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바빠서 글 안 쓰려고 했는데, 이 기사를 보고 알라딘에 접속했다.

(그런데, 오늘 방문자수 185? 왜..? 무슨 일이죠?)


https://www.yna.co.kr/view/AKR20230810062300004?input=1195m

"접수 높은 여성 지원자 떨어뜨리고 남성 채용... 신한카드 벌금" (연합뉴스)


내용인즉슨, 신한카드 신입사원 공채에서 점수가 더 높은 여성 지원자를 떨어뜨리고 남성지원자를 합격시켰다는 것이다. 신한카드는 남녀고용평등법위반죄로 기소되었다. 

신한카드는 "전산시스템 개발이나 외부업체 영업, 야간.휴일 근무가 많은 업무가 남성에 적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남녀 고정관념에 근거한 것으로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018년 공채 때 사건인가 본데 왜 이제야 기소가 되어 판결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이 기사를 보니 <백래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 낙태 부분을 읽다가 궁금해져 <백래시> 관련 부분을 찾아보았는데, 마지막 장에서 낙태-재생산권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여 본의 아니게 끝부분부터 먼저 읽었네. 

'태아의 생명권'을 내세워 여성들을 '거처'에 불과한 존재로 취급하는 낙태반대론자들의 반격은 대단하다. 미국 시민의 다수가 낙태합법화(로 대 웨이드 사건에 의한)를 지지함에도 불구하고, 낙태반대진영에서 펼친 무수한 공격들(신체적 공격, 협박 포함) 때문에 낙태 시술을 해줄 수 있는 병원들이 점점 줄어드는 과정, 이에 호응한 기업이나 정치인들이 행한 낙태를 어렵게 하는 각종 법안과 조치들. 낙태반대를 위한 이러한 격렬한 행동은 주도자들이 '시간이 많은' 젊은 남자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디어는 낙태를 둘러싼 투쟁을 도덕적이고 생물학적인 논쟁 (생명은 언제 시작되는가?)으로 규정하곤 했다. 낙태에 불편해 하는 많은 이들에게 분명 이는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테리와 그 추종자들이 여성의 출산의 자유를 둘러싼 전투에서 보여 준 이상할 정도로 강렬한 반감은 철학이나 과학보다는 울화를 자양분 삼아 활활 타 올랐다. 이런 남성들은 ‘태어나지 못한 아기들을 위해 울음‘을 터뜨린 것일 수도 있었지만, 인생에서 심각한 경제적 • 사회적 위치 변화를 겪으며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런 변화를 독립적인 직장 여성들이 등장한 탓으로 돌리곤 했다. 직장에서는 경제적 힘을, 가정에서는 사적인 권위를 잃는 동안 이들은 여성들이 직장에서 기반을 다져 가고, 가정에서는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고, 심지어 침실에서 주도권을 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직장 여성이 점점 늘어 가는 데 대한 개탄과, 여성들이 행사하기 시작한 성적인 자유에 대한 걱정이 뒤섞이면서 이들은 청교도적인 분노의 수식어를 개발하여 적들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 591쪽



엔젤라 카더의 사례는 태아의 권리와 여성의 권리 사이에 서열이 매겨짐으로써 여성이 어디까지 비인간적으로 취급당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엔젤라 카더는 어릴 적 종양을 앓다가 이겨낸 사람인데, 임신 후 암이 발병했다. 평생 그녀를 지켜봐 온 종양학자는 그녀가 암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지만, 의사들은 강제로 그녀에게 약을 투여하고 28주? 정도 된 아기를 수술로 꺼냈으나 아기는 사망했고, 얼마 후 엔젤라 카더도 사망했다. 이 과정에서 의사들은 판사에게 수술명령을 요청했고 판사는 허가했다) 


그런데 더 황당한 건, '만들어지지도 않은 태아'의 보호를 운운하며 벌인 기업들의 행태다. 이건 '태아'를 앞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더 적나라하고 찌질하고 더럽고 아니꼽다. 

<백래시>에서 보여주는 아메리칸사이안아미드라는 회사의 사례는 대단히 당황스럽다. 이 회사의 작은 시골마을 지점에서는 '여성을 고용하라'는 지시를 받고 안료 부문에 여성을 고용한다. 그런데 얼마 뒤, 해당 안료가 여성의 생식기능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여성 직원들에게 "불임을 하든지, 다른 부서로 옮기든지(그만두든지. 사실 이게 제일 좋지!)" 선택하라고 한다. 여성들은 항의하지만 회사는 꿈쩍도 안 하고, 제각기 사정으로 반드시 일자리가 필요한 5명의 여성들은 불임수술을 받는다. 그래서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다 노년을 맞았느냐고? 그럴 리 없다. 얼마 뒤 회사는 그 부서 자체를 없애 버린다. 이 여성들은 아기도 낳을 수 없고 일자리에서도 쫓겨난 신세. 재판을 하지만, 1심에서 판사들은 "여성들의 선택이었다"고 기각해버린다. 결국 몇 년 뒤에 연방대법원이 여성들 손을 들어주긴 하지만, 이미 그녀들은 고통을 겪을 만큼 겪었다. 



1980년대에는 미국의 재계도, 미국 정부도 안전한 출산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사실 여성의 생식력을 지키겠다는 기업의 의지는 신기하게도 고소득 ‘남성‘ 작업장 밖에서 일하는 여성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저임금 의류 공장, 병원, 치과, 드라이클리닝을 하는 세탁소, 미용실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많은 화학물질과 방사능, 그리고 이미 출산에 위험하다고 입증된 상황에 노출되었지만, 그 누구도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 636쪽

아메리칸사이안아미드가 노동자들에게 제시한 선택‘은 반격이 여성들에게 관대하게 제시했던 다른 많은 선택지들처럼 명료하고 진취적인 발전으로 포장되었다. 즉, 그것은 여성을 위한 진보를 상징했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을 위해 선택의 문을 열어젖혔고, 이제는 기업과 법원, 나머지 사회는 자신들이 그와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메리칸사이안아미드의 사례는 반격에 휘말린 여성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를 대단히 극단적으로, 공포스럽게 보여주면서 ‘선택‘이라는 반격의 언어가 실제로는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사이안아미드 여성들에게 제시된 선택지는 솔직하지도, 유용하지도, 현명하지도 않았다. 사실 이들이 제시한 대안은 궤변이었고 해로웠으며 퇴행적이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여성에게 불리하게 조작되어 있었다.
이 여성들에게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형편 때문에, 믿을 수 없는 남자들 때문에 반드시 해야만 했고 자립과 자존감의 기본적인 원천이기도 했다. 이들은 일을 해야만 했고 또 원했다. 하지만 이들이 상대해야 하는 고용주들도, 옆에서 함께 일해야 하는 남성 노동자들도, 혹은 같은 침대를 쓰는 남성들마저도, 그 누구도 이들이 일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일을 계속하면 사무실에서 모욕을 당했고, 샤워실에서 공격을 당했고, 집에서 구타를 당했다. 하지만 사회적 신호에 복종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면 굶어 죽었을 것이다. - 654,655쪽



신한카드 기사를 보니 이렇게 여성들이 좋은 지위를 얻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수를 쓴 위 <백래시> 내용이 떠올랐던 것이다.

낙태 문제를 읽으니 절반 정도 읽고 완독을 못한 <배틀 그라운드>를 다시 열어보게 된다. 



2012년 헌법재판소는 태아의 생명권이 모체의 선택권보다 중하다는 논리로 낙태죄 합헌을 선언했고, 2018년 지금 다시 그 위헌 여부를 다루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양 쪽 주체의 갈등으로 보이지만, 태아의 생명권을 옹호하고 있는 쪽은 태아가 아니라 국가이다. 이 논의는 국가가 과연 임신한 여성과 동등한 위치에서 이해관계를 경쟁하는 주체인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생명권은 근대 인권 사상의 출발이자 핵심으로 매우 중요한 권리이고, 그 누구도 생명권의 예외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근대 인권 사상의 핵심에서 인권 보호의 책임이 일차적으로 국가에 있다는 점은 모든 개인에게 국가로부터 생명권을 박탈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국가는 모든 생명을 보호할 책임을 수행할 뿐이며, 그 책임은 개인의 권리와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다. 그런데 낙태죄는 국가가 여성을 상대로 생명권을 주장하게 하고, 마치 여성의 임신중단이 국가의 권리와 충돌하는 것으로 이해되게 하며, 공권력을 동원해 여성의 임신중단을 범죄로 구성하는 것을 용인한다. 국가의 인권 보호 책임과 개인의 권리에 관한 잘못된 설정이 ‘생명권 대 선택권‘ 구도의 핵심인 것이다. 우리가 낙태죄를 둘러싸고 심사해야 하는 것은 ‘국가가 모든 생명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가',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불법화로 인해 침해되는 생명권이 없는가'이고, ‘태아를 비롯한 모든 개인의 실질적인 생명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져야 할 책임과 의무는 무엇인가‘를 다시 질문하는 것이다.  - 269,271쪽 '나영정; 낙태죄 폐지 투쟁의 의미를 갱신하기'



이 책이 나온 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이 있었지만 아직도 입법이 안 되고 있다. 

'로 대 웨이드' 사건의 장본인이 결국 제때 낙태시술을 받지 못하고 아이를 낳았고, 몇년 뒤 낙태반대론자로 변신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지만, 이 재생산권-섹슈얼리티 관련 논쟁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보여준다. 

부디 우리 국회가 여성 인권 측면에서 한발 나아간 입법을 조속히 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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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8-10 19: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일 때문에 불임수술을 받아야 했다니...요즘 병원에서의 ‘태움‘이 떠오릅니다. 회사에서 압박해 놓고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의 몫으로 돌리는 것. 갈수록 사회적인 현상이 되어가고 있네요! 아우...

독서괭 2023-08-10 20:51   좋아요 3 | URL
너무 황당하죠? ㅜㅠ 선택이었다는 말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선택권 주는 것처럼 빠져나갈 구멍 만들어 놓고..

은오 2023-08-11 0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도 윤리시간에 낙태 옹호 찬반 파트에서 의아해했던 기억이 나요. 아니 이게 찬성하고 반대할 문젠가? 내 몸에 있는 아직 고통 못느끼는 덩어리 내가 지우겠다는데 뭔상관이야.. 낳으면 지가 키워줄거냐고.. 아 너무 당연한 것들을 쟁취하려고 싸워야된다는게 너무빡친다 새삼

독서괭 2023-08-11 14:41   좋아요 1 | URL
아닛, 역시 은오님 똑똑해요. 저는 학창시절에 태아 낙태하는 영상 뭐 그런거 보여주는 거 보면서 불쌍하다, 낙태 나쁜 거구나 그랬던 것 같은데;;
진짜 태아를 소중히 여겨서 그런 거면 그나마 좋겠는데, 전혀 그게 아니라 생각되어 더 열받아요. 그냥 무조건 낙태 안된다 하고 태어난 아기는 어떻게 키우든 나몰라라. 나원참.

바람돌이 2023-08-11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벌금 500이 뭡니까? 저러니 불법인거 알아도 저지르고 보는거죠.

독서괭 2023-08-11 14:46   좋아요 1 | URL
바람돌이님, 제가 찾아보니 이 법위반 최고형이 벌금 500만 원이네요;; 판사는 제일 세게 한 거고, 법 자체가 약한 게 문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