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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
프란츠 카프카 지음, 권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성>을 읽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카프카가 소설 속에서 그려내려고 하는 것은 '불안'이다. 이 '불안'을 일으키는 것이 <성>의 경우에는 보이지 않는자, 도달 할 수 없는 곳이었고, 그것의 이름은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바로 '성'이었다. 누구나 '성'과 '성'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얘기하지만,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니, 없는 것 같다. 과연 그들이 실제로 '성'에 가본 적이 있는 것일까? '성'의 사람들을 실제로 본 적이 있는 것일까?
도달할 수 없는 곳과 보이지 않는 존재, 소문 속에서만 존재하는 실체가 없는 존재, 하지만 그곳과 그들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다. 소설 <소송>의 내용도 <성>과 비슷하다. 주인공 요제프 K는 누군가로 부터 소송을 당하지만 자신이 왜 소송을 당했는지 알 지 못한다.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부터 감시자와 살해자가 파견되고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소송'으로 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카프카 소설 속에 나타나는 근본적인 불안은 '익명'과 '이유없음'과 '볼 수 없음'으로 등장한다.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체포한다. 이들이 두려운 것은 이들을 조종하는 이가 이름도, 얼굴도,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이들에겐 아무런 해명도 통하지 않고, 석방을 위한 나의 요구는 모두 '무위'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곳에 존재하는 '그 분'을, 그것이 법이든, 신이든 뭐든간에, 만날 수없기 때문이다. 나의 요구는 계속해서 뒤로 미루어지고(차연되고), 소송의 이유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나의 체포와, 나의 불안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소설 속에 나온 '법'의 문을 지키는 문지기의 비유처럼 늙어 죽을때 까지 '법'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덧붙여 아무도 그 미룸의 이유를 해명해주지 않는다.
카프카가 어떤 의미에서 익명의 존재로부터의 소송, 체포, 살해라는 이야기를 구성했는지는 몰라도 이 소설 속에서 그려내고 있는 불안의 모습은 타락, 원죄, 십자가로 이어지는 기독교의 구조와 비슷하다. 하지만 베케트가 자신이 고도가 무엇인지 알았다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카프카도 자신이 소설 속에서 그려내려는 '불안'이 종교적 의미였다면, 분명히 밝혔을 것이다. 그러니 종교적인 관점이 작품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이 소설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서 해석하기는 어렵다. 덧붙여 그의 모든 작품들이 미완성인 것은 아마도 그가 '구원'의 장을 쓸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종교든 궁극적인 목표는 구원이니까. 어쩌면 미완성으로 둠으로써 '구원'이 없다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전하려고 했거나.
덧붙이는 말: 뒤에 붙은 해설이 뛰어나다. 새로운 번역은 이런 맛에 읽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