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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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작의 내용이 워낙 잘 알려져 있어서인지 책을 읽고 난 뒤에도 그리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새로 알게 된 것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아마도 줄거리와 소문(?)이 풍기는 과도한 선정성에 비해서 실제 내용은 전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일 것 겉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정작 책 속에는 너무 낯뜨거운 내용이라서 지하철에서 주위사람을 의식하면서 읽어야 될 부분이 하다도 없다. 심지어 졸리기까지. 오히려 지나치게 밋밋하고 평범한 소설이다. 아니, 대체 이 책이 왜 금서가 된걸까?  

내게 '롤리타' 하면 기억나는 것은 책이 아니라 홍대 근처의 어느 극장이다. 추상미가 롤리타 역을 했던 것이 기억나고 그외의 배우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 연극에 출연할 당시만 해도 추상미는 전설적인 연극 배우, 모노드라마 <빨간피터의 고백>의 주인공 추송웅 씨의 딸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한가지 더 기억나는 것은, 추상미의 키가 무지하게 작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롤리타 역으로 캐스팅 되었던 중요한 이유였던것 같다. 아마 지금도 거기서 많이 크지는 않았을 것 같다.   

십 몇 년 전 연극 <롤리타>를 봤을 때도 궁금했고, 애드리안 라인의 영화 <롤리타>를 봤을 때도 궁금했고, 책을 읽고 나서도 마찬가지 였는데...... 대체 이 소설은 뭘 얘기하고자 하는 걸까?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주제! 님펫매니아 환자의 엽기 행각을 보여줄꺼면 좀 더 선정적으로 썼어야 할 것 같은데, 이 소설은 지나치게 차분하고 꼼꼼하며 감상적이다. 결말을 보자. 훔볼트는 이제는 '님펫'의시기를 지나 여인이 되어 버린, 자신의 과거의 요정을 위해서 '복수'를 감행한다.  

소녀를 사랑하는 중년남자의 고백이 의미하는 것? 이 소설이 의미하는 바가 명확하진 않지만, 사실 여기에는 매끄럽지 않은 번역도 한 몫했다고 본다, 그래도 굳이 끼워 맞춰본다면 '사랑'의 의미, 또는 진정한 사랑이란 뭘까? 정도가 아닐까? 물론 이러한 질문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작가가 택한 설정이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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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인문학 서재 - 곁다리 인문학자 로쟈의 저공비행
이현우 지음 / 산책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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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다. 책에 관한 책- 예를 들면 장정일의 독서일기 시리즈나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을 포함한 독서론에 관한 수많은 책들-을 읽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독서에 관한 책도 어느새 내 책읽기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다치바나 다카시의 기준에는 훨씬 못미치지만 말이다. 한권의 두께를 2cm으로 잡아도 열 권이라고 해봤자, 20센티미터 정도?   

사실 로쟈의 서재는 굉장히 유명하지만, 실제로 그가 쓴 리뷰를 읽어본 적은 없다. 주로 내가 그 서재를 들락날락 거리는 이유는 내가 읽고 싶은 분야의 참고문헌들을 찾기 위해서이고, 실제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그의 서재에서 읽은 것은 대부분 그의 리뷰라기 보다는 인용자료의 글들이이었던 같다.  

2009년 한해를 정리할 겸, 내년도 독서 계획도 세울 겸 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글이 그다지 쉽게 읽히지 않는다. 생각보다 글이 굉장히 어렵고 전문적인 내용이 많다. 책 속에 구분되어 있는 분야별로 평가를 내리자면, 우선  문학리뷰 부분이 좀 이상하다. 글이 이상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 부분에 나온 글들이 다루고 있는 것이 대부분 '문학'이 아닌 것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노트에서 다루고 있는 작가는 장정일, 황지우, 김훈, 김규항, 바르트, 콘찰로프스키 등인데, 그중에 뒤의 세 사람(김규항, 바르트. 콘찰로프스키)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작가라고 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그리고 여기 실린 문학노트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문맥, 문학적 장치들의 의미, 주제가 아니라 문학 작품이 놓여있는 정치적인 또는 이념적인 컨텍스트이다. 그러니 더욱 더 문학노트라는 제목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좀 더 '문학 노트', 그게 뭔지 정확하게 정의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에 가까운 글들이 실려 있었으면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에 실린 글들 중 가장 잘 읽히는 부분은 '예술리뷰'부분이다. 사실 이부분은 대부분  영화리뷰이고, 내생각에는 영화리뷰로 제목을 바꾸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황혜선의 작품에 대한 평은 군더더기처럼 보인다. 이 부분에 실린 김기덕 영화에 대한 평들은, 비록 내가 그 영화를 보지 않았음에도, 굉장히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앞서의 문학노트의 글들이 이 영화리뷰와 같은 방식으로 쓰여졌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로쟈의 철학페이퍼와 지젝 읽기에 실린 글들은 반 정도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이 곳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한해를 정리하고자 읽기 시작한 내게는 너무 무겁고 어려운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지젝을 읽을 일이 있을 때 한 번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맨 마지막에 실린 번역비평에 실린 이야기들은 백번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이다. 누구나 여기에 실린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리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동의하고 방법도 아는데 여전히 별로 고쳐지는 것이 없다면, 필요한 것은 '시간'이 아닐까 싶다. 물론 원칙에 동의하는 이들이 그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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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 탄생 - 옥스퍼드 영어사전 만들기 70년의 역사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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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를 하기 위한 워밍업 용으로 구입한 책이다, 라고 말하기엔 너무 오래전에 샀다. 한 3-4년정도 책장에서 묵혀놓은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책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기 때문이다. 최근에 < 빌브라이슨의 발칙한 영어산책>을 읽었는데, 연이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우연하게도, 의도적인건가?, 미국과 영국의 영어사를 비교하면서 보게 된 셈이다.  

'옥스퍼스영어사전-본문속에서는 OED (Oxford English Dictionary)- 만들기 70년의 역사'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몇가지 점에서 놀랍다. 우선 70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세월이다. 이 사전은 초기 시작단계에서 본격적인 사전작업을 하기까지, 다시말하면 헨리제임스머리라는 붙박이 편집자가 작업을 총괄한 후로도 5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에야 완성되었다. 머리는 사전의 결말을 끝내 보지는 못했다. 머리 이후에 편집인들 중에는 몇몇 낯익은 소설가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반지의 제왕>의 J.R. 톨킨과 소설가 줄리안 반스가 그들이다.  

두번째는 이 OED의 편집자 중 가장 지대한 공헌을 한 머리(Murray)가 한국으로 따지면 중학교 중퇴 학력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머리 외에도 수많은 아마추어 언어학자들이 자원봉사자로 이 사전에 참여 여했다. 사전을 만드는 단순한 이야기가 책 한 권이 된 것은 이 자원 봉사자들의 다양한 인생역정도 한 몫했다. 이것은 위대한 사전이라는 것이 한 개인, 또는 한 단체의 힘만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조금 만 더 생각해보면 당시 영국이라는 나라의 문화적 토대라는 것이 얼마나 탄탄한 것이었는가를 알 수 있다. 교수가 아니라 아마추어 언어학자의 감독아래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한 단어 한 단어를 쌓아올린, 지상최고의 영어 사전! 

사무엘 존슨의 말처럼 '무해하지만 따분한' 사전 만들기를 70년이라는 세월동안 밀고 나가는 그들의 뚝심에 다시 한 번 부럽고 놀라울 따름이다. 비록 이 책을 읽는 것이 신나고 재미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이 말은 진짜 마음에 든다. 그리고 사전이라는 '무해하지만 따분한' 일을 이토록 우아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사물이 천상의 아들이라면, 말은 지상의 딸이다" 

그럼 사전은?

그러니 사전은 지상의 딸들이 사는 집인 셈이다. 한국도 언젠가 '말'이라는 지상의 딸들이 살 수 있는 커다란 집을 만들 수 있으리라. 아니, 이미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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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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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리뷰에서 읽었던 것 같은데,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가 끔찍한 책이란다. 당시에는 그 책이 정말 그 정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사람의 심정을 조금 알 것 같다.  

마루야마 겐지는 외모만 봐도 왠지 소설가라기 보다는 수도승에 가깝다. 그의 소설론을 담은 <소설가의 각오>를 읽어보면, 이런 그의 외모가 괜한 '가오'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책이 끔찍하다는 글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고행하듯이 써야 한다는 그의 글쓰기 철학일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마루야마 겐지의 말처럼 글을 써야 한다면, 참으로 끔찍한 일일 것 같다.  

내년 수업때 독서론에 대한 것을 강의하기 위해 고른 책이다. 이 책을 읽은 느낌을 말하자면, 한마디로 '끔찍하다'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책을 읽는다면, 물론 본인은 즐겁겠지만, 독서라는 것이 참으로 끔찍한 일일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에게 글쓰기가 고행의 과정이라면, 다치바나 씨에게 독서는 일종의 전투의 과정이 아닐까 싶다. 한 분야를 알기 위해서는 1미터 높이의 책을 읽어야하고,자신은 어떤 분야에 대한 책을 쓸 때 4-5미터 정도의 책을 읽고 쓴다는 등, 독서를 가시화(?) 하고, 독서량을 몇미터 단위로 수치화시키는  그의 독서론은 가히 전투적이라 할 만하다.  

하긴 먹는 것을 전투로 삼는 푸드 파이터(food fighter)도 있는 마당에 리딩(reading) 파이터가 존재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닐 것 같긴하지만......  

하지만 의외로 이 책 속에는 기존의, 혹은 나의 생각과 다른 몇가지 점들을 제외하고는 별 내용이 없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다른 책을 읽어봐야 겠다. 그의 독서적 기행?, 아니면 기행적 독서? 를 제외하고 이 책 속에서 인상에 남는 몇가지를 지적해보면,  고전이 된 문학들을 읽지 말라는 것, 굳이 통독을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 정도 등이다. 그의 주장이 과격하고 극단적이 면이 있지만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나 역시도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고전이 된 문학들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학 전체를 읽을 필요가 없다는 그의 주장은 좀 지나치지 않나 싶다.  

그의 주장이 과격하고, 그가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독서 방법이 조금 끔찍하지만, 과격하고 극단적인 주장들을 정답인 것처럼 밀어붙이는 저자의 내공이 대단하다. 사실 독자들은 이런 내공에 감동하는 법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앞으로 이렇게 물어야 할 것 같다.   

근데, 너 몇미터나 읽어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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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어 산책 - 엉뚱하고 발랄한 미국의 거의 모든 역사
빌 브라이슨 지음, 정경옥 옮김 / 살림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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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올해의 목표를 정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 뭐, 사실 습관이라고 해봐야 한 3-4년 정도 된 것이긴 하지만. 올해의 목표는 새로운 직장에서 잘 적응하고, 학위를 따는 것이었다. 모두 무난히 달성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이것 말고 목표가 하나 더 있었으니...... 그건 바로, 영어 공부를 하는 것! 근데 영어는 왠지 좀...... 이런 지가 어언 4-5년은 된 것 같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6개월(영어학원 다닌 기간)...... 사실 대한민국에서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대개 이 정도의 영어 공부는 했으리라. 6년 6개월이면 그리 짧은 기간도 아니건만 영어로 말하려고 하면, 영......  

늘 한국의 영어교육이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와서 생각해보니 꼭 그렇지 만도 않은 것 같다. 비록 말하기 능력은 떨어지지만 읽기 능력은 봐줄만하기 때문이다.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서 그동안 별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영어로 된 책이나 영어로 쓰인 잡지(물론 전공분야와 관련된)를 읽는 것에 별 문제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면 너무 쉬운 것만 읽어서 그런가? 

이야기가 좀 옆으로 샛지만, 올해의 목표중 하나는 영어 말하기와 쓰기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이 책을 사게 된 이유는 바로 이 마지막, 달성하지 못한 목표와 관련되어 있다. 근데 왜 하필 이 책이냐고? 물론 빌브라이슨이 영어 말하기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이 책을 썼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사와 미국어(영국어가 아닌)에 대한 그의 '거의 모든 것'을 듣고 나면 좀 더 흥미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이 책은 어느 정도 이런 예상을 만족시킨다. 혼란스럽고 뒤죽박죽이었던 미국의 초기 사회, 보수적인 청교도들의 황당함,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미국의 히어로(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에이브라함 링컨, 에디슨)들의 뒷모습(?). 하지만 기존에 빌브라이슨이 보여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책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너무 길다는 것이다. 미국어를 통해서 미국사와 미국사회를 들여다 보겠다는 저자의 의도는 좋았으나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장황한 것이 이 책이 가진 최대 단점이다. 그래서 별로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없다. 미국사도 미국어도.  

그래도 마지막 장의 영어라는 말에 내포된 성차별적인 또는 인종차별적인 부분에 대한 빌브라이슨의 입장은 나도 찬성하는 바이다. 말을 고치는 것이 '차별'을 해결하는 것에 대한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지나친 것은 늘 모자란 것만 못한 법이다. 덧붙여 누군가의 말처럼, 말을 바꾼다고 해서 차별이, 또는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었지만 영어를 공부하겠다는 의지는 영, 아니 0(zero)? 그럼에도 영어공부는 계속 된다, 아니 계속 되어야 한다. 내년에도 주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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