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보통의 연애
백영옥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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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밤은 책이다>를 읽고 가장 끌렸던 소설 중의 하나다. 장편이라 예상했었는데 단편집이었다. 재밌는 단편들이 여럿 있지만 역시나 표제작인 <아주 보통의 연애>가 가장 눈에 띈다. 몇 개의 숫자와 몇 개의 단어로 한 인간의 삶을 투명하게 보여 줄 수 있을까? 그렇다. <아주 보통의 연애>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도 세상을 바라 볼 수 있음을 증거 한다고 할까? ‘기이한 미니멀리즘의 세계다.


한 장의 영수증에는 한 인간의 소우주가 담겨 있다.

취향이라는 이름의 정제된 일상

흡연처럼 고치지 못한 악습들.

....그리고 연말 정산이라는 이름의 집단적인 자기반성.

이렇게 많이?”

부인하기도 하고,

이런 델 왜?”

의아해하기도 하며,

아직도!”

육만오천원씩 꼬박꼬박 빠져나가는 육 개월 할부의 잔해를 보며

실패한 연애를 한탄한다.

.......영수증은 우리가 토해낸 일상을 투명하게 반영한다.

몇 개의 숫자, 몇 개의 단어로.

 

인생이 쓸데없이 길어지는 걸 비웃는,

기이한 미니멀리즘의 세계.


주인공은 잡지사 관리팀에서 일하며 직원들의 영수증을 처리한다. 영수증의 숫자와 단어들은 침묵 속에서 말한다. 주인공은 영수증을 통해 누가 알코올 중독자인지 누가 불륜에 빠졌는지를 알 수 있다. 그녀는 <모드>의 패션팀 수석 이정우를 짝사랑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인생의 도돌이표와 같은 이정우의 영수증을 모은다. 그녀는 거의 5년 치, 서른 두 권의 영수증으로 이루어진 비밀 일기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언제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게 될까?

 

<청첩장 살인사건>의 주인공은 청첩장 쇼핑몰을 운영한다. 청첩장을 디자인하고 수 백 가지의 모시는 글을 만들어내지만 정작 그는 결혼식에 모셔지지않는다. 비록 아무도 그를 초대하지 않지만 그는 자신 고객의 결혼식에 참석해 가족 사진을 찍는다.

 

굳이 마르크스를 불러내지 않더라도 백영옥의 단편 속에 주인공들은 자신의 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일은 행위자를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감춘다.

 

영수증을 통해 타인의 삶을 알 수 있다하더라도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넌 그냥 형용사야 독립된 명사가 될 수 없지. 당연히 동사도 될 수 없어. 넌 섹스나 키스도 책으로 배워야 하는 사람이니까. 살아서 뜨거운 피가 도는 인간이라는 종에 대해 애정이 있긴 한거야? 사랑과 질투를 구별하는 건, 편집자로서 중요한 자질이야. 넌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질투하는 거야. 네가 쓰지 못한 내 책을 질투하는 거지.

<강묘희 미용실, >

 

백영옥의 소설들의 등장인물들은 형용사에 불과하다. ‘겨우 겨우라고 말해왔지만 한 번도 희망 비슷한 것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고 말하는 화자처럼 등장인물들은 언젠가는 독립된 명사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2014. 8. 20 작성. 백영옥의 새로운 소설을 반기는 마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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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권력

 

슬픔의 노래, 정찬


 

한국 소설 중 나만의 ‘3부작이 있다. <슬픔의 노래>, <얼음의 집>, <> 모두 한 작가의 작품이다. 우연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생은 생잔(生殘, 살아남기’), 권력은 폭력, 슬픔은 실패를 의미한다. 이런 현실에서 폭력과 권력 탐구를 짊어지는 작가는 흔치 않다. 어쨌든 정찬같은 캐릭터의 지식인이 많아야 한다고 절실히 주장한다.

 

내가 이해하는 정치신학자정찬의 주제는, 권력과 폭력 앞에 선 인간의 선택이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그들의 모습은 작가를 통해 예술과 신학의 이유가 된다. 그는 권력과 폭력을 비판하거나 혐오하기보다, 사유한다.

 

<얼음의 집>의 주인공은 고문 기술자다. 그는 사정에 버금가는 쾌감이라는 권력 행사를 자제하면서, 진실(자백)을 만들어내는 임무를 수행한다. 쾌락을 통제하는 것,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사용하지 않는 것. 어떤 인간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20여 년간 가정 폭력 상담을 하면서 열 대를 때릴 수 있는데 여덟 대에서 멈추는 남자를 만난 적이 없다.

 

정찬의 주인공들은 타인의 신체적 고통으로부터 획득되는 권력의 전능함을 알고 있다. 권력의 경험을 사유하는 그들은 기술자가 아니라 예술가’. 최소한 방황하는 영혼이다. <슬픔의 노래>에 등장하는 ‘80년 광주가해자의 보개. “칼이 몸속으로 파고들 때 칼날을 통해 생명의 경련이 손안 가득 들어오지요.......생명의 모든 에너지가 압축된 움직임. .......한 인간의 생명이 이 작은 손안에 쥐어져 있다는 것이죠.......그것은 상상할 수 없는 쾌감입니다.” 이후 그는 죄의식의 갑옷을 벗는 배우가 되었다.

 

정찬의 작품을 읽을 땐 머리와 심장의 분간이 사라진다. 독자의 몸은 무간 지옥에 빠진다. 작가가 먼저 부서져 강이 된 까닭이다.정말 사족. 박정희 체제의 공과를 논할 때 공은 경제 성장, 과는 인권 탄압이라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고문은 정권의 흠이 아니다. 통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리바이어던, 토머스 홉스.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인간 해방에 국가가 어떤 의미를 지니며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매뉴얼수준의 규범과 철학을 제시한다. 홉스는 중세가 저물고 원자화된 개인의 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대에 살았으며, 정신도 미세한 물질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유물론자였다.

 

그는 자연상태에서는 남녀가 평등하다고 믿었다. 그의 관심사는 자연 상태가 어떻게 가부장제 사회가 되었는가였다. 홉스가 분석한 원인은 이기적인 남성들의 집단적 동의에 의한 시민법의 일종인 결혼법때문이다. 자연 상태가 국가의 탄생과 시민사회로 넘어오면서 결혼 제도를 통해 여성은 개인이었다가 개인의 여자로 강등되었다. 성차는 당위가 아니라 인위적 제도라는 것이다.

 

홉스에게 결혼은 여성을 인간의 범주에서 제외시킨 결정적 사건이었으므로 개인 간 범죄의 경중을 비교할 때 기혼녀의 정조 유린은 미혼녀의 그것보다 더 큰 범죄다.”

 

천자문, 주홍사


 

내가 읽은 책 중 최고의 라스트신이 <천자문>일 줄이야. 역시 고전은 고전이다. <천자문>의 마지막 문장은 위어조자 언재호야이다. “뜻은 없지만 말을 잇는 조사가 있는데, ()은 앞 문장을 가리켜 이에’ ‘여기에서라는 뜻이다. ()와 재()는 탄식할 때, 의심할 때 혹은 반어적으로 사용한다. ()는 대개 끝내는 말(~이다)로 쓴다.


위어조자 언재호야’ 996자를 알아도 마지막 네 글자 조사를 모르면 글을 쓸 수 없다. 문장의 성립은 조사로만 가능하니, 문장은 결국 조사의 기술이다. 글자와 조사의 관계를 실과 바늘, 나사와 볼트처럼 짝 개념으로 볼 수도 있다. 둘의 위치는 동등하고 불가분이다. 하나가 없으면 나머지도 소용없다.

 

그러나 이들은 동등하지 않다. 사실은 조사가 더 우월하다. 글자들의 관계, 즉 문장의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뜻이 있는 글자가 아니라 뜻이 없는 글자, 조사다. 무의미는 모든 의미다. 뜻의 무게를 진 자는 사용이 한정되지만, 조사는 자유로운 영혼이면서 문자를 배치하고 지배한다. 의미(권력)없음이 의미를 통제하는 것이다.

 

실은 좋은 글귀 색거한처 침묵적요(한가한 곳을 찾아 사니 조용하다) - 말고 갖고 싶은 문장이 있었다.

 ‘탐독완시 우목낭상’ “돈 없이 책방에 가도, 한 번 읽으면 머릿속에 책 내용이 다 들어온다.”

 

극단의 시대, 에릭 홉스봄, 무솔리니가 집권하자 기차가 정시에 도착했다.


 

내가 평소 좋아하는 글귀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사랑(관계)은 아무나 하나, 그 누가 쉽다고 했나.”이고 하나는 이 글 제목이다. 전자는 인간을, 후자는 세상을 요약한다. 고민의 순간마다 상기되면서 할 말을 잃게 하는 매혹이 있다. 이 매혹의 정체는 인간()의 무능과 이중성.

 

원래는 무솔리니가 기차를 정시에 달리게 했다”(Mussolini made the trains run on time)인데, 내가 조금 고쳤다.

 

에릭 홉스봄은 당대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라이벌에드워드 톰슨(영국 노동계급의 형성)과 함께 영국 지성의 자부심이다. 원제는 ‘1914 ~1991’이라고 시기가 표기되어 있다. 자본주의가 지구를 목 죄기 시작한 1990년대까지 포함했다면 저자는 극단의 시대를 넘어 종말론의 시대를 분석해야 했을 것이다. 20세기 들어 인류는 7천 년에서 8천 년 걸릴 변화는 70여 년 동안 겪었다. 옮긴이의 전언대로, 이 책은 “20세기의 자서전이다.

 

무솔리니가 집권하자 기차가 정시에 도착했다.” 히틀러의 스승이자 변절한 사회주의 언론인 베니토 무솔리니가 파시즘의 우월성을 시위하기 위해 만든 프로파간다였다. 이는 실제가 아니라 담론의 효과였다. 이탈리아 기차는 이미 잘 달렸고, 무솔리니 집권 후에도 기차는 시간표대로 정확히 운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파시즘을 향한 대중의 지지는 질서의 효능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현행 주폭단속이 좋은 예다. 싹쓸이! 질서(order)는 글자 뜻 그대로 대중의 주문이자 지배자의 명령이다. 통치자의 입장에서는 편리하고, 나만 희생자가 아니라면 대중은 기차가 정시에 도착하리라는 환상에 동의한다.

 

군대를 버린 나라, 아다치 리키야, 평화의 근원은 빈곤과 고립

 

전쟁과 평화. 이 두 단어가 늘 붙어 다니는 이유는 둘 다 뜻이 모호하기 때문이 아닐까. 같이 써놓으면 인식 가능할 것이라는 착각. “전쟁은 안개와 같다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시작해서 로버트 맥나마라가 답한 전쟁의 의미다. 불확실하고 부정확한 정보 때문에 그 추이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전쟁도 모르겠는데 평화는 얼마나 알기 어렵겠는가.

 

이 글의 제목은 저자가 코스타리카 여행 중 외교부 직원에게 들은 말이다. 빈곤과 고립이 평화의 비밀이라니! 코스타리카는 실질적, 합법적으로 군대가 없는 지구상 유일한 국가다.

 

모든 국민이 군대가 없다는 삿길에 자부심을 품고 있으며 환경, 인권, 평화 선진국의 정책과 이미지를 전 세계에 선전하여 이를 방위력과 외교력으로 전환시켰다. 군대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침략당할 가능성이 적다.

 

미국과 북한만 외국이 아니다. 지구상에는 다양한 사회가 있다. 책이 전하는 몇 가지 감동. 코스타리가 교도소에는 담장이 없다. ‘탈출 가능한 철조망은 있다. 교도 행정의 목표는 수감자가 자신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알게 하는 것이다. 갱생의 첫걸음은 자기 인식, 자기 평가, 자기 긍정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재범률은 20%에 불과하다. 보험료를 못 낸 사람이나 불법체류자도 국립병원에서 무료로 치료해준다.

 

군주론, 마키아벨리. 사랑과 외경 중 어느 것이 나은가.


 

박근혜 대통령이 시장에서 감자를 사면서 냄새를 맡는 사진은 정치적, 미학적 충격이었다. 나는 대통령들의 채소류에 대한 무지와 무시에 분노한다. 먹을거리는 민생의 기본이다.

 

냄새를 맡고 구입하는 식자재는 거의 없다. 생선조차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런데 흙 묻은 감자를 코에 바짝 대고 과일 향기를 맡는 듯 포즈를 취한 여자 대통령의 모습은 그로테스크하다. 대통령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성스러운 포즈의 진부함과 오브제의 야릇한 부조화는 비/웃음을 생산했다.

 

군주가 국민에게 사랑받은 것과 외경 받은 것 중 어느 것이 나은가마키아벨리는 둘 다 겸비하면 좋겠지만 이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므로, 택일한다면 외경의 대상이 되는 편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군주론>의 요약이자 유명한 구절이다.

 

감자의 향기는 사랑도 두려움의 대상도 아닌 웃음거리, 트러블 메이커, 국민을 당황스럽게 하는 지도자를 연상시킨다. 클린터의 섹스중독이나 부시 2세의 무식, “왜 나만 미워해!”라고 투정 부리면서 갑자기 사임한 후쿠다 전 일본 총리......이들은 바람직한 군주와 거리가 먼 것이 아니라 군주에서 논외인 경우다.

 

폭군 정치는 당연히 저항을 불러온다. 그러니,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다.’ 나는 국민과 다른 세상에서 사는,

현실에서 탈구된, 감자의 향기를 연출하는 여성 리더십이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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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소설가, 시인, 평론가, 번역가, 서평가, 영화감독 등등.

문화계 인사 스무 명이 각자 좋아하는 연애 소설을 뽑았다.

 

참담하다. 스무 편이 넘는 <연애 소설>중 내가 읽은 작품은 다섯 편 뿐이었다.

모든 소설을 연애소설이라 말할 순 없지만, 대부분의 소설은 연애 소설 아닌가.

특히나 고전 중 사랑을 소재로 하지 않은 작품은 언뜻 떠올리기가 힘들다.

 

나라면 아룬다티 로이의 <작은 것들의 신>,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코엘료의 <, 자히르>, 안나 가발다의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를 뽑겠다.

 

스무 명의 문화계 인사 중 요조님의 첫 등장은 왠지 자연스럽다.

정성일 평론가가 첫 등장이었다면, 서민 박사가 첫 등장이었다면...........

......어쩜 다들 이리 글을 잘 쓸까.

 

요조 - <야행>, 김승옥

 

 

어쩌면 이 단편을 읽었었는지도. 민음사 <무진기행>에도 실려있으니. 김훈은 <라면을 끓이며>에서 아버지를 회고하기도 한다. 그의 아버지 역시 문인이셨다. 하루는 김훈의 아버지와 문인 지우들이 모여 김승옥 이야기를 한다. 김승옥의 문장은 그 당시에도 전대미문이었나 보다.

 

<야행>도 발칙하다. 육교 위에서 처음 본 여자의 손을 잡고 여관을 가는 남자나 그 남자를 잊지 못해 하염없이 밤길을 걷는 여자나. 그녀가 바라는 것은 파멸이 아니라 구원이었다니.

 

요조님의 서점, 꼭 가보고 싶다. 서점 잘 되시길.

 

 

김보통 <속 깊은 이성친구> 장 자끄 상뻬.

 

 

 

 

 

 

 

 

 

 

박현주 - <채굴장으로>, 이노우에 아레노

<마츠 이스라엘손의 이야기> [레몬 테이블]수록, 줄리언 반스

 

미리엄- 웹스터 온라인 사전 11판에 ‘some’알려지지 않고 결정화되지 않고 특정화되지 않은 단위나 존재를 묘사하는 단어라고 쓰여있다.

 

두 작품 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니. 그렇다면 연애 소설이라 할 수 있는 건가.

 

죽어가는 남자가 임종 침대에서까지 깊은 무의식의 심연에서 퍼 올리는 기억이 될 정도로 굳건히 자리 잡은, 언어 너머의 마음이 있다는 환상을 주는 것이 연애소설의 본디 의미일 것이다. 우리의 말하지 않은 기억은 고스란히 잊히며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은 채로 묻히므로 그 존재조차 증명할 수 없다. 그 마음을 그대로 당신이, 세상 사람들이 결코 모르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조차도 이 감정이 과연 실제의 것이었나 믿지 못하고 불확실하게 흔들릴 때, 어떤 소설은 그게 환영이 아니니 부인하지 말라고 말해 준다. 그렇게 소중한 것이었다고, 세상에 아무도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때도 그 마음은 존재하고 있었다고.

 

정지돈 - <몰타의 매> 대실 해밋, <독보건곤> 용대운, <규방철학> 사드.

 

 

 

후장사실주의자답다. 연애소설로 사드의 <규방철학>을 뽑다니.

 

나는 누구와도 다르다. 그러나 나는 누구와도 같다.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에 있어서는 누구와도 같지만 사랑을 어떻게 하느냐는 누구와도 다르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든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김소연 - <요오꼬, 아내와의 칩거> 후루이 요시끼찌

 

 

 

 

 

 

 

 

 

 

 

 

 

서민 - <사랑이 달린다>, <사랑이 채우다> 심윤경

 

 

역시나 두 번째 아내 자랑으로.

 

 

 

 

 

 

 

 

 

 



황인찬 - <독학자>, 배수아

 

 

 

 

 

 

 

 

 

 

 

 

 


이도우 - <워싱턴 스퀘어>, 헨리 제임스

 

언젠가 인상적으로 읽은 심리학 에세이 <가스등 이펙트>가스라이터가스라이티라는 흥미로운 낱말이 있었다. 정서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는 상대방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자 하는 소망,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의 심리를 이 책의 저자 로빈스턴은 가스등 이펙트라 이름 붙였는데, 이 비유 역시 고전영화 <가스등>에서 따온 것이다. 조종하는 가스라이터와 조종받는 가스라이티.

 

한번 각인된 것은 간직하는 아이니까요. 캐서린은 흠집이 난 구리 주전자 같아요. 주전자를 윤이 나게 닦아 놓을 수 있지만 흠집을 지울 수는 없거든요.”

 

 

 


백민석 철도원, 러브레터 <철도원> 성야의 초상 <은빛 비>, 올림포스의 성녀 <산다화> 아사다 지로.

 

 

 

 

 

 

 

 

 

 

 

 

 

 

김민정 - <> 막상스 페르민.

 

  

눈이네, 라고 말하는 순간 여자의 심장은 뜨거워졌다. 사랑해, 라고 말하는 순간과 무엇이 다르리,

 

시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글이라는 팽팽한 줄 위에 한없이 머무르는 것. 꿈의 고도에서 삶의 매 순간을 살아가는 것. 단 한 순간이라도 상상의 줄에서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 것이야. 참으로, 가장 어려운 일은 언어의 곡예사가 되는 일이지.”

 

page 42. 그의 성기가 시든 아티초크처럼 늘어질 때까지, 그리고 처녀의 그곳에 보랏빛 멍이 들 때까지.

 

아티초크. 여자는 사전부터 찾았다. 쌍덕잎식물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엉겅퀴와 비슷하게 생긴 것이 잎은 어긋나고 깃 모양으로 깊게 갈라진다. 잎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솜 같은 흰색 털이 빽빽이 있다. 꽃은 여름에 자줏빛으로 피고 두상화를 이루며 달린다.

 

박준 -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김중혁 - 세 번째 이자 마지막, <축복 받은 집> 수록, 줌파 라이리.

 

밀란 쿤데라의 말. “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 한다.”

 

모든 이야기는 끝까지 계속 갔을 때 결국 죽음으로 끝나게 된다. 그 사실을 숨기려는 사람은 진정한 이야기꾼이 아니다. ”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말이다.

 

 

 

 

 

 



안은별 - <산시로>, 나스메 소세키

 

 

 

 

 

 

 

 

 

 

 



김종관 - <포스트 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제임스 M 케인

 

 

 

 

 

 

 

 

 

 

 

 

 

 


배명훈 - <데브다스> 사라트찬드라 차토파드히아이

 

 

 

 

 

 

 

 

 

 

 



정성일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 <백야>, 도스토예프스키

 

 

 

 

 

 

 

 

 

 

 

 

 

금정연 -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존 반빌, < 안 그러면 아비규환> 닉 혼비

 

 

 

 

 

 

 

 

 

 

 

 

 

 

 

정세랑 - <제인 오스틴 북 클럽> 커렌 조이 파울러, <시라노> 에드몽 로스탕

 

조금 더 현대적인 사랑 이야기를 읽고 실을 때는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작품들에 손이 간다. <여명>도 좋지만 <암고양이> 쪽이 더 연애소설이다.

 

불타오른 다음 파멸하지 않고 지속되는 사랑에 대해서라면 의외로 존 스칼지가 잘 쓴다. <노인의 전쟁>, <유령 여단>, <마지막 행성>, <조이 이야기>로 이어지는 4부작의 주인공인 존 페리와 제인 세이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박솔뫼 - <아수라 걸> 마이조 오타로

 

닳어 없어지는 것도 아니래서 한번 해 봤는데, 닳아 버렸다. 내 자존심이.

이제와서 되돌려 달라고 해 봐야 녀석이 다시 되돌려 줄 리도 없을뿐더러.

원래 자존심은 되돌려 받는 게 아니라 되찾는 거다.

 

 

 

 

 

 

 

 

 

 

주영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류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책을 읽으니 이상하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정성일이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때문일까, <백야>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그의 영화에 출연한 요조님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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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04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사드는 애널 자위를 좋아했답니다..

시이소오 2016-03-04 20:38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애널 자위`라고 적혀 있어 깜놀했네요. ㅋ
사드는 뭘 해도 안 이상해요.그러려니 싶죠.
예전에 사드 책을 읽다 포기했는데, 은근 안 읽혀요. ^^;
에로스을 빙자한 철학 책인 걸로~~
 

님의 침묵, 한용운

 

나의 관심은 님이 누구냐가 아니라 침묵의 의미다. 모든 예술은 남겨진 자의 고통에서 시작된다. 떠나는 사람이 나는 너를 버렸노라.”라고 읊는 경우는 없다. 떠난 자는 말이 없다. 대단한 이유에서가 아니라 부재하니까 침묵인 것이다. 반면 남겨진 자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다. 그리움, 슬픔, 체념, 자책, 희망.

 

님은 자기 자신이 아닐까. , 님은 대상이 아니라 자아이다. 침묵하는 자아인 동시에 침묵을 뿜으며 더 깊은 침묵을 만들어내는 자아. 마지막, 님의 사랑과 침묵은 범람한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하늘을 덮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진실, 민주노총 김00 성폭력사건 피해자 지지모임


이 책은 200812월에 발생한 민주노총 내 성폭력 사건을 통해 드러난 통합진보당, 민주노총, 전교조 소속 일부 간부들의 손바닥으로도 하늘을 덮을 수 있는 약자에 대한 횡포, 관료주의, 무능과 무식에 대한 보고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책은 한국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 가에 대한 정밀 진단서이다. 청소년에게 가장 권하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진보 개념은 근대화 시각에서 발전주의를 의미한다. 민주주의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는 적대하거나 논쟁하는 세력이 아니다. 정상적인 국가 건설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되 방법이 다를 뿐이다. 공통점은 성 차별과 주류 지향이고, 차이는 종북이라는 기이한 용어에서 보듯 제대로 된 국가를 만드는 일에 통일을 포함하는가 여부와 그 방식일 것이다.

 

사건의 가해자는 5년 구형에 3년 실형을 받았다. 진보 진영이 일반 사회보다 성폭력이 더 빈번한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조직 보호를 내세운 이들의 사후 대응 방식은 유별나다. ‘공작 정치(social rape)’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다. 진짜 피해와 무서움은 이것이다. 남성은 물론 많은 여성 활동가들이 사건 은폐, 축소를 주도하고 가담했다. 진보라는 과도한 자의식에 비해, 기본적인 인권 개념은 물론 자신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인식조차 없는 이들에게 사회생활의 목적을 묻고 싶다.

 

손자병법, 손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서로 당연하게 설정 하고 있던 전선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다. 기존의 사고방식, 싸움 주제를 생소한 것으로 만들어 적을 인식 분열 상태로 만든다. 그러기 위해서 약자는 자신이 약자라는 인식과 더불어 자각이 다른 사람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것이 약자의 인식론적 특권이다. 강자는 자기 생각을 약자에게 투사하지만, 똑똑한 약자는 두 가지 이상의 시각에서 자신과 상대방을 모두 파악한다.

 

전선을 구획하는 자가 이긴다. 누가 먼저 어떤 선을 긋느냐, 누가 먼저 생각하는 방법을 창조하느냐. 기존 전선에 걸려 넘어질 것인가, 내가 룰을 만들 것인가. “다르게 생각하라.” 강자가 다르게 생각하면 양극화를 만들고, 약자가 다르게 생각하면 세상을 이롭게 한다. 기존의 틀에서는 아무리 좋은 전략도 필패다. 내가 쉽고 익숙한말을 경계하는 이유다.

 

나의 진짜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발상의 전환으로 매복하고 있어야 한다. 쉽지 않다. 여성은 을 사랑하고, 가난한 사람은 처럼 살고 싶어 한다. 탈식민 병법이 필요하다.

 

월간 비범죄화, 성판매여성비범죄화추진연합 발행

 

나는 모든 글은 질적 차이가 있을 뿐이지 예술과 외설, 논문과 잡글, 사실과 허구, 본격소설과 통속소걸, 문학과 사회과학 따위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어떤 글을 읽고 즐거움, 의문, 성찰을 경험했다면 글의 소속(?)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글의 내용과 정신이다.

 

일본어인 찌라시는 흩뿌리다의 명사형이다. 책의 기본은 권()인데, 찌라시는 묶인 것도 아니고 뿌리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내가 읽은 글 중 가장 재미있고, 유익하고, 공동선을 위한 글은 찌라시였다.

 

성판매 여성을 비범죄화하라!

 

우리 성판매여성비범죄화추진연합은 오늘, 성판매 여성에 대해 전면적으로 비범죄화 할 것을 엄숙하고 거룩하게 선포하는 바이다. 다만 선언하고 선포할 뿐, 설득하지 않을 것이다. 원래 선언은 그런 거니까.

 

우리는 자본주의, 가부장제, 젠더 권력의 문제인 성매매를 성판매 여성 개인의 문제로만 취급하는 것에 반대한다.

성판매자를 범죄자와 피해자로 나눌 수 있다는 착각 속에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자들을 규탄하다.

가능하지도 않을 강제냐 자발이냐 기준 세우기는 그만하고, 성판매 여성의 노동 조건에 대한 문제 제기와 사회적 지원에 대한 논의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성판매를 성적으로 타락한 자, 더럽혀진 자, 비난받아 마땅한 자로 낙인찍어 차별하는 자들을 낙인찍을란다.

치사하게 구매하는 입장이면서 판매하는 사람 비난하기 없기다.

 

20134월 어느 봄날에.

성판매여성비범죄화추친연합(이하 소속단체)

 

곰팡이와싸우는세입자연대, 남성연대반대하는남성모임, 도우미안쓰는노래방협회, 딸자식이뭘하고돌아다녀도지지할학부모회, 모소리작고아름다운꼴페미연대, 목소리크고못생긴꼴페미연대, 명절날엄마의파업을꿈꾸는일안돕는딸년오미, 반성매매인권행동[이룸], 야근칼퇴근직장문화확립추진위원회, 서로비난안하는부모자식연합, 성구매할생각없는한줌의남성모임, 성욕의총량을측정계량중인연구자(개인), 시급만오천원시대를꿈꾸는알바연합, 애국국민이기싫은국민연합, 여가부하는일별로맘에안드는여성주의자모임, 한국에와서여성월주의로변질된페미니즘연구회(우리 졸라 많지?). 월간 비범죄화 정기구독 메일링 신청

http://goo.gl/KkFik

 

운현궁의 봄, 김동인


힘없는 대원군의 처지를 묘사하는 부분에서, 당시 세도가 김좌근의 첩 양씨가 선배를 흉내 내는 장면이 나온다. 명종 때 윤원형의 소실 정난정을 따라하는 시반선 행사다. 한강 하류에 밥을 쏟아 물고기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다. 구경 나온 배고픈 백성들에게 물고기가 밥을 잘 먹는지 강물 속을 굽어보라.”고 말한다.

 

몇몇은 강으로 뛰어든다. 물고기 밥을 훔친 죄로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엉덩이 뼈가 부서지도록 맞는다. 가족은 그 밥을 바란 죄로 오십 대씩 태형에 처해진다. 그 장면이 중학교 1학년에겐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나의 정치 의식과 공권력에 대한 분노는 그때 고정되었다.

 

고물이 보물이 되려면 사람의 마음과 일이 필수적이다. 내게 별로 득이 되지 않으면서 주고 욕먹을가능성이 많은 일이다. 그게 귀찮아서 다들 그냥 버리는 것이다. 웬만한 사람들에겐 물건을 새로 사는 게 재활용보다 편하다. 자원을 아끼고 나누는 데는, 노동이 요구된다. 나는 이 노동이 자본주의를 구제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몸이 이미 체제다. 변화는 다른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망가진 세상을 수선하는 일이다.

 

문장강화, 이태준.


이태준의 1939년작 <문장강화>는 반복해서 읽기 즐거운 실속 있는 책이다. 임형택이 쓴 해제의 훌륭함도 감안해야겠지만, 70여년 전 책이 요즘 나오는 글쓰기 책보다 깊이 있고 세련되었다. 이 책은 이렇게 써라.”라고 일러주기보다 좋은 글을 많이 보여준다. 우리 문장이 이렇게 풍요로웠구나, 글 잘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구나,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언젠가 친구가 너는 죽어도 내 고통을 모를 것이라 했을 때 상처받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지가 아니라 무지를 깨달아 가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뭘 모르는지 모르는 사람. 이런 사람이 활발한 사회 활동을 할 때, ‘걸어다니는 재앙(, 그 공주!)’이 따로 없다.

특히 남성은 결핍을 결핍한 완전한 존재다. 자기 위치를 알기 어렵다. 물이 흐르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포말이 일 때다. 큰 물줄기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포말이 클 때다.



그나마 대안은 24시간 긴장, 타인 존중, 말 줄이고 경청, 자기 몸을 작게 하기, 중단 없는 주제 파악......나부터.

 

돈 잘 버는 여자 밥 잘하는 남자, 알리 러셀 혹실드, 2교대The Second Shift


남성에게 집은 쉼터지만 여성에게는 노동의 공간이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규범이다. 그래서 남성은 혼자일 때 더 외롭고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상하다. 난 혼자일 때 외롭지 않을뿐더러 아무런 스트레스도 받지 않거늘. 많은 남성들이 그렇지 않을까?)

 

이 책은 내가 많이 권하는 책 중 하나다. 감정 노동 개념으로 유명한 저자가 부부 50쌍을 인터뷰하고 일부는 같이 생활하면서 맞벌이 부부의 가사 분담을 분석한 책이다.

 

남성이 여성만큼 가사 노동을 하지 않는 한, 그 노동과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한, 인류의 모든 민주주의는 실패한다. (가슴을 도려내는구나.)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로잘린드 마일스


가정에 소속된 여성치고 임금 노동에 종사하든 안 하든 끼니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운 여성은 거의 없다. 그때 이 책이 생각났다.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 세계 여성의 역사>. 물론 밥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동서양에 걸친 세계 여성의 역사다. 기존 역사에서 여성 역할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여성의 노동 없이 인류 역사는 단 하루도 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저자의 시선과 약간 다르다. 그녀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만일 남자 요리사였다면 열광하는 추종자를 거느린 성인이 되어 그를 기념하는 축일이 생겼지 않았을까?”였다. 물론 스타 요리사의 성별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것은, ‘그 많은 설거지는 누가 했을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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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6-03-03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떠나간 자의 슬픔.. 남겨진 자의 고통..

마태우스 2016-03-03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근데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는 품절이네요 아쉽습니다. 글구 하늘을 덮다 이 책이요, 저도 사서 읽으려고 했는데 책의 가독성이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도대체 무슨 얘긴지 확 와닿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도 하늘을 덮다를 덮다, 했습니다. 암튼 저와 관심분야가 비슷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시이소오 2016-03-03 22:53   좋아요 0 | URL
정희진 씨 서평집에는 절판 도서가 꽤 많습니다. 하늘을 덮다, 덮다 ㅋ
마태우스님이 서민박사님은 아니죠?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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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로스 줌파 라히리 제임스 설터

 

톰 행크스의 말처럼 <스토너>는 그저 대학에 가서 교수가 된 사람의 연대기다. 그렇지만 분명 매혹적인 이야기다. 이 소설엔 나를 매혹시키는 세 장면이 있다.

 

첫 번째 장면 : 이런 멘토를 만났더라면.

 

스토너는 집안의 농사일을 위해 농과대학에 진학한다. 2학년 1학기 때 누구나 듣는 교양과목인 영문학 개론 강의가 결국엔 그의 인생 행로를 결정지을 줄이야! 스토너는 아처 슬론 교수의 지도에 따라 책을 읽고 또 읽지만 항상 낙제를 겨우 면할 수준이었다.

 

원래 목표로 하던 농과 수업은 뒤로 하고 점점 더 스토너는 영문과 수업을 늘려가더니 아예 전공 자체를 영문학으로 바꿔버린다. 그가 4학년이 되었을 때, 아처 슬론이 그를 교수실로 부른다.

 

모르겠나스토너 군?” 슬론이 물었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스토너는 아처 슬론이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지 묻는다. 슬론은 대답한다.

 

사랑일세.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슬론은 스토너도 미처 깨닫지 못한 그의 문학에 대한 사랑을 간파한다.

미래에 불안해하고 방황하는 젊은이 앞에 진로를 정해주는 멘토가 나타나는 것만큼

근사한 일이 있을까. ‘넌 이걸 하기 위해 태어났어.’라고 말해주는 멘토가 있었더라면

나의 삶은 지금과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스토너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강단에 서 학생들에게 40년 간 영문학을 가르친다.

 

두 번째 장면 : 이런 사랑을 했더라면

 

스토너는 첫눈에 사랑에 빠진 이디스에게 청혼을 하고 결혼을 하지만 신혼 첫날부터 불행한 결혼 생활을 이어간다. 그는 젊은 강사인 캐서린 드리스콜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그녀 역시 스토너를 사랑한다. 바야흐로 불륜으로 접어든다.

 

욕망과 공부.” 캐서린이 한 번은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건 그것뿐이죠, 안 그래요?”

스토너가 보기에는 딱 맞는 말 같았다. 이것이 그가 살면서 터득한 것들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욕망과 공부를 달리 표현하면 사랑과 책이다.

스토너는 책꽂이를 들일 정도로 많은 책을 캐서린의 집에 갖다 둔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서 책을 읽거나 논문을 쓴다.

 

스토너는 의자에 널브러지거나 침대에 누운 자세로 역시 그녀처럼 공부에 몰두했다.

그러다가 가끔 두 사람은 시선을 들어 서로를 향해 빙긋 웃은 뒤 다시 읽던 자료로 눈을 돌렸다. 때로 스토너가 책을 읽다가 눈을 들어 항상 머리카락이 덩굴손처럼 덮고 있는 그녀의 가느다란 목과 우아한 곡선을 그린 등을 지긋이 바라볼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느긋한 욕망이 천천히 차분하게 솟아나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등 뒤에 서서 어깨에 가볍게 팔을 올렸다. 그러면 그녀는 등을 똑바로 펴면서 고개를 젖혀 그의 가슴에 기댔다. 그의 양손이 헐렁한 로브 속으로 들어가 그녀의 젖가슴을 부드럽게 만졌다. 그렇게 사랑을 나누고 난 뒤 두 사람은 한동안 조용히 누워 있다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두 사람의 사랑과 공부가 마치 하나의 과정인 것 같았다.

 

책을 읽다 서로를 바라보다 사랑을 나누다 도로 책을 읽다......

이 장면에서 정신이 약간 혼미해졌던 것 같다. 너무 너무 너무 매혹적이다.

이건 정말이지....... 천국이다. 에로틱하기보단 그저 따스하다.

저 따스함을 표현하기에 나의 언어는 절대적으로 초라하다.

 

세 번째 장면 : 이렇게 죽을 수 있다면

 

스토너는 대학을 은퇴하여 암 판정을 받고 수술대신 그의 집에서 조용히 죽음을 기다린다.

 

그는 고개를 돌린다. 협탁 위에 오랫동안 손도 대지 않은 책들이 쌓여 있었다. 그는 잠시 손으로 책들을 만지작거렸다. 가늘어진 손가락, 관절의 섬세한 움직임이 놀라웠다. 그 안의 힘이 느껴져서 그는 탁자 위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책 더미에서 손가락으로 책 한 권을 뽑아냈다. 그가 찾고 있던 그 자신의 책이었다. 손에 그 책을 쥔 그는 오랫동안 색이 바래고 닳은 친숙한 빨간색 표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의문은 거의 하찮게 보였다. 흐릿하게 바랜 그 활자들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게 될 것이라는 환상은 없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작은 일부가 정말로 그 안에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을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감동적인 죽음이다. 운명의 순간, ‘그의 작은 일부가 앞으로도 있을 책장을 펼치며 그는 짜릿함을 느낀다. 책 쓴 사람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필립 로스가 떠올랐다. 대학 사회가 배경이라는 점, 학생과의 불화 때문에 당하는 불이익, 불륜 혹은 섹스라는 소재 등이 로스의 소설과 비슷했다. 특히 주커먼 시리즈 중에서도 <휴먼 스테인>. 콜먼은 출석부를 부르던 중 출석치 않은 두 흑인 학생을 ‘spooks’라 불렀는데, 이 단어 때문에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오해를 산다. 콜먼은 결국 학교와 타협하지 않다 교수직을 사직한다.

스토너는 스토아적인 사람이란 뜻일 것이다. 그는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쟁취하는 성격이라기보단 관조하고 인내한다. 그러나. 스토너 역시 콜먼처럼 자신의 신념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스토너는 곤경에 처할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학과장이 될 로맥스가 추천하는 찰스 워커의 박사 과정을 실력미달이라는 이유로 통과시키지 않는다. 이 일로 그는 은퇴하는 그날까지 로맥스로부터 불이익을 당한다.

 

스토너에게도 매스터스와 고든 리치라는 대학 친구가 있었다.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매스터스와 리치는 군대에 자원하지만 스토너는 대학에 남기로 결정한다. 고든 리치는 돌아와 그와 마지막까지 학교를 지키지만 매스터스는 입대한 지 1년 만에 사망한다.

 

주요 인물인 듯 보이는 캐릭터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여성 캐릭터 때문에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가 떠올랐다. <저지대>가우리도 이상한 캐릭터지만 <스토너>의 이디스만큼 괴상망측한 여성 캐릭터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가우리를 이상하다고 해서 성차별주의자로 낙인찍혔는데, 숙녀님들, 그래도 가우리는 좀 이상하지 않나요? ) 줌파 라히리는 제임스 설터에게 부끄러울 정도로 빚을 졌다고 말했다. 존 윌리엄스는?

 

<스토너>를 여성 화자로 다시 쓴다면 <저지대>와 비슷하지 않을까?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들의 바스락거림, 취기가 도는 문장은 다분히 제임스 설터를 연상시킨다. 설터나 존 윌리엄스의 문장을 읽을 때면 햇빛 찬란한 바닷가, 황금빛 모래알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듯한 느낌? 혹은 어디선가 짙은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설터의 소설이나 <스토너>를 읽고 우는 것은 슬퍼서라기보단 아름다워서다.

이런 아름다움이 결국엔 소멸할 운명이라는 자각 때문에 우는 것이다.

이 아름다움의 덧없음을 극복할 수 없음에

눈물 흘리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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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가 2016-03-03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을 읽고 있는데 너무 사실적인 인간의 욕망과 본능을 들어내는것 같아 왠지 불편한중에 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책장에 꽂혀있는 스토너를 읽으며 마음을 달래볼까 합니다

시이소오 2016-03-03 12:22   좋아요 0 | URL
저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읽으며 멘붕이었어요 ^^;

징가 2016-03-03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긴 한데 좀 기분더럽다는느낌이라 할까요? 저도 전형적인 꼰대가 되어가는건 아닌가 합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서 벗어난 생각에 이리도 불편해하니

시이소오 2016-03-03 12:35   좋아요 0 | URL
잔혹동화죠. 잔혹하지만 어쩌겠어요. 그게 감히 현실보다 잔혹하다고 말할 순 없으니^^;;
그런 현실을 외면하는 게 더 잔혹한 일인지도 모르죠. ^^;;

2016-03-03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명히 <저지대>를 읽었는데 가우리는 기억이 나질 않네요. <스토너>의 이디스는 결코 인연을 맺고 싶지 않은 여자라는 기억이 생생한데요...

시이소오 2016-03-03 12:39   좋아요 0 | URL
수바시와 우다얀의 여자 가우리요. 여자 주인공. 기억 나실텐데...^^
우다얀이 죽자 다시 수바시와 결혼해 영국으로 가서 딸 벨라를 버리고
철학 교수가 되잖아요.
그럴 수 있다 싶은데도 눈곱만큼의 모성이 없다는 게 도무지 이해불가였어요. ^^

2016-03-03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시이소오님 설명을 들으니까 떠올랐어요. 저는 훗날 가우리의 선택보다도 남편의 형과 재혼하게 되는 상황이 충격이라면 충격이었어요. 시어머니에게도 소박 맞았던 것 같은데 동정도 가고...^^

시이소오 2016-03-03 12:58   좋아요 0 | URL
소설에서 화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는 소설 같습니다.
객관적 화자였다면 가우리는 남편이 죽자 남편 형(시아주버니)을 꼬셔 다시 결혼해 인도를 탈출,
영국으로 가자 딸과 남편을 버리고 도망친 나쁜 년으로 보이지 않았을까요?

가우리를 사랑한 수바시는 `공사`당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해요 ^^;;




2016-03-03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바시가 침착하고 온정적인 화자였던 것 같기는 해요. ^^

시이소오 2016-03-03 15:17   좋아요 0 | URL
수바시나 스토너나 둘 다 스토아적인 캐릭터네요 ^^

2016-03-03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 말에 공감이 가요. 스토아적인 캐릭터. 그 분류군에 들어갈 만한 캐릭터예요 정말. ^^

가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보바리즘적 캐릭터 같고.

시이소오 2016-03-03 15:29   좋아요 0 | URL
가우리는 자칫하면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일으킬만한 캐릭터죠. 조심하셔야 ㅋ

2016-03-03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입장이지만, 조심은 하겠습니다. ^^

2016-03-03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3-03 18:06   좋아요 1 | URL
자신이 살기위해 사랑했던 남편을 떠올리게 하는 딸을
버려야 했던 선택이 안타깝기도 합니다만 수바시와 딸 벨라를 생각해보면 그녀가 자신의 책임감으로부터 도망친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녀의 삶이 단순히 페미니즘적 저항`이라 생각진 않아요. 가우리를 이야기하다보면 그런 논쟁들이 불거질 우려가 있다는거였죠. ^^;

펠릭스 2016-03-05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토너 내용을 잘 구분하여 써 주셨네요.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내용을 읽다보면 지금의 한국의 교수사회의 분위기와도 비슷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어느 조직이나 그 조직내의 문화가 있는데도요.
그것은 그 조직의 임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시이소오 2016-03-05 09:4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스토너를 읽으면서 대학교수도 꽤 매력적인 직업처럼 보였어요. 좋아하는 문학을 가르친다는 게 부럽더라구요^^

singri 2016-03-05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줌파라히리 ㅡ 제임스셜터 읽는중인데 꼬리로 스토너가 연결됐네요 .언제 이런 긴글에 다 읽었다는 꼬리만이라도 올릴수 있길 바래봅니다ㅋㅋㅋ

시이소오 2016-03-05 09:51   좋아요 0 | URL
줌파 라이리, 설터, 스토너 리뷰 기대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