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내게 - 2023 아침독서추천도서 모두를 위한 그림책 49
레베카 바흐-로릿첸 지음, 안나 마르그레테 키에르고르 그림, 손화수 옮김 / 책빛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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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림책을 보다가 가끔 슬플 때가 있다. 글과 그림이 맞물려서 더 그럴 수도 있는데 이 그림책은 갑자기 컥 하고 목이 막혔다.

글도 거의 없는 이 책은 심지어 두껍기까지 하다. 여기 모든 것이 잘 정리된 가지런한 책상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지만 어릴 적 내 책상이 그랬다. 내가 정리를 잘해서가 아니라 정리가 되어야 하는 부모님이 계셔서였고, 나는 정리하는 것이 정리가 아닌 내 놀이였다. 어지럽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 그게 정리였다.

날마다 혼자였다.

당연히 혼자말을 자주 했다. 형제 없는 아이의 특징이기고 하다.

이 닦아야지, 차마셔야지, 책 읽어야지,

들어줄 이, 대꾸할 이 없는 적막한 공기에 대고 메아리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당연히 들어줄 사람이 있었다. 완벽하게 혼자산 건 아니니까.

엄마는 어린 내 이야기는 관심이 없었고 아빠는 바빴다.

싸울 형제도 없다는 건 잔인한 일이었다.

단추, 색연필, 크레파스, 물감, 연필, 책

그런 것들을 순서대로 크기대로 색깔대로 날마다 바꾸는 걸로 심심한 시간을 보냈다.

그림처럼 좋은 집은 아니었지만 포도나무 감나무도 있었고, 온갖 꽃들이 자라는 곳.

작고 작은 단독주택에서 나는 마당에서 앉아 놀고 책을 보며 놀고 하늘 보며 놀고 빈둥거리며 지냈다. 할게 없었다.

화단에 꽃을 따서 말리고 다 말리면 앨범에 넣어 보관했다.

그 앨범은 어디갔지?

봉숭아꽃 말리면 꽃 나비같았는데, 하나하나가 다 작품같았는데

소중히 여기던 그 마음이 어디갔을까

책이 많은 게 소원이었고, 저리 책이 많지는 않았지만 읽은 책을 읽고 또 읽고 하면서 늘 책만 읽었다.

나도 너무나 바랬다. 어느 날 갑자기 달라지길. 달라지길.

누군가 오길, 누군가 나와 놀아주길.

그러다 정작 누가 오면 잘 어울려 놀지 못했다.

아빠가 함께 공기를 해주었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혼자 책만 보는 시간을 지내고 그래서 지금 글을 쓴다는 시간이 온 걸까

혼자 도서관을 만든다고 서점을 만든다고 하는 시간을 지나 아직 나는 서성이는 걸까?


지금 나는 이렇게 산다.

어지럽고, 정신없다.

이러고 잠이 오냐는 말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남들이 볼땐 엉망진창일수도 있는 공간과 시간을

웃으며 보낸다

나의 과제는 내가 내 아이의 곰이 되는 거다

편안하고 떠나지 않는 곰




두꺼운 페이지도 그렇지만 매우 두꺼운 종이에 정성껏 만드신 책빛 출판사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한장한장 연필선이 아름다운 그림이지만 제작비도 많이 들고 요즘 처럼 책이 많이 안팔린다는 시기에 쉽지 않은 선택을 하셨으리라 생각된다.

그림은 연필스케치 느낌이라 따라그리고 픈 마음이 심쿵심쿵하다.

어느날 문득 내게 왔습니다
처음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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