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올 겨울은 유난히 춥다. 

날씨가 추워서 일 수도 있지만 여러가지 어려움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래서 툴툴거리기도 하고 가끔 하늘을 원망하기도 하고 엄마 못듣게 엄마를 부르기도 하면서 올 한해를 흘러 보냈다. 

그냥 이시간이 빨리 가주기만 바랐다. 

완득이라는 책 제목은 벌써 여러 달 전 들어 이미 알고 있는 제목이었따. 

그냥 이름이 그저 그랬고 주먹을 불끈 움켜진 만화같은 표지는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 먼저 기억을 가져다 준 아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 작가의 책이 바로 완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냥 뭐 문학상 수상작이니 모범생같은 책이겠거니 하지만 그래도 궁금하니 한번 읽어보자 해서 연말 뒤늦게 정말 뒷북치듯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내 예감이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은 모범생같은 책이 맞다. 

외국인 노동자의 불법체류에 대해, 가난한 아이에 대해, 세상의 차별에 대해 그리고 청소년들의 생활에 대해 이젠 단일민족이 아닌 다원화 민족으로서 베트남 어머니 이야기 등 이슈 될 만한 것은 다 집어넣어 잘 비빈 비빔밥 책이다. 

그런데 내 틀린 예감은 그냥 그런 책이 아니란 거다, 그냥 내키지 않다고 내던져 둘 책은 아니었다. 

나는 올 겨울 춥고 떨리고 무섭기도 했지만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고 상황을 지내온 완득이는 더 추울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유쾌하고 퀘퀘한 방안 공기를 환기시키듯 살아내기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힘에 나는 놀랄 뿐이다.  

나는 내 상황에 유쾌하게 넘기지 못하고 그저 잊은 척했다. 하지만 당당하면서도 당차게 이겨내는 법을 완득이에게 배운듯하다.

아이를 재우고 책을 읽는 시간 킥킥거리다 아이가 깨서 다시 토닥거리기를 여러번.  특히 완득이가 여자 친구 정윤하와 키스를 하고 나서 실실거리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 마음이 이쁘고 사랑스러워서 내내 웃음이 나왔다. 완득이는 그렇게 순수하고 이뻐서 안아주고 픈 아이다.

그렇게 웃고 그렇게 공감하고 그렇게 다음 내용을 기대하고 뻔한 내용이지만 봐 넘기다 보니 내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되었다. 

삶이란 무엇일까? 어디로 와서 어떻게 흘러가는 것일까? 이 예츨 불가능하고 그래서 더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세상에 나는 어렵다고 움츠리고만 있었던 건 아닐까? 

내 삶에 난 얼마나 쿨하게 대처하는가? 

동주를 죽여달라고 기도하던 완득이. 하나도 새롭지 않은 내용이다.  죽여달라고까진 않았지만 학창시절 담임을 욕하고 원망하며 살지 않은 대한민국 청소년 있으면 나와보라고 햇! 할만큼 아주 익숙하다. 

내 고등학교 시절은 3년내내 마녀담당이었다. 

한마녀가 내내 담임이 아니라 학교 3대 마녀가 돌아가면서 담임을 맡았고 우리반 등교 시간은 새벽 6시에 종결. 단 1초라도 늦으면 긴 손가락으로 나가란 표시를 했고 그뒤 9시가 될때까지 복도에 서서 교육방송을 들어야 했다.  

나는 성적이 떨어지자 잠을 자도 깨우지 않아도 될 학생이 되어보기도 했고 선생님이 좋아서 숱한 밤 긴긴 편지를 쓰고 보내기도 하고 상자에 양식을 쌓아두든 담아두기도 했다. 

도시락 반찬이 새서 공책이 얼룩덜룩해 지기도 했고 담을 넘어 야자를 도망치기도 했던 시절 학교를 다닌 나도 요즘 처럼 베프와 암호같은 대화를 주고받은 요즘 아이들에게도 완득이는 익숙하면서 친숙하지만 또한 실상 이런 친구를 옆에서 찾으려 눈을 씻어도 볼 수 없는 아이이기도 하다. 

동주같은 담임이 한번이라도 있다면 난 달라졌을까?
 

말을 하지 않는 아이. 하루종일 한마디 않하고 가슴으로 삭이는 아이 완득이. 

그러나 책을 보면 그 아이 완득이의 정신 상태는 지금의 나를 위로할 정도로 건전하고 바람직하다. 

시간이 흘러 베트남 어머니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난쟁이 아버지의 에술을 받아들이고 난닝구 삼촌을 아끼고 죽여달라고 기도했던 선생님을 마음에 담아두면서 그냥 그런 완득이 성장이 나날이 내 정신을 앞서나가는 듯하다. 

정말 모범생같은 청소년 소설이다. 

성장시킬 건 시키고 설득시킬 건 설득시킨다. 무엇보다 그 방법이 유쾌 통쾌. 

여자 작가이면서 싸움의 기술에 대해 어찌 아는지 싶을 정도로 상세한 설명에 놀랐고 진부 하다싶은 삶의 철학이 감동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난쟁이를 이야기 속에서 불러온 건 작가의 도전이다. 

난쟁이 아빠하면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내용일지 뻔히 예감이 오는 상황에서 김려령 작가의 승부수는 어쩌면 패를 미리 알듯 과감하게 펼쳐졌고 승리했다. 

이제 청소년들은 조세희 보다 김려령에 더 익숙하고 조세희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영이 보다 완득이에 더 힘을 얻을 것같다.  

나를 키운건 8할의 바람이라 했떤가? 완득이를 키운 건 8할의 기댈 곳없는 가난과 어려움들. 

지금의 나는 무엇이 키우고 있는 걸까?

어렵고 힘들었던 그래서 제발 빨리 흘러가라 하고 여러번 외치던 한해에 내 삶에 다시금 용기를 뿌려주는 소금같은 이야기 완득이. 고맙다. 자식아 하며 어깨한번 툭 쳐주고 픈 완득이. 

가슴이 후련해지고 뿌듯해진다. 

작가의 다음 작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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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12-31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멋진 리뷰예요.
오타만 수정하면 우수리뷰를 바라봐도 될 듯한...

하늘바람 2008-12-31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유 창피하네요 님 흑흑

세실 2009-01-03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득이 부끄럽게도 전 별 감흥을 받지 못했는데 님 리뷰 읽고나니 생각이 조금 달라집니다.
저와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에 대해서도 관심갖는 한해 되야 겠습니다.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용~~

소나무집 2009-01-08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재미있게 읽었어요.
중학생 조카에게 선물도 했지요.

하늘바람 2009-01-08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세실님 제가 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