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창비' 40년 [06/02/16]
김지하는 대학 때 시 몇 편을 계간지에 보냈다가 퇴짜를 맞았다. 김지하는 결국 김현의 추천으로 1969년 시 전문지 ‘시인’을 통해 데뷔했다. 천하의 김지하를 퇴짜놓은 곳이 계간 ‘창작과 비평’이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폐간된 ‘창비’는 2년 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를 펴냈다. 시집은 곧 압수됐다. 국세청은 이 작은 출판사를 뒤져 거금 1000만원을 물렸다. 지식인들은 ‘창비’를 도우려고 ‘창비 책 팔아주기’에 나섰다.

▶“이 책 정도는 읽어야 진짜 대학생입니다. 하나 들여놓으시죠?” 월부 책장수들이 ‘창비’ 영인본을 들고 다니며 신입생들을 유혹하던 것도 80년대 캠퍼스의 한 풍경이었다. “나는 ‘창비’로부터 문학과 사회의 관계를 배웠다. 선배들의 ‘오더’에 따라 ‘창비’의 70년대 글들을 읽었고 신작 비평집을 보며 한국사회의 모순과 문학의 사회적 책무를 학습했다.” 80년대 초 대학을 다닌 문학평론가 이광호 교수는 ‘창비’를 통해 의식화됐다고 고백한다.

▶시인 김용택도 “창비는 내 문학과 삶을 갈고 닦게 해준 학교”라고 했다. ‘창비’는 현실을 고민하던 문학청년과 대학생들을 사로잡았다. 미국 유학에서 갓 돌아온 스물여덟의 문학평론가 백낙청이 ‘창비’ 첫 호를 낸 것이 1966년 1월 15일. 130여 쪽의 얇은 책에 실린 백씨의 권두논문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는 순수·참여 문학 논쟁에 불을 지폈다. 1974년엔 출판사를 세워 황석영 ‘객지’, 신경림 ‘농무’ 같은 문제작을 내놓았다.

▶‘창비’는 문학의 울타리를 넘어 당대 현실을 분석한 사회과학 논문을 비중 있게 실었다. 한국 사회과학계를 뒤흔든 ‘사회구성체 논쟁’도 1985년 나온 ‘창비’ 57호에서 비롯됐다. 경제평론가 박현채씨와 이대근 교수는 각각 ‘현대 한국사회의 성격과 발전단계에 관한 연구 1’과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에 관하여’를 내놓아 논쟁의 불길을 댕겼다.

▶‘창비’는 2000년대 들어 의제 설정 역량이 전만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올해 초엔 백영서 교수가 편집주간을 맡고 30~40대 학자들이 편집위원에 합류하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백 주간은 “현실에 밀착해 날카롭게 비평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논쟁적 글쓰기의 모범을 보이겠다”고 벼른다. 창비의 40년은 문학의 현실참여와 분단체제 극복에 앞장서 온 세월이다. 불혹(不惑)의 연륜에 걸맞게 깊이와 무게가 있는 글로 지식계의 논쟁을 새롭게 이끌기를 기대한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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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1 2006-02-18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름은 들어본 출판사군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