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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천천히 천천히 ㅣ 뜨인돌 그림책 16
케이트 뱅크스 지음, 허은실 옮김, 게오르그 할렌슬레벤 그림 / 뜨인돌어린이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 집에는 옥탑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어제 저녁 옥상에 올라가려고 하니 먼저 앞장서서 계단을 오른다. 세살 내년이면 4살이 되는 아이. 아이는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간다.
엄마, 나 안잡고도 올라갈수 있어요. 이렇게 빨리요. 내심 대견하고 놀라면서도 엄마인 나는 안절부절이다. 잡고 가라. 한칸씩 천천히 가라. 안 돼. 기다려. 엄마랑 같이 가야지. 엄마 손 잡고.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어릴 적 내 엄마가 늘 잔소리를 했고 나는 제발 나를 내버려두었으면 했다. 그리고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잠시 그때가 떠올랐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아기 여우는 늘 스스로 해 보고 싶어서 엄마 아빠에게 묻는다. 하지만 대답은 안돼 기다리렴.
아기 여우의 답답함, 조금함, 호기심을 알지만 엄마 아빠 여우는 걱정된다. 왜 안 그러겠는가?
안 돼 라는 말 속에 얼마나 가득한 사랑이 들어있는지 어릴 땐 몰랐다.
이 책을 보며 아이가 자라는 순간순간이 떠오른다. 미끄럼틀을 태우면서 차마 손을 놓기가 겁났을 순간이 있었다. 그네를 태우면서도 혹여 아이가 그네 줄을 꼭 안잡아 떨어지면 어쩌나 싶었다.
친구는 아이가 네발 자전거를 타다 바퀴 두 개를 떼어내며 엄청 넘어지겠지. 그럼 울겠지. 어쩌나 하며 마음을 졸였는데 아이는 두발자전거를 마치 전부터 익숙하게 탔었던 듯 쌩하고 달려가더란다.
천천히, 천천히. 그건 바로 부모의 마음이다.
아이는 마음이 급하다. 기고 싶고, 걷고 싶고 달리고 싶다. 뭐든 자유롭고 싶다.
우리 아이는 요즘 툭하면 엄마 나 봐봐! 하며 재미있는 표정 재미는 동작을 한다. 웃어주면 좋아라하며 자꾸만 계속 한다. 귗낳아도 봐달라고 하는 날 얼마나 길까 싶어 열심히 보고 열심히 칭찬해준다.
요즘은 아이에게 이야기 한다.
스카이 씽씽을 타고 싶다는 아이에게 4살이 되면 하자. 태권도를 하고 싶다는 아이에게 5살이 되면 하자. 스케이트를 타고싶다는 아이에게 5살이 되면 하자. 그럼 아이는 냉큼 고개를 끄덕인다. 하고 싶은 것을 기다려서 하는 재미를 아는 아이. 그래서 기다린 만큼의 설레임을 가지고 아이는 얼마나 재미나고 신나게 그리고 기대에 벅차서 할까?
고운 그림책 한권을 만나면 엄마로서 독자로서 그림책 마니아로서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에 저축을 한 듯 든든하다. 이 책이 그렇다. 흔해 빠진 아크릴 화와 수채화 속에서 정성스런 유화 작품을 만나 새로운 전시회를 보는 느낌이 든다. 아이에게 다양한 그림 화법을 보여 주고자 했는데 참 좋은 기회다 싶다.
글과 그림의 조화는 그림책에서 천상의 조화와 같다.
미국의 우수 서평잡지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 2007년 선정작이라는데 왜 그런지 그 이유는 책을 보면 절로 알게 된다.
기다리자, 안 돼. 엄마랑 같이 하자. 조바심일 수 있는 말. 하지만 사랑이 가득한 말. 나는 오늘도 아이에게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