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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발상에서 좋은 문장까지
이승우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3월
품절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것들, 이미지나 사상,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영혼에 다름 아닌 그것들에 실체를 부여하는 육화肉化의 과정이다. 막연한 것, 추상적인 것, 모호한 것, 자기 자신도 아직은 무언지 확실하지 않은 것, 그런 것을 가지고 소설을 시작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써나가다 보면, 지금은 모호하고 뭔지 모르겠지만, 어떤 모양인가가 만들어지겠지. 어떻게 되겠지, 하고 기대하지 말라.
어떻게 되지 않는다.
-43쪽

작가의 숨결

창세기의 신은 흙으로 사람의 형체를 만들어놓고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그 흙은 사람이 되었다. 흙은 재료이다. 일상과 현실도 재료이다. 흙이 사람의 형체를 가지고 있는 순간에도 아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일상과 현실 역시 비록 소설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해도 아직 소설이 아니다. 흙이 사람이 되기 위해 신의 숨결이 필요했던 것처럼, 일상이나 현실이 소설이 되기 위해서도 작가의 숨결이 필요하다. 일상이나 현실에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

말하자면 당신만의 시각, 당신의 욕망이나 해석, 그런 것들에 의해 너무나 익숙하고 낯익어서 구질구질하기까지 한 우리들의 일상은 돌연 낯설게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낯익은 일상을 낯설게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당신은 소설이라는 걸 썼다고 할 수 있다.
-65쪽

구체적으로 쓰라

긴장은 추리를 요구한다.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은 추리이다. 알고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알지 못하는 것을 미루어 생각하는 것이 추리이다. 긴장은 알고 있는 것과 알아야 할, 그러나 아직 알지 못하는 것 사이에서 나온다. 다 알려주면 추리가 필요 없으니 재미없고, 너무 알려주지 않으면 추리가 안 되니 재미가 없다. 감추기와 드러내기의 교묘한 게임이 소설 쓰기이다. 일어날 사건은 그 앞에서 어떤 기미를 보여주어야 한다(복선). 사건의 진전이나 해결을 위해 실마리를 마련해주는 것도 필요하다(힌트). 복선과 힌트를 적절히 활용하여 우리는 한 편의 소설을 구성한다. 사실은 동원되는 모든 이야기가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에 대한 복선이고 힌트여야 한다. 드러내되 감추면서 드러내는 전술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요체는 궁금증을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 하나의 궁금증이 해결되는 순간 다른 궁금증이 생기도록 하는 것. 궁금증의 지속적인 생산이 중요하다.

소설 쓰기는 이처럼 정교한 작업이다.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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