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란 하나의 면면히 흐르는 리듬이다. 절단된 데는 정이 없다. 비정의 세계다. 정이란 시간과 공간에 뻗쳐 무한히 계속되는 생명의 흐름이고, 자연과 역사와 인간의 유기적인 유? 이 정의 구상이 곧 미다. 수천 년 전의 작품, 수만 리 이역의 작품이 우리에게 공명공감을 일으키는 것은 그와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유대가 있기 때문이다. 수명에는 한계가 있으나 생명에는 한계가 없다.-86쪽
더욱이 글을 쓰는 사람도 평소에 文情과 文心을 기르지 않고 붓끝의 재주에만 맡기면 그 문장에 품위와 진실이 깃들이기 어려울 것이 아닌가....... 글을 사랑하는 사람은 문정과 文思에서 잠시도 떠나지 아니함으로써 속기를 떨치고 文雅한 품성을 기른다. 여기서 비로소 아름다운 글이 써진다. 그러기에 한 편의 명문은 10년의 교양에서 온다고 했다.-93쪽
왜 도연명의 황국이며 주렴계의 홍련이었을까. 날마다 일어나고 되풀이되는 신변잡사라고 그저 번쇄하고 무가치하다고만 할 것인가. 이런 것들을 다 떼어낸다면 인생 백년에 남은 것이 무엇인가. 생활 속에서 생활을 찾지 아니하고 만리창공의 기적이나 천재일우의 사건에서 생활을 찾으려는 것도 공허한 것이 아닌가. 더욱이 분분한 市井의 시비, 소잡한 정계의 동태, 불어오는 사조의 물거품, 그것만이 장구한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147쪽
저속한 인품의 바닥이 보이는 문필의 가식, 우러날 것 없는 재강을 쥐어 짜낸 미문의 교태, 옹졸한 분만, 같잖은 점잔, 하찮은 지식, 천박한 감상, 엉뚱한 기상, 이런 것들이 우리의 생활을 얼마나 공허하게 하며, 우리의 붓을 얼마나 누추하게 하는가.-148쪽
'절실'이라 두 자를 알면 생활이요, '진솔'이란 두 자를 알면 글이다. 눈물이 그 속에 있고, 진리가 또한 그 속에 있다. 거짓 없는 눈물과 웃음, 이것이 참다운 인생이다. 인생의 에누리 없는 고백, 이것이 곧 글이다. 정열의 부르짖음도 아니요, 비통의 하소연도 아니요, 精을 모아 奇를 다툼도 아니요, 要에 따라 才를 자랑함도 아니다. 인생의 걸어온 자취 그것이 수필이다.-149쪽
위정자의 최대 무기는 권력이다. 권력의 힘이란 시랑猜狼과 같은 것이다. 지도자의 최대 무기는 덕행이다. 덕행의 힘이란 물과 같은 것이다. 지성인의 최대의 무기는 발언이다. 발언의 힘은 추상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지성인의 발언에는 타협이 있을 수 없다. 확고한 신념이 아니면 발언할 수 없다.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침묵의 권리와 사색의 여유와 불협조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발언은 천근의 무게가 있고 흉중의 보도寶刀가 항상 보류되어 있는 것이다.-175쪽
내 생각과 서로 드나들면, 비로소 읽을 수 있는 내 친구의 글이다. 예상보다 항상 새롭고 절실하면, 이는 上手의 글이라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글이다. 말이 항상 의표를 찌르고 진실이 육박하며, 미지의 여운이 심층의 저변을 울리면, 이는 범상치 아니한 명문일 것이다. 나를 기쁘고 즐겁게 하기에 족한 글이다....... 음악인가 하고 읊어 보면 회화인 양 나타나고, 진리인가 생각하면 허망인 듯 잡히지 않는 기환奇幻, 사색의 무지개가 걷잡을 수 없이 피어나다가 책을 펴면 모든 것이 자취를 감추고 옷깃을 바로 하게 하는 글, 모르면서도 매력에 사로잡혀 놓지 못 하는 글, 그런 글이 있다면 일생을 송독誦讀하고도 남음이 있는 기문이니, 대소심천大小深淺의 차가 무량으로 크기 때문이다.-204쪽
"음식의 맛의 생명의 염담鹽淡 맞추기에 있다고 하셨는데 문장에서 염담이란 무엇에 해당합니까?" "문장의 농담濃淡이지. 문장의 농담이 없으면 정물화에 음영 없는 것과 같고, 음악에 박자 없는 것과 같지. 문장은 이 농담에 의해서 함축도 있고 여운도 있고 기환도 있고 내재적인 리듬도 있어 비로소 시취詩趣를 갖게 되는 것일세. 고인이 농담 없는 문장을 기리켜 몰골도沒骨圖라고 풍자한 이가 있어. 우리 모양으로 문장이 미숙하고, 또 배워보려는 사람들은 이 깍두기에서 얻는 바가 있을 것일세."-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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