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30에 뒤척이는 둘째 때문에 깼다. 다행히 둘째 녀석 다시 잠이 들고, 나는 선택지 3개 중 고민에 빠졌다.
1. 다시 잔다.
2. 운동한다.
3. 책을 읽는다.
달리기는 격일로 하므로 오늘은 하는 날이 아닌데, 어쩔까.. 하다가 3번을 선택. <고독의 우물>을 폈다. 이 두꺼운 장편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긴 이야기의 흐름과 세밀한 감정묘사를 좋아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이 정도의 장편은 근래에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것 같은데, 잘 팔리지 않아서일까. 고전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더 고전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걸까. 적어도 내가 아는 선에서 최근 문학에서는 보기 힘든,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작은따옴표('')속에 넣어 보여주는 기법을 나는 좋아한다. '오, 신이시여!' 그녀는 생각했다. '내일이 되면 이런 기분은 잊히겠지. 하지만...' 뭐 이런 식으로 이어지는 내면의 속삭임 말이다.
<고독의 우물>은 주인공 스티븐의 일생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아이는 생식기는 여성이지만 남성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남성적 젠더표현을 하는, 트랜스남성(FTM이라고도 한다)으로 보인다. 스티븐의 아버지 필립경은 학식이 깊고 사려깊은 귀족 남성인데, 보수적인 영국 신사답지 않게, 아이의 내면을 알아보고 신중하게 지켜보면서도 기존의 틀에 가두려고 억압하지 않는다. 이 아버지, 진짜 멋지다... 스티븐은 아버지를 지극히 사랑하고, 아버지를 쏙 빼닮은 모습으로 자라면서 운동과 책을 동시에 사랑하는(!) 멋있는 사람으로 자라난다. 하지만 스티븐의 어머니 애너를 포함한 다른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스티븐은 괴상하게 보일 뿐이다. 사춘기에 들어 스티븐은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과잉 의식하게 되면서 괴로움을 겪게 된다.
스티븐이 일곱살일 무렵, 이웃 귀족의 집에 방문했다. 고작 일곱살 아이에게 많이 먹는다고 조롱을 던지는 그집 부인, 케이크를 먹는 내내 스티븐을 지켜보며 비웃을 거리를 찾는 남자아이 로저와 자신은 많이 먹으면 소화불량에 걸린다며 내숭을 떠는 그 동생의 모습을 보며 경악스러웠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건방지게 구는 로저에게 맞서는 위풍당당한 스티븐이, "난 여자랑은 싸우지 않아."라며 나가버리는 로저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장면은 정말 슬펐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육체적, 정신적 코르셋은 자신이 여성이라고 느끼는 여성들에게도 가혹했지만 자신이 남성이라고 느끼는 여성에게는 더욱 가혹했을 것이다. 작가는 어린시절부터 겪게 되는 이 부조리함을 촘촘하게 펼쳐보인다.
그래도 스티븐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인 아버지 필립경이 있는데.. 이 책의 제목만 봐도 해피엔딩은 아닐 것이 예상된다. 스티븐에게 엄청난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강력한 예감.. 으으 불안불안 마음이 조이는 느낌으로 읽고 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여성의 종속에 관한 이야기를 '듣똑라'에서 들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데뷔했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는데, 당시 브리트니와 크리스티나아길레라가 그야말로 핫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둘 모두 좋아했다. 그 시절 이후 브리트니 스피어스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삭발을 했다던가 마약을 했다던가 살이 쪘다던가 그런 것들이었다. 그런데 최근 왓챠에서 다큐멘터리 <프레이밍 브리트니>가 방송되었다고 한다. 브리트니는 정신적 문제가 있다고 보아 성인이면서도 피후견인이 되었는데 후견인으로 친아버지가 선정되었다. 그런데 브리트니가 콘서트도 활발하게 하면서 활동을 이어나가는 와중에도 후견이 계속되어 무려 13년째라고 하며, 브리트니는 그동안 아버지의 승인 없이는 무엇도 할 수 없는 속박을 받았다며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프리브리트니(freebritney) 운동도 확산되고 있다고.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여성연예인에 대한 이중잣대, 여성혐오, 선정적 언론 등에 의하여 브리트니가 얼마나 고통받아 왔는지 조명했다고 한다. 한때 최고의 디바였던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이렇게나 힘든 시절을 겪고 있었다니 마음이 아프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연예인에 대해 특히 가혹한 언론보도로 인해 희생된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선정적인 언론보도에 흥미로워하며 소비하는 독자들도 공범이 아닐지.
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40&aid=0000043900
성년후견제도는 우리나라에도 2011년에 도입되었다(그 전에는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제도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성년후견제도에 의해 부당한 권리침해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아차, '주제독서: LGBT+'를 이제 슬슬 마무리하려고 이론서 두권을 골라 주문했다.
<퀴어, 젠더, 트랜스>는 번역서이고 <퀴어 이론 산책하기>는 우리나라 연구자가 쓴 책이니 함께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얼마나 어려울지는 잘 모르겠는데... '재미있다'는 평이 있는 것만 믿어본다.
그러나 이것으로 주문을 마치려던 나에게 알라딘이 알림으로 이런 책을 알려주었다. <변이의 축제>라고 하여 난 그냥 진화론 책인 줄 알았지.. 책 소개를 읽어보니 동성애/트랜스젠더 관련 서적이 아닌가. 아이고 어쩐다.. 684쪽이나 되는데.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