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신년특집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우리 동네 마루-김진


발행일 : 2006.01.01 / EX E4 면 기고자 : 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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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정말 안 돼요? 네?”

“안 된다! 목숨 달린 짐승을 기르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아나? ”

“내가 기를게요, 할머니! 아이, 할머니……제발요, 네?”

“이눔의 자슥! 한 번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아야제, 뭔 말이 많노?”

“할머니, 이렇게 귀여운 표정 지어도 안 돼요?”

현수는 살짝 말아 쥔 주먹을 양볼에 갖다 부비면서 어린 양 하며 말했다.

“시끄럽다, 고만! 어여 학교나 가지 못해?”

할머니는 소리를 냅다 지르며 회초리를 찾는 시늉을 했다. 현수는 후닥닥 도망쳐 나왔다.

현수는 사흘째 할머니와 실랑이를 하고 있다. 마루 때문이다. 마루는 버려진 개다. 현수는 마루를 데려다 기르자고 조르지만 할머니는 바윗덩이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다.

할머니 몰래 집어온 멸치 한 줌을 쥔 손에 힘을 주며 현수는 언덕배기를 냅다 뛰어내려갔다. 마루가 있는 큰기왓집에 들렀다 학교에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우리 동네가 이제 정말 사라지려나 보다!”

언덕 아랫동네 담벼락은 밤새 구멍이 뻥뻥 뚫려 있었다. 붉은 글씨로 큼지막하게 ‘공가(빈집)’라고 쓰여져 있는 걸 보자 현수는 시무룩해졌다. 한구네집도, 이화네 집도 구멍이 나 있었다. 현수의 가슴에도 커다란 구멍이 생긴 것 같았다.

현수네 동네는 낡고 오래된 집들이 옹기종기 있는 달동네다. 언덕 아랫동네는 낡은 집들을 헐고 아파트를 짓게 되면서 동네 주민들이 하나둘씩 떠나갔다. 동네에서 가장 크고 으리으리한 집인 큰기왓집도 이번 일요일에 이사를 갔다. 이사 가면서 마루는 버려 두고 간 것이다.

“기르던 개는 가족과 마찬가지인데, 어쩌면 그렇게 버리고 갈 수 있죠? 사람들이 참 냉정하기도 하지.”

동네 일을 가장 먼저 아는 옆집 아줌마가 할머니를 찾아와 혀를 찼다.

“자슥도 버리는 세상인데 그깟 개를 와 못 버리노?”

평소 소문을 옮기고 다니는 옆집 아줌마를 할머니는 늘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퉁명스럽게 자식도 버리는 세상이라는 말을 하고는 이내 현수가 걸렸는지 얼른 현수를 돌아보았다. 현수는 모른 체하며 딴청을 피웠다.

“그렇게 안타까우면 자네가 길러주지 그라노?”

“저는 혼자 살아서…… 개를 좋아하지도 않고…….”

옆집 아줌마는 할머니가 말을 고분고분 받아 주지 않자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큰기왓집 대문에 들어서자 마루는 주인이 버리고 간 옷가지에 코를 묻고 누워 있었다. 마치 내가 엄마 베개를 밤마다 꼭 안고 자는 것처럼.

“마루야! 마루야!”

현수가 불러도 마루는 커다란 눈만 꿈벅거렸다. 벌써 사흘째 굶은 것이다. 하얗던 털도 때가 묻어 거뭇거뭇하다. 마루는 제법 늠름한 진돗개였는데, 이젠 진돗개라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다. 어제 준 밥은 고스란히 밥그릇에 말라 붙어 있었다. 다행히 물은 마시는지 물그릇은 비어 있었다. 현수는 말라붙은 밥 위에 멸치를 얹어 주고 물도 떠 주었다.

“마루야, 형 학교 갔다 올 테니 멸치 좀 먹어. 오늘은 꼭 먹어야 해!”

마루를 다정스레 쓰다듬어주고 현수는 서둘러 학교로 향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어느 날, 할머니는 현수를 보며 말했다.

“애비도 없고, 에미도 없고, 불쌍한 자슥.”

그리고는 돌아서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후우……. 이제 끈 떨어진 운동화 신세가 되었네.”

그 말에 현수 가슴은 얼음장처럼 얼어붙더니 쨍 하고 금이 가는 것 같았다.

엄마가 집을 나간 날, 할머니는 방바닥에 주저앉아 큰 소리를 내어 울었다. 하지만 현수는 울지 않았다.

“현수야, 이제 삼학년이니까……혼자서도 잘 할 수 있지? 아빠 돌아가실 때 병원비 때문에 우리 빚진 거 알지? 그거 갚으려면 엄만 돈 벌러 가야 해! 엄마 올 때까지 할머니 말씀 잘 듣고…….”

할머니는 엄마 말을 믿지 않았지만 현수는 믿었다.

그리고 일년이나 지났다. 시간이 지나자 할머니가 엄마를 미워하는 말도, 현수를 보고 푸념하는 것도 줄어들었다.

그러던 할머니가 마루가 버려졌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현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루도 끈떨어진 운동화 신세가 되었구나, 쯧쯔! ”

할머니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현수는 마루를 돌봐 줘야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영리한 개들은 주인에게 버림받으면 죽는대. 마루도 죽으려나 봐!”

옆집 아줌마가 낮에 한 말 때문에 현수는 마음이 다 졸아들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온통 마루 생각뿐이었다. 저녁상을 물린 뒤, 할머니는 손끝이 빨개지도록 마늘을 까고 있었다. 할머니의 눈치를 살피며 현수가 살금살금 부엌으로 들어갔다. 저녁 먹을 때, 할머니가 모처럼 구워 준 생선구이를 현수는 일부러 남겼다. 그걸 챙겨들고 현수는 재빨리 집을 빠져나왔다.

어두컴컴한 빈 집에 마루가 누워 있었다. 현수가 마당에 불을 켰지만 마루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야, 임마! 오늘도 밥 안 먹으면 넌 이제 진짜 죽어!”

현수는 생선을 마루 입에 갖다 댔다. 마루는 느리게 몸을 일으키더니 고개를 돌렸다. 현수는 고개를 돌리는 쪽으로 또 생선을 갖다 댔다. 마루는 그제야 냄새를 킁킁 맡더니 혀를 조금 내밀었다. 그리고는 현수 손에 들린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먹더니 나중에는 허겁지겁 먹었다. 그리고는 아침에 준 멸치와 밥도 남김없이 먹었다. 현수는 기뻐하며 마루를 끌어안아 주었다. 마루가 처음으로 꼬리를 천천히 흔들었다.

“어, 마루야! 이 형 보고 꼬리 흔드네? 아이, 착하지!”

현수는 계속해서 마루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현수는 빠꼼히 문을 열었다.

할머니는 마루에서 아직도 마늘을 까고 있다.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할머니가 벼락 같은 소리를 질렀다.

“오밤중에 어디 갔다 오는 기가?”

“앗, 깜짝이야! 저……그게 있잖아요! 그러니까, 마루가 밥을 먹었어요. 이제 살려나 봐요! 하하!”

현수가 한껏 너스레를 떨면서 크게 웃었다. 할머니는 현수를 노려보더니 한 마디 했다.

“그래, 니는 이 할매가 고생스럽게 마늘 까서 사다 준 생선을 개한테 갖다 주나? 철부지 자슥!”

“아니, 그게 아니고, 마루가 죽을 거 같아서요. 아이, 할머니, 죄송해요! 다신 안 그럴게요.”

현수는 헤헤거리면서 할머니 뒤로 돌아가 어깨를 주물렀다. 할머니는 긴 한숨을 쉬더니 잠자코 현수에게 어깨를 맡겨 주었다.

밥을 먹여 준 뒤로 마루는 현수를 주인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현수가 골목 끝에서 이름만 불러도 마루는 겅중겅중 뛰어왔다.

토요일, 학교를 마치자마자 현수는 마루에게로 향했다. 아이들이 축구를 하자고 했지만 현수는 거절했다.

골목 안으로 접어들자 왠일인지 큰기왓집 앞에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했다.

“당신이 무슨 권리로 이 개를 끌고 간단 말이가.”

할머니 목소리다. 현수는 급한 걸음으로 그리로 뛰어갔다. 어른들 사이로 자전거가 보이고, 자전거 뒤에는 커다란 철망이 실려 있었다.

‘개장수다!’

현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니, 할머니! 버려진 개니까 끌고 가지 주인 있는 개를 끌고 갑니까?”

개장수 아저씨가 할머니를 보고 으르렁거렸다.

“버리지긴 와 버려져! 이 개 우리집 개야!”

“할머니, 제가 이 동네 다니면서 며칠 봤어요! 이 개가 이 집에 혼자 있는 거! 이 집 이사 간 거 맞죠?”

현수가 어른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개장수 아저씨가 마루 목에 목줄을 걸고 있었다.

“안 돼요, 아저씨! 마루야!”

현수가 큰기왓집 감나무 가지가 흔들릴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현수를 보자 마루는 목줄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앞발을 쳐들고 뒷발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이거 보소! 이 개는 여기 있는 우리 손자 개란 말이다. 여그 사람들한테 물어보소. 안 그라요?”

할머니는 더 당당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요. 얘가 얼마나 정성껏 돌봤는데. 빨리 풀어 주세요!”

옆집 아줌마가 끼어들었다. 개장수 아저씨가 그제야 씩씩거리며 할 수 없다는 듯 목줄을 풀어 주었다. 묵줄이 풀린 마루가 현수에게 와락 안겨들었다.

“에이, 재수없어.”

개장수 아저씨는 자전거에 올라타고는 휙 가 버렸다.

“현수야! 마루 데리고 집에 가자! 나 원 별 희한한 일도 다 있네. 버려진 개라고 개장수 저그들 맘대로 데리고 가 팔아 버려도 된다 말이가.”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곤 팔을 휘휘 내저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구경꾼들도 흩어졌다. 얼떨떨한 채 마루를 안고 있던 현수가 옆집 아줌마에게 물었다.

“아줌마, 할머니가 지금 하신 말 들었죠?”

“현수야, 너, 나한테 고맙다고 해! 내가 얼른 달려가서 할머니에게 말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알겠지?”

옆집 아줌마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우쭐댔다.

현수는 옆집 아줌마를 향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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