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심지의 성격은 검소하고 절약하며 항상 마리(麻履, 삼으로 만든 신발)를 신었으며 부사(府舍)는 낮고 누추하였고 일찍이 지붕을 씌우지 않았다. 형벌에 관대하게 하고 부세를 가볍게 하여 공사(公私)가 부유하여 경계 안이 편안하였다.

화원(華原, 섬서성 요현) 도적의 우두머리인 온도(溫韜)가 차아산(嵯峨山, 섬서성 경양·순화·삼원의 세 현의 경계)에서 무리를 모아 옹주(雍州, 섬서성 서안시)의 여러 현을 갑자기 노략질하였는데, 당(唐) 황제들의 여러 능이 파헤쳐서 거의 두루 널려있었다.

촉주는 그가 공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원망하는 것이라고 의심하여 검교태보(檢校太保)를 덧붙여 주었으나 굳게 사양하고 받지 않고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청렴한 사람은 만족하여 걱정하지 않고 탐욕한 사람은 걱정은 하나 만족하지 못한다오. 나는 소인으로 지위가 여기까지 왔으므로 만족하는데 어찌 나아감을 구하기를 그침 없이 할 수 있겠소?" 촉주가 그 뜻을 가상히 여겨 이를 허락하고 상을 내리고 또 덧붙여 주었다.

황제는 구언경이 재간을 가지고 공로를 세워서 오랫동안 주위에 두었는데, 사사로이 재물을 가지고 죽은 사람 집에 보내어 죄를 대속하게 하면서 명령하였다.

마침내 침실에서 조서를 선포하고 풍행습에게 말하였다. "공은 스스로 몸을 잘 보양하고 업무는 보지 마시오. 이는 자손의 복이오."

황상이 말하였다. "이 사람들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지만 다만 지금 폐정을 개혁하는 초기라서 그들을 금액(禁掖, 금중)에 두고 싶지 않으며, 또 그곳에 머물게 하는 것이 좋겠으니 이 뜻을 가지고 깨우쳐주기 바라오."

진왕이 말하였다. "우리는 외로운 군대이고 멀리서 왔고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 시급하며, 삼진(三鎭)의 군대는 까마귀가 모인 것 같으니 속전(速戰)하는 것이 유리한데도 공은 마침내 군사를 누르며 신중을 기하려고 하는데 왜 그렇소?"
주덕위가 말하였다. "진(鎭)·정(定)의 군사는 성을 지키는 데는 뛰어나지만 야전(野戰)에는 부족합니다. 또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은 기병인데 평원인 광야에서는 유리하여 말을 달려 적진에 돌입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적의 보루의 문을 막아버리면 기병은 그 발을 펼칠 곳이 없어지고, 또 중과부적(衆寡不敵)이고 저들에게 우리의 허실(虛實)만 알게 한다면 사태가 위험해집니다." 왕이 기뻐하지 않고 물러나 장막 속에 누웠지만 제장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주덕위가 고삐를 잡아당기며 간하였다. "양 군사의 형세를 보니 수고로움과 평안함으로 그들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이나 힘을 가지고서는 이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들은 군영에서 30여 리 떨어져 있어서 비록 마른 양식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역시 먹을 겨를이 없으며, 해가 기울어진 다음에는 굶주림과 목마름은 속에서 압박하고 화살과 칼날은 밖에서 엇갈려 사졸들은 피로에 지쳐서 반드시 물러날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우리는 정예의 기병을 가지고 그들을 올라타면 반드시 크게 승리할 것입니다. 지금은 아직 아니 됩니다." 왕이 마침내 중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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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진이 말하였다. "무릇 싸움에서 두려워하면 승리하고 교만하면 패배합니다. 지금 회남(淮南)의 군사가 곧장 우리 성을 향하였다고 하여도 이는 교만하여서 적을 경시한 것이지만 그러나 왕께서 두려운 기색이 있으니 우리는 이로써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표문을 올려서 말하였다. "신의 관직은 대신에 참여하였고 가깝기로는 맏아들이었으며 국가의 일은 저의 기쁨과 걱정은 같이 하였습니다. 지금 아직 저이(儲貳, 태자)가 결정되지 않았으므로 반드시 재앙의 실마리가 생길 것입니다.

진왕이 제장들과 더불어 모의하여 말하였다. "상당(上黨, 산서성 장치시)은 하동(河東)의 울타리로 막는 것인데 상당이 없어지면 이는 하동도 없는 것이다. 또 주온(朱溫)이 두려워한 사람은 오직 돌아가신 왕뿐이었는데, 내가 새로 옹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동자(童子)로 생각하여 군사들을 훈련시키지 않으니 반드시 교만하고 나태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만약 정예의 군사를 선발하여 배나 빠른 속도로 행군하여 그곳에 가서 그들이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나타난다면 그들을 깨뜨리는 것은 분명하다. 위엄을 얻게 되고 패권을 확정하는 것이니 이 한 번의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된다."

무리가 모두 원하지 아니하면서 말하였다. "진인(晉人)들의 이긴 기세가 바야흐로 예리하며 또 무리의 수가 적어서 대적할 수 없습니다."
우존절이 말하였다. "위험한 상황을 보고서도 구원하지 못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적군의 강함을 두려워하여 그들을 피한다면 용기가 아니다." 드디어 채찍을 들고 무리를 이끌어 전진하였다.

황제는 다시 종척(宗戚)들과 더불어 궁중에서 음주를 하고 도박을 하였는데, 술이 무르익자 주전욱이 홀연히 옥을 던져서 동이를 깨어 술이 모두 흩어지게 하면서 황제를 흘겨보며 말하였다.
"주삼(朱三)이, 너는 본래 탕산(?山, 안휘성 탕산현)의 일개 백성이었는데, 황소(黃巢)를 좇아 도적이 되었고, 천자는 너를 기용하여 사진(四鎭)절도사로 삼아서 부귀가 극에 달하였는데, 어찌하여 하루아침에 당가(唐家)의 300년의 사직을 멸망시키고 스스로 제왕을 칭하는가? 행위로는 마땅히 족멸당할 것이거든 어찌하여 도박을 하려는 건가?"

황제는 기분이 좋지 않아서 해산하였다. 을축일(19일)에 유사에 명령하여 천지·종묘·사직에 고(告)하게 하였다. 정묘일(21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주(州)·진(鎭)에 널리 알렸다. 무진일(22일)에 크게 사면하고 연호를 고쳤으며, 국호를 대량(大梁)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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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연이 말하였다. "무기란 흉한 그릇이어서 백성을 해롭게 하고 재물을 소모시키는 것이니, 끝까지 다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양(梁, 주전충)과 진(晉, 이극용)의 호랑이들이 싸우니 세력이 양립할 수 없는데, 만약 합병하여 하나가 되어서 군사를 일으켜 촉(蜀)으로 향한다면 비록 제갈량(諸葛亮)이 다시 태어난다 하여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갑오일(9일)에 소해는 같은 서열에 있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말씀을 올렸다. "시호(諡號)의 좋고 나쁜 것은 신하들이 사사로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선 황제의 시호는 대부분이 지나치게 아름답게 한 것을 찬미한 것이니, 빌건대 다시 상세히 의논하게 해주십시오."

애초에, 전승사(田承嗣)는 위박(魏博, 치소는 위주, 하북성 대명현)을 진수하면서 6개 주(州)의 날래고 용감한 장사 5천 명을 가려서 모집하여 아군(牙軍)으로 삼았고, 그들에게 공급하는 것과 하사품을 두텁게 주면서 자기를 지키게 하는 심복으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부자간에 서로 계승되어 친한 무리들이 아교로 붙인 것처럼 견고해져서, 세월이 오래되면서 더욱 교만해지고 전횡하였으며, 조금이라도 뜻과 같지 않으면 번번이 이전의 통수를 족멸하고 이를 바꿨는데 사헌성(史憲誠) 이래로부터 모두 그들의 손에 의해 옹립되었다.

무릇 천하를 위하는 자는 작은 원망(怨望)을 돌아보지 말아야 하고, 또 저들이 일찍이 우리들을 곤란하게 하였지만 우리들이 그들의 위급함을 구원해 주는 것은 덕(德)으로 그들을 품에 안는 것이어서 마침내 한 번의 거동으로 명분과 실리에 부합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다시 떨쳐 일어나게 될 시기이니 잃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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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천하를 다스린다는 사람은 만국이 모두 그에게 눈과 귀를 집중하고 있는데, 어찌 기민한 술수를 가지고 속일 수 있겠습니까! 정성으로 밀어주고 바르게 대해주는 것만 같지 못하니, 비록 매일 그것을 계산해보면 부족하나 해를 단위로 그것을 계산한다면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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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주는 마땅히 그들과 정사(政事)를 모의하고, 사대부를 진퇴시키며, 위엄과 복(福)을 갖게 하여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돌아 볼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혹 죄를 졌는데 적다면 그에게 형벌을 내리고, 크다면 그를 주살하며 관대하게 용서를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였다면 비록 그들에게 전횡하라고 시키더라도 어느 누가 감히 하겠습니까! 어찌 착하고 착하지 않은 것을 살피지 않고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리지 않으며, 풀을 깎고 날짐승을 사로잡듯이 한다면 난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환관이 권력을 사용하여 국가의 근심이 되었던 것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습니다. 대개 궁금(宮禁)을 출입하기 때문에 군주는 어려서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그들과 친근하고 익숙해져서 삼공육경(三公六卿)처럼 들어가 알현하는 것이 때를 맞추거나 삼엄하여 떨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한(東漢)이 쇠약하면서 환관들이 교만하고 전횡을 한 것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그러나 모두 군주의 권력을 빌렸고, 의지한 것은 성사(城社)였으니 천하를 혼탁하고 어지럽게 하였지만, 아직은 천자를 협박하고 위협하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를 통제하는 것과 같이 하면서 폐위시키거나 남아 있게 하는 것을 손 안에 두고 동쪽에 두던 서쪽에 두던 그들의 속마음에서 나오게 하고, 천자로 하여금 그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마치 호랑이와 이리를 타거나 뱀과 살모사를 잡고 있는 것 같던 당 시대와 같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된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한대(漢代)에는 병권을 장악하지 않았으나, 당대(唐代)에는 병권을 장악하였었던 연고입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법을 바꾸는 것은 사람을 양성하는 것만 못한 것인데, 바꾸는 것이 어찌 옛날의 관행만 하겠습니까! 한건(韓建)이 축척한 재물은 무수하였으나 먼저 주온(朱溫)을 섬기게 되었고, 왕가(王珂)가 법을 바꾼 것은 마(麻, 삼실)와 같았지만 하루아침에 적(賊)에게 항복하였으며, 중산성(中山城, 하북성 정주시)은 험준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고, 채상(蔡上, 하남성 여남현)의 군사들이 많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니, 앞의 사례들은 아주 명확한 것들이어서 교훈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또 패업을 이룬 나라 가운데에는 빈곤한 군주는 없고 강력한 장수에게는 나약한 병사는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덕을 숭상하고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사치를 없애고 요역을 감소시키며, 험한 곳을 설치하여 변경을 굳건히 하고, 군사를 훈련시키고 농사에 힘쓰십시오.

난을 평정한 사람은 무신으로 가려 뽑고, 정치를 통제하는 사람은 문리(文吏)로 가려 뽑으며, 돈과 곡물은 명부에 기록함이 있고, 형벌을 주는 것은 법률이 있게 하십시오. 주살하는 것과 상을 내리는 것을 나에게서부터 나오게 한다면 아래에서 위엄과 복을 주는 폐단이 없게 되며, 가까이하고 친밀한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가 바르다면 사람들은 헐뜯거나 비난하는 걱정은 없게 될 것입니다.

밖으로 원흉(元兇)을 쳐부수고, 안으로 나태한 습속을 제거하면, 명성은 오패(五覇)보다 높게 되고 도(道)는 팔원(八元)보다 으뜸갈 것입니다. 여염을 계산하는데 있어서는 간가(間架)를 정하고, 국얼(麴蘖)을 늘리며, 논과 밭을 조사하고, 국가를 열고 봉국(封國)을 건립하는 것은 아마도 아직은 절실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존욱이 말씀을 올려 말하였다. "사물이 극(極)에 달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게 되며, 사악함이 극에 달하지 않으면 멸망하지 않게 됩니다. 주씨(朱氏)가 그의 속임수와 힘을 믿고 흉악함을 다하고 사납기가 극에 달하여 사방의 이웃을 삼켜 없애버리니, 사람들은 원망하고 신(神)은 화가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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