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출판사가 대접받아야 좋은 나라입니다

최성일|도서평론가
robli@freechal.com

이제 환경 책은 수적으로나 품질로나 우리 출판 장르의 한 축을 이룬다. 하지만 출판을 다루는 지면의 환경 책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2005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도서의 면면은 그런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구랍 21일 현재 드러난 신문과 잡지의 '올해의 책' 선정 결과를 보면, 꾸준하게 생태 환경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시사저널>을 제외한 두 신문이 환경 책을 대하는 마음 씀씀이는 박하다.

오히려 환경 책을 평가하고 널리 알리며 환경 책 전문 출판인을 격려하는 일은 환경운동단체의 몫이 되고 있다. 사단법인 환경과생명은 2005년 11월 환경 책 길잡이 2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환경책, 우리 시대의 구명보트』는 시민에게 권하는 환경 책 100권의 서평 모음이고, 『환경책, 바로 보면 바로 자란다』는 환경 책 독서교육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이 2권은 행정자치부의 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 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환경과생명은 2003년에도 역시 행정자치부의 지원을 받아 환경 책 보급 사업을 펼친 바 있다.

환경정의(옛 환경정의시민연대)는 2002년부터 해마다 '환경 책 큰 잔치'를 열고 있다. 잔치 실행위원들이 올해의 환경 책 10권을 꼽고, '다음 100년을 살리는 환경 책 100권'을 업데이트하는데, 2003년의 두 번째 잔치부터는 출판을 통한 환경문화운동을 벌여온 출판인에게 '한우물상'을 주고 있다. 첫 해 따님의 송대원 대표와 수문출판사의 이수용 대표가 함께 받았고, 두 번째는 그물코 장은성 대표에게 돌아갔다. 2005년의 수상자는 이한중 번역가다.

그런데 한우물상을 받은 출판사들의 요즘 형편이 예전 같지 않아 못내 아쉽다. 대표적인 환경 책 전문 출판사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은 우리나라 생태 환경 출판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여 씁쓸하기도 하다. 환경 책의 종수는 나날이 늘지만, 정작 전문 출판사는 발붙이기 어렵다. 필자가, 새해부터 본란의 바통을 이어받은 새로운 주자의 한 사람으로서, 힘든 여건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책을 내고 있는 달팽이출판의 김영조 대표(48)를 첫 인터뷰 대상자로 선택한 까닭은 이러한 환경 책 출판의 풍요 속 빈곤과 무관하지 않다.



20년 경력의 비주류 출판인
최성일(이하 최) 저는 인터뷰할 때 나이부터 여쭙거든요. 출판 쪽에서 일한 지는 얼마나 되세요?
김영조(이하 김) 아, 저요. 몇 살처럼 보여요? 58년생이에요.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아니라고 오해를 하는데, 젊어 보이는 게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고 그래요.
출판계에 발을 들여 놓은 건 1987년 무렵입니다. 금성출판사가 첫 직장입니다. 전공은 국문학이에요. 출판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누구 말대로 고상하게 시나 쓰면서 먹고 살겠다고 생각했지. 금성출판사에 들어갔는데 거기는 전집물 출판사 아닙니까. 업무가 분화가 돼 있어요. 한국문학부에 배치됐는데 하루 종일 교정만 보는 거예요. 교정도 많이 안 봐요. 하루에 15-20쪽 갖고 떡을 치는 거야. 그야말로 룰루랄라 참 좋았는데 문제는 당시가 열악했어요.
근무 여건이 아니라 대우가 박했어요. 시간관념 이런 건 정확해서 6시 땡 하면 칼 퇴근을 했지요. 한 시간 더 일하면 시간외 수당도 받았지만, 처우는 썩 좋지 않았어요. 당시 전집물 출판사는 부자였는데도 말입니다. 노동조합을 만들었어요. 1987년 그때가 한창 노조를 만들 때였잖아요. 동료 몇 사람과 주동이 되어 노조 활동을 하다가 해고의 수순을 밟았지요. 금성출판사에는 한 삼 년 정도 있었습니다.
금성출판사에서 쫓겨나 지금은 없어진 작은 출판사 한 곳을 잠시 거쳐 들어간 데가 영림카디널이에요. 거기는 좀 오래 있었죠. 7, 8년 있었나. 거기서 인생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편집을 맡아 출판 영업에 대해선 전혀 몰랐어요. 영림카디널에서 만든 책 중에 지금도 팔리는 것이 있어요. 『세계화의 덫』(한스 미터 마르틴 외)이라고 강수돌 교수가 번역한 것과 사이먼 싱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책입니다. 앞의 책은 세계화 비판서로는 처음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나중 책은 스테디셀러가 되었지요. 마이클 클라이튼과 시드니 셀던의 소설도 편집했습니다. 출판계의 주변부를 겉돈 비주류 출판인이죠.

   그러면, 영림카디널 그만두고 바로 출판사를 차렸나요?
   출판사 말고 다른 것을 하자고 집사람과 궁리를 했지요. 뭘 할까? 그동안 생각한 게 뭐냐 하면, 서점이었어요. 어린이 책 전문 서점. 당시 일산에서 제일 큰 서점이 정글북이었어요. 그 뒷건물에다 어린이 책 서점을 차렸죠. 어린이 도서관을 같이 했어요. 2000년대 들어와서의 일이죠. 서점은 1년을 버텼나. 도서관은 찾는 사람이 좀 있는데 서점은 안 되더군요. 서점을 하다 망하기는 했지만 그때 출판사가 불쌍하다는 걸 알았어요. 우리 서점에 있던 책을 그대로 다 가져가는데, 그게 출판사엔 손해잖아요.
도서관은 2004년까지 운영했어요. 우리나라에 어린이 도서관이 몇 개 있는데 정부 지원을 못 받아요. 사설 도서관은 좋은 일인데 말이에요. 선거에 즈음해 딱 한 번 지원을 받았어요.
그런데 지원금이 한 번 나오고는 그 다음부터는 안 나와요. 그래서 집사람과 역할분담을 하기로 했지요. 아내가 도서관 운영을 도맡고, 저는 다른 일을 하기로. 솔직히 출판에는 자신이 없었어요. 주변 사람에게 물어 보면, 백이면 백 다 하지 말라고 그러지요. 요즘은 달팽이출판을 잘 해보라 격려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돈 없이 출판은 할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아는 게 책 만드는 일이라서 2002년 출판등록을 했지요.

   출판사 등록과 첫 책 발행 사이에 1년 4개월의 공백기가 있습니다.
   출판사들이 대부분 그래요. 출판사 등록증이 있어야 저작권 계약을 할 수 있거든요.
1년 정도를 창업 준비과정으로 보면 됩니다. 10종 가량 출간 예정 도서를 미리 마련해 놓고 시작해야 하니까. 창업 준비 기간에 기획한 책 가운데 아직 내지 못한 책이 있어요. 국내 필자는 잘 모르니까 다 번역서였지요.

   2006 환경 책 큰 잔치의 '한우물상' 수상자로 유력해 보이는데요.
   이런 자리에서 이런 얘기 하기는 뭣하지만 상을 받으면 기분은 좋겠지요. 그게 출판사에 격려는 되지만 한편으로는 쓸쓸해요. 잔치를 공동 주관하는 대형서점의 매장에서 책을 전시하고 판매합니다. 지난해 저희 출판사 책도 『동물의 역습』(마크 롤랜즈)을 비롯, 몇 권이 진열대에 놓였지만 얼마 못 팔았어요. 환경 책 큰 잔치가 희망을 주려는 행사임은 잘 압니다. 큰 출판사들이야 상관없겠지만 저희 같은 작은 출판사에겐 그다지 보탬이 되지 않아요. 어쩌다 환경 전문 출판사가 됐는데, 이게 부담을 주고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다른 분야로 시야를 넓히려 해도 좀 걸려요. 상업성 있는 것 하고 싶어도, 주변에서 달팽이출판은 좋은 책만 낸다, 안 팔려도 꿋꿋하게 잘 버틴다, 그러니 주저하게 되지요.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는 의도
   그래도 출간목록을 보면 환경 책 전문 출판을 의도한 것으로 보이는 데요.
   내 딴에는 경영적 안목에서 틈새시장을 노린 거였지요.(웃음) <녹색평론>을 창간 초기부터 봤어요. 생태 환경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내 정서에 맞는 느낌이 들었고, 그렇게 살아야지 좋은 거 아닙니까. 우선, 생태 환경을 해 보고 나서 다른 걸 하자.
따님 출판사에게 고무받기도 했지요. 따님이 지금은 방향을 약간 튼 측면이 있으나 대단한 출판사라고 생각합니다. 따님에는 한우물상이 아니라 정부에서 훈장을 줘야지요. 달팽이보다 조금 먼저 닻을 올린 그물코도 있고요. 돈은 안 되더라도 가치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도 있었겠죠. 지금 생각하면 내 욕심만 챙긴 거라 식구들에게는 참 미안해요. 3년간 집에 돈을 못 갖다 줬거든요. 일정액을 갖고 시작했는데 돈이 나오는 게 아니라 계속 들어가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2004년에는 해볼 때까지 해보자는 심정으로 돈을 긁어모아 책을 냈지요. 그런데 2005년에는 쏟아 붓기만을 되풀이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가장으로서 염치가 있지. 속도조절을 한 탓에 지난해 성적이 그래요.  

   제가 보기에는 달팽이가 환경 책 출판에서 입지를 굳힌 것 같은데요.
   자리를 잡은 건 좋아요. 그러고 싶었고. 하지만 방금 말한 대로 나만의 욕심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내가 이렇게 계속 밀고 나가도 될런지. 2005년에도 신간을 4권 냈지만, 한 권 낼 때마다 다음 제작비는 건져야지 했는데, 제작비가 나오지 않았어요. 작년만 해도 4권의 제작비를 새로 투자한 셈이거든요. 자구책을 마련하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녀 보기도 했어요.
우리나라의 생태 환경 출판이 독자를 앞서가는 것 같아요. 독자의 관심은 첨예한데 독서 행위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으니 출판사로선 참 안타까운 노릇이죠. 그 이유가 뭘까? 달팽이출판을 기준으로 한번 따져 봤어요. 첫째, 영업을 못해서 그런가? 제가 영업 수완이 없기도 하지만 작은 출판사로서는 시장의 벽이 참 높아요. 둘째, 기획에 문제가 있는가? 환경 책이라고 모두 독자의 외면을 받는 건 아니잖아요. 황대권 선생의 『야생초 편지』(박경화, 명진출판)나 최성현 선생의 『좁쌀 한 알』(이상 도솔) 같은 책은 잘 팔리잖아요.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사는 법』이라는 책도 그렇고. 우리나라 독자에게 맞는 환경 책을 만들지 못한 내 기획력의 부재 탓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대요.
셋째, 서점에 문제가 있는가? 저번에 어느 신문에서도 다뤘지만 서점의 좋은 자리는 대개 자본력이 풍부한 출판사 차지예요. 신간이 나왔다고 이야기를 하면 책을 깔아주기는 하죠.
그런데 어떤 때는 한 출판사가 같은 분야의 책을 여덟 자리나 차지하고 있더라고요. 8종이 다양하게 깔려야 할 텐데. 그 자리를 빼앗긴 출판사 7곳은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죠. 페어플레이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시장논리에 따라 어쩔 수 없다면 할 말은 없어요. 상업성을 앞세운 출판사들이라면 그러려니 하는데 의외로 점잖고 양식 있는 출판사까지 이에 가세하니 '우리나라에서 돈 없는 출판사는 살아남기 어렵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데 방금 언급하신 책 중에는 엄밀히 말하면, 환경 책이 아닌 것도 있죠. 황대권 씨의 『야생초 편지』만 해도 밀리언셀러가 어떻게 환경 책일 수 있나요? 시작은 친환경이었는지 몰라도 결과는 완전히 반환경이죠.
   그래서 녹색평론사가 존경스럽기도 해요. 느낌표 추천도서 선정에 응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아무튼 환경 책 출판 여건은 점점 나빠질 거예요.



환경 책의 정의
환경 책이란 무엇일까? 작가이면서 생태 환경운동에도 몰두하고 있는 최성각 선생은 환경 책을 이렇게 정의한다. "지금 우리네 살림살이가 최소한이나마 사람답게 지속되기 위한 깊은 고민과 모색이 배어 있고,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과 뜨거운 감성이 있고, 의심하지 않고 진행되는 우리 문명에 대한 진단이 있고, 인간의 얼굴을 한 상식의 힘도 보여주고 있고, 자궁의 마음 땅의 마음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우리네 희망의 근거인 다음 세대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해법이 상상력과 감수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담겨 있"는 책이다. 환경 책은 생명과 행복의 문제를 정직하게 담은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좋은 책들의 정수"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생태주의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또 '생태주의'란 무엇을 말하나요?    저는 생태적으로 살려고 노력해요. 막말로 돈은 없어도 유기농산물을 먹으려고 해요. 유기농가에 가서 직접 구매를 하기도 하고, 원당에서 누구랑 같이 밭을 300여 평 일구기도 합니다. 차도 없잖아요. 집도 가난하고, 내복도 입고 다니며, 애들 사교육도 안 시킵니다.
가능하면 절약하려 합니다. 생태적으로 산다는 것은, 공해가 어떻고 매연이 어떻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아무리 공해타령을 해도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시인의 마음이 생태적 삶에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영성에 가까운 책들을 내는 것은 공해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더 바랄 게 없는 삶』(야마오 산세이)도 그렇고, 『에코 요가』(헨릭 스콜리모우스키)도 그렇고. 앞의 책은 특히 그렇거든요.
최근 펴낸 『2030 기후대습격』(로버트 헌터)은 환경공학 서적으로 볼 수도 있으나, 제가 추구하는 주제와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이 책의 지은이 또한 영성을 중요시하거든요.  
사람의 정서적인 변화, 인식의 변화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에 그런 흐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빗방울처럼 다가와서 그런지 생태적 사치의 측면이 없지 않아요. 일부 환경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이나 유기 농산물 붐이 이는 데에는 유행의 속성도 다분히 있지요.
개인의 각성과 삶의 자세의 변화 없이 지구 환경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환경 책 일색의 목록에 변화를 꾀할 생각은 없나요?   사실 인문 분야에도 신경을 많이 쓰기는 했습니다. 인문 쪽에도 관심이 있거든요.
아직 실행은 못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책 전문서점과 어린이 도서관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 어린이 책도 만들고 싶어요. 그림책 공부도 했습니다.

   많이 팔린 책은 어떤 책인가요?
   『즐거운 불편』을 3쇄 4000부 찍었습니다. 수금은 2, 3000부 했을까, 겨우 제작비 건졌다는 거예요. 그밖에는 재쇄를 한 게 거의 없습니다. 첫 책 『야생의 순례자 시튼』(어니스트 톰슨 시튼)은 청소년들의 호응을 얻어 좀 팔았지요. 그래서 청소년용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페트라 켈리의 『희망은 있다』도 청소년에게 알맞은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점에 희망을 걸었지요. 한데 예상 외로 페트라 켈리에 대해 잘 몰라요.
이 여자의 삶이 극적인데다 한국어판 전기도 2권 나와 있어서 기대를 했는데 '아,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점을 깨달았어요. 그나마 이 책이 2005년 문화관광부 추천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된 덕분에 재고를 많이 정리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희망은 있다』 말고도 유력기관의 선정도서나 추천도서로 뽑힌 달팽이의 책이 더러 있던데요.
   2004년에는 『즐거운 불편』이 환경 책 큰 잔치 '올해의 환경책 10권' 안에 들고, 환경부 우수환경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2005년에는 『동물의 역습』이 '올해의 환경책 10권'에 포함되고, 『지렁이, 소리 없이 땅을 일구는 숨은 일꾼』(에이미 스튜어트)은 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 권장도서로 꼽혔지요. 그렇지만 실속은 없어요.

   이른바 '황우석 사태'는 어떻게 보시는지?
   제가 과학에 문외한이었어요. 새해 첫 책으로 인천도시생태연구소 박병상 소장의 『희망의 내일』(가제) 을 출간할 예정인데 그 책 원고를 열심히 읽은 덕분에 과학상식이 좀 늘었죠.
사태의 원인은 국수주의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 같고, 과학만능주의와 정부의 실적 위주의 과학정책이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고 봅니다. 요즘 과학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몸집을 불려 거대과학이 되다 보니 일반인들은 암암리에 피해를 입게 되는데 이번 사태가 그런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자가 아니면서 문제 제기를 했다고 취재진이 한때 욕을 먹기는 했지만 진실을 밝히는 계기가 된 것은 다행스럽지요. 하지만 민족주의가 맹목적 애국주의로 흐르는 것은 걱정스런 일입니다. 그런 성향의 뿌리가 결코 얕지 않다는 것은 잘 알지만서도. 리영희 선생은 대담 형식의 자서전인 『대화』(한길사)에서 아직도 반공주의가 판을 치는 현실에 대해 서글픔과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는데, 황우석 교수 사건도 색깔론이 맹목적 애국주의로 빛깔만 바꿨지 본질은 같다고 봐요. 자본과 권력이 손을 맞잡고 과학을 좌지우지하면 얼마나 위험한가 보여준 사건이기도 합니다. 박병상 씨의 글이 생명공학의 비윤리성을 잘 지적하고 있어요.

   박병상 선생의 책이 달팽이로선 국내 저자의 첫 책이겠네요.
   진작부터 국내 저자의 책을 내고 싶어서 국내 필자를 찾았어요. 대학에 학과가 개설된 환경공학 방면의 저자는 있지만 생태 환경 분야에 외국처럼 대중성 있는 작가나 레이첼 카슨 같은 현대의 고전적 저작을 남긴 저자는 없어요. 그래도 국내 저자가 중요하기에 박병상 선생을 맨 먼저 찾아갔는데 이야기가 잘 됐지요. 이 책을 필두로 국내 저자의 책들도 많이 해 봤으면 해요. 국내 필자 중에 관심 가는 필자가 몇 분 더 있어요. 『희망의 내일』 잘 만들어서 그 분들 책도 내게 되면 좋겠는데.

   『희망의 내일』은 어떤 책입니까?
   최근의 논란, 생명공학 비윤리 비판, 생태적 삶에 관한 에세이를 고루 담았어요. 욕심 같아서는 생명공학 얘기로 전체를 채웠으면 하는데 박병상 선생이 녹색평론사에서 생명공학 비판서를 출간한 바가 있어서 그건 곤란할 것 같아요. 책 제목은 박 선생과 의논하여 잠정적으로 정했는데 일부 여론이 좀 약하다 그러네요. 그래서 바꿀까 말까 고민중이에요.

비주류 출판인의 심정 토로
   1인 출판에다 유비쿼터스까지 한 것 같은데요, 맞나요?   저는 처음부터 100퍼센트 혼자 했어요. 집사람이 자기까지 쳐서 2인으로 해달라고 그러는데 지금은 전혀 아내의 도움을 못 받고 있어요. 사무실도 마고북스의 곁방살이를 하는 신세입니다. 마고북스에 계신 분들께 정말 고맙지요. 제가 자리를 비우면 전화도 받아주고, 주문도 받아주고 하니까. 뭔가 보답을 드려야 할 텐데 여력이 없으니 안타깝네요. 기획·제작·영업을 혼자 다 해야 하기 때문에 책 한번 내려면 정신이 없어요. 전철 안에서 원고 교정을 보기도 합니다.

김영조 대표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주변부 비주류 출판인의 심경 토로로 옮아갔다.

   그런데 작은 출판사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요? 그 방법 좀 알려줘요. 우리 실정에서 출판계와 출판 단체가 작은 출판사를 북돋우기에는 한계가 뚜렷합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없는 한 작은 출판사는 지금처럼 구질구질하게 연명하거나 창업과 폐업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책을 구입해 공공도서관 등에 나눠 주는 것도 좋지만 정부가 나서서 우량도서를 검증한 다음, 이를 도서관 등에 홍보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치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만 해도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지 전시행정의 표본 같아요. 외화내빈이죠. 주변인의 눈으로 보면 출판시장은 시장논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저변의 기반은 형편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고집스레 출판을 하는 까닭은 뭔가요?    첫째, 할 줄 아는 일이 이것뿐이라서. 둘째, 기획해 놓은 것은 내야 되기 때문에. 셋째는 숱한 어려움에도 내게 걸맞은 일을 꾸려가는 스스로가 대견스러워서겠지요. 한때는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이럴 걸 왜 시작했나, 하고. 이제는 욕심을 버려서 그런지 걱정은 안 합니다. 하지만 걱정을 하지 않는다 해도 출판사가 문을 닫을 수가 있거든요. 그게 걱정이죠.

"달팽이출판은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운 공생을 희망합니다." 달팽이의 출간도서마다 뒤표지 날개 아래쪽에 달팽이그림과 함께 새겨진 인상적인 문구다. 그런데 더 인상적인 것은 김영조 대표의 해석이다. "공생은 사람의 관점이다. 사람은 자연에 예속되어 자연의 다스림을 받는 존재라야 한다."

인터뷰 도중 김영조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김 대표의 지인이 그에게 안부를 묻는 모양이다. "아직도 버티죠." 나도 덩달아 굳은 의지가 발동하다가 이내 힘이 빠진다. "잘 안 됩니다." 새해에는 3000부 찍어 2000부 수금하면 딱 좋겠다는 달팽이출판의 소망이 이뤄지길 간곡히 바란다. "제가 펴낸 한 권의 책으로 다음에 출간할 책의 제작비와 비록 적게나마 생활비를 손에 쥘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고 행복할 겁니다."

기사게재 : <기획회의> 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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