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코스모스 저작권에이전시 홍순철 팀장
등록일 : 2006/02/06

저 역시 대한민국 출판기획자의 한 사람입니다

김성신|출판저널리스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연재 제의를 받았는데, '기획회의가 만난 사람'이란 코너야. 첫 원고에 누굴 대상으로 해야 될지 고민이 좀 되더군. 생각 끝에 널 인터뷰하기로 했어." "아이고 형님, 제가 무슨…, 그럴 만한 대상이 되나요. 연륜 높고 훌륭하신 출판사 사장님들도 많이 계신데. 아무래도 제가 나설 자리는 아닌 듯 한데요." "지난 <기획회의>를 죽 살펴보니까 네 말대로 이 코너에 지금까지 훌륭한 분들 많이 나왔어. 젊은 네가 그분들에 비해 좀 덜 훌륭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이 코너에서 앞으로 엄청 훌륭해질(?) 출판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겠어? 대망의 2006년도 됐는데 좀 새롭게 가보자는 거지. 어쨌든 이미 내가 결심했거든. 그러니까 넌 무조건 내 인터뷰에 응해줘야 해!" 북코스모스 저작권에이전시 홍순철 팀장에 대한 인터뷰 요청은 이런 대화가 오간 가운데 거의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

기존 한국 저작권중개업계의 고정관념을 깨다
북코스모스 저작권에이전시는 책의 요약본을 온라인 서비스하기 위해 설립된 벤처기업 '북코스모스'의 한 부서로 지난 2000년 4월 만들어졌다. 대학 졸업 직후 임프리마코리아 저작권에이전시에 입사해 2년여 동안 독일어권 담당 저작권에이전트로서 일했던 홍순철이 북코스모스로 스카웃된 것이 바로 이때다. 당시 경력이라고는 말단 에이전트 2년에 불과했던 그가 저작권 팀장으로 전격 발탁된 것에 대해 우려의 시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당시 출판계에서 저작권에이전시에 대해서 하는 말이 있었다. '차리기는 쉽지만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원, 에릭양, KCC, 임프리마. 이렇게 4곳의 대형 저작권에이전시를 제외하고는 90년대 말 이후 설립된 저작권에이전시는 하나같이 그만큼의 규모로 대형화되지는 못했다. 단지 언어권별로 특화되거나 기획의 방향이 한정되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지만 외국에서 이미 베스트셀러가 되었거나, 혹은 세계적 지명도를 가진 저자의 저술들, 따라서 저작권이 수입될 경우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른바 빅 타이틀들은 대형 에이전시에게 중개권이 독점되다시피 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형 저작권에이전시들이 이미 오랜 기간 동안 해외의 유력한 저작권에이전시와 함께 일을 하면서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발주자의 입장에서 그 사이에 끼어들 틈은 거의 없었다. 에이전시 입장에서 보면, 빅 타이틀이 없으니 큰 수입도 기대할 수 없었고, 수입이 적으니 당연히 성장할 수도 없었다. 홍순철이 북코스모스 저작권에이전시로 자리를 옮겨 팀장을 맡게 된 2000년도 당시의 우리나라 출판저작권중개업계의 상황은 그랬다. 당연히 당시 홍순철 팀장이 이끌게 될 북코스모스 에이전시의 성공 가능성은 누가 보더라도 매우 희박해 보였고, 그런 관점에서 홍 팀장은 지극히 무모한 도전을 벌이는 셈이었다. 그렇게 꼬박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직접 물어보기로 하고 우선 결과부터 살펴보자.

2005년도 한 해 동안 북코스모스 에이전시는 약 500여 권의 타이틀을 계약했다. 작년 12월 한 달 동안 계약이 성사된 타이틀 수만 해도 50여 권이 넘는다. 불과 몇 년 사이 명실상부한 메이저 저작권에이전시가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에이전시가 빅4만큼 성장할 수 없다'던 고정관념이 깨진 것이다. 2005년은 출판인들의 술자리에서 '이제 북코스모스가 업계 몇 위쯤 될까' 하는 이야기가 종종 안주거리로 등장하기도 했던 한 해였다. 북코스모스 에이전시는 최근 수년 간 한국 출판의 대외적 성장에도 기여한 바가 크다. 소설로 재구성된 『겨울연가』와 『가을동화』를 일본에 저작권 수출할 때도 화제가 됐고, 소설 『대장금』을 적극적으로 해외 홍보하여 태국으로 수출한 일도 칭찬받을 만했다. 홍순철 팀장은 말한다. "이제야 겨우 생존을 위한 시기가 지나갔습니다. 우리에게 2006년은 성장과 도약을 위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그는 짐짓 겸손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질곡을 헤쳐나간 자들만이 풍길 수 있는 강한 체취를 풍겼다.

책의 진정한 힘 때문에
김성신(이하 김) 에이전시 업계에 처음 입사한 것이 언제고 왜 출판계에 들어오기로 작정했는지요? (홍순철 팀장과 필자는 오래 전부터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이기에 사실 인터뷰는 비속어가 난무하는 하대체로 시종 이루어졌지만 지면의 격을 감안하여 모두 경어체로 바꾼다.)
홍순철(이하 홍) 제가 외국어대학교 독어과를 졸업한 것이 1998년이지요. 원래 방송사 입사가 학창 시절부터의 오랜 꿈이었는데, 졸업 1년을 앞두고 IMF가 터졌어요. 그때부터 방송국들이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일단 일반 대기업에 사무직으로 입사를 하기는 했는데, 이런 일을 평생 동안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더군요. 그래서 몇 달 있다가 바로 퇴사를 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평소 좋아하던 책도 읽고, 공부도 하면서 구체적으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었지요.

김  얘길 듣다보니 다치바나 다카시의 명문 '퇴사의 변'이 생각나는군요. 그 사람도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었다지요. 비슷하군요.(웃음) 그래서 찾은 회사가 저작권에이전시였나 보지요?
홍  사실 저작권에이전시는 잠시만 있을 생각이었어요. 책을 읽어야만 하는 업종이라 공부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공부하면서 일도 하고, 그러다 경제 여건이 좋아져서 방송국이 사람을 다시 뽑으면 지원하려고요. 사회초년생들이 다 그렇듯이 당시에 제가 좀 관념적인 판단을 했던 거죠. 더군다나 당시 저작권에이전트의 보수는 정말 적었어요. 대기업의 3분의 1이나 되었을까? 그랬으니 '난 이렇게 적은 보수 받으면서 일할 사람이 아니다' 하는 건방진 생각도 있었던 것 같고요.

김  그러다가 붙들렸군요? 출판계에. 출판이 좀 미궁 같은 면이 있지요. 한번 들어오면 빠져나가기 힘든.(웃음)
홍  출판계에 붙들렸다기보다는 책의 진정한 힘에 굴복한 것이겠지요. 저작권에이전시의 일이라는 것이 그래요. 처음엔 그냥 중개되는 한 건 한 건이 이렇게 돈이 되는구나 하는 것에, 그러니까 사업적인 면이 신기하지요. 하지만 조금 일하다 보면 책이라는 것이 가진 사회적 의미, 그러니까 한 권의 책이 한 나라의 문화에 얼마나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만들 수 있는 것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 있거든요. 생각의 힘을 지닌 책들을 제 손으로 찾아 전하는 일이 저작권중개업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점차 떠날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이 일을 제대로만 한다면 세상을 바꾸기도 할 수 있겠구나.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신용이 부족한 중소형 출판사들
김  우리 출판업계 사람들 대부분이 다들 그 비슷한 생각 때문에 붙잡히지요. 박봉과 격무에 시달려도 아랑곳하지 않는 굳건함, 그건 우리의 힘이라기보다는 책의 힘이지요. 그런데 계속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기만 하다보면 초심을 잃는 경우도 많잖아요? 일단 돈부터 벌고 봐야한다, 그런 생각도 들고. 어쨌든 마음 굳게 먹는다고 마냥 버틸 수 없는 부분도 있잖아요?
홍  출판사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그렇지만 저작권에이전시도 그런 면에서 똑같아요. 처음엔 책에 관련한 일에 종사한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하지만 업무상에서 많이 지쳐요.
특히 출판사가 로열티 지급에 있어서 신용을 지키지 않는 일이 자꾸 생기다보면 일 자체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하지요. 사실 우리 중소형 출판사들의 파이낸셜 크래딧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봐야합니다. 대체적으로 저작권에이전시들이 규모가 큰 출판사가 아닌 중소형 출판사와의 중개 거래를 꺼리게 되는 것도 이 문제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 때문에 작은 출판사가 외국도서 기획에 있어서도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다시 말해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이 생기는 거죠. 저희 북코스모스가 이제 설립 6년차에 접어듭니다. 지난 5년간이 생존의 시기였다면 이제부터는 도약의 시기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의 도약을 위한 여러 가지 통계자료를 만들어 봤는데요. 그러다가 딜레마가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저희는 기존의 저작권에이전시와의 차별화를 위해 중소형 출판사를 위한 중개 거래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통계를 뽑아보니 중소형 출판사가 계약서대로 로열티의 지급 이행을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경제적인 압박도 문제지만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저희 에이전시와 파트너십을 가지고 일을 하는 외국의 저작권에이전시 사이에 신뢰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지요. 이 문제는 비단 저희만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의 저작권에이전시 모두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문제지만 후발주자인 저희로서는 훨씬 더 치명적입니다. 그러니까 딜레마는 구체적으로 이런 겁니다. 저희가 이만큼 성장하는 데 있어 기반이 된 것은 수많은 중소형 출판사였습니다. 이런 출판사들과의 의리를 함부로 저버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우리 출판사들의 경제적 사정만을 감안해드리기에는 외국 에이전시와의 신뢰관계에 있어 치명적인 문제가 일어납니다. 더군다나 최근 몇 년간 외국 에이전시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한국 출판사들이 종종 로열티 보고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을 눈치 챈 일부 외국 에이전시들은 계약금을 터무니없이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 역시 한국 출판사의 경영을 압박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는 거죠. 한마디로 악순환입니다.

김  한국 출판사들에게 섭섭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홍  섭섭하다기보다는 우선 안타깝지요. 출판사에 계시는 분들은 타이틀이라는 물건만 만나지만 저희는 중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을 만나면 감정이 드러나지요.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요즘 좀 어려우니까 선인세 지급을 며칠 미루자'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계약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만으로 외국 출판인들이 우리나라 전체를 우습게 보는 느낌을 저희는 직접적으로 받거든요. 굉장히 자존심 상합니다.
이건 일을 떠나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느끼게 되는, 아주 괴로운 감정입니다. 현실적으로도 이런 신용의 문제 때문에 우리 출판계 전체가 많은 불이익을 당합니다. 계약금액이 터무니없이 높아지는 것도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별 중요한 인물도 아닌 제가 감히 이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나선 것도 사실은 이런 말씀을 드리기 위한 부분이 있었어요. 우리 출판계 전체의 이익과 관계되는 일이니까요. 일선에 있다보니 우리 출판계가 이런 점에서 많이 걱정되거든요. 어쨌든 이건 안타까운 일이고요. 아까 섭섭한 점이 있냐고 물으셨는데 그건 따로 있습니다.(웃음)



"저작권에이전트도 출판인입니다."
김  출판사 분들에게 섭섭한 점은 따로 있다고요? 뭐가 그렇게 우리 홍 팀장님을 섭섭하게 했는지 꼭 알고 싶군요.(웃음)
홍  한국의 출판사들이 저희 저작권에이전트들을 출판계 외부인으로 인식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가장 섭섭합니다. 간혹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너희 일은 결국 외국 출판사나 저작권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 아니냐? 그러니까 너희는 우리 출판인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식의 관점으로 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건 진짜 섭섭합니다. 저 개인적으로 저작권에이전트 일을 하면서 한번도 스스로 출판인이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제가 일하고 있는 쪽이 책을 직접 만들어 유통하는 출판사가 아니라는 것뿐이지 출판 기획 업무라는 측면에서 보면 똑같습니다. 이 세상에 나와 있는 수없이 많은 책들을 대상으로 해서 이것을 면밀히 분석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지식과 정보가 있는지 살펴서 그 내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살려낼 수 있는 출판사에 건네 드리는 것이 제 일입니다. 이것은 출판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역할이자 덕목이고 저는 바로 그런 일에 복무하는 것인데, 그런 저에게 '너는 출판인도 아니다'라고 한다면 섭섭하지요. 더군다나 '거간꾼'으로까지 지칭하면 정말 맥이 풀립니다. 이 말 저는 정말 싫어하거든요.
제가 지금껏 저작권중개 일을 하면서 가장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을파소에서 2001년 출간된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입니다. 보도 섀퍼라는 저자가 알려지지도 않았던 때였고, 더군다나 우리 경제경영 분야에서 독일 저자의 책이 제대로 팔려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저 경제경영 분야라고 하면 미국 저자의 책만 있는 줄 알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책을 받아 살펴보니 우리 청소년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열심히 소개했지요. 우리나라에서 100만 부도 넘게 나간 그 책이 정작 독일에서는 얼마나 나갔는지 아십니까? 10만 부 조금 넘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로 건너와 21세기북스(을파소의 모회사) 같은 능력 있는 출판사를 만난 것도 그 책 나름의 복이지만 저는 정말 그 책을 찾아낸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2004년에는 속편도 나왔는데 을파소가 원저작권을 따내 여러 나라에 저작권 수출까지 했어요. 그때도 얼마나 기분 좋았는지. '키라'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제 기억에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저작권 수출에 힘쓰다
김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 출판 저작권을 외국으로 수출하는 일에 그렇게 열성적인 것도 홍 팀장께서 출판인이고자 하는 의지의 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홍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군요. 저작권 수출은 저작권에이전트가 되면서부터 관심이 있었습니다. 해외 저작권의 번역 출판이 우리 전체 출판 종수의 30퍼센트가 넘습니다. 자연히 저작권에이전시의 업무도 저작권 수출보다는 저작권의 수입에만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 업무가 국내자본의 해외유출업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지요.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 저작권 수출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좋다는 쪽으로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마침 영상매체 쪽에서 먼저 아시아권에 한류를 일으켰고, 그래서 잘하면 책도 수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물론 저 혼자 생각한 일이 아니라 우리 북코스모스의 저작권팀 전체의 생각이 그랬습니다. 특히 일본어권을 담당하고 있는 한유키코 씨의 적극적인 활동이 큰 성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책으로 재구성된 『겨울연가』와 『가을동화』 같은 책들이 저희 중개로 일본에 수출 된 것에 대해서 무척 기쁩니다. 더 나아가 자본의 해외유출업이라는 오명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홀가분하기도 하고, 내부적으로는 저희가 저작권에이전시로서 제대로 임무수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도 느낍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겨울연가』는 일본에서 100만 부가 넘게 팔렸습니다. 한국으로 돈 많이 가져왔습니다.(웃음)

김  작년에는 북코스모스 중개로 『대장금』이 태국에 수출되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연간 에이전시의 수출입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요? 또 북코스모스에서 중개해서 최근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들은 대표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홍  저희가 연간 500여 권 이상의 해외 저작물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고, 2000년부터는 연간 50여 권 이상의 국내 저작물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꽤 많죠? 최근 저희 중개로 국내 출간된 도서들은 음…, 너무 많아서 잘 떠오르지가 않는데. 그건 오늘 저녁에 정리해서 메일로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날 밤 홍순철 팀장이 보내준 메일에는 다음의 책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1. 수입 : 『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 여행』(작가정신), 『물은 답을 알고 있다』(나무심는사람), 『마음의 속도를 늦추어라』(바움), 'Insights Guide' 여행서 시리즈(영진닷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작품), 『행복』(랜덤하우스중앙), 『미운오리새끼의 출근』(생각의 나무), 『지금, 만나러 갑니다』(랜덤하우스중앙)
2. 수출 : 『겨울연가』 (일본), 『가을동화』(일본·중국·대만), 『가시고기』(일본), 『국화꽃 향기』(중국·대만), 『아홉살 인생』(일본·태국), 『파페포포 메모리즈』(일본·중국), 『대장금』(태국), 『하루』(일본), 『그 남자 그 여자』(일본), 『풀하우스』(중국·태국), 『웃지마! 나 영어책이야』(일본),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중국),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중국)

김  불과 5년 동안 국내 저작권에이전시로서는 경이롭다고 할 만한 성장 속도인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었나요? 현재 우리나라에는 저작권에이전시가 2-300 곳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에이전시, 이른바 '빅4'(신원, KCC, 임프리마, 에릭양을 지칭)가 형성된 이후에는 이런 규모로 커진 에이전시는 전무했는데, 북코스모스가 유일하게 그런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최근 출판인들의 술자리에서는 에이전시 순위를 다시 정해 '빅4'의 명단을 조정해야 하느냐, 아니면 '빅5'로 지칭해야 하느냐, 하는 그런 농담들이 오갑니다.
홍  업계 내에서의 순위를 거론한다는 것이 사실 별 의미는 없겠죠. 하지만 그런 말들이 나온다면 저희 입장에서 기분 나쁠 것은 없습니다. 저희가 만들어낸 성과에 대해 출판인들이 인정해주시는 어떤 방식이라는 생각도 드니까요. 그저 감사하지요. 저희의 성장에 대해서는 저희로서도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시기적으로 저희 회사가 설립되던 무렵에 벤처 기업 붐이 조성되어 있었는데요, 북코스모스는 2000년에 벤처 투자금으로 설립된 온라인 콘텐츠 벤처기업입니다. 물론 지금도 회사의 성격에 변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북코스모스 저작권에이전시는 북코스모스의 업무 특성상의 필요에 의해 구성된 일개 부서였지요.대기업에서 다져진 경영과 자금운용 능력을 유능하게 접목한 최종옥 사장님이 저작권에이전시 경영의 뒤를 받쳐주었던 것이 구조적으로는 가장 큰 성장 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장의 또 다른 한 축은 아무래도 맨 파워라고 볼 수 있지요. 경력이 일천했던 당시의 제게 큰 신뢰를 보내주며 뒷받침을 해주었던 우리 팀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출판기획자로서의 마인드를 가지고
김  저는 전략적인 차별화도 분명히 있었다고 보는데요. 당시에 북코스모스 에이전시를 가보면, 지금도 그렇지만, 뭔가 기존의 에이전시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건 홍순철 팀장이 단지 미남이기 때문에 받았던 인상은 아닌 것 같거든요?(웃음) 그런 차별화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던 구체적인 배경이 궁금합니다.
홍  앞서서도 잠깐 드렸던 말씀이지만,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출판인이다.
거간꾼이 아니다.' 다시 말해 중개자의 마인드로 실적에 집중하기보다는 출판기획자로서의 마인드를 가지고 우리도 책을 기획하자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고맙게도 저희를 보신 출판인들께서 그런 점을 눈치채셔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그런 생각은 어떤 전략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신생회사로서 출사표를 던지는 국면에서 당연히 가졌어야 할, 말하자면 일종의 도덕성 같은 것에 더 가까울 겁니다. 최근에는 그런 초심을 우리가 얼마나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 포인트를 두고 일종의 자기검열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김  그럼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홍  책은 세상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지만 세상이 나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나침반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인지 나침반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책들에 관심이 많이 생깁니다. 최근에는 명민한 미래예측서나 섬세한 트랜드 분석서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가령 구체적으로는 창해에서 나온 『세계는 평평하다』나 21세기북스의 『블링크』 같은 책들을 올해에는 저도 많이 발굴해서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홍순철이라는 인물을 처음 만난 것은 그의 출판계 입성 직후인 1998년이었다. 하지만 그 해에 몇 번이나 만났을까? 그저 일 때문에 만났던 것이 다였다. 그런데 그가 불쑥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추적추적 비 내리던 어느 가을날 좀 우울한 얼굴로 다가온 그는 대뜸 술 한 잔 함께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우린 그 날 그 술자리로부터 형님 아우 하는 사이가 되었고 지금까지 줄곧 가깝게 지내고 있다. 요즘도 우리는 가끔 부부동반으로 식사를 하기도 하고, 아이가 태어나거나, 돌맞이를 하거나, 둘 중 누가 새 집을 얻기라도 하면 제일 먼저 인사를 챙긴다. 그런 그에게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난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 사람을 내가 오늘 처음 만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에게로부터 오랫동안 '형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려졌기 때문일까? 그저 어리게만 보았던 그의 속내에 그렇게 깊은 생각과 뜨거운 열정이 들어있었는지 오랫동안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본래 너무 가까운 것은 잘 보이지 않는 법. '오늘 이 인터뷰가 나와 이 친구 사이에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겠구나'하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오랫동안 친했던 아우 하나를 잃었고 대신 든든한 친구 하나를 얻었다. 묘하게 섭섭했고 묘하게 즐거웠다.

기사게재 : <기획회의> 1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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