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또 만나자 과학은 내친구 13
히로노 다카코 그림, 사토우치 아이 글, 고광미 옮김 / 한림출판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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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화가 놀라운 점은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다. 아니, 이야기가 없는 것이 어떻게 동화가 되냐고 반문하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이야기가 전혀 없음에도, 재미있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동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는 지나치게 일상적이다. 기승전결이나 클라이막스, 반전 따위는 없다. 왜냐하면 이 동화가 전해주는 이야기라는 게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비오는 날 보고 듣고 느낀 것들에 대한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마치 비오는 날에 쓴 그림일기 처럼 이 동화의 내용은 조용하고 일상적이며, 좀 심하게 얘기하면 시시하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이 동화가 담고 있는 풍경과 소리가 계속해서 머리 속에 남는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이야기를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것은 디테일을 묘사하는 작가들의 힘이 아닐까 싶다. 비록 이 동화가 담고 있는 것이 일본의 어느 시골집 풍경이긴 하지만 비오는 날 볼 수 있는 동물과 식물 그리고 사물의 모습을 비오는 날 밖에 나온 꼬마의 시선에서 보여준 작가의 섬세함이 감동적이다.  

비오는 날을 이렇게 감동적으로 그렸다면 다른 평범한 날들도 재미있게 그려낼 수 있지 않을까? 이 작가들의 다른 날들에 동화가 더 있는지 찾아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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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오리 구지구지
천즈위엔 글 그림, 박지민 옮김 / 예림당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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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화를 읽으면서 난 전혀 관련없는 몇가지 사실들을 떠올렸다. 하나는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라는 사실을 배웠던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 시절이고 둘은 야구 칼럼니스트 박동희가 코나미 컵 중계도중 얘기한 것인데, 세계사적으로 단일민족을 주장했던 국가는 셋뿐이라는 것이다. 나치, 이스라엘, 그리고 한국. 덧붙여 수도에 외국인이 주인인 식당이 가장 적은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라고 하였다. 셋은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박찬욱이 얘기했던, 정확히 옮기기는 어렵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해서 꿈조차 꿀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 읽었을 때 이 동화의 결말이 무책임하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결국 구지구지는 자신의 본질이 악어임을 알게 될 거고, 그러니까 오리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고, 오리로서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근데, 다시 한 번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차피 성인이 되면 오리나 악어나 엄마 곁을 떠나기는 마찬가지고, 또 꼭 순수(?) 오리만으로 그들과 꼭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리너구리, 오리염소, 악어오리와 같은 오리민족(?) 이외의 민족과도 얼마든지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 속에서는 없지만, 현실 속에서 없다고 꿈꿀 수 조차 없는 것은 아니잖아?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라는 사실도 인권침해의 요소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댄다. 세계인권위원회에선가 어딘가에서. 그래서 나도 생각을 바꿨다. 구지구지도 평생 악어오리로서 행복하게, 그리고 다른 오리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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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이 꿴 호랑이 옛이야기 그림책 2
권문희 글.그림 / 사계절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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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를 읽으면서 이것저것 따지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게으름 뱅이다. 주인공의 게으름을 세세하게 묘사해놓은 그림이 너무 적나라하다.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경우에, 그러니까 주인공의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경우, 주인공의 성격을 고치면서 그것에 대한 보답으로 주인공에게 상이 주어지는 식으로 동화가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게 아니라면 주인공의 성격을 고치지 못해서 그에 따른 벌 또는 불이익을 받든가. 근데 이 동화는 게으름을 고치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고 곧바로 주인공이 자신의 게으름 속에 숨겨져 있는 비범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 비범함이란 바로 이 동화의 제목이기도 한 '호랑이를 줄줄이 꿰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 본건데 이 동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부지런하라도 아닌 것 같고 게으르게 살자는 것은 더더욱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렇게 되면 부모들에게 얘기하는 셈이 되는데, 아이들의 능력은 감춰져 있다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발견하냐구? 글쎄, 이야기 속의 엄마는 일을 시켰다.  

그럼,아이들에게 뭔가를 끊임없이 시켜보라는 것인가? 어쨌거나 이 동화의 메시지는 아이보다는 어른들에게 더 교훈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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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리야, 목욕은 이제 그만! 비룡소의 그림동화 126
존 버닝햄 글 그림, 최리을 옮김 / 비룡소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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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몇 안 되는 그림동화 작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특징을 정리해본다면, 에릭 칼은 부드러운 면과 면에 유화로 채색된 듯한 두터운 색감이 인상적이고, 레오리오니는 경계없이 수채화같은 가벼운 색감과 투명함이 특징적이고, 앤서니 브라운은 우울한 색조와 반듯한 선이 특징적이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을 볼때면 늘 반듯한 도시의 빌딩들이 생각난다). 그외에 다른 일러스트레이터는? 뒤져 보면 더 있을 것 같은데, 막상 더 생각나는 작가가 없다.

그리고 몇 안되는 작가중 한 명인 존 버닝햄은, 작년엔가 이 작가의 전시전을 서울 어딘가에서 했던 것 같다, 펜으로 그린듯한 날카로운 선과 수채화톤의 가벼운 색감이 특징적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작가의 그림이 그닥 좋아보이지 않는다. 그림이 너무 차갑고 날카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왠지 깍쟁이 같은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 책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글자가 얼마 없기 때문에 '읽었다'는 표현보다는 '봤다'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근데 아이들에게도 이 책이 재미있을까?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왼쪽 면과 오른쪽 면(독자의 입장에서)의 내용을 연결하는 것이 어른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저자 설명과 같이 써있는 작품 해설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근데 놀라운 것은 큰애는 양쪽의 이야기가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는 사실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면을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것은 순전히 어른들의 습관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두면이 반드시 관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러니까 둘이 연결되지 않아도 전혀 이상해하지 않는다. 이건 마치 엄마의 잔소리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모험하는 셜리의 경우와 똑같다.  

실제로 아이들에게 이 동화를 읽어주면 이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우리집 애들만 그런 지도 모르지만, 큰애는 왼쪽 면에서 셜리 엄마가 잔소리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른쪽 면에서 펼쳐지는 셜리의 상상의 세계에만 관심이 있다. 이건 무슨 그림인 것 같고 이건 뭘하는 장면인 것 같고...... 이러쿵 저러쿵 얘기한다. 아이들에게 내가 정답, 그런게 있을까?,을 얘기하지 못하는 것은 오른쪽 면에는 글자 하나 없이 완전히 그림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큰애가 생각한 것이 맞는지 어쩌는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상상'한다는 것이 중요한 거니까.

 이건 마치 실제 집에서 일어나는 어른들과 아이들의 생활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와 아빠는 아이들에게 일상적으로 잔소리를 하고 아이는 고개만 끄덕이면서 딴 생각을 하고 있는것. 그리고 똑같은 잘못을 또 저지르고 또 잔소리를 하고. 결국 이것이 이 책을 읽을 때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글이 써있는 왼쪽면을 읽지만 아이들은 오른쪽 면에 펼쳐진 상상의 세계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다. 

왼쪽 면과 오른쪽 면, 엄마와 셜리의 세계, 목욕탕과 목욕탕 밖의 세상, 일상과 환상, 글의 세계와 그림의 세계. 이 두가지 대립되는 세계가 사실은 일상속에 존재하는 어른들과 아이들의 세계라는 것, 이것이 양쪽 면을 완전히 나누어 이야기를 따로 전개시킨 작가의 진정한 의도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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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가 집을 나갔어요 소년한길 유년동화 1
호세 루이스 코르테스 지음, 아비 그림, 나송주 옮김 / 한길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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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화가 특이한 것은 내용뿐만이 아니다. 오히려 내용은 평범한 편이다. 왜냐하면 제목이 의미하는 것이 내용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식의 내용도 재미있기는 하다. 하지만 뭔가 좀 부족한 느낌이다. 반대로 한국의 전래동화나 며칠 전 읽었던 이상의 동화 <황소와 도깨비> 같은 동화들의 내용은 너무 형이상학적이다. 근데 이게 맘에 드는 것은 왜일까? 

결국 이 동화의 교훈이란 엄마 말을 잘들어야 한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에 비하면 귀신에게도 잘 해줘야 한다는 이상의 동화<황소와 도깨비> 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인 것이다. 우리가 귀신을 만날일이 거의 없으니까. 그럼에도 여전히 이 동화의 메시지가 조금 추상적이거나 비현실적인 것이 좋다. 바꿔 말하면 , 이 동화가 주는 메시지가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조금 아쉽다. 아이들이 이 동화를 읽어주면 좋아하는 것은 이 동화가 담고 있는 내용 '엉덩이가 나와 따로 놀 수 있다' 는 재밌는 발상이 아니라 그냥 '엉덩이'이라는 단어가 나와서인 것 같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방구, 똥 같은 말만 들으면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 처럼 말이다.

참, 이 동화의 그림은 조금 특이하다. 워낙 한국이나 영미권 그림들만 봐서 그런지 이 동화의 그림은 동화용 그림, 이런게 따로 있었던가?, 이라기 보다는 만화에 가깝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도 동화용이라기 보다는 만화같은 느낌이 강하다. 내용보다는 그림이 기억에 남는 동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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