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는 사재기 논란 … 출판계 '벌집' [06/01/06]
출판계 자정 차원에서 시작된 '사재기 대책 방안'이 진흙탕 싸움처럼 번지고 있다. '사재기 혐의'로 지목된 출판사들이 이번 방안을 마련한 한국출판인회의(회장 김혜경)에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출판인회의 측도 절차와 방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맞서고 있다.

◆왜 불거졌나=단행본 출판사들의 모임인 출판인회의는 지난해 말 전국 온.오프라인 주요 서점 7곳에 사재기 혐의가 짙은 책 5종을 베스트셀러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 서점 판매자료, 현장 조사 등을 거쳐 사재기 의혹이 있는 책을 적발했고, 서점 측에서도 이를 수용해 지난달 마지막 주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뺐다. (본지 1일자 27면 보도) 해당 도서들은 5일 발표된 1월 첫주 베스트셀러 목록에서도 제외됐다.

출판인회의는 해당 출판사와 도서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점가.언론 등에 이름이 알려진 일부 출판사들이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출판인회의의 조사 방법.시기, 그리고 형평성에 문제가 있어 절대 수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특정 출판사 죽이기 '음모론'마저 나올 정도다.

◆쟁점은 뭔가=사재기는 특정 도서를 베스트셀러에 올리려고 사람을 동원해 집중 구매하는 것을 말한다. 출판진흥법에서도 금지하고 있는 위법 사항이다. 출판인회의는 지난해 9월 소속 출판사에 사재기 자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고, 이후 두 달간의 조사를 거쳐 이번에 문제가 된 책 5종을 골라냈다. 지난 2~3년간 사재기가 일종의 관례처럼 확산되면서 출판시장 자체가 심하게 왜곡됐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이번에 '부도덕한' 업체로 몰린 출판사들은 출판인회의의 조치에 전혀 수긍하지 않고 있다. '세계명화 비밀'로 의혹을 받고 있는 생각의나무 박광성 대표는 4일 출판인회의에 "이번 작업은 지극히 불투명한 과정으로 몇몇 사람의 밀실회의를 통해 결정됐다"며 "출판인회의가 이번 조치를 즉각 철회하지 않으면 다음 주쯤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쏘주 한 잔 합시다'를 낸 큰나출판사 최명애 대표는 출판인회의에 관련 자료 공개를 요구했다. 최 대표는 "출판사 영업은 물론 저자의 이미지에 막대한 타격을 입은 만큼 베스트셀러 복귀 등의 이해할 만한 조치가 없으면 출판사를 그만둘 각오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출판인회의 김혜경 회장은 "만약 관련 자료를 공개하면 해당 출판사들이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며 "출판인회의의 공식 입장을 6일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해결점은 없나=이번 사태는 출판계의 고질병인 사재기가 재발한 경우다. 특히 증빙 자료가 공개되지 않아 논란이 커지고 있다. 출판인회의의 조사 기간이 두 달이란 비교적 짧은 기간이었고 그간 서점가에서 사재기 의심을 받아온 책 다수가 목록에서 빠진 것도 논란을 확대하고 있다.

생각의나무 박광성 대표는 동업자가 수사하는 방식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제3의 공정한 조사기관을 상설 기구로 만들어야 한다"며 "출판인회의 회장단 소속사의 베스트셀러도 이번 기회에 판매 내용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김혜경 회장은 "출판인회의 차원에서 사재기 단속 기능을 계속 강화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그간 출판계는 수단.방법 관계없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 그만이다는 의식이 팽배했다"며 "가격할인.이벤트.경품 등으로 문란해진 시장을 바로잡는 수단으로 도서정가제를 다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