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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 진 시리즈 2권이다.
1권에서 라라 진은 피터와 야외온탕에서 로맨틱한 키스를 나눈다. 그러나 스키캠프에서 돌아오는 길, "라라진과 피터가 야외온탕에서 섹스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이로 인해 라라진과 피터는 크게 싸우게 된다.
2권은 새해를 맞이하며 시작된다. 피터와 화해하고 싶은 라라진은 편지를 써서 언제 보낼까 궁리하며 하루를 보내고, 결국 피터와 만나 화해한다. 그러나 야외온탕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으니, 누군가 야외온탕 키스장면을 찍었고 그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문제는 그들은 키스만 했을 뿐인데 마치 섹스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였다. 이 동영상 문제로 인해 라라진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이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은 '둘이서 벌이는 일'에 대해 여성에게만 처벌이 가해지는 부당함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 소설의 최고 장점은, 라라 진이 이 문제를 헤쳐나가는 데 피터 못지 않게 자매들과 여자친구, 다른 여성(요양원 할머니들)이 좋은 조언자와 지지자가 되어준다는 점이다.
언니가 말했다. "사람들은 여자가 섹스하면 잡아먹을 듯 굴면서 남자가 섹스하면 격려해주잖아. 댓글만 봐도 그래. 다들 라라 진을 걸레니 뭐니 하면서 피터한텐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 피터도 동영상에 같이 찍혔는데 말이야. 정말 웃기는 이중잣대라니까." - 79/515쪽(전자책 기준)
요런 언니 마고의 예리한 지적.
그리고 아래의 이어지는 둘의 대화는 너무 귀엽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래, 감당할 수 있어. 내 말은, 뜨거운 섹스 좀 하면 어때. 안 그래? 그건 인생의 한 부분이잖아. 안 그래? (...)"
언니는 깊이 감명받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빨리 슬픔의 다섯 단계를 통과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회복력이야."
"고마워." 나는 약간 뿌듯해졌다. - 87/515쪽
로맨스 비중 못지 않은 자매애의 비중. 이 시리즈를 좋아하는 내 첫번째 이유.
피터와의 이별은 캐서린 송 커비가 열 살이 되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419/515쪽
요양원 할머니의 현명한 조언.
-삶이 성을 차별하잖니.
할머니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라라진, 명심해라. 관계를 어디까지 끌고 갈지는 여자가 결정하는 거야. 남자는 생각할 때 머리 대신 다른 걸 쓰거든. 네가 냉정을 유지하면서 너 자신을 보호해야 해."
"잘 모르겠어요, 할머니. 그건 좀 성차별적이지 않아요?"
"삶이 성을 차별하잖니. 임신하면 인생이 바뀌는 건 너라고. 남자한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사람들이 뒷말을 할 때도 너에 대해서만 뭐라고 할 거고. 그 <틴 맘>이란 프로그램 안 봤니? 남자들은 하나같이 쓸모가 없어. 전부 쓰레기야!" - 201/515쪽
라라 진과 피터의 험난한 연애는 동영상 문제에 피터의 전여친 제너비브가 얽히면서 이별의 위기까지 간다. 그 와중에 라라 진이 '과거 좋아했던 남자들' 중 한 명인 존 매클래런이 다가온다. 존 매클래런.. 난 솔직히 이쪽이 더 마음에 들었는데. 피터도 괜찮은 녀석이긴 하지만, 내 옛 절친과 오랫동안 사귀고 전교생이 그 애와 피터가 깊은 관계라는 걸 아는 상황이라니. 게다가 피터랑 전 여자친구는 '친구'라면서 계속 고민상담인지 뭔지를 한다고 만나고 있다니! 정말 싫다. 피터가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여친이기 전에 친구인 사람을 저버리는 게 인간적으로 좋은 건 아니지만, 피터를 비난할 수 없는 것과 별개로 나는 그 상황을 용납하지 못할 것 같다. 순결을 유지하고 있는 존 매클래런 쪽이 맘도 편하고 좋지 않겠니..?(심지어 외모는 '젊은 시절 로버트 레드포드'라는데..) 온갖 로맨틱한 장면도 존과 펼쳐지는데 말이다.
그래도 어쨌든 피터도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 이상적인 10대 남자애다. 예를 들어 이런 장면.
키스하던 중 피터가 갑자기 물었다. "잠깐, 그럼 너랑 나는 절대 안 하는 거야? 영원히?"
"절대 안 한다곤 안 했어. 지금은 안 한다는 얘기지. 내가 완전히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말이야. 알았어?"
피터가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 그럼 이 버스를 운전하는 사람은 너구나. 하긴 처음 부터 그랬어. 나는 부지런히 따라갈 뿐이고." - 260,261/515쪽
라라 진처럼 이렇게 확실하게 섹스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아이를 키워야겠다고. 그리고 이걸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상대를 만나라고 말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라라 진은 피터와 진지하게 연애를 시작하면서 '관계의 지속', 그리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힘을 갖는 관계라는 게 어떤 것인지 깨달아 간다.
관계를 지속해나가는 데 그리 큰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건 약간의 관심, 작은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다. 그리고 피터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힘과 그 상처를 낫게 해줄 수 있는 힘이 내게 어느 정도 있다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고 이상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불안한 건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 297/515쪽
피터도, 존도 모두 라라 진을 좋아하고 라라 진 역시 둘 모두를 좋아한다. 하지만 사랑은 공평하지 않은 것, 어느 한쪽에 무게가 쏠릴 수밖에 없다. 선택을 해야만 한다.
남편은 나보다 일하는 시간이 길고 자유롭게 조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나에 비해 현저히 적다. 그렇다면 온전히 아이들과 보낼 수 있는 일요일만큼은 아이들과 더 열심히 함께해 주었으면 싶다. 아이들도 평소에 많이 놀지 못한 만큼 일요일에는 아빠와 충분히 놀면 좋겠다. - 이건 내 생각이고,
토요일에도 하루종일 같이 있던 나에게, 아이들은 일요일에도 여전히 매달린다. 목욕도 엄마가, 간식 주는 것도 엄마가, 똥 치우는 것도 엄마가, 재우는 것도 엄마가. 내가 한명만 데리고 병원 등을 가야할 일이 생기니, 서로 "누나는 아빠 좋아하잖아" "네가 아빠를 더 좋아하잖아" 하며 아빠를 떠넘기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듣고 있는 아빠 생각도 해야지 얘들아...
참으로 사랑은 공평하지 않은 것이다. 엄마랑 평소에 더 많이 놀았다고 남은 시간은 아빠랑 놀아야지, 하는 생각은 사랑에 걸맞지 않는다. 사랑에 논리와 계산은 통하지 않는다. 논리와 계산이 통하지 않는 그 사랑이 정말로 고맙지만, 사양하고 싶을 때도 가끔은 있다... 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