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너무 시를 잊고 살았다.

한참

아주 한참

예전엔 밥사먹을 돈으로 시집을 사모을 때가 있었다. 외근나와서 서점에 안자 시집한권 일고 들어갈 때가 있었다.

지난간 20대의 일이다.

20대 시인아닌 사람이 누가 있으랴

30살이 다 되어가던 선배가 말했다.

서른이 넘어서도 시를 쓰고 싶어. 그럴 수 있을까?

서른이 훌쩍넘어버린

고등학교 때 사모하던 국어선생님께 말했다.

20때 시인아닌 사람이 없대요

제가 지금 시를 좋아하고 시인이 되고 싶어하는게 20대라 그런걸까요?

그런데 내 말에 대한 답보다는 자신에 대한 반성이 엿보였다.

떨어진 대학원 진학면접시험에

교수가 물었다

왜 대학원엘 진학하려느냐고

시를 쓰고 싶어서라고 했다

시인이었던 교수가 말했다.

시는 공부하지 말고 마음으로 느껴서 쓰라고

나도 그렇고 싶었고 그때까지 그래왔다.

그러나 하찮은 학벌이었던 내게

만났던 시인들과 시인을 꿈꾸는 많은 이들은

그 사람의 시보다 그사람의 배경을 먼저 보았다,

그 사람이 어느 학교를 다니고 ㅡ그 사람이 어느 과이고

20대 초반 그렇지 못한 내가 참시를 쓰려면

참 학력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마음으로 시를쓸때

많은 사람들이 아는 척을해왔다

잡지 100권만 사면 등단할 수 있다고 제의도 했다

국어 교과서에서 시험문제로 외우던 시인의 추천을 받아준단다.

동인 시인들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어리지 않니?

그때 내나이 막 23이었다.

나는 명예가 싫었다.

누구나 다 알아주는 참 시를 쓰고 싶었다

마음으로 써도 알아주지 않는 시에 부족한 것은 내가 공부를 제대로 못한 탓이라 여겼다

그런 나를 아리송하게 만든 것이다.

시인이었던 교수가

대학원은 공부를 하는 곳이지 시를쓰는 곳이아니라고 했다.

나는 면접을 제대로 치를 수 없었다.

시를 쓰고 싶어하면서 내가 쓰고 싶은 논문은 시속의 화용론이었다.

너무 어려운 주제였다.

주워들은 짤막한 지식으로 터무니 없는 꿈이었다.

나는 아무도 예상 못한 과로 편입했다.

철학과

철학과에 다니며 나는 시인이었던 교수 과목을 수강했다.

교수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시창작 시험이 있었다.

그자리에서 좋은 시를 골라내었다.

그리고 내 시가 골라지고

교수는 내 시를 낭독하였다.

그리고 연신 감탄사를 내뿜었다.

내가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상상도 못한 구실을 갖다 붙여 경험에 불과한 내시는 엄청난 시가 되어 있었다.

그런게 마음으로 쓴시란 말인가?

그리고 나는 시를 젖혀 두었다.

그 후 몇번 들먹거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나는 맘속으로만 종알거렸고

조알거림은 입김으로 바람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잊혀졌다.

그 오랜 기억 속에서 알라딘 지인의 창작 시를 접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박상률 선생님의  나는 아름답다라는 책 속에서

다시금 시를 꿈꾸던

아무 댓가없이

시를꿈꾼던 시절이 떠올랐다

박상률 선생님은 작가 섭외를 위해 전화드리면서 무턱대고 썼던 시를 메일로 안겨드리자

만나는 날 내 시를 이야기 해 주시기 위해 한시간이나 일찍 오신 분이다.

그분은 모를 거다

그때 내가 얼마나 시에 상처입고 시를 쓰는 이들에게 실망하였었는지를

그런데 내게 얼마나 감동을 주었는지를

그 감동이 다시 보푸라기 일듯 일었다.

그래서 뒤적거려본 컴퓨터에는 내시가 하나도 없었다

언제 홧김에 지워버렸나 보다

갑작스레 다가온 엄청난 이별

새삼스럽지도 않은 내가 썼던 흔적의 부재가

너무나 시리고 쓰라려서 허하고 허했다

밤새 내가 즐겨 찾던 카페와 블로그를 헤매다 다시 발견한 자취

그래도 내가 나를 조금은 사랑했구나

안도의 숨이 찾아왔다

그래서 여기 서재에 내 예전 어린시절의 보금자리를 다시 한번 만들어주려한다.

많이 유치하고 많이 서툴렀다.

하지만 그냥 그대로 추억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