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6/03/29

베스트셀러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문이당)에는 이미 남편이 있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남편에게 청첩장을 내놓습니다. 남편은 처음에는 당혹해하지만 차차 그런 사태를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나도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일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이루어지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어느 이가 쓴 서평을 읽으니 주위 사람들이 두 번째 남편 역할이라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나요? 이 책의 유행을 보면서 철옹성 같던 일부일처제가 이제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저뿐일까요.

『브로크백 마운틴』(애니 프루,Media2.0)은 동성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 상영 중인 동명의 영화 선전문구를 빌리면 이 소설은 '전 세계를 벅차게 한 (두 남자의)위대한 러브스토리'입니다. 물론 이 소설은 이미지가 다층적입니다. 두 남자가 강렬한 사랑을 하던 양 치던 시절, "그들이 세상의 주인공이었고,잘못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던 것 같은 산 위에서의 시간"은 우리가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강력한 기억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두 남자는 엄연히 아내들이 있음에도 남몰래 사랑을 키워갑니다.

『결혼의 재발견-마케이누의 절규』(사카이 준코,홍익출판사)는 어떻습니까. 인격모독처럼 들리는 마케이누(싸움에 진 개)라는 말은 2004년에 일본에서 유행한 10대 키워드 중의 하나인데 노처녀나 이혼녀를 의미합니다. 이 책은 대단한 베스트셀러였습니다. 글쎄요,독신여성의 문제가 비단 일본만의 문제일까요. 우리나라도 독신여성들을 모두 결혼시킬 수만 있다면 심각한 주택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을까요.

『밤티마을 영미네집』(이금이,푸른책들)은 '20세기를 대표할 만한 10편의 우리 아동문학'에도 선정된 10만부나 팔린 그림책입니다. 이 책은 이혼가정을 다뤘습니다. 『로테와 루이제』(에리히 캐스트너,시공주니어), 『따로 따로 행복하게』(배빗 콜,보림), 『악어입과 하마입이 만났을 때』(장수경,사계절), 『난 이제 누구랑 살지?』(에밀리 멘데즈-아포데,비룡소), 『아빠는 지금 하인리히 거리에 산다』(네레 마어,아이세움) 등은 모두 이 주제를 다룬 책인데 주요한 아동전문 출판사에는 어김없이 이혼가정을 다룬 잘 팔리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이 있습니다.

작년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작가 김애란의 소설집 『달려라 아비』(창비)는 아버지의 부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고 집을 나간 뒤 죽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나라 밖의 통제할 수 없는 힘이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것에 대한 울분을 그렇게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열거하고 보니 정말로 가족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가족의 재발견'에 값하는 주제는 이 밖에도 많습니다. 하인즈 워드,대니얼 헤니,데니스 오 등의 등장이 의미하는 혼혈 문제와 가족이 아니면서 가족처럼 살아가는 드라마 <안녕,프란체스카>의 대안가족 등도 우리가 깊게 생각해봐야 할 주제입니다.

산다는 것은 진정 무엇을 의미할까요. 앞에서 예시한 사례들은 전통적인 가족의 의미에서는 파행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보니 남들이 뭐라 하든 그런 삶 또한 별 것 아니더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우리는 누구나 딱 한 번뿐인 인생을 초보자로 살아갑니다. 삶이 자기 의지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요. 누구나 삶에서는 늘 초보자일 뿐입니다. 그래서 개인에게 운명처럼 다가오는 다양한 삶을 이제 서로 존중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사게재 : 국민일보 2006.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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