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과의 진정한 만남 [06/02/05]
[강은슬의 마음을 잇는 책읽기] 어린이책과의 진정한 만남

어린 시절이 지나고도 그것은 항상 내 곁에 있었으나 두 번째 진정한 만남은 뒤늦게 시작됐다. 문헌정보학과에서 ‘독서지도론’을 한 학기 동안 강의하면서 어린이 책을 모르고는 독서지도를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을 때 나는 새로이 아동도서와 만났다. 그때 다양한 강의와 모임이 수시로 열리고 대형서점이 있는 대도시가 얼마나 부러웠던지.

차츰 ‘밑줄 긋는 남자’의 주인공처럼 누군가에게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읽었다고 말을 걸고 싶어졌다. 고등학교 때 ‘압록강은 흐른다’를 처음 읽었을 때는 구한말 중국을 거쳐 유럽으로 가 평생 홀로 살았던 주인공 이미륵에만 눈길이 갔지만 다시 읽는 지금은 달밤에 대작하며 아들을 어른 대접하는 아버지의 묵직한 사랑이 보이는데 당신들 생각은 어떠하냐고 말이다. 그리하여 내가 소개한 책이 계기가 되어 시끌벅적한 대화의 장이 마련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이을 수 있다면 정말 기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 칼럼을 시작했다.

그러나 진정 책을 매개로 소통하고 싶었던 대상은 내 아이들이었던지 사람들은 글에서 엄마의 마음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여름이 준 선물’(유모토 가즈미 지음)은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넓은 세상을 알아가라고, ‘우주의 고아’(모리 에토 지음) 요코는 지붕에 올라가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자기와 치열하게 맞대면해보라고, 루쉰은 인생의 목적을 정했으면 무심하게 갈 길을 가라고, ‘49일간의 비밀’(자크 팡스텐 지음)은 친구의 아픔을 같이 느끼고, 결국 기존 질서에 순응하더라도 너희들만의 밀약을 맺어 일을 도모해보라고 아이들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아동문학 작품은 자기는 물론 외부에 대한 관심을 강조한다.

이미 청소년 책도 시시하다고 외면하는 아들. 어린이 책과의 두 번째 만남을 좀 더 일찍 시작하여 더 어릴 때, 그 수준에 맞는 책을 같이 읽었더라면 아들과의 이심전심 불능에 애달파서 문정희 시인의 “아들아/ 너와 나 사이에는/ 신이 한 분 살고 계시나보다./ 왜 나는 너를 부를 때마다/ 이토록 간절해지는 것이며/ 네 뒷모습에 대고/ 언제나 기도를 하는 것일까?”를 읊조리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때로 나와 아이들 사이에는 한 세대 이상의 간극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내 추억의 세계로 애들을 불러들이려 했거나 내 생각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책을 이용했다면 모두 내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거의 2년이나 써온 이 칼럼을 마치며 이제 애들이 종이를 뚫고 들어갈 듯이 재미있게 읽는 책에 관심을 가져볼 참이다. 독서를 지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애들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이래저래 읽을 책은 많고 독서는 재미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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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1 2006-02-06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린이 그림책 보는 것 정말 좋아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