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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리야, 목욕은 이제 그만!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126
존 버닝햄 글 그림, 최리을 옮김 / 비룡소 / 2004년 5월
평점 :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그림동화 작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특징을 정리해본다면, 에릭 칼은 부드러운 면과 면에 유화로 채색된 듯한 두터운 색감이 인상적이고, 레오리오니는 경계없이 수채화같은 가벼운 색감과 투명함이 특징적이고, 앤서니 브라운은 우울한 색조와 반듯한 선이 특징적이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을 볼때면 늘 반듯한 도시의 빌딩들이 생각난다). 그외에 다른 일러스트레이터는? 뒤져 보면 더 있을 것 같은데, 막상 더 생각나는 작가가 없다.
그리고 몇 안되는 작가중 한 명인 존 버닝햄은, 작년엔가 이 작가의 전시전을 서울 어딘가에서 했던 것 같다, 펜으로 그린듯한 날카로운 선과 수채화톤의 가벼운 색감이 특징적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작가의 그림이 그닥 좋아보이지 않는다. 그림이 너무 차갑고 날카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왠지 깍쟁이 같은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 책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글자가 얼마 없기 때문에 '읽었다'는 표현보다는 '봤다'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근데 아이들에게도 이 책이 재미있을까?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왼쪽 면과 오른쪽 면(독자의 입장에서)의 내용을 연결하는 것이 어른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저자 설명과 같이 써있는 작품 해설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근데 놀라운 것은 큰애는 양쪽의 이야기가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는 사실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면을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것은 순전히 어른들의 습관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두면이 반드시 관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러니까 둘이 연결되지 않아도 전혀 이상해하지 않는다. 이건 마치 엄마의 잔소리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세계를 모험하는 셜리의 경우와 똑같다.
실제로 아이들에게 이 동화를 읽어주면 이 사실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우리집 애들만 그런 지도 모르지만, 큰애는 왼쪽 면에서 셜리 엄마가 잔소리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오른쪽 면에서 펼쳐지는 셜리의 상상의 세계에만 관심이 있다. 이건 무슨 그림인 것 같고 이건 뭘하는 장면인 것 같고...... 이러쿵 저러쿵 얘기한다. 아이들에게 내가 정답, 그런게 있을까?,을 얘기하지 못하는 것은 오른쪽 면에는 글자 하나 없이 완전히 그림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큰애가 생각한 것이 맞는지 어쩌는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상상'한다는 것이 중요한 거니까.
이건 마치 실제 집에서 일어나는 어른들과 아이들의 생활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와 아빠는 아이들에게 일상적으로 잔소리를 하고 아이는 고개만 끄덕이면서 딴 생각을 하고 있는것. 그리고 똑같은 잘못을 또 저지르고 또 잔소리를 하고. 결국 이것이 이 책을 읽을 때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글이 써있는 왼쪽면을 읽지만 아이들은 오른쪽 면에 펼쳐진 상상의 세계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다.
왼쪽 면과 오른쪽 면, 엄마와 셜리의 세계, 목욕탕과 목욕탕 밖의 세상, 일상과 환상, 글의 세계와 그림의 세계. 이 두가지 대립되는 세계가 사실은 일상속에 존재하는 어른들과 아이들의 세계라는 것, 이것이 양쪽 면을 완전히 나누어 이야기를 따로 전개시킨 작가의 진정한 의도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