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어린이 문화예술전시의 현황과 전망




                   어린이 문화예술전시의 현황과 전망

                   -  장화정 ) 삼성어린이박물관 선임연구원

   박물관과 미술관 등지에서 어린이를 주요 관람대상으로 인식하고 그들을 위한 전시공간을 할애하여 특별한 전시를 기획해 선보이는 일이 새로운 유행인 것처럼 최근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미술관들이 소장품을 통한 대중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어린이 관람객에게 관심을 가진 지 벌써 100년이 넘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서양의 교육 분야는 학습자의 경험을 중시하는 교육론을 주창한 존 듀이(John Dewey)의 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어린이박물관은 1899년 뉴욕의 브루클린미술관을 시초로 미국을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미술관이 문화와 예술, 과학 분야의 지식을 어린이에게 맞추어 전시하는 새로운 교육의 장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초기에는 전통적인 전시방법으로 미술관의 소장품을 그 지역 어린이들이 직접 관찰하고 만져 보기도 하면서 문화적 유산의 예술적 가치를 배울 수 있게 배려하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1920∼1930년대를 기점으로 보스턴, 인디애나폴리스, 디트로이트 등 주요 도시에서 같은 시기에 어린이박물관을 만들어 학교교육이 제공하지 않는 전시체험을 통해 어린이 문화교육을 담당하였다. 오늘날과 같은 현대적인 개념의 체험식(hands-on) 전시를 창안한 사람은 1960년대 보스턴 어린이박물관의 스폭(Spock) 관장인데, 과학자인 그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어린이를 위한 전시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제까지의 사물 중심의 전시에서 사람 중심의 전시로 그 핵심을 전환한 것이다. 이는 같은 시기에 미 서부 샌프란시스코에 오펜하이머(Oppenheimer) 박사가 설립한 엑스플로라토리엄(Exploratorium)과 함께 관람객을 전시의 주체로 참여하게 하고, 교육적 효과를 달성하는 새로운 전시문화를 세계적으로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부터 박물관과 미술관은 지식의 대중화와 평등화의 시대를 여는 교두보가 되었다.

체험식(hands-on) 전시란 관람객이 전시품을 직접 만지고 조작하면서 전시물의 반응을 살피거나, 소리와 냄새를 느껴 보고, 때로는 올라타 보기도 하면서 온몸으로 전시주제를 탐색하고 이해할 수 있게 관람객에게 친절하게 내놓아지는 전시연출 방식을 말한다. 체험식 전시품은 보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소모될 수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의 전시물은 이제껏 알고 있던 대로, 아름답고 격조높게 절제된 조명을 받으면서, 가지런하고 세련되게 정렬된 진열장 속의 보물도, 또는 절대로 만져서는 안 되는 주의팻말과 함께 손때 하나 묻지 않은 새하얀 벽에 걸린 채 품위있게 관람객들을 내려다보는 예찬의 대상이 더 이상 아닌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와 호기심으로 가득한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친절하게 맞이하며 눈맞추고 함께 노는 만남의 매개물인 것이다.

스폭 관장이 창안해 낸 체험식 전시품은 오늘날 어린이박물관 전시 스타일의 전형이 되어 1980년대에는 미국 전역에 300여 개가 생겨날 정도로 일반화되었고, 뒤이어 캐나다, 프랑스, 영국, 벨기에, 독일 등에 유사한 시설들이 생겨났다. 전세계적으로는 400여 개의 어린이박물관 또는 어린이를 위한 체험식 전시장이 등장한다. 아시아에서는 1990년대에 들어서 필리핀, 일본, 한국에 생겨났다.
미국의 경우, 어린이박물관은 대부분 지역사회에 기반을 두고 교사와 학부모 모임의 자발적인 의지 아래 지역유지나 사회기관으로부터 받은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민간주도 방식이다. 반면 프랑스의 어린이 문화시설은 국가의 탄탄한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공공적 서비스로서 더욱 진보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퐁피두센터(Centre Georges Pompidou)와 라빌레트 과학산업박물관(La Villette Cit?des Sciences et de l’Indu-strie)은 각각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육성된 대중 문화교육기관으로서 그 안의 어린이 전시프로그램도 역시 성공적인 운영사례로 꼽힌다.

20여 년의 역사를 지닌 퐁피두센터의 아틀리에 데장팡(Atelier des enfants)은 어린이를 위한 혁신적인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놀이식 체험 전시와 함께 운영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불과 80여 평 규모의 기획전시공간과 교육워크숍 부대시설을 가지고 있는 이곳은 복합문화기관인 퐁피두센터 안의 여러 기관 중 관람객을 가장 많이 동원하는 곳이다. 규모보다 알찬 내용으로 알려진 아틀리에 데장팡에서는 연 3∼5회의 어린이 대상 현대미술 체험전시를 비롯하여 순회전시, 교사를 위한 연수, 현대미술관에서의 작품감상과 조형작업, 국제적인 전시문화교류 프로젝트, 어린이를 위한 미술출판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라빌레트 과학산업박물관은 18∼19세기에 걸쳐 프랑스 파리 외곽의 빌레트 지역에 밀집한 약 17만평에 달하는 도축장 지역을 대규모 국립공원 단지로 개발하고 도축장 건물을 전면 개조해 만든 최첨단 체험식 과학문화센터다. 건축가 아드리앙 펭실베르(Adrien Fainsilber)가 물, 식물, 빛의 3요소를 컨셉트로 삼아 설계한 것으로도 유명한 이 곳은 박물관, 콘서트홀, 극장, 전시장 등을 두루 갖춰 규모와 문화프로그램의 질, 예술적인 전시연출기법 등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크게 각광받는 기관 중 하나다. 라빌레트 과학산업박물관의 연간 이용객 중 절반이 20대 이하의 젊은 층이며 이 중 어린이관람객은 전시장 방문객의 비율 중 가장 높게 나타난다. 박물관 안에 위치한 어린이 센터는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상설 전시장의 체험식 전시 컨셉트를 그대로 적용하면서, 1500평 규모의 단층 전시공간에 3∼12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과학의 원리, 인체탐구, 자연생태, 세계 문화, 커뮤니케이션 등을 주제로 매우 우수하고 흥미로운 전시를 제공하고 있다.

박물관 내 신설된 어린이 체험학습실
1995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어린이 대상의 체험식 박물관으로 개관한 삼성어린이박물관은 초기에는 미국 보스턴 어린이박물관의 자문을 받아 전시품을 수입하여 문을 열었으나 1996년부터는 연구진의 자체 기획과 국내 전시업체와의 제작협업을 통해 매해 3월 전시장 리노베이션을 해오고 있다. 특히 1996년에 신설된 사회와 문화비교 영역은 〈한국과 독일전〉(1996)을 시작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집〉(1999), 〈열두 상자와 떠나는 화폐여행〉(2002) 등의 전시를 선보였다. 특화된 주제별 접근을 통해서 어린이에게 세계문화의 보편성과 각 나라 문화의 독특함을 이해하고 발견하게 하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1999년에 신설된 아트갤러리 코너는 사람을 주제로 선별한 외국 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놀이를 통해 감상하게 하는 체험식 전시를 시작으로 2002년에는 〈그림동물원〉이라는 제목으로 국내 현대미술 작가들의 회화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를 창안했다.

최근 수년간 국내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전시가 최대의 호황을 맞은 듯이 보인다. 새로운 박물관의 건립 프로젝트들, 기존 시설의 확충과 개편 계획, 주요 전시장이나 문화센터에서 이벤트성으로 벌이는 기획전들, 심지어 상업 화랑가에서도 예술과 문화, 과학의 내용을 재미있게 다루며 어린이를 위한 체험식 전시를 줄지어 선보이고 있다.

특히 2005년에 개관할 예정으로 용산에 신축중인 새 국립중앙박물관은 약 500평 규모의 어린이 전용 전시교육 공간을 별도로 계획하여 고고학을 기본으로 한 독특한 체험식 전시를 초등학생 대상으로 준비하고 있다. 2003년 2월에는 국립민속박물관 내에 신축된 사회교육관에 80평 규모의 어린이전시실이 역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교과과정에 나오는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국립청주박물관은 1998년 7월에 어린이전시실을 160평 규모로 개관한 이래로 문화재 퍼즐, 전통민속악기 체험, 서당 체험 등 전시코너와 탁본과 도자공예 체험실을 운영중이며 2004년에 완공될 신축 사회교육관 내에 어린이 체험전시실을 설치할 계획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은 지난해 11월에 사회교육관 내에 80평 규모의 체험학습실을 열어 전라남도 문화유적을 소재로 한 어린이 대상의 문화 전시를 기획함으로써 지난 겨울방학에 지역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이와 같이 국립박물관에서 이루어지는 일련의 어린이 문화체험 전시 프로젝트는 국립박물관들이 대중을 위해 실시해 온 각종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이라는 기존 체계 안에서 볼 때에 매우 진일보한 실천임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문화재 답사 활동이나 조형워크숍으로 소화하던 프로그램 위주의 문화교육에서 한단계 나아가 최신식 전시 형태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육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립기관들이 갖고 있는 제한된 행정여건에서도 이러한 흐름을 좇아 나아가는 것을 보면 국내에서도 전통적인 전시문화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바뀌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이 시대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면서 수직적인 관제 문화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며 환기창의 구실을 제대로 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2000년 5월에 퐁피두센터 아들리에 데장팡의 교육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전문가 대상의 연수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으며,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는 2002년 5월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이너인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의 〈어린이를 위한 디자인세계전〉을 개최하는 등, 수년 전부터 실천되고 있는 미술관의 어린이 대상 기획전과 워크숍 프로그램은 국내의 크고 작은 기획행사 외에도 굵직굵직한 해외 전시와 전문가를 초청한 특별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여타의 주류 미술전시나 문화행사와 견주어 볼 때, 규모와 예산, 조직력 면에서 대등한 문화사업 품목으로 다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것은 다층적이고 다차원적인 문화생산과 소비, 예술 창작과 수용이라는 오늘날의 창조적 현장에서 더 이상 소외의 문제를 방관하지 않으려는 예술생산자와 예술행정가의 적극적인 의지의 소산임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한편 선험 사례를 통해 이미 확실하게 입증된 관객 동원의 성과 면에서도 어린이를 위한 전시는 매우 매력적인 전시 아이템으로 여겨지고 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 전시행사들을 접할 때에 마케팅 효과를 기대하고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또 다른 목표와 전략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즉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황금 올가미가 바로 ‘어린이를 위한 문화예술 전시’라는 새로운 사업단위에 내포되어 있음을 간파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진 듯이 보이는 이 새로운 사업은 어떤 강점을 지니고 있는가? 첫째는 기술적으로 항상 앞서가는 연출기법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전시문화를 선도하는 분야라는 점이다. 둘째는 관람객과 전시품(작품)의 적극적인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여 전통적인 전시문화에 내재된 소외의 문제를 해소시키는 힘을 지닌다. 셋째는 하나의 전시가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객에게 각자의 지적 수준에 적합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면서 가족 구성원 또는 동반한 관람객 서로간에 건강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끌어내어 마음을 치유하는 장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끝으로는 관람객에게 효과적으로 지식과 정보를 가장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을 개발함으로써 지식기반사회에서 고부가가치의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효과를 가진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장점을 지닌 어린이를 위한 전시 분야는 오늘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바로 ‘체험’이라는 의미의 일반화와 확산이 그것이다. 어린이박물관 혹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 분야의 전시들은 이제 체험식 전시라는 방법 하나만으로 여타의 유사기관과 성인 대상의 전시와 차별화되던 과거와는 상황이 달라졌음을 감지해야 한다. 직접 체험이 적극적 소통방법으로서 비단 전시의 장이나 어린이를 위한 교육과 문화에서만 강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윤추구를 목표로 한 매정한 비즈니스 세계나, 예절과 에티켓을 강조하는 고전적인 박물관에서도 체험의 중요성은 간과될 수 없는 상식이다. 다만 그 연출 방식과 전시된 대상물과 감상하는 주체자의 관계를 설정할 때에 어떠한 맥락에서 체험과 소통의 문제를 다루는지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어린이의 본질이 꽃피는 문화와 예술
한편 미국식 어린이박물관의 철학적 근간이 되는 경험 중심의 교육론은 20세기 초 순수예술 분야에서도 일련의 모더니즘 계열 미국작가와 평론가 그룹이 이를 심도 있게 받아들여 ‘경험예술론’의 가치를 예술창작의 주요 화두로 삼도록 자극하였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과 더불어 추상표현주의 1세대를 대표하는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은 행위과정 자체, 즉 작가 자신의 창작체험을 중시하는 회화 방식을 전개하였는데, 예술행위에서 작가의 경험(또는 체험) 세계는 사실 창작의 핵심에 놓인 실존의 문제일 것이다. 화가가 창작 체험의 즉흥성에서 얻을 수 있는 강렬한 에너지를 작품에 담아 내려는 노력을 상상하면서 어린이가 흥미로운 전시품과 직접 교감하는 순간의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와 비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이 순간 어린이가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자극은 학습으로 바로 연결되지는 않더라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 어린이 스스로 구조화한 자신의 정보 저장고에 자리할 것이다. 이러한 대상과의 감각적인 직접 접촉의 중요성은 정신의 극단을 추구하는 예술행위나 교육의 효과를 강조한 어린이 대상의 전시에서나 그 본질적인 측면에서는 동일하다는 게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다.

어린이를 위한 문화예술 전시에서 어린이를 단순한 교육대상으로서 다루어 온 기존 사고를 더 이상 답습해서는 안 된다. 중심 기관의 부속시설이나 간헐적으로 치르는 흥미 위주의 이벤트성 전시행사 정도로는 새로운 도전을 극복할 수가 없다. 체험이 강조되던 이전의 전시 패러다임을 뛰어넘어 관람객이 감지하는 마음속의 교감이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해석의 다양성을 열어 두는 열린 주제의 전시가 더욱 많이 연구되어야 하며, 깊이 있는 본질적인 접근이 있어야만 문화의 개념과 예술의 의미를 어린이 중심으로 펼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라는 존재는 예술의 본질과 닮은점이 매우 많다. 예술의 진정한 가치가 혁신성과 창조력의 발현, 동시에 인간성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발견에 있다면 어린이는 이를 일생 동안 삶 속에서 실천하는 살아 있는 창작행위자 자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새로움이 존재의 바탕이 되는 예술과 어린이의 만남이 다시 한 번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어린이, 청소년, 어른을 굳이 구분할 것 없이 모든 인간, 모든 인류를 포용하는 전시가 새롭게 모색되어야 할 시점이다. 일 년에 딱 한 번 5월에 약속이나 한 듯이 박물관과 전시장, 문화센터에서 보여 주는 일회성 전시행사가 아닌 매일의 삶 속에서 숨쉬는 어린이를 위한 문화와 예술, 인간을 위한 문화예술 현장을 꿈꾸어 본다. 어른보다 몸집이 작은 어린이에 대한 물리적 배려, 어른처럼 규정된 사고에 길들지 않은, 신기할 만큼 예술적 창조력을 발휘하는 어린이의 본질을 항상 탐구하는 것. 이로부터 출발하여 사회에서 통념적으로 규정해 온 장르와 대상의 구분 없이 어우러진 문화와 예술을 꿈꾸는 것이 너무 무모한 일일까? ■

 



월간 미술 발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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