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지식인

김성신|출판저널리스트 0183768027@naver.com

2004년이던가. 다빈치 출판사의 김장호 대표가 쓴 글을 우연히 읽었다.

아직도 이중섭을 낼 때의 기억은 너무도 선명하다. 이미 고국과는 인연이 끊긴 유가족을 찾으려고 도쿄 시내의 전화번호부를 뒤지던 일, 마땅한 도록이 없어 발을 동동 굴렸던 순간, 무엇보다도 첫 책이라 인쇄소에 직접 나가서 감리를 보던 심야의 시간은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다빈치의 이중섭은 첫 부분부터 그의 대표작 '소'가 나온다. 그날 밤, 나는 인쇄기계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삼천 마리의 소를 보았다. 한장 한장 인쇄돼 나오는 이중섭의 '소' 그림이 마치 무리를 지어서 떼 지어 먼지를 날리며 황야를 가로지르는 환시를 느꼈던 것이다.

김장호는 다빈치라는 출판사를 차리고 나서 첫 책으로 이중섭의 서간집 『이중섭, 그대에게 가는 길』을 펴냈다. 몇 년이나 흘렀지만 그는 첫 책을 내던 때를 그렇게 선명하게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그의 글을 보며 '언젠가는 꼭 나도 내 손으로 책을 만들어보리라. 그리고 바로 저런 감회를 느껴보아야겠다'며 부러워했었다. 한참동안 인터넷을 뒤져 그 글을 다시 찾아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그를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미술전문 도서관 절실해
김성신(이하 신) 최근 다빈치에서 출간되는 책들을 보면 특정한 방향이 있는 것 같아요.
김장호(이하 호) 요즘 제가 기획해서 내는 책들은 아이들을 위한 책과 화가들의 도록을 단행본으로 만드는 일로 양극화되었죠. 도록 같은 경우에는 사실 출판하는 입장에서는 큰 모험이고 실험이에요. 작품집 같은 경우에는 단행본으로 종종 출간되기도 하지만 도록은 그렇지 않지요. 그래서 요즘 내는 책들을 저는 '바코드 있는 도록'이라고도 합니다만. 미술계도 끊임없이 출판물을 내는데 유통은 되지 않지요. 전시 때 만들었다가 바로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는 것이 도록이잖아요? 보관도 물론 안 되고….
이미지의 시대라고 하는데… 사진과 더불어 가장 많은 이미지를 보관하고 있는 것이 화가들의 전시회에 쓰이는 도록입니다. 그런데 현재 도록을 보관하고 유통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요. 너무나 안타까워요.
신   전시회를 중심에 놓고 거기에 맞추어서 책 출간을 기획하나요?
호   일단 전시회가 있어야 도록을 만들 수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는 맞추는 것이지만 전시회에 앞서 책을 미리 내기는 어려워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깜짝 놀라실 수도 있겠지만, 화가들이 전시회 하루 전날 전시할 그림을 완성하는 경우도 허다해요. 저술가들의 원고마감일과 마찬가지죠. 화가들이 몇 달 전에 전시회 준비를 모두 끝낸다면 가능하겠지만 보통은 힘들다고 봐야지요. 그래서 도록 출판은 전시회 끝나고 성과를 정리하는 과정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신   다빈치 출판사의 첫 책은 『이중섭, 그대에게 가는 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책에 실린 그림들은 어떻게 구하셨나요?
호   미술출판을 하게 된 계기가 바로 그 책이기도 했습니다만, 이중섭 선생 같은 경우만 해도 도록을 구할 수가 없었지요. 전시회 자료가 남아 있기는 했지만 당시 자료들이 너무 조악해서 책에 쓸 수는 없었어요. 그마저도 팔 수 있을 때까지 팔다가 더 이상 팔리지 않으면 그냥 버렸던 것이지요. 이런 자료들도 한곳에 모여 있는 게 없었고 쓸만한 자료는 거의 없는 상태였습니다.
신   하기야 당시 도록을 구입해서 소장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세월 지나면 그것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알고 찾겠습니까.
호   그렇지요. 그런 것들을 보관할 만한 시스템이나 시설이 필요한데, 사실 문제가 심각해요.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곳이나 아니면 미술전문도서관 같은 곳이 있어서 보관해야 하는데, 몇몇 소장가들의 수집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지요. 도록을 모아놓은 미술전문 도서관은 여전히 없잖아요? 보관하고 분류할 수만 있으면 정말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 될 텐데요. 너무나 아깝지요.

신   다빈치에서 도록들을 책으로 만드는 이유가 분명하군요. 그런데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하기 힘든 일 아닙니까?
호   독일의 타센 같은 출판사는 아주 적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해야 할 일이라면 해야지요.
신   의미 있는 일을 의욕적으로 해나가는 것인데, 독자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호   독자들 반응은 아직 별로 없어요. (웃음)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우리 실정에서 도록 출판은 아직 경제성이 없습니다. 사실 지금은 반 자비출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2000년에 출판을 시작할 때 미술서 전반이 그랬습니다.
200권 300권도 나가는 시장이었어요. 지금은 독자들이 많아졌지요. 도록의 경우 1000부를 제작하면 작가가 몇백 부 가져가고 우리가 또 좀 쓰고 나머지는 일반 독자들이 구매를 하지요. 그 정도 시장입니다.
신   서구의 미술계 시스템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죠?호   그렇습니다. 서구에서는 다국적 기업에서 작가 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도록이 외국어로 번역되기도 하고, 잘 분류되어서 보관이 꼼꼼하게 이루어지지요.
신   좋은 작가들을 배출하는 근본적인 동력이 바로 그런 시스템에서 나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도록이 그 정도라면, 미술가에 대한 당대의 평가나 업적의 기록에도 문제가 있겠군요.
호   그렇습니다. 미술가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몇 개 되지도 않는 미술잡지를 통해 화가의 작품세계 평가나 삶이 소개되기는 하지만, 단행본이 아니다 보니 이 역시 잘 보존되지 않습니다. 미술가의 가족들이 특별한 애정과 의지로 자료들을 모아서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사후에는 작가의 존재 자체가 먼지처럼 사라져버릴 수도 있는 것이죠.
신   우리 미술계의 실정이 말씀하신 대로라면 심각하군요. 이중섭 선생의 책을 내는데 남아있는 자료가 없어서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중섭 선생 정도 되는 분도 그렇다면… 지금도 여전히 도록이 보존되지 못하고 화가에 대한 당대의 평가마저도 남아있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 아닙니까. 정말 심각하군요.

늘 새롭고 재미나게
신   대화의 방향을 좀 바꿔볼까요? 공부를 많이 하셨지요? 한국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하셨고 일본과 프랑스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셨다고요?호   일본에서는 중국철학을 공부했어요. 일본에 갔을 때는 경기가 호황이어서 일본인들의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았습니다. 그 영향을 받아 저 역시 도상학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활자에만 매몰되어 있었던 사람이 이미지의 세계를 만나게 되니까 거기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공부 때려치우고 그 주제에만 매달려 지냈습니다.
온갖 그림들, 그러니까 활자가 아닌 모든 기호나 그림들을 다루는 학문을 도상학이라고 하는데, 굉장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이미지에 매력을 느끼다 보니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프랑스로 갔지요.
신   우리 출판인 입장에서야 출판인이 되고 난 이후에 김장호를 만났기 때문에 '출판인 김장호'로 기억하지만 사실 학자나 저술가의 면을 더 많이 가지고 계시지 않나요? 책도 여러 권 쓰셨죠? 그 중에 『환상박물관』 같은 책은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번역도 열심히 하셨고요. 『불교』 『악』 『라쇼몽』 『혹형, 피와 전율의 중국사』 『이것이 일본만화다』 『일본 대중문화, 여기까지 알면 된다』 『별에 가까이 간 사람들』 등등. 최근에는 아동 미술서 번역도 직접 하셨더군요. 그러다가 출판 시작하고 미술갤러리 개관하고…. 그러고 보면 김장호 씨는 참 대단한 에너지를 가진 분 같습니다. 어떤 지면에서 김장호 씨를 인터뷰한 글을 봤는데 '늘 새롭고 재미나는 것을 찾는데, 그 일을 멈추면 멀미가 난다'고 하셨더군요. 대체 정체가 뭡니까? 김장호 씨는. (웃음)호   그냥 환속한 지식인이지요.(웃음)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재미있는 것에는 쉽게 빠져들었지만 재미를 잃으면 바로 그만뒀거든요. 그런 면에서 학문은 저에게 딱 맞지는 않는 듯해요. 저는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알고 공부하고 싶은데, 학문은 한 가지만 깊이 들어가야 하잖아요? 그게 견디기 힘들었어요.
신   뭐든 흥미로우면 곧장 그리로 간다.
호   그렇지만 아쉽기도 합니다. 내공이라고 하잖아요. 한 분야에 집중하는 것 자체가 큰 힘이 되는데 그렇지를 못했으니까. 그래서 요즘은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중앙아시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자료도 모으고 논문도 찾고… 그렇게 지냅니다.

신   재미있는 소식이 있더군요. '자말 캐야르케치'라는 이름을 얻었다고요? 이슬람식 이름을 가지게 된 것 역시 중앙아시아에 대한 관심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호   하하! 그것을 뭐라고 하지요?동성애자들이 스스로 밝히는 것을? 신   커밍아웃?
호   네! 바로 그 커밍아웃을 하자면, 제가 얼마 전에 이슬람으로 개종을 했습니다. 여전히 술도 마시는 헐렁한 신자지만, 제 천성이 그런 쪽으로 맞는지 몰라도 어쨌든 이슬람으로 귀의하게 되었습니다. '자말 캐야르케치'라는 이름은 일종의 세례명이지요. 종교적 각성이라는 것이 참 알게 모르게 큰 역할을 하지요. 제가 어디서 들은 말은 있어서 처음에는 '하지'라는 이름을 얻고 싶어 했어요. 순례자란 뜻이 있거든요. 지적 순례라는 뜻에서 이 말을 예전부터 좋아했지요. 그런데 새로운 이름을 주시는 분이 한마디로 그건 아니라고, 당신은 아직 그런 이름을 가질 수준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러고 나서 지어준 이름이 '자말'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자'라는 뜻이지요. 제가 미술출판을 하기도 하지만, 이미지와 미술에 계속 관심을 가지는 제 영혼을 그분이 읽어냈나 봐요. 신기하지요. '자말' 뒤에 붙은 '캐야르케치'는 '드리머' 그러니까 '꿈꾸는 자'라는 뜻인데, 제가 좋아서 선택했어요. '자말'은 이름이고 '캐야르케치'는 성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신   '아름다운 꿈을 꾸는 자.' 참 잘 어울리고 좋은 이름이군요.

생각의 편린들을 글로 묶다
신   제가 예전부터 김장호 씨의 행보에는 관심이 많아 죽 지켜보았는데, 글 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더군요. <샘이 깊은 물> <정신세계> <한겨레21> 같은 잡지에서 종종 김장호 씨의 글을 보았습니다. <미술세계> 같은 미술 전문지에도 글을 자주 기고하시지요?호   <미술세계>에 발표한 글은 또 어떻게 아시나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신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조사하면 다 나옵니다. (웃음) <미술세계>에 쓰신 글들을 보면 미술계에선 완전히 미술비평가로 인정받고 계시더군요.
호   사실은 출판을 하기 전에 자유 기고가로서 활동을 시작했거든요. 번역을 하기 전부터 <샘이 깊은 물>이라는 잡지에 글을 썼고 그 이후 지금까지 꾸준하게 글을 써왔어요. 가끔은 저 자신조차 제 정체성에 대해 헷갈릴 때가 있지요. 내가 출판인인지, 글 쓰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말이에요. 책을 만들면서도 수도 없이 원고 마감일에 시달렸거든요.
신   그러고 보니까 김장호 씨는 참 다재다능한 분입니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편집인이면서, 동시에 미술관 관장이기도 하고, 또 미술비평가에다, 최근 쓴 글들을 보면 문화비평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듯 보이기도 하는데… 참 부럽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얼마 전까지는 김장호라는 사람이 표현하는 관심분야가 서로 동떨어져 보이기만 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이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동안 김장호 씨가 펴낸 책이며, 여러 지면에 기고한 글들, 그리고 번역한 책들까지 살펴보니 그게 어떤 연결고리 같은 걸 만들면서 하나로 죽 꿰어지더군요. 처음에는 불교를 중심으로 종교 쪽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것이 동양철학으로 넓어졌고, 이후 동서양 비교종교학과 역사로 가더니 나중에는 우주로까지 넓어지더군요. 천문학 관련서를 번역한 것을 보고 눈치 챘습니다.
그렇게 시야가 우주까지 뻗치고 난 이후 바깥쪽으로 향하는 것에는 여한이 없었는지 김장호 씨의 시선이 다시 내면을 향하고 있는 듯 느껴집니다.
'아름다움'이라는, 결국 미학적 관심이라는 것은 스스로 '느끼는 것'인데, 그건 자신의 내면에서 해답을 찾아야 하잖아요? 그렇게 김장호 씨의 사유의 궤적이 그려지더라는 것이죠. 흥미로웠습니다.
호   그저 생각의 편린들을 가볍게 내뱉었을 뿐인데.
신   『환상박물관』이 2004년에 나왔던가요? 자신의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을 때였는데, 책은 다른 출판사에서 내셨더군요.
호   <한겨레21>에 연재를 했었지요. 원래부터 책으로 묶기 위해 썼던 글도 아니었고, 제 책을 제 출판사에서 내는 건 꼴도 우습잖아요. 그런데 마침 개마고원에서 출간 의사를 물어주시더군요. 그래서 책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   글을 계속 쓰고 계시니 책도 계속 나오겠군요. 또 어떤 책을 내실지 궁금합니다.
호   최근에도 여러 가지 제안을 계속 받고 있어요. 제가 오랫동안 공부했던 것 중에 '지옥도'라는 주제가 있습니다. 지옥이라는 모티브를 가지고 중세 서양과 동양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맥락을 해석해보는 것인데, 그것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준비 중입니다. 구체적으로는 그것밖에 없고, 그 밖에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삽니다. 요즘에는 책 읽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독서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신   주로 어떤 방향으로 읽고 있는지?
호   장르를 가리지 않지요. 최근엔 터키 작가들이 쓴 소설책들을 재미있게 읽었고, 또 이슬람에 관한 책도 여러 권 읽었습니다. 예전에는 다 읽어내지도 못할 만큼 책을 구해 서재에 재워놓기도 했어요. 책 욕심이 있었지요. 하지만 요즘 들어와 자꾸 사람은 언젠가는 떠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책도 모아두지 않고 잘 버려요. 출판 일을 하니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지는 못하지만, 읽으면 읽는 대로 도서관에 기증을 한다든지 아는 이에게 준다든지, 어쨌든 책을 쌓아놓지 않고 계속 버리고 있지요.

신   예전에 김현 선생이 말년에 쓴 글 중에 프랑스 지식 사회의 강점을 설명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교수가 동시에 언론사의 편집고문역할도 하며, 또한 출판사의 기획위원인 경우가 많다'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 '프랑스에서는 지식인의 역할이 통합되어 있다, 그래서 지식 사회가 유기적으로 전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갖출 수 있다, 우리도 그렇게 가야한다' 대충 그런 요지로 기억하는데요. 김장호 씨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김현 선생이 생전에 부러워하던 그런 지식 사회의 면모가 우리나라에서도 곧 구현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개인의 다재다능함이 개인적 차원에서 끝나지 않고 지식의 유통 시스템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 시스템을 통해 사회에 지속적으로 지적 자양분을 제공할 수 있는 그런 태도와 능력이 김장호 씨에게는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 이제 갓 마흔의 나이인데요. 이미 학자이자 번역가이자 저술가이자 비평가이자 예술인이자 출판인이지 않습니까? 또 방송을 통해서 책 이야기도 하고 있지요?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통합형 신지식인의 전형이 아닌가 싶어요.
호   (웃음) 과찬이십니다.
신   후배 출판인들에게는 크게 귀감이 되는 면이 있기에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어쨌든 같은 출판인 입장에서 김장호 씨는 참 부러운 분입니다.

번역,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
신   일본어, 불어, 영어에 전부 능통하시지요? 김장호 씨가 번역한 책의 언어권이 다양해서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번역의 문제에 대해서도 말씀을 좀 나누고 싶은데요. 다빈치에서는 국내 저술가의 책도 많이 내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번역서 출간도 많지요?
호   그렇습니다.
신   다빈치에서 작년 연말에 나온 『르 코르뷔지에의 동방기행』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좋은 책이더군요.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왜 원전을 뛰어넘지 못 하는가'입니다. 그 책을 읽기 전만 해도 저는르 코르뷔지에가 건축 역사상 기념비적인 인물이라는 정도만 대충 알았지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평전이나 전기 등을 통해 소개된 적이 없었던 인물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 책의 원본만 번역해서 펴내기보다는 책의 앞이나 뒤에 르 코르뷔지에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글이 덧붙여졌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예전에 크게 감동받았던 책 중에 『니진스키 영혼의 절규』라는 책이 있어요. 이덕희라는 분이 번역했는데, 니진스키에 대해서는 국내 최고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분이지요. 그분이 역자서문이라고 해서 책에 써놓은 글을 보면, 의례적인 역자서문이 아니라 그 글만으로도 한 편의 완전한 니진스키 평전이라고 느낄 수 있을 만큼 훌륭하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동방기행』에서 아쉬웠던 게 바로 그 점이었습니다. 출판이란 본질적으로 저술가들에게 복무하는 일이라기보다는 독자들에게 복무하는 일이지 않습니까? 호  그렇죠. 원전에 갇히기보다는 원전을 뛰어넘는 일이 필요하겠죠. 좋은 충고 고맙습니다.
신   사실 제가 이렇게 외람된 말씀을 드리는 데는 의도가 있습니다. 김장호 씨는 출판인이기도 하지만 미술 전문가이기도 하고, 또 여러 외국어에 능통한 번역가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여러 가지 능력이 통합된 분이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출판물의 기획이 더욱 자유분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정교해져야 한다는 과제에 있어서 훌륭한 전형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   번역, 참으로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지요. 우리의 근대화 과정만 보더라도 번역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한국출판에서 번역의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그렇게 되어야지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여러 가지 난제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번역가들의 전문성이 가장 큰 문제겠지요. 책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에 대해 전문가이면서 해당 언어를 잘 아는 분들이 많으면 좋겠는데, 아직까지 우리 번역가들은 대부분 해당 언어의 전공자들이거든요. 사정이 그러다 보니 한계가 있지요. 사실 번역만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의 문화적 토대가 전반적으로 취약하다 보니까 그런 것이지요. 아직도 많은 문화적, 학술적 축적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신   우리 출판인들이 열심히 좋은 책을 많이 펴내는 일도 그래서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호   그렇지요. 어렵더라도 의지와 뜻을 가지고 살면 즐겁지 않겠습니까.
신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긴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사게재 : <기획회의>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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