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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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은 노래한다>, <마사퀘스트등으로 널리 알려진 도리스 레싱명성만 익히 들은 작가의 작품들 중 한 권인 <다섯째 아이>. 언젠가는 꼭 읽어야할 목록에 포함된 작가였지만이러저러한 일들로 인해 미루고 미루다 드디어 읽게 됐다읽어 가면서 좀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다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자 많은 생각들이 쓰나미처럼 덮쳐왔다. 179페이지밖에 안 되는 심플한 가족의 얘기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주제는 넓고 깊었다


이 소설은 여러 가지 시각으로 읽을 수 있겠지만나는 데이비드의 아내이자 다섯째 아이 엄마인 해리엇의 선택이 과연 최선이었는지에 대해서 묻고 또 묻는 되새김질을 계속했다도대체 그녀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작품의 이야기를 풀어보면 이렇다아주 건전하고 정상적인 두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한다이들 부부는 문란한 혼전 성관계이혼혼외정사마약딩커 등과 같은 사안들을 거부하며 행복한 가정 만들기를 실천한다그 행복의 핵심이 바로 매우 많은 아이들을 가지기를 원하는 거데이비드와 헤리엇 부부는 지인들의 이상한(?) 시선 속에서도 굿굿이 자신들의 바람을 실천한다그리고 부부는 다섯째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지극히 화목한 가정생활을 누린다.

 

그리고 다섯째 아이 벤이 태어난다다운증후군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아이인지 능력이 모자라고 힘만 쌘 폭력적인 아이는 엄마 해리엇의 돌봄의 범위를 벗어나 버린다크리스마스 때마다 친척들이 모두 모여 북적북적한 때를 보내던 시절도 벤이 태어난 이후에는 점점 소원해져가고아이들은 벤 때문에 집에서 생활하는 걸 불편해 한다.

 

보다 못한 남편 데이비드는 친척들과 상의하여 벤을 어느 기관에 보내는 결정을 한다어느 날 벤은 검은 승용차에 실려 기관에 감금된다해리엇은 자신과 진지한 상의 없이 벤을 기관에 보내는 결정을 내린 것에 서운해 하지만벤 때문에 가족이 겪는 사태를 감안하여 그 결정을 감내하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로서 자식에 대한 본능적 애착에 벤을 보러 시설을 방문한다거기서 벤이 약물에 취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해리엇은 시설의 규정에 어긋나지만 엄마로서의 윤리적 정당성을 강조하며 벤을 집으로 데려오는 결정을 내려버린다.

 

데이비드 가족의 불행은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해리엇이 벤을 집으로 데려오자 나머지 네 아이들은 엄마가 없어져버렸다엄마가 오직 벤에게만 신경을 집중하기에 자기들은 소외받는 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벤의 위협적 행동과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진다할아버지 집으로외할머니 집으로그리고 기숙학교로 떠나고 집에서는 벤의 바로 윗 형인 폴만 남게 된다폴도 역시 벤 때문에 학교에서 늦게 귀가한다아버지 데이비드는 일을 더 만들어 집에 들어오는 시간을 줄여버리고집에서는 잠만 잔다.

 

이 부부의 바람들, 즉 (벤이 태어나기 전에) 일가친척들과 가족들이 큰 집에 모두 모여 웃고 떠들던 행복한 상황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그 큰 집에는 오직 벤과 헤리엇 둘 뿐이다


이 상황을 명확히 인지한 헤리엇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 벤을 돌볼 청소년 하나를 섭외한다이름은 존아이를 돌보아주는 보모를 구한 것인데헤리엇의 이 결정은 결국 벤을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결정적인 선택이 된다왜냐하면 존은 부랑아이자 학교문제아들의 리더였기 때문이다단지 벤이 존을 잘 따른다는그래서 엄마의 근심과 걱정을 덜어줄 수 있다는 알량한 근거가 벤을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빌미를 제공한다존의 무리는 점점 일탈 횟수를 늘려가다결국 범죄자의 길을 걷게 된다벤도 커가면서 이들을 따르게 될 거라는 암시는 책의 마지막 헤리엇의 자조 섞인 생각 속에 암시되어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단연 해리엇이다이야기의 구조는 데이비드의 아내이자 벤의 엄마인 헤리엇의 행동과 생각으로 일관된다그래서 헤리엇의 두 가지 결정이 더 도드라진다그 하나는 벤을 기관으로 보냈다가 다시 집으로 데려온 결정이고이로 인해 데이비드 가족은 모두 해체된다그리고 후자즉 헤리엇이 그 모든 것을 희생하고 선택한 벤그에 대한 양육의 책임과 한계를 절실히 느낀 해리엇은 벤을 부랑아 청소년 존에게 맡겨버린다이후 벤에 대한 헤리엇의 통제권은 완벽히 상실되고 벤은 청소년 무리에서 성장하게 된다.

 

해리엇은 왜 그런 결정을 내린걸까가족 모두의 행복을 위해 벤을 희생시켰으면 안됐을까자신이 엄마로서 윤리적 양심을 접었으면 안 됐을까아니아이에 대한 양육 책임이 발동하여 벤을 집으로 데려왔다면 왜 끝까지 벤을 가정에서 책임지지 못했을까왜 벤을 껄렁한 부랑아에게 맡겨 버리는 우를 범한 걸까이 책을 읽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의문부호들이었고급기야 해리엇의 결정에 화가 나기도 했다그래서 헤리엇이 행한 모든 순간의 결정들이 아쉽다결국 그녀의 결정으로 인해 가족은 해체되었고벤은 범죄자의 소굴에서 성장하게 되었으며자신은 혼자 집에 남아 벤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해리엇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사실 이 불행의 심연은 보다 근원적이다벤이 태어난 이후 시종일관 헤리엇을 괴롭힌 건 윤리적 상황의 딜레마였다아이를 없애버리는 것에 대한 윤리적 두려움과 벤을 자식으로 양육하고자 했을 때의 어려움이 바로 그것이다이 두 가지의 근본 원인은 벤이 기형아(다운증후군)라는 사실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데 있다엄마가 볼 때 벤은 정상의 범주에서 한 참 벗어난 아이지만의사와 정신분석가 그리고 학교의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벤이 정상의 범주에 있다는 걸 강조한다바꿔 말하면 엄마인 해리엇이 이상하다는 결론이다헤리엇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기에 히스테리 증상마저 일으킨다참다못한 헤리엇은 아이를 부랑아에게 돌봄을 맡겨버린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기형아로 태어난 벤을 엄마가 인정하고 싶지 않아 그 마음이 아이에게 투사되어 고착된 게 아닌가 하는 정황 말이다학교 선생님과 의사가 해리엇의 감정적인 토로를 듣고 그 정도아이라면 정상의 범주라고 판단한 것은 매우 중요한 지표라고도 볼 수 있다그만큼 해리엇이 벤을 어떤 편견과 시선으로 양육하고 있는지 암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벤은 학교에서 정상적으로 어울리고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벤이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정황은 책 어디에도 없었다결국 엄마의 벤에 대한 편견이 아이를 더욱 나쁜 방향으로 내모는 결과가 되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헤리엇의 딜레마를 이해한다헤리엇이 벤을 양육함에 있어 많은 노력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게 아니다하지만 너무 쉽게 포기한 것도 사실이다어떻게 벤이 존의 무리를 잘 따른다고(그 아이들 배경을 알면서), 돈까지 줘가며 벤을 그 아이들 손에 맡겨버렸을까개인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지지해 줄 수 없는 결정이다아이는 엄마의 손을 떠나면 정상적으로 성장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명확하다이를 뒷받침하는 심리학과 교육학 보고서는 넘치고도 남는다


여성으로 태어나면 누구나 헤리엇과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소설 속 데이비드가 말할 것처럼 우연하게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그게 엄마의 잘못은 아니며 더욱이 가족의 잘못도 아니다엄마가 그 아이를 책임지겠다고 하면 끝까지 책임지는 게 맞다희생은 불가피하다하지만 개인이 행복하기 위해 한 결혼 이후의 결과들은 한 여자로서의 행복을 전혀 담보하지 못한다이 딜레마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이런 생각을 멈출 수 없게 하는 글의 힘이 새삼 놀라울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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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10-01 1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그렇지 않았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죠.ㅠ
수용시설에 관한 이야기 하다 왔는데... 여기서 이 글을 읽네요^^
읽어봐야겠어요

yamoo 2022-10-05 07:23   좋아요 1 | URL
최선이라고 했던 것들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는 순간들이 있지요. 인생에는 그런 순간들이 많은 거 같습니다. 결과론적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쓰린 상처를 남깁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삶이라는 생각을 던져줍니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읽을 가치가 충분한 듯합니다.^^

프레이야 2022-10-01 16: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전 읽은 레싱의 작품. 해리엇의 고뇌와 열린 결말이 많은 생각이 들게 해요. 톨스토이의 유명한 문장을 빌리지 않아도 한 가정의 불행은 각양각색, 그 그림자가 짙어요. 어머니에게 그 책임을 다 물어선 안 되지만 장애인 아이를 키워야 하는 예상치 못한 경우에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심적 육체적 노동이 가중되는 걸 보았어요. 책임을 어머니에게 더 많이 묻고요. 양육방식이란 걸 어머니쪽에 더 추궁합니다. 잘못이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지만. 불량한 아이인 줄 알면서도 그 친구가 아니면 내 아이에게 친구 될 사람이 없으니 그렇게라도 사람을 만나게 보내주더군요. 오래는 못 가고 아이는 또 상처를 받더군요. 행복한 가정이라는 모래성.

yamoo 2022-10-05 07:29   좋아요 1 | URL
맞아요. 행복한 가정이란 모래성과 같다는 걸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어요. 우리는 왜 그렇게 행복한 가정에 목을 매는지 모르겠습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나 치매가 있는 노부모가 있는 가정에 과연 이 책에서 말하는 행복한 가정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제가 아는 한 가족은 자녀가 장성했는데, 급성 신부전증이 와서 투석을 하지 않으면 사망한다는 진단이 내려져 하루 수십만원의 병원비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습니다. 이 가정은 전에는 행복한 가정의 표준이었지만 지금은 가족이 파탄이 났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의도하지 않는 사건으로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래성과 같습니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공감을 안할 수 없는 읽을 가치가 충분한 작품인 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stella.K 2022-10-01 1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얼마만의 리뷰입니까? ㅋ
근데 웬지 야무님 글을 읽는데 전 좀 화가 나는데요?
해리엇의 마음은 일견 이해는 가는데 적어도 보모 선택만 잘 했어도
본인도 한시름 놓고 가족이 다시 뭉칠 수도 있었을 텐데
누가 봐도 존은 문제아구만 그런 아이한테 벤을 맡기다니.
정확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화나고 안타깝고 그러네요.
저는 왠지 이 책 안 읽을 것 같아요. ㅋ

yamoo 2022-10-05 07:34   좋아요 1 | URL
아마도 1년? 그 정도로 리뷰를 쓴지 모래됐네요. 이 작품은 재미면에서는 그리 높은 평가를 내릴 수 없는 거 같아요. 일상의 가족사는 지루하죠. 하지만 작가는 그 속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생의 단면들을 잘라 생생히 보여줍니다. 이런 작품을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지요. 더군다나 인물의 선택에 대해서 그 성격에 대해서 독자로 하여금 화가나게 한다면 그만큼 작가의 역량이 뛰어나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스텔라 님에게도 일독을 추천드립니다!ㅎ

희선 2022-10-03 02: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기 아이한테 장애가 있으면 바로 받아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걸 받아들인 다음에 아이와 제대로 마주해야 할 텐데... 자기 일이 아니면 모르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네요 엄마 혼자 아이를 돌보려 했나 봅니다 아버지나 다른 아이하고도 함께 생각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이들이 흩어졌다고 했는데, 벤이 있어서 식구가 하나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싶기도 하네요 그렇게 되지 못해서 안타깝군요


희선

yamoo 2022-10-05 07:37   좋아요 0 | URL
그쵸. 자신의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바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요. 참으로 힘든 상황입니다. 그래도 그걸 잘 버티고 훌륭히 키워낸 부모님들이 우리나라에는 많은 거 같아요. 그런 걸 보면, 헤리엇은 좀 무책임한 면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좀더 들여다보면 그만큼 우리 윗세대의 부모님들이 그만큼 희생을 아주 많이 한 것이겠지요. 물론 안타까운 상황인것만은 틀림 없겠습니다~~

scott 2022-11-09 15: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무님 이달상 추카 합니다
지금쯤 다섯번째 작품 준비중이신가봐여 !^^

yamoo 2022-11-21 10: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요즘은 이달상 받으면 추카 댓글을 받나봅니다.
적응이 안되는군요..ㅎㅎ
스코트 님두 축하드립니다. 매달 당선되시는 듯합니다!ㅎㅎ

그런 건 아닙니다^^;;

바람돌이 2022-11-09 2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무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다섯째 아이는 제가 참 좋아하는 책인데 이 리뷰를 왜 놓쳣나 싶네요. 어떤 존재를 배제한다는 것의 이해할 수 없음을 굉장히 설득력있게 보여주는 책이었어요. 야무님 리뷰를 보니 읽을 때 느꼈던 것들이 다시 떠오르네요. ^^

yamoo 2022-11-21 10:0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아하는 책이시군요~
근데 재미는 그리 없더군요. 생각할 거리만 많이 남겨주는 작품인듯해요. 뭐 그래서 문학성이 장르소설보다 높은 거겠지요. 충분히 일독할만한 작품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바람돌이 님두 거의 매달 이달상 당첨되시는 거 같은데, 저두 역시 축하의 인사들 전해드립니다!ㅎㅎ

하나의책장 2022-11-09 2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yamoo 2022-11-21 10:07   좋아요 0 | URL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