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아구 책가방 속 그림책
박윤규 지음, 김종도 그림 / 계수나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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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른은 어떤 사람일까?

우리는 종종 ‘어른답게 행동해라’라는 말을 듣는다. 어른답다는 게 어떤 모습일까?
책 『마구아구』(박윤규 글, 김종도 그림)는 이 질문에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보다, 한 마리의 투박한 멧돼지를 통해 답을 건넨다. 물론 삶의 답이라는 게 한 가지는 아니겠지만 이런 답을 나는 응원한다.
월악산 덕주골에 사는 마구아구는 욕심 많고 사납기로 소문난 멧돼지다. 동굴 안 가득 채운 더덕, 칡, 도라지와 밤, 도토리들은 그의 자랑이고,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는 든든한 양식이지만 동시에 불안의 원천이다. 그는 양식을 잃지 않기 위해 동굴 앞에 온통 똥 울타리까지 쳐 놓으며 경계한다.
마구아구는 “누구든 맞닥뜨리면 뾰족한 송곳니로 들이받는” 동물이며, 동굴에 “여기는 무시무시한 마구아구의 집, 들어오면 바로 죽음”이라는 팻말까지 세워 놓는다. (p.4~5)
마구아구는 내것이 매우 중요하고 내 것을 건드릴 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 뻔함을 암시한다. 함께라는 공동체보다 악착같은 자신의 생존과 독점을 선택하는 삶이다.
이야기는 예상 밖으로 흘러간다.
양식을 지키려 애쓰던 마구아구가 결국 도둑을 잡겠다고 분노를 뿜어내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다른 동물들에게 먹이를 나눠 주며 발도장을 찍기 시작한다.
겉보기에는 도둑을 찾기 위한 꾀지만, 동물들은 그저 그 행동을 ‘나눔’으로 받아들인다.
“마구아구가 이상해졌어.”
동물들이 이렇게 말하는 장면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따뜻하다.
착해진 것이 아니라 속셈이 있는 행동이었음에도 나눔을 베풀기 위해 움직이는 몸은 이미 변화의 첫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장면은 드디어 마구아구가 도둑을 찾는 순간이다.
그 도둑은 거창한 악당도, 영리한 침입자도 아니다.
바로 꼬마 산양이다.
“엄마가 덫에 걸려 발을 다쳐서… 배가 고파서…”
꼬마 산양이 울먹이며 고백하는 순간, 마구아구의 눈꼬리와 목소리는 눈에 띄게 변화한다.
분노로 치켜올랐던 눈은 서서히 내려앉고, 마구아구의 기세는 꺾인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좀 달라고 하지 그랬어.”
이 문장은 단순한 용서의 말이 아니다.
마구아구가 처음으로 타인의 사정을 생각한 순간, 즉 진짜 ‘성숙’한 어른의 길로 접어든 순간이다.
우리는 종종 어른이 된다는 것을, 나이가 들거나 책임을 여러 개 떠안는다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보면, 성숙은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마음의 움직임 안에서 일어난다.
교육이나 훈계가 아니라, 아주 작은 타인의 사정을 듣는 순간에 일어나는 변화다.
마구아구는 꼬마 산양을 용서하고, 남은 양식을 모두 내준다.
이때 그는 “나눠 주러 온 것”이라고 말하며 산양에게 발도장을 찍으라고 한다. 여기서 마구아구가 거짓말을 했다고 뭐라할 이 있을까? 때로는 선한 거짓말이 생명을 살린다.
나눠 주는 거 역시 어려운 너만이 아니고, 모두가 받는 걸 너도 받는 거다. 라는 마음을 심어주면서 산양의 마음 속에 자존감이 낮아질 수 있는 산양에게 의지가 되어 준다.
왜 혼을 내지 않았는가?
산양은 마구아구를 보자마자 납작 엎드려 용서를 빈다. 그만큼 마구아구는 존재만으로도 잘못을 빌만큼 무서웠다. 그 무서운 마구아구의 양식을 가져갔다면 엄청난 용기와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조마조마한 시간이 어떤 혼남보다 두려웠으리라. 그것을 마구아구는 아는 듯하다.
내 마음을 가장 흔든 부분은
“배고프면 와서 말해라! 꼭.”
이 부분이었다.
배고프면 와. 이 말만으로도 산양은 고마움이 파고든다. 그런데 마구아구는 꼭을 붙인다. 마구아구는 아는 듯하다. 배고픈 시간, 그럼에도 도와달라고 말하기 어려운 그 마음을. 어쩌면 마구아구는 그래서 악착같이 양식을 모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꼭’ 이라는 말은 마치 보험처럼 들린다. 찾아가지 않더라도 오늘 너무 배가 고프더라도 그 말은 내내 산양에게 남아서 언젠가 정말 배가 고프고 힘들면 내겐 찾아갈 곳이 있다. 라는 것.
이 보다 더 든든한 보험이 있을까?
작품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구아구는 영봉 꼭대기로 올라가, 지금까지 모아온 발 도장 나뭇잎들을 허공에 날려 버린다.
그리고 일주일째 누지 못했던 똥을 누며 이렇게 외친다.
“우와아! 시원하다!”
이 유쾌한 결말은 단순한 재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마구아구가 쥐고 있던 욕심과 불안을 모두 내려놓는 순간, 비로소 몸도 마음도 시원해진 것이다.
참 어른은 모든 걸 움켜쥐는 사람이 아니라, 놓아주는 사람이 아닐까?
빠듯한 마음을 조금 비워 내고, 누군가의 사정을 들을 여유를 만드는 사람.
분노를 내리누르고 이해 쪽을 선택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짜 어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을 인정하고 조금씩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참 어른은 자신의 것을 나누며 더 넓은 세계를 만나게 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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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 외로움
마리아 호세 페라다 지음, 마리아나 알칸타라 그림, 최경화 옮김 / 목요일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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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의 외로움』을 읽고

면지의 푸른색 그림을 보고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내 어린 날이 외로움을 누가 따라 한 거지? 성냥갑은 집, 엄마 화장품 병도 집, 기다린 병은 전봇대. 단추들은 사람. 건물이 점점 늘어나 온 방안을 가득 채우며 놀았다. 내 딴에는 마을이고 친구고 이웃인데, 엄마는 누굴 닮아서 저렇게 깔끔하지 못하고 난장판이냐 소리를 하셨다. 그러나 그때는 놀이가 끝나면 다시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상자는 상자로, 화장품은 화장품으로, 단추는 단추로. 외로운 나는 다시 외로운 나로.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누군가 대신 들어줬으면 싶은 미음들. 어릴 땐 무심코 아무 데나 전화를 걸기도 했다.
『물고기의 외로움』은 그 마음을 아주 미세하게 톡톡 건드리며 보여주었다. 그 마음은 일기로도 쓰기 힘들어 표현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보고 너무나 놀라웠다.
도시를 짓는 아이, 방 안의 은하, 눈물 속을 유영하는 하얀 물고기. 이 이야기의 이미지는 현실보다 비현실에 가까운데, 외로움, 고독을 견디는 방식은 너무 현실적이었다.

책 속 아이는 밤마다 머리에 엉킨 별을 풀어내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 도시가 겨울이라는 말이 아프게 와닿았다. 자신의 온도를 잃어버린 사람의 감정이 이런 모양일까 싶었다. 그래도 아이는 하늘에 구름을 그려주고, 창문을 상상해 준다. 창문이 없나? 누군가에게 주는 작은 배려가 사실은 나를 버티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 책은 아주 조용히 보여준다….
특히 할머니의 말. “다 지나갈 거야. 지나가.”
살아 보니 지나가긴 한다. 과연 이 순간이 끝나기는 할까? 했던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그 시간을 지나서 다른 시간에 서 있다. 지나간 거다.
할머니가 털실 뭉치를 식탁 위에 놓는 장면과 지나간다 지나가. 매 순간 한 올 한 올 잘 떠야 하고 정성 들여 떠야 한다. 힘을 더 주어도 안 되고 덜 주어도 느슨해도 팽팽해도 안 되고 한결같이 비슷한 에너지를 드려야 하는데 그 순간이 모여 스웨터가 되는 것처럼 지나간다. 누군가가 내 삶의 한 귀퉁이에 조용히 털실 한 무더기처럼 놓여 있는 느낌. 말보다 물건이 먼저 건네지는 위로. 그 마음을 책이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이야기 후반에 아이는 궁금해한다. 자기처럼 머리의 별을 풀고, 도시를 짓는 다른 존재가 있을까. 그 호기심은 외로움의 또 다른 형태라고 느꼈다. 혼자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 혹은 누군가와 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싶다는 바람.
나는 어떤 도시를 짓고 있을까. 내 눈물 속에는 어떤 물고기가 잠들어 있을까. 그 물고기는 하얀색일까. 아니면 색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걸까.

그림도 책의 감정을 잘 받쳐 준다. 칼날처럼 날카롭지 않고, 물속처럼 말랑한 질감이다. 색이 많지 않은데도 공간이 풍부했다. 정적 속에 기어이 살아있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설명보다 여백이 많아서, 독자가 자기 마음을 가져가 채울 수 있는 그림이었다.

책을 덮고 나서 묘하게 마음이 따뜻했다. 온도가 크게 변한 것도 아닌데, 찬물에서 미지근한 물로 옮겨진 느낌이었다. 할머니의 말처럼, 모든 것은 지나간다. 지나가고, 다시 온다. 그 사이에 사람은 계속 자기 도시를 짓는다. 엉킨 별을 풀고, 눈물을 닦고, 작은 창문을 상상한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잊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누군가의 외로움 속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조용히 헤엄치고 있다는 사실을.


작가 마리아 호세 페라다의 말 중에 삶이 쉽지 않은 곳에 사는 어린이들에게 라는 부분에서 눈물이 터졌다.
최선을 타해 삶이 쉽지 않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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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굽는 빵집 책가방 속 그림책
김희선 지음 / 계수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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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굽는 빵집』은 재미있고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와 따뜻한 주제가 만난 그림책이다. 왜 이책을 이제야 만났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할만큼 너무나 사랑스러운 책이다.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이곳에는 아이들이 들려주는 꿈 이야기를 유리병에 담아, 그 꿈을 재료로 ‘꿈빵’을 구워 주는 신기한 빵집 아저씨가 있다. 빵집은 늘 웃음과 향긋한 빵 냄새로 가득하고, 아이들은 자신이 꾼 행복한 꿈 이야기를 아저씨에게 들려준다. 아저씨는 이야기를 들으며 병속에 행복한 꿈을 담아서 꿈빵으로 만들어 준다.
어른이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거 자체가 아이들에게 큰 위안이고 항상 기다리는 바람일 거다.

하지만 평화로운 마을에 불청객이 나타난다. 바로 ‘꿈도둑’니다. 꿈도둑은 아이들이 꾼 행복한 꿈을 훔쳐 먹고, 대신 무서운 꿈을 심어 놓는다. 아이들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고, 아침에는 두려움과 불안만을 이야기합니다. 이를 알게 된 빵집 아저씨는 아이들의 무서운 꿈을 모아 병에 봉인하고, 꿈도둑을 잡아야겠다고 결심한다.

아저씨는 지혜롭게 준비한 손톱이 긴 ‘괴물곰빵’과 그물로 꿈도둑을 붙잡는니다. 하지만 결말은 꿈도둑을 혼내고 가두고 끝이 아니다. 꿈도둑이 꿈을 훔친 이유가 외로움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는 친구가 없어 행복한 꿈을 꿀 수 없었고, 그 허기를 채우려 남의 꿈을 빼앗았던 것이다. 이 고백을 들은 아저씨는 그를 혼내기보다, 아이들과 함께 꿈빵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꿈을 굽는 빵집 아저씨는 문제를 폭력이나 처벌로 해결하지 않고, 상대의 사정을 이해하고 해결해 주려 한다. 더불어 함께가 되기 위해 공동체 안으로 초대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가치를 어린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전한다. 또한 병에 담긴 무서운 꿈이라는 설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거나 알수 없는 감정을 시각화하고 객관화하게 된다. 아이들이 자신의 두려움을 인식하고 다루는 방법을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다.

따뜻한 색감과 부드러운 질감으로 표현된 그림은 빵집의 온기와 바닷가 마을의 평화를 잘 표현하였다. 특히 무서운 꿈이 담긴 병의 어둡고 차가운 색감과, 꿈빵의 따뜻한 빛깔을 대비시켜 감정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독자에게 표현하였다. 캐릭터의 표정과 동작 역시 세심하게 묘사되어, 등장 인물의 감정선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언젠가 빵을 만들어 보면서 넣는 재료가 조금만 달라져도 다른 빵이 되는 것을 보면서 빵은 참 솔직하구나 생각했는데 빵과 감정 그리고 꿈이 잘 조화된 이야기이다.
매우 다양하고 재미있는 생각이 무궁무진 이어질 것 같다.

『꿈을 굽는 빵집』은 5세 이상 유아부터 초등 저학년까지 즐길 수 있으며, 감정 교육, 갈등 해결, 공동체 활동과 연계하기에 좋은 작품입니다. 수업에서라면, 아이들이 ‘나만의 꿈빵’을 디자인하고, 무서운 꿈을 병에 담아보는 활동을 통해 책의 메시지를 더 깊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재미를 넘어, 이해·공감·나눔이라는 핵심 가치를 전하는 그림책으로, 아이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을 따뜻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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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8-14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빵집 아저씨 인상이 넘 푸근해 보이시네요^^
 
누구지?
이범재 글.그림 / 계수나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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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지?
#이범재
#계수나무
#공존
#이웃
#고마움의도미노
#플로깅


"누구지?"는 눈 내린 숲속 마을에서 시작된다.
토끼는 아침 일찍 일어나 하얗게 쌓인 눈길을 부지런히 쓸며 친구들이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림 속에 토끼가 쓴 눈길이 나온다. 아 이렇게 많이 쓸었구나!
예전에 언덕길에 살았던 때가 떠올랐다.
눈이 온 날 새벽같이 나가서 평지까지 눈을 다 쓸었다.
힘이 들기도 했지만 누군가 미끄럽지 않은 길을 걸었다 생각하니 조금이라도 더 쓸고 싶었다. 그 덕은 누구보다 가족들이 입었다.
엄마 누가 저 아래까지 눈을 다 쓸어서 학교에 미끄러지지 않고 갔어.
엄마가 쓸었지. 지나가는 사람들 넘어지지 말고, 우리 강아지 넘어지지 말라고.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는데 표정엔 기쁜 빛이 있었다. 누군가를 위한 작은 배려는 삶의 소소한 기쁨이 된다.
토끼가 눈을 다 쓸고 집에 돌아와 보니 문이 고장 나 있다. 당황한 토끼 앞에 곰이 나타나 문을 고쳐주고, 토끼는 “고마워”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곰은 말한다. “나보다 까치에게 고마워해야지. 까치가 네 문이 고장 났다고 알려줬거든.” 토끼는 까치에게 가고, 까치는 여우, 여우는 노루, 노루는 멧돼지에게 감사의 이유를 돌린다. 그리고 멧돼지는 마침내 말한다. “그런데 말이야, 그 모든 시작은… 눈길을 깨끗이 치운 그 친구 덕분이야.”
토끼는 기분 좋게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고마워!”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이 책의 핵심이다.
누군가를 돕고 나면 꼭 보상을 받아야 할까? 누군가의 선한 행동은 돌고 돌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자신에게 따뜻함으로 돌아온다. 이 책은 그 과정을 반복적 구조로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체득시킨다. 배려가 도미노처럼 이어지는 이 이야기에 누가 반하지 않을까?
착한 마음이 만든 착한 하루, 그 하루가 또 다른 누군가를 도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순환의 이야기. 아이는 이 책을 통해 고마움이 어떻게 생기고, 어떻게 이어지고, 결국 어떻게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지를 감각적으로 체득할 것이다. 이야기의 반복 구조는 리듬감을 주고, 각 동물들의 행동은 위계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
그림 역시 따뜻하고 섬세하다. 모두가 섬세하고 모두가 평등하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인다. 빨간 머리를 빗질하는 멋쟁이 노루에게 머리가 그게 뭐니?하고 말하는 이는 없다.
눈 덮인 숲은 차갑기보다 포근하고, 동물들의 집은 아기자기하며 동물들 하나하나의 표정이 살아 있다. 특히 눈길 위의 발자국은 마치 고마움의 발자취처럼 이야기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이어준다.
오른쪽 페이지 길 위에 마치 사건의 전말을 추적하듯 보여주는 이야기. 사건은 바로 이 고마움의 시작은 어디였는가이다. 점점 늘어나는 인과 관계의 고마운 순환 고리. 마을, 이웃, 공동체. 그리고 나로 이어지는 공존의 방식이 여기 있다.
책 속 숨은 좋은 일들도 있다. 노루의 나무 옷 입히기. 여우의 플로깅. 이런 장면이 정말 아름답다.
무엇보다 이 책의 압권은 마지막이다.
‘자기 자신에게 고마워하기’. 남을 도운 자신을 잊지 않고, 그 마음을 기억하고, 인정하는 것. 어린이에게도, 어른에게도 꼭 필요한 메시지다. “지금 네가 따뜻한 건, 네가 누군가에게 따뜻했기 때문이야.”
나 역시 누군가의 고마움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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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물고기 책가방 속 그림책
김지연 그림, 박해진 글 / 계수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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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계곡이나 강가에 가면 물고기 잡기 놀이를 하고 한 마리 잡으면 아이와 기뻐하며 병에 담아 집에 오게 된다. 물론 여기 두자, 집에 가면 금세 죽을 지도 몰라, 라는 말을 하나 어렵게 잡은 물고기를 놓아 주는 것은 아이에게 쉽지 않다. 

이런 경험은 어린 시절 한 번 쯤 다 있을 것이다.  그림책 『나의 물고기』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빠와 신나게 놀며 물고기를 잡은 아이는 기쁨에 차 있다. 




집으로 데려오는 차 안에서도 집으로 데려와 기쁨에 차 있던 아이는 비닐에 담은 물고기를 소중하게 가져온다. 물고기를 기르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한다. 



어항을 준비하고, 자갈을 깔고, 수초도 넣고, 세심하게 강물도 넣는다. 나의 물고기를 위한 멋진 집을 준비한 거다. 물고기가 좋아하는 먹이도 주지만 물고기 얼굴은 화가 잔뜩 난 얼굴이다. 

시간이 흐르며 그 물고기가 점점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물고기는 어항 안에서 위아래로만 움직일 뿐, 먹지도 않고 기운이 없어 보인다.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물고기를 행복하게 해주려 했지만, 물고기의 표정에는 어딘가 슬픔과 답답함이 스며 있다.



이야기는 단순한 관찰을 넘어서 감정의 전이에 이른다. 아이는 잠든 사이 꿈을 꾸는데, 자신이 거대한 물방울에 갇혀 수많은 물고기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장면이 이어진다. 아무도 말을 걸지 않고, 자신을 쳐다보기만 하는 물고기들 속에서 혼자 있는 경험은 아이에게 진짜 물고기의 감정을 이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그제야 아이는 깨닫는다. 자신이 아무리 잘 꾸며준 집이라 해도, 그것은 물고기에게 감옥일 수 있음을. 그리고 그 물고기는 외롭고 슬펐다는 것을.


이 책의 뛰어난 점은 바로 그 감정의 흐름을 '강요하지 않고' 독자가 따라가게 한다는 데 있다. 작가는 교훈을 말로 설교하지 않는다. 대신 한 아이의 작은 마음의 움직임을 천천히 따라가며, 독자 또한 그 아이와 함께 깨닫게 만든다. 무엇이 물고기를 진정으로 위한 일인지, 진짜 사랑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이별이 단지 슬픈 일이 아니라 더 큰 배려의 표현이 될 수 있다는 사실까지.


그림은 단순하면서도 감성적이다. 섬세한 연필과 색연필의 선. 중요한 부분만 컬러로 하고 다른 부분은 흑백 모노톤으로 강조하는 것을 알려준다. 물고기와 아이 얼굴은 단순하고 마치 어린아이 그림 같지만 표정이 잘 살아있다.  



이 그림책은 결국 ‘존중’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가져오는 작은 생명들, 그 존재의 자유와 감정을 어떻게 존중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저자는 말한다. “왜 사람들은 나무는 베어도 되고, 동물은 가둬도 된다고 생각할까?” 이 질문은 단지 환경적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중심적 사고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물음이다.


『나의 물고기』는 짧고 간결한 이야기 속에, 생명에 대한 존중, 이별의 의미, 진짜 사랑의 태도를 고요하고도 확실하게 담아낸다. 아이들은 이 책을 읽으며 물고기를 이해하게 되고, 어른들은 그 안에서 ‘놓아주는 사랑’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누구나 한 번 쯤 소중한 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그것을 자유롭게 놓아줄 수 있을 때 완성된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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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07-25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들과 함께 물고기 잡으로 가는 부모님들이 계시는데 의외로 산의 실개천이나 하천에서 물고기 잡기가 매우 힘듭니다.
제일 쉽고 좋은 방법은 2리터 생수병(다먹은 것)을 반으로 잘라서 입구쪽 뚜껑을 벗기고 거꾸로 나머지 반에 꼿아서 물속에 두고 있으면 어느샌가 작은 물고기들이 생수병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일종의 통발 같은 것인데 산에 가서 실개천에서 저렇게 잡아 주변 아이들에게 주니 아이들은 기뻐하고 부모님들은 고마워 하더군요^^

하늘바람 2025-08-03 22:05   좋아요 0 | URL
그런 방법이 있는 줄 몰랐네요.
전 늘 못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