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론에 관한 책을 한 권 펴냈다. 펴내고 난 뒤 필자는 가만히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태산같이 걱정을 하고 나선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는 책 제목을 내용과 상관 없이 자극적이거나 튀게 지었어야 한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글자 수를 줄이고 여백을 많이 두어야 베스트 셀러가 될 수 있다는 등 다양한 조언을 해준다. 어떤 이는 책 내용을 가급적 단순한 소재를 가지고 우화 형식으로 말랑말랑하게 써야 팔릴 것이라고 위협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주변의 걱정 어린 조언들을 종합해 보면 필자가 쓴 책은 결국 베스트 셀러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셈이 되고 만다. 거 참 낭패다
4월23일은 유네스코(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가 정한 ‘세계 책의 날’이었다. 지방선거,대기업 비자금 사건 등 굵직굵직한 여러 사회 문제들로 다소 가려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변덕스런 봄날에 여기저기서 책에 관련된 행사가 많이 개최되었다. 평소에 책을 가까이하지 않던 이들에게는 모처럼 책이라는 훌륭한 정신 성장의 도우미를 생각나게 하는 좋은 기회였다. 그렇다면 책의 날을 맞아 우리나라 출판계와 독서 시장의 현주소는 어떤 모습일까.
2005년 발표된 독서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선진국들에 비해 뒤지지 않는 수준이다. 성인 독서량이 연평균 11권(한국출판연구소 발표)으로 미국이나 일본을 능가하고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에는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출판되는 책 종류도 10년 전에 비해 35% 정도 늘어나 2005년 한 해 동안 4만3585종이나 발행되었다.
그러나 외화내빈이라고 그 내용을 보면 형식에 상당히 못 미친다. 베스트 셀러 상위권을 차지한 대부분의 책이 소설과 실용서 위주로 인문·교양서적은 설 자리가 없다. 또한 편차가 심해 성인 4명 중 1명은 1년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
더 우려할 만한 것은 책이 너무 경박단소(輕薄短小)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내용이 무거운 책은 독자들이 외면한다는 이유로 출판사들은 글자는 키우고 여백은 늘리면서 페이지 수를 줄이고 있다. 책 내용은 씹지 않고 삼켜도 소화시키는데 문제가 없는 이유식처럼 가볍고 말랑말랑한 내용 위주로 일관한다. 독자들은 독자들대로 책을 읽고 난 뒤 속았다고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다음에 책을 살 때 또 다시 읽기 편한 책 위주로 선택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독서 이력을 읽어낸 책의 권수로 평가하고 또 목표를 잡는다.
번역책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유명 대학 교수가 해외 유명 경영학자의 책을 번역했는데 난해한 철학책을 읽는 것보다 더 어렵다.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책 읽다가 잘못하면 성격을 버릴 판이다.
고전에 이르면 번역 문제는 더 심각하다. 이해심 많은 독자들 입장에서는 아예 처음부터 고전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읽기까지 하는 분위기다. 고전이나 특정 작가의 저술이 읽기 어렵다는 것도 따지고 들어가 보면 상당 부분 번역에서 비롯된다. 많은 사람이 경험하듯 원서를 읽으면 오히려 훨씬 더 쉽게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번역 문제는 출판사에 따라 더 낫고 못하고 하는 문제는 아닌 듯싶다.
6월이 되면 월드컵 축구가 시작된다. 출판계는 벌써 울상이다. 모든 출판 계획을 6월 이후로 미루고 있다. 이 기간 중에는 책이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365일 책이 팔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독자와 출판계가 너무 경제 쪽으로 치우쳐 있는 독서시장을 문화 쪽으로 당겨와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책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윈윈’할 수 있다.
(신동기 신동기변화연구소 대표) = 국민일보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