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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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했을때 교황청이 기분이 나빴던 이유중에 하나는 하나님이 만든 이 세상이, 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아니 우리가 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고!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세계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일개 행성에 불과했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 지구의 수많은 생명들 중에서 여전히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 수많은 생명들의 이름을, 사자, 호랑이, 코끼리, 뱀, 기러기 등등의 이름들을 인간이 짓지 않았는가!  

그런데 다윈은 약 150년 전쯤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들의 조상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각각의 종들의 할아버지가 알고 보면, 우리가 알 지 못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언가일 것 같다는 것이다. 그게 뭘까? 다윈이 살았던 시대에는 '유전'의 개념도 확실하지 않고, DNA의 존재도 몰랐으니 진짜 그 종의 기원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다윈이 궁금해했던 종의 기원이 인간이 아닐 뿐 아니라 인간 자신도 '종의 기원'의 도구일뿐 목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생명체의 중심은 유전자에 있으며, 유전자는 이기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고, 진화적으로 안정적인 전략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유전정보를 후대에 복제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유전자들의 생존기계일 뿐, 다른 모든 생명체들도 마찬가지다, 그 이상의 이하의 목적도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혹 이런 반론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모든 동물에 공통적인 이타주의인 모성애나 동료애들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저자의 이 책 전반을 통해서, 수많은 동물들의 행태를 관찰하고 추론하여 모성애나 동료애가 결국은 유전자의 근본적인 속성, 더많은 개체에게 더많은 정보를 더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속성, 에 합당하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심리학, 게임이론, 생물학 등의 학문들이 한데 뒤섞여 있는 이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사실 '게임이론'(죄수의딜레마)은 이 책에 나온 설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었다. 누군가는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가장 읽히지 않았던 베스트셀러라고 했는데, 이 책을 읽고나면 이 책의 대중성을 한번쯤 의심하게 된다. 절대로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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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미스 해전 - 세계의 역사를 바꾼 전쟁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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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심이 많지만 세계사를 다룬 책들을 읽어본 적이 없다. 사실 한국사라고만 해도, 또는 의학사나 수학사라고만 해도 그 분량을 쉽사리 상상하기 어려운데 '세계사'라는 것은 범위 자체가 너무 광범위한 것이어서 그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래서 더 읽을 엄두를 못내고 있었던 것 같다.  

최근에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을 읽게 되면서 당대의 역사가 궁금해졌다. 문학은 사회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 논리라면, 그리스의 역사를 잘 안다면 이 오래된 희곡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집에 있는 전에 사놓은 책들을 뒤지다보니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살라미스해전'은 역사적으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이 아테네를 침략했던 마라톤 전투와 그리스의 패권을 놓고 아테네 주도의 델로스동맹과 스파르타 주도의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벌였던 펠로폰네소스 전쟁 사이에 놓여 있다. 모두 기원전 5세기의 이야기이다.  

원래 읽으려고 했던 시기는 소포클레스가 활동했던 시기인 기원전 5세기, 페리클레스 통치시절이었지만, 그 전 시기를 읽는 것도 그닥 나쁠 것이 없는 것 같아 읽기 시작했다. 비록 소포클레스는 이 책에 등장하지 않지만, 그의 스승인 아이스킬로스는 등장한다. 이 책의 서술은 대부분 헤로도토스와 아이스킬로스의 진술에 의존하고 있다.저자의 추측에 따르면, 아이스킬로스가 아마도 마흔 다섯의 나이로 이 전투의 하급병사로서 참여하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도움을 받았던 것은 살라미스 전쟁의 전후로 있었던 전투와의 관련성과,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알력관계에 대해서 어렴풋하게 나마 개념을 잡았다는 부분이다. 해전의 묘사에는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 그것은 그림이나 사진자료가 부족해서 매번 배의 모양과 지형을 떠올리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삼단노선과 그리스의 배를 비교한 그림을 넣었으면,만일 그런 그림이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전투 지형과 관련된 사진자료가 좀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덧붙여 인물묘사, 인물과 인물간의 갈등, 정치적인 쟁점들에 대한 부분이 조금 더 자세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건 저자가 지나치게 사실에만 의존해서 기술하려는 경향 때문인 것 같다.

아이스킬로스가 살라미스 해전 세대라면, 소포클레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 세대이다. 헐리웃이 한동안, 아니 지금까지도 쭉, 2차세계대전이라는 소재를 써먹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글쟁이, 아니 극쟁이들의 좋은 소재라는 생각이 든다.  

추신: 이 책을 읽으면서 네이버 검색을 하다가 알게 되었는데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결국 그리스는 쇠망의 길을 밟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스의 운명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것은 전투의 승자는 존재하지만 전쟁의 승자는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연평도 폭격으로 시끄러운 요즘, 전쟁이라는 것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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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다윈씨 - 찰스 다윈의 진면목과 진화론의 형성 과정, 탄생 200주년을 맞아 다시 보는 다윈이야기
데이비드 쾀멘 지음, 이한음 옮김 / 승산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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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하면 진화론이고, 진화론 하면 적자생존이다. 그리고 여기에 좀 더 덧붙인다면, 진화론 하면 <비이글호 항해기>를 떠올리게 된다.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다윈은 자신의 책과 논문에서 한번도 '진화'라는 말을 언급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책의 제목을 '신중한' 다윈씨라고 한 것 같다. 이 책이 다윈을 다룬 이전의 책들과 다른 점은 바로 이 '신중한'이라는 수식어와 관련이 있다.  

대개의 책들은 다윈의 책 <종의기원>의 내용을 다루거나, 아니면 <종의기원>에 영향을 준 비이글호 항해를 다룬다. 하지만 이 책은 항해가 끝난 후 <종의기원>이 나오기 까지의 다윈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가의 의도가 나쁘지는 않다. 뻔한 의도로 무임승차하려는 수많은 책들과 비교하면, 새로운 관점이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저자의 문제이면서, 다윈, 좀 더 넓게는 과학자의 일상이 책의 전부가 되는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다윈의 사상은 혁명적이지만, 아마도 아인쉬타인이나 다른 과학자들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그들의 일상은 예술가들의 그것처럼 다이나믹하지도 극적이지도 않다, 아니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이라는 것이, 또는 미세한 데이터들의 차이와 연관성을 밝혀내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삶이라는 것이, 아무리 극적으로 꾸미고 치장을 한들 너무너무 재미있거나 감동적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몇명의 예외가 있을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는 것은 다윈이 신중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진화'-풀어서 얘기하면 하느님이 아담을 통해서 다양한 종의 이름을 붙여 준 것이 아니라 모든 종의 기원으로 부터 환경의 압력에 의해서 변이와 유전을 통해서 다양한 종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라는 주장-을 책을 엮게 된 이유에 대한 것이다. 그 외에는 조용하고 수줍어하는 무신론자의 모습만을 얼핏 엿볼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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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의 귀환 - 인류 역사 최악의 연쇄 살인마
수잔 스콧.크리스토퍼 던컨 지음, 황정연 옮김 / 황소자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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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사, 특히 질병의 역사와 관련된 책들은 눈에 띄면 사는 편이다. 왜냐하면 언젠가 의학사와 관련되어서 강의나 발표를 해야할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이 책을 사 놓은 지가 한 삼사년쯤 된 것같다. 최근에 페스트를 주제로 강의를 할 일이 생겨 읽게 되었다. 투박한 겉표지와는 달리 내용이 무지하게 알차다.    

이 책의 장점 중에 몇가지를 지적해보면, 첫번째는 페스트(또는 흑사병)의 기원과 전개과정에 대한 서술이 자세하다. 사실 기원전 5세기에 아테네에 유행했던 병이 페스트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들을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질병의 역사와 관련된 책을 읽을 기회가 흔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론을 언급해놓지 않으면, 어느 것이 기존에 있는 정설이고, 어느 것이 저자들의 것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이 책을 읽고나면 5세기와 14세기부터 17세기 까지의 전유럽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페스트의 역사적인 행보를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책'을 읽는 것이 꼭 어떤 정보 때문만은 아니다. 쉽게 말하면,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 책의 저자들의 주장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기원전 5세기의 역병, 중세의 흑사병과 페스트가 같은 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현재까지 페스트 원인균은, 여시니아 페스티스로 알려져 있는데 이 균은 림프절 페스트의 원인균이지 흑사병의 원인균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제시하는 근거는 책 속에 자세하게 나와있다. 그러니, 아테네의 페리클레스를 실각시켰던 전염병도 페스트가 아니고, 중세하면 떠올렸던 기독교와 페스트를 일으키는 쥐들도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가 된다. 이들의 근거를 읽어보면 그들의 주장에 고개가 저절로 주억거려진다.   

세번째는 문학작품 속의 페스트를 찾아내는 재미가 나름 쏠쏠하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전염병이 페스트라는 사실은 시공디스커버리 <셰익스피어 비극의 연금술사>에서도 읽었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내용의 구절이 보인다. 하지만 약간 다르다. 어쨌든 그 질병이 페스트를 지칭하는 것만은 분명한가 보다.  

이 모든 정보와 재미와, 이것들이 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책의 마지막 부분은 좀 아쉽다. 틀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의 흐름과 좀 동떨어진, 역사를 얘기하다가 손씻기 교육을 하는 것같아서 좀 아쉽다.  

결핵과 관련된 의학사 책도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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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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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읽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카프카가 소설 속에서 그려내려고 하는 것은 '불안'이다. 이 '불안'을 일으키는 것이 <성>의 경우에는 보이지 않는자, 도달 할 수 없는 곳이었고, 그것의 이름은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바로 '성'이었다. 누구나 '성'과 '성'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니, 없는 것 같다. 과연 그들이 실제로 '성'에 가본 적이 있는 것일까? '성'의 사람들을 실제로 본 적이 있는 것일까?

도달할 수 없는 곳과 보이지 않는 존재, 소문 속에서만 존재하는 실체가 없는 존재, 하지만 그곳과 그들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다. 소설 <소송>의 내용도 <성>과 비슷하다. 주인공 요제프 K는 누군가로 부터 소송을 당하지만 자신이 왜 소송을 당했는지 알 지 못한다.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부터 감시자와 살해자가 파견되고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소송'으로 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카프카 소설 속에 나타나는 근본적인 불안은 '익명'과 '이유없음'과 '볼 수 없음'으로 등장한다.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체포한다. 이들이 두려운 것은 이들을 조종하는 이가 이름도, 얼굴도,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이들에겐 아무런 해명도 통하지 않고, 석방을 위한 나의 요구는 모두 '무위'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곳에 존재하는 '그 분'을, 그것이 법이든, 신이든 뭐든간에, 만날 수없기 때문이다. 나의 요구는 계속해서 뒤로 미루어지고(차연되고), 소송의 이유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나의 체포와, 나의 불안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소설 속에 나온 '법'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의 비유처럼 늙어 죽을때 까지 '법'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덧붙여 아무도 그 미룸의 이유를 해명해주지 않는다. 

카프카가 어떤 의미에서 익명의 존재로부터의 소송, 체포, 살해라는 이야기를 구성했는지는 몰라도 이 소설 속에서 그려내고 있는 불안의 모습은 타락, 원죄, 십자가로 이어지는 기독교의 구조와 비슷하다. 하지만 베케트가 자신이 고도가 무엇인지 알았다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카프카도 자신이 소설 속에서 그려내려는 '불안'이 종교적 의미였다면, 분명히 밝혔을 것이다. 그러니 종교적인 관점이 작품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이 소설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서 해석하기는 어렵다. 덧붙여 그의 모든 작품들이 미완성인 것은 아마도 그가 '구원'의 장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종교든 궁극적인 목표는 구원이니까. 어쩌면 미완성으로 둠으로써 '구원'이 없다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전하려고 했거나. 

덧붙이는 말: 뒤에 붙은 해설이 뛰어나다. 새로운 번역은 이런 맛에 읽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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