특징은 읽고나서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설의 제목도, 내용도, 인물도, 주제도 등등. 내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한 말 속에는 어떠한 은유나 컨텍스트도 없다. 진짜 말그대로 기억이 전혀 나질 않는다. 아마도 이건 전적으로 내게만 해당되는 얘기일 것 같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연수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는 것처럼 보이니까.  

최근까지 원인을 잘 모르고 있다가 이 책, 그러니까 <세계의 끝 여자친구>를 읽고나서야 알게 되었다. 물론 이 책 역시 전혀 기억나질 않는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고작 알라딘에서 소개해준 부분뿐이다. 책소개만 읽을껄, 왜 책을 샀는지 모르겠다.

내 망각의 이유를 가르쳐 준 것은  바로 이 문장이다.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첫번째 이상한 점. '감사해야만 한다' 뒤에는 감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문장이 나올 것 같다. 그렇다면, '그건 전적으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이다.'로는 끝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더군다다 '전적으로- 일지도 모른다'는 대체 무슨 뜻일까? '전적으로'라는 말로 시작했으면 뭔가 확실한 이유를 말해줄 것 같은데 이 문장은 '일지도 모른다'는 식의 '모르쇠'로 끝맺음 한다.  이걸 진짜 김연수가 쓴 걸까? 아주 의심스럽다. 두번째 이상한점. 이건 문장의 뜻과 관련된 것인데, '사랑했던 나날들이- 오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이라는 것은 대체 어떤 뜻일까? 굳이 억지로 끼워 맞추자면 뜻을 만들어 낼 수 도 있지만 이토록 문장을 비비꼬을 필요가 있나 싶다. 그보다는 '나날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오랜 세월을 버티게 만든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아닐까? 

그러니까 내생각에는 앞의 문장은 이런 뜻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건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로 하여금 오랜 세월을 견디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 

결국 원인은 아주 기본적인 것이었다. 문장! 소설가 김연수의 문장들을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위에 인용한 문장이 본문 중에 나온 문장이 아니어서 유감이지만, 본문 속의 문장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한국말인데도, 외국어를 읽듯이 더듬더듬 읽게되고, 그렇다보면 작가가 쓴 의미들을 대부분 놓치게 된다. 그러니 소설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을 수 밖에!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도 샀는데 이건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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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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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눈물을 찔끔 거린적이 꽤 있었는데, 이 책도 그런 책 중의 하나이다. 제목이 의미하는 것이 실제의 내용과 어떤 식으로 연관되어 있는지는 책을 다 읽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 소설의 내용이 소설의 제목만큼이나 혼란스럽고 어지럽다는 것이다. 내용의 일부는 먼저 읽었던 집사람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이해했다.  

한국처럼 중국, 일본,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던 경험이 많은 나라에서야 몇대째 전쟁을 통한 비극을 경험하는 것이 비교적 흔한 경험이지만 미국처럼 역사가 짧고 자국내에서의 전쟁을 경험한 적이 없는 나라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전쟁으로 인한, 물론 한쪽은 테러이지만, 비극을 경험하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닐 것 같다.  

이 소설은 전쟁의 비극이라는 거대한 담론을 아이의 눈을 통해서 들여다본다. 사실 이 소설의 유일한 약점은 아홉살 짜리 아이의 눈으로 본 세상이라는 설정이 다소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알랴?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비록 자신은 오스카가 아니지만, 오스카와 같은 아이가 없다고 단언하지는 못하리라.   

아이의 눈을 통해서 본 테러는 국가와 종교와 문명의 문제에서 가족과 개인의 문제로, 역사의 일부에서 일상의 전부로 탈바꿈한다. 이 소설이 감동적인 것은 이런 개인과 일상의 문제들이 꼼꼼하고 섬세하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힘은 이야기의 힘이라기 보다는 디테일의 힘이다. 하지만 이 디테일들이 지나치게 최루성이다.  

가끔 웃는다는 것 보다 우는 것이 정신건강에 더 좋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이상한 말이지만 울어서, 울 수 있어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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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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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구절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라픽 샤미의 소설 <1001개의 거짓말> 에 따르면 사막에 사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이야기'뿐이라고 한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천일야화가 나온 지역을 떠올려 보라! 시적인 문체, 독특한 구성, 극적인 반전 따위는 다 집어 치우자. 모래바람과 태양만 있는 곳에서 소설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단 한가지, 바로 '이야기'때문이다. 꼭 들어 맞는 예가 아닐 수는 있지만 이 소설이 갖는 감동의 힘 또한 그런 '이야기'가 갖고 있는 힘이다.  

더군다나 이 소설의 배경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미지의 땅, 911사태이후로 더욱더 신비스러워지고 위험해진 지역이 배경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의 이야기가 갖는 독특함은 더 강력한 힘을 갖는다. 줄거리를 보면, 문득 '성장소설'일 것이라는 생각이 우선 들지만, 소설을 읽고나면 꼭 성장소설이라는 틀에  맞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삶을 통해서 잘못하고 뉘우치는 소설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실수와 반성을 통해서 성장하지 않는다. 그가 용서를 받을 기회는 그가 다 자라서 주어지니까.  

이 소설은 주인공이 유년기에 저지른 하나의 '실수'로부터 시작하고 이 '실수'는 주인공의 마음 속에 수십년 동안 '죄의식'으로 자리잡는다. 그리고 마침내 오랜 시간이 지나 주인공에게 '속죄'의 기회가 온다. 그런데 왠걸? 속죄의 기회에 고해를 하게 되지만 주인공 아미르가 얻게 되는 것은 용서와 평화가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비밀스런 운명과 혼란이다.  

실수-죄의식-속죄로 이어질 것 같았던 이야기는 운명의 문제로 읽는 이들을 갑자기 혼란속에 빠뜨린다. 이 소설의 강점은 통속적인 설정과 전개 방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감동적이라는 것이다. 읽고 있는 독자들 또한 이 소설의 설정이 왜 신선한 것인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내가 생각해낸 최선의 답은 이 소설의 이야기가 작가의 실제 경험일 것이라는 독자들의 확신-작가가 독자들에게 그러한 암시를 한번도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니, 작가가 이런 놀라운 경험을! 하지만 클라이막스에서 주인공이 격투끝에 탈출하는 장면은 작가의 실제경험일 가능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심지어 이 부분은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어디서 베낀 장면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장애가 있어도 만나게 되고, 착한 사람은 언제가 잘되고 나쁜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고, 주인공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자신의 임무를 완성하고 등등등. 이 소설의 후반부는 이러한 비현실적인 당위들이 모두 실현되는 듯이 보인다. 근데 이 모든 것들이 어디서 본 것 같다. 생각해보니 소설 <Q&A>의 후반부를 읽으면서 느꼈던과 비슷한다. 굳이 두 소설의 공통점이면 모험과 활극을 통해서 결말로 치닫는다는 점? 당시에는 이것이  헐리웃 영화의 영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소설을 읽고나서 생각해보니 그보다는 인도의 발리우드 산-한 때 할리우드보다도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는- 영화들의 영향일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강력한 이야기, 통속적인 전개, 권선징악과 같은 뻔한 주제. 하지만 이 소설은 그 모든 통속성을 극복할 정도로 감동적이다. 그것이 실제든 아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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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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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읽은 추리소설이다. 아마도 가장 최근에 읽은 것이 반다인의 것이었던 것 같다. 잘 기억도 나지 않고 리뷰도 올리지 않은 걸 보면 어지간히 재미가 없었나 보다. 언젠가 부터 일본 추리소설 들을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여 몇 권을 읽었으나 그닥 재미가 없었다. <우부메의 여름>,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    

이 소설도 그렇지만 일본 소설들, 특히 추리소설들의 설정은 지나치게 인위적이거나 인공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 워낙에 소설이라는 것이, 또는 추리소설이라는 것이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설정에서 출발하는 것이지만, 일본 소설들의 경우는 정도가 좀 심하다.  

<용의자 x의 헌신>도 예외가 아니다. 사랑하는 옆집 여자를 위해서 모든 걸 희생하는 X가 그렇다. 게다가 그는 알고보면 천재 수학자이고, 그의 계획을 간파하는 이는 그의 옛친구인 천재물리학자이고, 그런데 알고보니 천재물리학자의 고등학교의 동창이 살인사건을 맡은 형사이고...... 이건 좀 너무하잖아.  

점잖게 말해서 인위적이니 인공적이니 하지만 사실 이정도라면 두세다리 건너면 다 지인이라는 한국 통속 드라마 속의 세상과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인다. '혹시나' 하면서 읽기 시작한 책의 설정이 '역시나' 뻔할 뻔자로 흘러간다고 생각하며, 책을 덮으려는 순간.  

극중인물인 유가와의 말처럼 이 소설은 전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초반에 제시된 이시가미와 유가와의 선문답은 사건을 해결하는 중요한 퍼즐이 되고, 말도 안되는 듯이 보였던 상황설정은 결말로 갈 수록 어느정도 설득력을 갖게 된다.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용의자 X는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헌신적이다.   

좋아하는 작가를 발견하는 것은 즐거운일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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