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주는 마땅히 그들과 정사(政事)를 모의하고, 사대부를 진퇴시키며, 위엄과 복(福)을 갖게 하여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하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돌아 볼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혹 죄를 졌는데 적다면 그에게 형벌을 내리고, 크다면 그를 주살하며 관대하게 용서를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였다면 비록 그들에게 전횡하라고 시키더라도 어느 누가 감히 하겠습니까! 어찌 착하고 착하지 않은 것을 살피지 않고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가리지 않으며, 풀을 깎고 날짐승을 사로잡듯이 한다면 난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환관이 권력을 사용하여 국가의 근심이 되었던 것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습니다. 대개 궁금(宮禁)을 출입하기 때문에 군주는 어려서부터 어른이 되기까지 그들과 친근하고 익숙해져서 삼공육경(三公六卿)처럼 들어가 알현하는 것이 때를 맞추거나 삼엄하여 떨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동한(東漢)이 쇠약하면서 환관들이 교만하고 전횡을 한 것으로 가장 유명하지만 그러나 모두 군주의 권력을 빌렸고, 의지한 것은 성사(城社)였으니 천하를 혼탁하고 어지럽게 하였지만, 아직은 천자를 협박하고 위협하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를 통제하는 것과 같이 하면서 폐위시키거나 남아 있게 하는 것을 손 안에 두고 동쪽에 두던 서쪽에 두던 그들의 속마음에서 나오게 하고, 천자로 하여금 그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마치 호랑이와 이리를 타거나 뱀과 살모사를 잡고 있는 것 같던 당 시대와 같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된 까닭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한대(漢代)에는 병권을 장악하지 않았으나, 당대(唐代)에는 병권을 장악하였었던 연고입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법을 바꾸는 것은 사람을 양성하는 것만 못한 것인데, 바꾸는 것이 어찌 옛날의 관행만 하겠습니까! 한건(韓建)이 축척한 재물은 무수하였으나 먼저 주온(朱溫)을 섬기게 되었고, 왕가(王珂)가 법을 바꾼 것은 마(麻, 삼실)와 같았지만 하루아침에 적(賊)에게 항복하였으며, 중산성(中山城, 하북성 정주시)은 험준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고, 채상(蔡上, 하남성 여남현)의 군사들이 많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니, 앞의 사례들은 아주 명확한 것들이어서 교훈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또 패업을 이룬 나라 가운데에는 빈곤한 군주는 없고 강력한 장수에게는 나약한 병사는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덕을 숭상하고 사람들을 사랑하시고, 사치를 없애고 요역을 감소시키며, 험한 곳을 설치하여 변경을 굳건히 하고, 군사를 훈련시키고 농사에 힘쓰십시오.
난을 평정한 사람은 무신으로 가려 뽑고, 정치를 통제하는 사람은 문리(文吏)로 가려 뽑으며, 돈과 곡물은 명부에 기록함이 있고, 형벌을 주는 것은 법률이 있게 하십시오. 주살하는 것과 상을 내리는 것을 나에게서부터 나오게 한다면 아래에서 위엄과 복을 주는 폐단이 없게 되며, 가까이하고 친밀한 사람들 가운데 대다수가 바르다면 사람들은 헐뜯거나 비난하는 걱정은 없게 될 것입니다.
밖으로 원흉(元兇)을 쳐부수고, 안으로 나태한 습속을 제거하면, 명성은 오패(五覇)보다 높게 되고 도(道)는 팔원(八元)보다 으뜸갈 것입니다. 여염을 계산하는데 있어서는 간가(間架)를 정하고, 국얼(麴蘖)을 늘리며, 논과 밭을 조사하고, 국가를 열고 봉국(封國)을 건립하는 것은 아마도 아직은 절실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존욱이 말씀을 올려 말하였다. "사물이 극(極)에 달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게 되며, 사악함이 극에 달하지 않으면 멸망하지 않게 됩니다. 주씨(朱氏)가 그의 속임수와 힘을 믿고 흉악함을 다하고 사납기가 극에 달하여 사방의 이웃을 삼켜 없애버리니, 사람들은 원망하고 신(神)은 화가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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