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남 긴 우정

 

 

  흔히 상대와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한가를 증명해보이고 싶을 때 사람들은 ‘우리가 만난 세월이 얼만데!’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오랜 기간 만나왔으니 그 우정의 깊이는 재보지 않아도 믿을만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꼭 시간과 우정이 비례하는 건 아니다. 학창 시절 친구가 아무리 좋다 해도 서로 도움 주는 이웃사촌만 못하고, 옆에 있는 직장 동료와 아무리 하루 종일 붙어 있다 해도 마음 먼저 주는 멀리 사는 친구만 못하다. 한마디로 때, 시간, 장소 등은 사람과의 관계를 규정짓는 절대적 매개물이 되지는 않는다. 오래 알아왔다고 우정이 깊은 것도 아니고, 자주 만나는 사이라고 다 친한 것은 아니다. 언제나 중요한 건 상대와의 공감지수이다. 다른 말로 하면 서로를 향하는 진심이 통할 때 우정은 지속된다.

 

 

  인터넷 서재인 알라딘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 있다. 어느 날부터 자연스레 의기투합하여 비정기적으로 만남을 가졌다. 일부러 그렇게 모이기도 힘들 텐데 다섯 친구들은 운명처럼 전국에 골고루 흩어져 산다. (대전, 청주, 광주, 포항, 부산) 모두 책을 좋아하고 사람을 귀히 여기며 섬세한 감각을 지녔다. 좋은 날 불쑥 각자 기차를 타고 청주나 부산 또는 경주나 대전 어디쯤에 모여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떤다. 읽은 책을 화제 삼고 가진 책을 나눴으며, 잘 쓴 작가를 부러워하며 읽고 싶은 책 목록을 공유하기도 했다. 물론 책 이야기만 한 건 아니었다. 자식 자랑도 하고 남편 흉도 보았으며, 지난 일을 후회하고 앞일을 가늠하기도 했다. 주어진 한나절의 시간이 짧다는 걸 알아서일까. 오래 만나온 사람들이 나누는 것 이상으로 인간사 희로애락을 그토록 짧은 시간에 술술 풀어내곤 했다.

 

 

  이 매혹적인 모임은 책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한 친구 덕에 가능했다. 열정과 선함이 몸에 밴 그 친구는 나머지 네 명을 적극적으로 아우르고 배려하고 챙겼다. 나머지 친구들은 그미를 신뢰했다. 그미가 마련한 멍석 마당에 자유롭게 모여 수다떨고 웃기만 하면 되었다. 그 어떤 방해꾼도 없는 온전한 한나절의 해방구가 마련되는 건 거의 그미 작품이었다.

 

 

  그렇게 우리를 이끌던 친구가 멀리 떠난다. 미국인 남편을 따라 LA로 가게 되었다. 환송회가 있던 날 키 크고 잘생긴데다 착하기까지 한 남편은 손수 그린 그림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깜짝 쇼였다. 그림을 전공한 그녀의 남편이 아내와 그 친구들의 이별 선물로 각각 준비를 한 것이었다. 우리는 울고, 웃었다. 안타까움과 감동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이 년 뒤 LA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그녀에게서 '탑승 직전'이란 카톡이 왔다. 긴 비행 끝에 무사 안착하기를 바란다. 여기서 그랬듯 그곳에서도 그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여러 사람에게 좋은 기를 나눠줄 것이 틀림없다. 짧은 만남, 긴 우정을 가르쳐준 그미를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이 년 뒤 그곳에서 만나자는 그녀의 진심어린 약속을 나머지 친구들과 꼭 지키고 싶다.

 

 

  *** 글 좀 올리려는데 출근(?) 시간이 되었다.                

        나머지는 갔다 와서 마저^^* 

        위의 책은 시아님께 받은 아주 인상적인 선물이라 잊을 수가 없다. 

        글 올리는 현재, 시아님은 미쿡에 안착했고, 여전히 잘 지내신다.

        닉네임을 아롬으로 바꾸기까지 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  밑으로 새로운 단상을 쓸 작정이었는데

        시간이 넘 지나버렸다. 이 페이퍼는 단독으로 놔두는 게 맞을 것 같다.

        시아, 아니 아롬님 미쿡 생활 알라딘에서도 중계 많이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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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8-07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눈물이 핑 돌았어요^^ 이런 모임에 제가 함께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우리의 아름다운 우정 변치않길 바랍니다.
시아님을 위해서도 우린 지속적으로 만나야해요.
그래야 2년후 미국 가징. 아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어라!!!!!!

팜므느와르 2013-08-08 08:57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앙, 로긴이 안 돼요. 지금 알라딘 접속하는 사람들 많아서 그런가요?

미소 담당 세실님 없으면 오공주 뭔 재민겨?^^
내년 봄엔 경주에 무조건 초대합니다.^^*
그 담 미쿡 접수 ㅋ

다락방 2013-08-07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 시간이 우정을 보증한다고는 저 역시 생각하지 않아요. 저 역시 오래된 친구보다 얼마 안되었지만 깊은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이 있거든요. 마음을 주는 것도 시간과 비례하지 않죠. 어느틈에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내에 큰 마음을 주게 되고 또 받게 되니까요.

저 역시 비슷한 걸 느끼고 있어 반가운 글이네요.
:)

팜므느와르 2013-08-08 08:5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글치요, 다락방님?!
우정과 시간은 꼭 비례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근데 다락방님은 성품 상 친구분이 많으실 듯~~

곰곰생각하는발 2013-08-07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벌써 떠났습니까 ? 우씨. 난 시아 님 한 겨울이나 떠나려나 했었는데... 흠흠...

팜므느와르 2013-08-08 09:0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네, 떠났어요.
전 후발 주자라 그래도 덤덤한 척 할 수 있었지만
눈물 많은 우리 프레님은 많이 울었을 거예요.

oren 2013-08-07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을 잘 하기로 유명한 키케로가 우정에 대해 말하기를 '인간에 관한 것 가운데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그 유용성을 인정하는 유일한 것'이라고 말하고, '우정이 없으면 인생도 없는 것'이라고도 말했다고 하죠.

키케로의 말을 무수히 인용했던 몽테뉴도 '우정은 전반적이고 보편적이며 그러면서도 절제있고 고른 열이며 거기 거칠고 찌르는 것이란 없이 아주 보드랍고 매끈한 심정이다.'라는 멋진 말을 남겨 놓았고요.

다소 멀리서(?) 그리고 다소 뒤늦게(?) 찾아온 아름다운 우정이 오래도록 한결같기를 바래요.

* * *

우정이라는 신성하고 존경할 만한 이름

젊은이들의 성급하고 맹목적이며 어리석은 친교(親交)는 통상 상격상의 사소한 유사성에 근거하고 있고, 품행과는 전혀 관계없이 서로 같은 학습, 같은 오락, 같은 취미, 또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특이한 원리나 관점에 대한 같은 의견에 근거하고 있다. 변덕이 죽 끓듯이 반복되는 이러한 친교들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비록 그것들이 아무리 좋은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결코 우정(友情: friendship)이라는 신성하고 존경할 만한 이름으로 불릴 가치가 없다.
- 애덤 스미스,『도덕감정론』 중에서

팜므느와르 2013-08-08 09:0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오렌님과 페크 언냐 덕에 도덕 감정론 사서 읽었는데 두고 두고 도움 되는 책이더군요. 여전히 고전 철학을 깊이 파시는 오렌님...
여행하고 책 읽고 언제 다 감당이 되시는지. 존경스러울 따름~~

테레사 2013-08-07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부럽습니다..저도 그런 모임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입니다마..

팜므느와르 2013-08-08 09:0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아, 테레사님 반갑습니다.
언제든지 환영인걸요.
저도 님 서재에 놀러 갈게요.^^*

순오기 2013-08-07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마음을 담은 글~ 감동이 출렁이네요.
시공간을 초월한 만남, 주욱 이어가는 우리에게 행복한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고 쌓이고...

팜므느와르 2013-08-08 09:0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순오기 언냐가 썼으면 더 다정하고 절절했을 텐데.
어쨌든 시아님 덕에 이렇게 모일 수 있으니 얼마나 인덕이 많은지요.
무리하지 말고 일 하시어요.^^*

단발머리 2013-08-07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느와르님, 오공주 모임 항상 부러워하는 알라디너예요.
사랑이 가득한 글, 잘 읽고 갑니다.
팜므느와르님이 애정해하시는 시아님이 아롬님이시고, 그 아롬님이 나비님이라는거 아는데 하루가 걸렸어요.^^
다섯분 아름다운 우정, 영원하시길~~~~

팜므느와르 2013-08-08 09:08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단발머리님 반갑습니다.
시아님 아니 아롬님이 원체 다정다감하고 에너제틱한 분이에요.
우리야 뭐 그냥 따라하기만 해도 좋은 일만 생긴다니까요.
단발머리님도 좋은 친구로 지내요.^^*

프레이야 2013-08-07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날 절대 눈물 흘리지 않을 거라 다짐했는데 결국 포옹하면서 대책없이 흐르더군요. 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뒤돌아 본 차창 밖 그녀의 모습이 또렷해요. 어디서든 행운 가득하길ᆢ 그리고 우리의 색채를 서로 사랑하길ᆢ 팜므언니 더운데 바쁘게 지내시죠. 화이팅 날립니다^^

팜므느와르 2013-08-08 09:11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마자마자, 우리 몰래 또 프레님은 얼마나 더 울었을지...
살뜰히 챙기는 두 분 보면서 눈물 안 나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이었지요.
꼭 건강 챙기시어요. 프레님은 그게 우선^^*
바빠도 견딜 만해요. 프레님도 무더위에 녹음하시려면 힘드시지 않을까.
불어 공부가 그나마 위안이 될 터이니 아자아자^^*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난생 처음 신간 평가단이란 걸 신청했다.

  벗들이 한다기에 따라나서 봤다.

  여전히 어리바리하기만 하다.

  이 페이퍼를 제대로 먼댓글에 연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시작도 소박하게 끝도 그렇게 무탈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1. 실내인간

 

   써야만 하는 사람은 끝내 쓰고야 마는가 보다.

   감각적인 에세이스트로 이석원을 먼저 만났었다.

   노란 표지가 인상적이었던 <보통의 존재>를 손에 넣은지 몇 년이 흘렀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그의 글들이 소설에 와서 어떻게 변주되고 확장되는지 궁금하다. 첫 장편에 도전했다니 보통의 존재로서 응원 겸 부러워해볼 작정이다.

 

 

 

 

 

 

 

 


  2.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오로지 문장으로서 조해진 작가의 소설을 읽어 보고 싶다.

  스토리텔링이나 속도감 등 소설의 대중적  속성을 떠나  조해진 작가만이 하고 싶었던 얘기가 무엇인가를 찬찬히 음미하고 싶다. 지치고 상처 입은 현대인들이 보고 싶어하는 숲은 과연 무엇일지.

 

 

 

 

 

 

 

 

 

  3. 슐링크 작품은 무겁다. 소설 제대로 읽었다는 느낌을 여름 휴가가 아니면 언제 맛볼 것인가. 깊은 통찰, 서늘한 내면, 원초적 감각 등을 일상성이란 그릇에다 잘 버무려 놓는 그의 제대로 된 거짓말에 이 여름 초대받고 싶다. 내 잠복된 욕망을 작가의 섬세한 글터치를 통해 점검 받고 싶은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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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3-08-06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내인간 표지색이 참 예뻐요~~~
팜므님 우리 열심히 해요^^
한달에 두권의 책선물이라니....흐뭇^^

다크아이즈 2013-08-06 22:44   좋아요 0 | URL
세실님 전 따라가기도 벅찰 드슈
일단 시작했으니 끝은 봐야겠지요.
경험 많은 세실님만 믿고 따라가볼게요.^^*

프레이야 2013-08-06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 역시 옹골찬 선택!
표지들이 하나같이 다 멋지고 마음에 드네요. 내용은 언니가 찜한 거라 무조건 땡기구요.
담아갑니다^^ 전 이번에 날짜도 놓치고 바보탱이 ㅎㅎ

다크아이즈 2013-08-06 22:46   좋아요 0 | URL
프레님이 신청 놓쳤다는 소식에 제가 다 실망했지 뭐에요.
님만 동참했으면 완벽한 오공주 신간 평가단이 되었을 텐데ㅠ
(시아님은 어쩔 수 없었고...)
다음 기회엔 바빠도 꼭. 흐흐~~

다락방 2013-08-07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님의 소설 리뷰 제가 잔뜩 기다리고 있습니다. 후훗

팜므느와르 2013-08-08 09:1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다락방님 헉헉대지 않고 남들 반만 따라가자, 하는 심정으로 동참합니다.
뭐가 뭔지 당췌 ㅠㅠ 적응기간이 필요해요.^^*
 

 

 

 

   

 

 

 

   

 1. 조세핀 베이커 - 미드나잇 인 파리

 

  작년 개봉된 영화「미드나잇 인 파리」를 영화관에서 못 본 건 아쉬운 일이었다. 어젯밤 교육방송에서 심야영화로 방영해주는 걸 봤다. 우디 앨런 식 유머를 곱씹는 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웠다. 약혼자와 파리로 떠난 소설가 ‘길’이 192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되는 것이 큰 흐름이다.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콕토와 헤밍웨이, 피카소와 달리, 마네와 고갱 등등 파리 거리를 누볐던 당대의 많은 예술가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영화 자체에 빠지거나 잘 알려진 예술가들을 상기하는 것도 재밌지만, 잘 몰랐던 대중 예술가를 눈 여겨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주인공 ‘길’은 술집에서 혼혈 흑인 무희를 만난다. 조세핀 베이커이다. 흰 드레스에 깃털을 휘날리는 그녀는 고국인 미국이 버렸지만 파리 사교계에서 부활한 실존 인물이다. 불우한 환경과 뉴욕에서의 인종차별 경험은 파리로 진출한 그녀에게 단단한 무기가 되었다. 날렵한 몸매, 매혹적인 표정, 깃털 같은 경쾌함, 천진난만한 분위기 등으로 그녀는 단번에 블랙아메리카 열풍의 핵심이 되었다. 새로운 것, 특히 아프리카적인 것과 재즈 등에 환호했던 파리 상류층 기호에 그녀는 멋지게 화답했다.

 

 

  파리는 그녀에게 열광했다. 여성들은 베이커처럼 피부를 그을리고 머리카락을 풍성하게 틀어 올렸다. 뉴욕에서의 상처를 기억하는 그녀는 그 열풍을 만끽했다. 대신 파리에 대한 고마움을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갚았다. 전후에는 민권 운동과 고아를 위한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1975년 그녀가 죽었을 때 장례식이 프랑스 전역에 중계될 정도였다. 파리와 조세핀 베이커는 궁합이 맞았던 셈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우디 앨런이 전하는 메시지 중 하나는 모든 현재는 모든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그 답은 현재에 있다, 쯤도 될 것이다.  속살거리는 그 유머에다 내 식 깨알 같은 후기를 더하련다. 진정한 자긍심은 이국적이고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너그러움에서 나온다고. 따라서 파리 사람들의 문화적 오만은 열린 시각에서 온 예술적 취향이니 용서할 만하다고.

 

 

 

 

 

 

 

 

 

 

 

 

 

 

 

 

 

  2. 정의보다 지혜 - 카톡방 지상 중계하기

 

  정의는 옳지만 인심이 묻힐 수 있고, 지혜는 그를 수 있어도 사람을 구한다. 가령 소셜 네트워크 대화방에서 있을 수 있는 소란을 중계해보자. 옷 장사 하는 A가 제 하루 일과를 이렇게 보고한다. 오늘 넘 힘들었어. 자꾸만 에누리하려는 손님들 때문에 밑지고 팔다 보니 남는 게 없어.

 

 

 

이때 A를 응원할 겸 평소 원칙에 충실한 B가 나선다. 올바른 상도덕을 위해 의류정찰제가 하루 빨리 정착되어야 함을 피력한다. 그때 C가 나타나 의류정찰제만이 능사는 아니며, 정가제를 한다고 상도덕이 지켜지는 건 아니라며 반박한다. 기분이 상한 B는 자신은 A에게 한 이야기인데 왜 C가 나서서 물을 흐리냐고 재반박을 한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C는 단체방에서 하는 얘기는 누구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냐, 그러니 당사자가 아니라도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흥분을 한다. 이때 평소 방관자였던 D가 나타나 B가 틀린 말 한 건 아니니 이해하라며 슬쩍 B편을 든다. 역시 방관자였던 E도 뒤질세라 제 의견도 맘대로 못 내놓을 것 같으면 단체대화방이 왜 필요하냐고 C를 두둔한다. B는 A를 위로하려는 제 진심이 왜곡되었다며 단체방을 탈퇴한다. 결국 분란이 생기는 대화방은 없느니만 못하다고 방을 개설한 F는 단체 계정을 폭파한다. 그 다음 끼리끼리 모여 대화방을 재개설한다. 그렇다고 평화가 오나? 천만에! 그 안에서 또 새로운 분란은 지속된다. 그렇게 삶은 정반합 계속된다.

 

 

  과장되게 소셜 네트워크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 예를 들었지만 이는 대화법에 대한 여러 시사점을 제시해준다. 특히 정치인들을 둘러싼 알레고리로는 이보다 나은 예도 없다. 그들이 흘리는 말은 보기에 따라 언제나 옳거나 항상 그르다. 옳거나 그른 그 말에 국민들은 별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다면 대화의 방식이다. 위 예에서도 보듯이 내용만 보면 그들 역시 다 옳다. 하지만 형식면에서 보면 그들 모두 그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언제나 정의를 지혜로 실천할 수 있는 타협의 방식이다.

 

 

 

3. 안네와 그 엄마

 

  내 인생 최고의 책 중의 하나는 완전 판『안네의 일기』이다. 그토록 어린 소녀가 그만치 진솔하고 통찰 있는 내면의 목소리를 가지기란 쉽지 않다. 암스테르담 여행 중 예정에도 없던 안네의 은신처를 들르게 되었을 때 누구보다 가슴이 벅차올랐던 건 말할 필요가 없다.

 

 

  안네의 일기는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묘사했다거나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고발하는 내용이 주가 아니다. 선전문구만 보면 그런 것이 주된 내용인 걸로 착각하기 쉬운데 시쳇말로 닥치고 읽어 봐, 라고 말하고 싶다. 한마디로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녀의 일기이다. 그런데 그게 보통 사춘기 여자애의 감수성이 아니라 몇 단계 뛰어넘는, 말하자면 감당하기 힘든 개성을 보유한 소녀의 기록이라는 데 그 매력이 있다.

 

 

  제한된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과 생활할 수밖에 없던 안네는 불화의 아이콘이다. 고집불통에다 예민하며, 자기 주관적이면서 적극적인 안네는 아버지를 제외한 은신처 사람들 대부분과 부딪힌다. 그런 딸을 가장 버거워한 이는 당연 안네의 엄마였다. 은신 생활을 한 첫날부터 안네와 엄마는 긴장과 대립의 연속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썩 관계가 좋은 건 아니었다.

 

 

  모녀의 기질은 완전히 달랐다. 엄마 에디트는 겉보기에 지루해 보이는 차분함과, 모성에서 비롯된 잔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딸 안네는 과도할 정도로 자기표현에 능한데다, 울음과 흥분으로 제 기분을 표출하는 성격이었다. 모성의 안달과 사춘기의 예민함은 자주 충돌했다. 안네는 ‘엄마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탓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려면 대단한 자제력이 필요하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때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안네의 엄마도 이해되고, 사춘기 안네도 공감된다. 이러한 섬세하고도 진솔한 에피소드들이 안네의 일기에는 차고 넘친다. 위선이나 거짓 감정이 배제된 영특하고 발칙한 소녀의 기록이 인간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좋은 텍스트가 되는지 기회 있을 때마다 나는 강조한다. 단, 안네가 실제 내 딸이라면 버거워서 사절이다!

 

 

   

4. 귀태(鬼胎)

 

  정치판은 말(言)들의 도미노 게임장이다. 말로 흥하고 말로 망한다. 사건이 터진다. 한쪽에서 물고 늘어진다. 별 다를 바 없는 한쪽 역시 자폭의 기회는 오고야 만다. 옳다구나 싶게 기회를 포착한 다른 쪽이 재반격한다. 싸움은 필수요, 동원되는 언어는 선택 사항이다. 그때의 언어는 무너질지라도 자극적일수록 좋다. 무너뜨림의 미적 쾌감이 궁극의 목표인 도미노 게임처럼 그들은 서로 무너뜨리고 무너지는 걸 즐긴다.

 

 

  귀태 논쟁으로 한바탕 소란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일본의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는 ‘귀태’이며,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를 ‘귀태 후손’이라고 비하한 야당 대변인의 말이 발단이 되었다. 청와대와 여당의 격렬한 성토에 당사자와 민주당이 사과하는 선에서 진정 국면을 맞이했다. 귀태 발언에 여론이 호의적일 리가 없다. 정치와 무관하게 인간으로서 그 말 자체를 듣는 게 불쾌하고 불편하다.

 

 

  세상엔 몰라도 되는 말이 있는데 귀태야말로 그런 경우이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 귀신에게서 태어난 아이 또는 불구의 태아 등의 의미로 그 말이 쓰인단다. 재일학자가 쓴『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책에서 인용했다는 데 우리말에서는 흔히 쓰이지 않는다. 사전을 찾아봤다. ‘두려워하고 걱정함’ 또는 ‘나쁜 마음’이라고 되어 있다. 불길한 태생을 걱정하는 데서 오는 극심한 두려움을 나타낼 때 활용할 수 있는 낱말이다. 한데 일본에서는 더 극단적인 예로 쓰이나 보다.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는 없다. 철들면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 중의 하나가 인간존엄에 관한 것이다. 개별자 고유는 모두 소중하다. 지위고하를 떠나 어느 누구도 제 태생이나 자존에 대해 위협받거나 조롱받을 이유는 없다. 비자의적 의지의 으뜸 사례인 탄생은 그 자체로써 존귀하다. 천사표 인간이든 악의 상징이든 태생 자체는 누구에게나 축복이다. 삼자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두 말 필요 없다. 모든 태생은 귀태(鬼胎)가 아니라 귀태(貴態)이다.

 

 

 

 

 

  

5. 투명 프롬프터

 

  얼마 전, 박대통령의 방미 외교 때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는 미의회 연설이었다. 영어로 진행된 연설은 호불호가 엇갈렸다. 차분하고 또박또박한 어조에 감동을 받았다는 이와, 국가원수가 모국어를 버리고 굳이 외국어 연설을 할 필요가 있냐는 이들로 나뉘었다. 둘 다 옳지만 나는 전자 편이었다. 이 글로벌한 시대에 영어의 본무대에서 우리 대통령이 그 나라 말로 연설을 했다고 뭐 그리 자존심이 상할 것인가. 영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박대통령의 발음이 어설퍼 보일지 몰라도 일반 국민으로선 그 정도면 성실한(?) 연설을 한다 싶었다. 발음 가지고 시비 거는 이들은 반기문 유엔 총장더러 같은 시비를 거는 것만큼 이나 무의미하다. 

 

 

  내가 감동한 것은 대통령의 당당한 태도 때문이었다. 영어로 연설을 해서가 아니라 영어로 연설을 하는데도 어쩜 저리 기품 있고 부드러운 시선을 유지할까 싶었다. 의례적이라 해도 미의원들이 기립박수를 보낼 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야 그 비밀을 알았다. 연설을 돕는 투명프롬프터가 연설대 양옆에 있었던 것이다. 밑바닥에 텍스트를 놓고 빛의 반사 원리를 이용하면 투명 프롬프터에 선명한 글씨가 뜬다. 연설자의 눈높이에 맞게 양쪽에 투명 프롬프터를 설치하면 청중들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좌중을 번갈아 보듯 시선을 돌리면 감쪽같이 프롬프터에 뜬 연설문을 읽을 수 있다.

 

 

  내가 몰랐을 뿐, 투명프롬프터는 연설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문명의 이기란다. 오바마 대통령도 안철수 의원도 이것을 활용한단다. 괜히 속은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곰곰 생각하니 이런 감정 또한 허세이다. 연설은 그 내용의 진정성에 있지 그걸 완벽하게 말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아니질 않나. 연설문을 단순 낭독하는 지도자보다 연설 자체를 멋지게 하는 지도자를 원하는 청중이 있는 한 투명프롬프터의 진일보는 계속될 것이다. 달 자체가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도 무시할 수 없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대통령 영어 연설 투명대통령 영어 연설 투명대통령 영어 연설 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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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중심을 잃지 않으시군요. 팜므 언니 님 !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 의원들이 내뱉는 말을 보면 막말을 참 싸가지없게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 사람은 반대편이니 무조건 나쁘다는 태도는 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다크아이즈 2013-07-17 08:46   좋아요 0 | URL
곰발님 중심을 잃지 않은 게 아니라 아예 중심 따윈 없어요.ㅠ
정치를 모르니 그 풍경에만 관심을 갖게 되고 자연 내가 보는 것 안에서만 머물게 되는 거지요.
골수 우파 전원책의 말에 공감해요. 신념 없는(당파성) 없는 정치판은 개판이다, 뭐 이런 논조였는데 그래서 그는 '새누리당'이란 정체성 없는 당명이야말로 코미디라 하더군요.

확실한 신념도, 이데올로기도 갖지 못한 저 같은 사람은 그저 풍경에나 밑줄을 긋고 있는 거지요.ㅠ

Shining 2013-07-17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님 글은 정말 좋아요, 슈퍼울트라캡숑!(ㅎㅎㅎ) 저는 글의 톤이 균질하지 못하고 논지도 왔다갔다 하는 사람인데; 팜님의 글은 소재나 주제가 바뀌어도 일정한 속도랄까 흐름이랄까 어떤 단단함이 느껴져서 좋아요. 좋군요 정말 :)

다크아이즈 2013-08-06 22:47   좋아요 0 | URL
샤이닝님 제가 요즘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어요.
어떻게 하루하루 버티는지 헬렐레 하고 있습니다.
알라딘에 몇 십 년 만에 와보는 느낌...
분발하고 싶습니다.
샤이닝님은 여전하시지요?
답글 늦어진 걸 너른 아량으로 봐주시어요^^*

페크pek0501 2013-07-17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태 발언의 신문 기사를 보고 저도 깜짝 놀랐답니다.
막말 논란을 보니 좋은 인생의 비결은 혀를 주의하는 것이라는, 탈무드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투명프롬프터, 라는 이름을 배워 갑니다. 역시 우린 좋은 시대에 살고 있군요.

좋은 하루 되시길... ^()^

다크아이즈 2013-08-06 22:50   좋아요 0 | URL
프롬프터야 널리 쓰이는지 알았지만
투명프롬프터가 나와 대중의 눈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언냐 잘 계시지요?
언능 알라딘을 재접수해야 할 텐데 제가 웬체 갈팡질팡 인생이라ㅠ
알라딘에 자주 올 수 있도록 도와주시어요^^*

세실 2013-07-17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스 진행할때도 투명프롬프터 사용하겠죠?
소셜 네트워크는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내 말만 늘어놓으면서 공허한 메아리만 듣고 있는듯 합니다.
그저 만나서 차 마시는 그런 사랑이 필요한거죠, 우리에겐!
굿 나잇~~~

다크아이즈 2013-08-06 22:51   좋아요 0 | URL
뉴스야 뭐 투명 아니고 그냥 프롬프터 써도 되지 않을까요?
화면에 비치는 건 일부분이니...
공허한 메아리인 게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아닌 경우도 많아요.
세실님과 함께하는 오공주 커뮤니티는 안 그렇잖아요. 흐흐~~
 

 

 

1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독후 단상

 

  국정원판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이 공개되었다. (시사 인 303호 부록으로도 딸려 나왔네. 사진은 302호) 앉은 자리에서 들쳐볼 수 있으니 웬 횡잰가 싶다가도 솔직한 심정은 ‘이래도 되나’이다. 기밀사항인 정상회담록마저 온 국민이 열람할 수 있다면 자료가 공개될 것을 의식해 회담에서 깊은 대화들이 오갈 수 있을까 하는 기우가 이는 것이었다.

 

 

  중편소설 분량보다 많은 대화록은 주로 노대통령이 대화를 주도하고 김정일 위원장이 화답을 하는 분위기이다. 방문객 입장인 노대통령은 많은 의제를 쏟아내기에 바빠 보였고, 김 위원장은 회담을 의례적 행사로 보거나, 아니면 나이 탓인지 피로감 깃든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국가기록원이 보유한 원본과 국정원이 공개한 이 전문이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다. 입맛에 맞게 약간의 윤색이 가해졌다 치더라도 그들이 주장하는 노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나 ‘굴욕적 외교’ 운운에는 동의하기 힘들었다. 다만 민족자주와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노대통령의 의욕과 애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이 자의적 해석의 빌미가 되고, 악의적 왜곡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대화록에 담긴 노대통령의 모든 말이 옳거나 공감 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국가원수로서 정상회담에서 할 수 있는 말들의 경계를 벗어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접대용 발언이라 해도 개성에 이어 해주까지 경제 특구로 주려고 했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수위가 더 강도 높아 보였다. 북한에서야말로 이 회의록이 공개된다면 군부나 인민들은 굴욕적 회담이라고 성토하지 않을까 싶었다.

 

 

  민감한 안보사항을 경제 논리나 평화 무드의 해법으로 바라보려 한 것은 노대통령의 과잉의욕으로 읽힐 수 있다. 그것이 보수언론들이 일제히 헤드라인으로 잡은 ‘NLL 바꿔야, 위원장님과 인식 같아’라는 사실상 NLL 포기 발언 맥락으로 이용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번 소동이 국정원의 정치개입 국정조사 전 물 타기 전략이 아니기를 바라며 궁금한 이들은 회의록 전문을 읽는 것이 가장 빠른 답이 될 것이다.

 

 

 

 

2. 이오덕 일기  

 

  이오덕 선생의 글쓰기 방식은 한마디로 ‘쉬운 말로 쓰자’였다. 권정생 선생과 더불어 그는 ‘국민학교만 나와도 알아먹을 수 있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강조했다. 그의『우리글 바로쓰기』는 글쓰기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여전히 인기 있는 책이다. 쉽게 쓰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담아야 한다, 고 일깨우는 그 책의 감동을 나는 잊지 못한다. 하고 싶은 말을 쉬운 글로 표현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번역문장에서조차 우리말을 고집해 문장이 어색해지는 선생의 방식을 제외하면 나는 여전히 선생의 글쓰기 방식을 존경하고 따르려 하고 있다.

 

 

  올해로 선생이 떠난 지 십 년이 되었다. 그를 기리는 지인과 출판계의 뜻으로 『이오덕 일기』가 출간되었다. 다섯 권으로 추려진 이 책이 나오기까지 2년 8개월이 걸렸다. 앞 두 권은 교사로 살았던 24년 세월을, 뒤쪽 두 권은 사회활동을 하던 13년의 기록을 담았다. 마지막 권에는 충주 무너미 마을의 마지막 5년 생활이 실렸다.

 

 

  그 중 권정생 선생과의 만남 장면이 인상 깊다.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된 권정생 선생은 아프다는 핑계로 시상식에 못 간다고 했다. 여비가 없을 것으로 짐작한 이오덕 선생은 당신이 갖고 있던 원고지와 돈을 두고 나온다. 두 분의 우정이 오래 지속된 계기가 된 만남이었다. 이오덕 선생의 발품은 가난한 권정생 선생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자신의 신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는 쉽지 않다. 전체 일기가 아닌 부분만 읽어도 선생이 뿌린 생각의 씨앗이 얼마나 영글고 올곧은지 알겠다. 어린이와 노동자와 농민 등 가장 낮은 이들과 호흡한 선생의 숨결이 오롯이 살아 있다. 교육과 글쓰기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사회 혁신으로까지 신념을 확대해간 선생의 노고가 일기 안에서 되살아난다. 가난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소박하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제 몸과 맘을 연 선생의 한살이가 이 일기집으로 인해 더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다.

 

 

 

 

3. 내 방에 잠들 착한 사람  

 

  ‘내 방에서 마지막으로 착한 사람을 재웠던 게 언제인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 밤에 나는 창문을 닫고 물을 끓이고 손으로 이부자리에 묻은 머리칼을 떼어냈을 것이다.’ 김도언의『불안의 황홀』중 어느 오월에 쓴 일기 전문(全文)이다.

 

 

  오래토록 호흡이 진정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런 기억을 떠올린지 오래 되었고,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왜 이런 단상을 길어 올리지 못했을까 하는 탄식이 지나갔다. 과외로 연명하던 청춘 시절, 낮잠 자고 음악 듣고 글쓰기를 해도 시간은 넘쳤다. 그렇게 남는 시간,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끼리 모여 놀았다. 착하지만 뜻대로 안 되었던 우리는 좁은 골방에 틀어 앉아 청춘을 둘러싼 제 환경을 성토했다.

 

 

  아부지 눈치를 보느라 자주 내 방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나는 곡예를 즐기듯 그 시간을 즐겼다. 주먹구구식으로 만든 호떡과 설탕 듬뿍 넣은 커피를 앞에 두고 에어 서플라이나 뉴에이지 음악을 들으며 수다를 떨었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는 친구를 위해 간이침대 밑 먼지를 훔치고 창문을 여몄으며, 물을 끓이고 홑이불의 머리칼을 떼어냈다. 그렇게 음습한 수다의 환희로 청춘의 정점을 찍었다. 불안한 미래였기에 뭐든지 불온하게만 받아들였고, 부족한 현실이었기에 무조건 불편하기만 하던 시절이었다.

 

 

  세월은 흘렀다. 불안도 결핍도 덜한 나날이 되었다. 물리적 환경이 아니라 시간이 그렇게 만들었다. 더 이상 친구를 위해 요령부득의 호떡을 굽느라 부산을 떨지도 않고, 설탕 듬뿍 넣은 촌스런 커피를 내놓지도 않는다. 문자 한 번이면 오리구이집이나 물회집에서 편리하게 만날 수 있다. 불안의 황홀 대신 편안의 불손이 유머로 먹히는 시대를 살게 되었다. 내 방에 잠든 착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잃는 만큼의 감칠맛 나는 입맛을 기억하는 시절이 된 것이다. 오늘 하루쯤은 마음으로나마 오랜 친구를 위한 잠자리를 마련해도 좋겠다. 어딘가 묵어있을 에어 서플라이의 '올 아웃 오브 러브', '당신이 사랑한 사람', '밤이 깊을수록' 등을 들을 수 있으면 금상첨화!

 

 

 

 

 

 

 

 

 

 

 

 

 

 

 

4. 사모님이 사는 법

 

  어제 오늘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모 중견 기업이 상위에 랭크되고 있다. 지난 주말 방영된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와 무관하지 않다. 모 살인사건 주모자의 파렴치한 후일담에 관한 것이었는데 그 주모자가 그 기업 회장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흥분한 네티즌들이 그 회사를 검색하기 시작했고, 관련 회사 제품의 불매운동까지 벌이는 모양이다.

 

 

  오래된 사건이지만 너무나 충격적이라 나 역시 인터넷이나 방송으로 전해주는 여러 정황들에 그간 관심을 뒀었다. 이번 방송에서는 ‘사모님’인 가해자의 병원 특실 생활 고발을 통해 우리 사회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부재에 대한 강력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무전유죄 유전무죄에 관한 우리들의 자조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모양이다. 돈 있고 배경 있으면 죄 없는 사람 죽여도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게 우리 사회다.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도 형집행정지라는 합법적(?) 근거로 병원 특실에서 나머지 형기를 보낼 수도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방송은 나아가 사법 적용의 부조리에 대해서도 고발한다. 한마디로 그들만의 세계란다. 같은 법이지만 그들의 법 집행은 돈과 권력에 좌지우지된다. 일반 서민들과 특수층을 대하는 그들의 법 해석은 달라도 한참 다르다. 그 검은 고리에 연결된 인물들은 한결 같이 사회지도층이다. 의사, 검사, 변호사, 경찰 등으로 이뤄진 그들에게 ‘가진 사모님’을 위한 ‘형집행정지’ 정도는 너무 쉬운 심부름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구린 돈이 빠질 리 없다. 의사는 수상쩍은 진단서를 발급하고, 검사는 당당하게 형의 정지를 허가하고, 변호사는 뻔뻔하게 형 집행 신청을 한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돈이다. 당연히 가해자에게 그 심부름 값은 껌값에 지나지 않는다.

 

 

 

 

돈으로 제 안위를 사고도 활개 치는 사람들이 넘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안전 불감증 못지않게 양심불감증도 우리 사회를 좀 먹는 불쾌의 정서이다. 언제까지 법보다 돈, 돈보다 권력인 사회를 인정하라고 자기체면을 걸 것인가. 그들 지도층들에게 바라는 서민적 정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실천적 덕목이다. 그것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돈이 그보다 훨씬 좋은 이유되시겠다!

 

 

 

 

5. 백석 시인과 젊은 화가

 

  누군가를 몹시 좋아하면 객관적인 눈을 가지기는 힘들다. 김영진이란 젊은 화가이자 저자 또한 그러하다. 그가 쓴『백석 평전』은 우연이자 운명적으로 내게 왔다. 인터넷서점에서 알게 된 전국구 독서친구들이 있다. 일명 오공주파인 우리 다섯은 비정기적으로 만나 우의를 다진다. 그 중 책 나누기 이벤트도 있는데, 이번 모임에서 내 손에 온 책 중에 가장 눈에 띤 게 이 책이었다.

 

 

  일반적으로 평전이라면 객관성은 기본으로 깔린 채 저자 특유의 해설이 붙는데 이 책은 아무리 봐도 일방적 백석 헌사에 가깝다. 검증된 자료로 시인과 시를 분석을 한 게 아니라 주관적 감정적 판단으로 백석 시인을 높이는 데 주력하였다. 그런데도 저자의 노고와 진정성이 배어나와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책 제목처럼 평전이라 불리기는 뭣하고 백석에 관한 저자의 모든 관심 정도로 읽히면 무방하겠다.

 

 

  젊은 화가이자 저자인 김영진은 어릴 적부터 병약해 5학년 때 학교를 중퇴했다. 그러던 그가 백석 시를 알게 되고 그 감동을 그림으로까지 표현하기에 이른다. 건강이 악화될수록 그에게는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었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의 내로라하는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근원을 아는 것이었다. 저자에게 그것은 다름 아닌 백석이었다. 당대 화가들에게 영감을 선사한 시인의 시를 읽고 또 읽어 심장과 영혼에 새겼다.

 

 

  저자는 시인이 사용한 언어를 알게 되고, 시인의 삶을 유추하게 되고, 당시 시대 상황을 알게 되었다. 자연히 시는 저자의 몸과 마음에 체화되었다. 좋아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은 어렵다. 사물이나 사람을 좋아하면 무작정 좋아하게 되는 것이지 그것을 분석하거나 따지는 건 고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이 책은 백석평전이란 제목은 붙이기 곤란하다. 가난하고 외로웠으나 높고 쓸쓸한 시인의 삶이 화가의 가슴에 들어가 한 편의 글이란 그림으로 완성된 것만으로도 저자는 뿌듯해 해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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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07-05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만 민족자주와 남북경제협력에 대한 노대통령의 의욕과 애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이 자의적 해석의 빌미가 되고, 악의적 왜곡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 동감이에요. 독해력이 없는 것인지 없는 척하는 것인지, 정말 답답합니다.

권정생 선생의 책에서도 이오덕 선생과의 미담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오래 전 독서지도 공부하면서 이오덕 선생의 책과 글쓰기를 읽은 기억들이 새록새록. 쉬운 말과 글고 바르게 쓰기, 쉽지 않지도 않을 듯한데 늘 염두에 두어야겠어요. 게을러서 훈련이 부족해 ㅠ

김영진 화가의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에 대한 이야기, 반가워요^^
그리고 음습한 골방에서 청춘을 피워댔던 우리들의 그 시간도요.^^

팜므언니, 오늘도 좋은 하루 행복한 하루!!! 되세요^^

팜므느와르 2013-07-07 13:50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쉽게 쓰기도 훈련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고, 그래서 더 어렵고...
프레님은 지금도 잘 하고 계시니 계속 알라딘에 머물기만 하면 되옵니다.^^*

김영진 화가의 백석 평전은 프레님이 주신 걸로 기억해요.
그날 그 책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잖아요. 보물 건진 듯해서.
내용이 화가의 백석 개인에 대한 사변에 머물러 조금 안타까웠던 게 흠이긴 했어요.
그래도 이 책 보면 프레님 계속 떠올릴 거야요.^^*
오늘은 일요일, 책 읽고 글쓰고 군것질하기 좋은 오후 크~~~

곰곰생각하는발 2013-07-05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므언니 님 ! ㅎㅎㅎㅎㅎ. 전 서상기나 애들이 하도 자신있게 말해서 노무현 특유의 스타일' 때문에 오해가 있을 수 있겠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딜 봐도 포기나 굴육이나 그런 것 자체가 없었다는 겁니다. 황당하더군요. 오히려 김정일은 회의'가 따분한 것 같았고, 노무현은 하나라도 건져서 뭐 좀 만들었으면 하는 늬앙스였습니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과연 이게 공개되어야 할 것들인가요 ? 정말 기가 차고 귀가 막히고 기가 서립니다. 이건 뭐.... 이 나라가 머 어떻게 된 것인가... 남들은 창세기 동안 한번 있을까 말까한 엽기를 1년에 한번씩 국가가 자행한 만행을 그대로 겪어야 하니..... 민주주의가 이런 식으로 망가질 줄은 사실 꿈에도 몰랐습니다.

팜므느와르 2013-07-07 13:55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곰발님께 당연히 언니로 불리면 좋지요.
잘은 모르지만 첫째 누님뻘은 될 것 같은데, 실은 나이를 잊고 글 친구를 청하는 바이옵니다.ㅋ
근데 불안한 것이 머잖아 곰발님은 문학계를 평정할 것이고, 그렇게 뒤안으로 밀려난 저 같은 사람은 지금 님과 많은 교류를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것 같아요.
그러기 전에 부지런히 눈도장 찍겠습니다. 왜냐면 사람은 변하지 않지만 환경이 사람을 변하게 하거든요. 제발 배신 당해도 좋으니 곰발님의 글발이 먹히는 날이 오기를....

팜므느와르 2013-07-07 13:5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정상회담 관련은 딱 한 마디 하고 싶어요.

'문헌'부터 '상기'하는 습관을 갖자, 뭐 이 정도 ㅋ

2013-07-06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팜므느와르 2013-07-07 14:0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속삭인님, 로긴이 제대로 안 되어 이렇게 답 달아요.ㅠ
알라딘에서 보배인 님 글을 읽는 재미는 웃음, 숙연, 공감, 진솔 그 자체이지요.
같은 책을 공유한다는 비밀 같은 기쁨은 마치 말없이 통하는 유쾌한 작당 쯤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기분 짱입니다.
님도 휴일 잘 보내시어요^^*

Jeanne_Hebuterne 2013-07-19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종 미국을 떠나 파리에서 영광을 누렸다던 이들의 흔적은 참 놀라워요.
천진난만함으로 파리를 사로잡았다던 조세핀 베이커의 사뿐사뿐한 걸음걸이를 궁금해지게 만드는 페이퍼!
유럽 사진 더 뿌려주세요! 히힛

덧-와, 전 더위에 놀고만 있었는데 팜므 느와르님, 정말 부지런하셔요!!!

다크아이즈 2013-08-06 22:57   좋아요 0 | URL
조세핀 베이커 식 삶도 확실히 매력 있지요?
내 살고 싶은 대로 못 사는 가장 일순위의 땅이 대한민국이 아닐까 싶어요.
(특히 여성에겐...)
왜 미쿡 살던 사람이 유럽 가면 날개를 달까요?
먼 곳에서 보기엔 거기나 거기나 다 자유분방해 보이는데...

부지런하기로야 에뷔테른 윈이지요. 저야 늘 갈팡질팡, 지멋대로...
 

 

 

 <유럽 여행 단상기>

 

 

 

 

 

 

 

 

 

 

 

 

 

 

 

 

 

 

 

1. 유럽에서의 공중화장실 - 사진은 창밖으로 본 베네치아

 

 

  2주간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귀갓길 택시 안, 짐 꾸러미만으로도 먼 길 떠났다 온 것을 알아 본 기사분이 갑자기 흥분하신다. 외국여행은 할 게 못 된단다. 특히 유럽 여행이 그런데, 화장실 갈 때도 돈 내고, 호텔 나올 때도 팁 줘야 하고, 물마저 사먹어야 한다더라며 결론은 우리나라만큼 살기 좋은 데가 없단다.

 

 

  ‘우리나라 좋을 씨고’, ‘내 집이 최고지’에 대한 답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가끔 길 떠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유럽의 화장실 문화나 팁 예절, 공짜가 아닌 음용수에 대해 딱히 불만이 있는 쪽은 아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지 않는가. 다만 공중 화장실에 대한 의문은 가시질 않는다. 유료인 것은 그렇다 치고 그런 화장실조차 드물다는 게 문제이다. 우리식 화장실 문화에 길들여진 여행객으로서는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매장에 딸린 화장실 입구에는 칸막이 봉까지 설치해 놓았다. 무표정한 검표원이 동전 투입구 앞에 서서 물건 살 때 화장실 사용료만큼 할인해주는 쿠폰을 발행해 준다. 인건비도 안 나올 것 같은데 왜 저런 시스템을 고집할까 싶다. 그들 조상들의 위대한 축조물 앞에서 연신 감탄하다가도 미로 속 같은 무료 화장실을 찾아 헤맬 때나, 푼돈을 낚아채 가는 유료 화장실을 보면서, 그들 문화 스케일의 양극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더럽힌 자, 품위 있게 그 비용을 지불할 지어다. 그런 마인드라면 화장실 개수도 늘이고 그 품격이라도 높여야 하지 않는가. 화장실 관리 명목, 노숙자 접근 금지라는 이유 등으로 유료 화장실을 고집한다지만 그리 설득력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화장실이 그리 깨끗한 것도 아닌데다, 공중화장실마저 노숙자를 거부한다면 그들은 어디서 볼일을 보나? 이참에 선진화된 우리 화장실 문화를 유럽에다 전수하면 어떨까. 아니면 우리도 관광대국이 되어 느긋하게 화장실 앞에서 돈 내놔라고, 무표정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게 나을까. 아서라, 생각만 해도 멋쩍고 볼썽사납구나.

 

 

 

 

 

  

  2. 제라늄이 있는 창

 

  들여다보지 못하고 바라만 보는 여행은 반쪽짜리 여행에 지나지 않는다. 잠깐이라도 그들 삶 안에서 부대껴봐야 여행의 참맛을 알 수 있다. 바람결에 제 흰 뒤태를 맘껏 까불던 은사시나뭇잎의 당당함, 그 아래 푸르거나 흙빛으로 휘돌던 냇물의 도저함, 늦봄의 아쉬움을 달래며 만개하던 아카시아의 친근함, 그 뒤에 묻어나는 삶의 실체를 호흡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드넓기만 한 평원은 고요를 지나 적막하기만 했고, 문 닫힌 대문 안 울타리는 상상으로도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자연에서 경험하지 못한 간접 체험은 사람을 대하면서 조금 할 수 있었다. 곤돌라 내부가 더러워질까 예민해지던 뱃사공의 시선, 타성에 젖은 노랫가락으로 제 피곤을 연주하던 악사들의 낯빛, 휴지 하나 버리자는 데도 손사래 치던 점원의 이맛살. 작은 관찰만으로도 산다는 게 얼마나 힘겹고 피로한 것인지 알 것 같다.

 

 

  그들 목가적 원경의 평화와 위대한 축조물의 위용 앞에서 우리는 무던히도 감탄사를 내뱉었다. 하지만 그 평화와 위용은 껍데기일 수도 있다. 견문의 대상을 그들 삶의 현장으로 치환한다면 어떨 것인가. 원경의 평화도 삶 안에서는 곤고함이 도드라질 것이고, 건축물의 위대함도 노동 현장이 되면 신산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원래 멀리서 보면 청맹과니 평화요, 가까이서 보면 천리안 전쟁터 같은 것이 사람 사는 모습이니.

 

 

  그 신산하고 지리멸렬한 것들로부터 치유하기 위해 사람들은 작은 여유를 찾는다. 창가의 제라늄 화분이 그 좋은 예가 될까. 유럽의 창밖 베란다마다 붉은 제라늄이 지천이다. 춥지 않은 날씨 덕에 오래 꽃을 볼 수 있는데다, 잎에서 나오는 특유의 향은 해충 퇴치에도 도움이 된단다. 관상용 꽃으로는 그만이다. 제라늄의 잔영이 자꾸만 어른거리는 건 거창한 게 아니라 소박한 데서 여유를 찾고자 하는 인간 심성의 공통점 때문이리라. 굳은 결의 또는 그대가 있어 행복이네 등의 꽃말을 지닌 제라늄이 핀 창가는 한동안 내 안에서 쉬 떠나지 못할 것이다.

 

 

 

 

3. 우산소나무와 사이프러스 - 타자를 안다는 것

 

  공자의 수많은 제자 중에 ‘번지’라는, 내가 보기에 무척 예쁜(?) 이름을 가진 이가 있었다. 우스갯소리를 붙이자면 그의 자는 자지(子遲)란다. 공자의 수레를 몰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학식이 높았던 이는 아니었으리라. 총명하고 똑똑한 제자는 아니어서 엉뚱한 질문, 예컨대 채소 가꾸는 법 따위를 물어 주변으로부터 비난을 듣곤 했다. 영민함과 재치와는 거리가 멀었겠지만 순박함과 성실함으로 공자를 보필한 제자였을 것이다.

 

 

  그의 관심 분야는 앎(知)과 어짊(仁)에 관한 것이었다. 번지가 그것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가 대답했다. ‘어짊이란 애인(愛人)이고, 앎이란 지인(知人)이다.’라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인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공자의 인에 대한 가르침은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였다. 안연에게는 예를 회복하는 것이요, 중궁에게는 남에게 원치 않은 일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며, 사마우에게는 말을 조심하는 것이라 답할 만큼 그때그때 달랐다. 하지만 가만 보면 공자의 여러 답변은 결국 한 가지였다. 다름 아닌 ‘타자에 대한 이해’이다.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흔히 만나는 두 나무가 사이프러스와 우산소나무이다. 전자는 밑이 넓다가 위로 솟구칠수록 뾰족한 긴 삼각형 모양이고, 후자는 나무둥치가 뻗어가다 윗부분 잎맥에 이를수록 핵 분열하는 것처럼 둥글게 퍼지는 형태이다. 각각은 직선과 곡선, 첨탑과 돔, 뾰족함과 둥글함, 자제와 허용 등의 이미지를 풍긴다. 한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 두 나무가 연출하는 거리의 풍광이야말로 멋진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나아가 그 다른 사람마저 밑둥치와 잎맥이 지닌 성질은 다를 수 있다. 다변적인 인간의 성정을 공자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제자마다 다른 답변을 줄 수 있었다. 사람 따라 달랐던 공자의 답에는 다음과 같은 숨은 가르침이 있었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안다는 것이고, 안다는 것은 인간 보편성에 대한 균질하고도 다양한 이해로부터 출발한다는 것.

 

 

 

 

4. 함께라는 말  - 사진은 브뤼셀 그랑 광장의 커플

 

  잘잘한 해프닝이야말로 여행의 또 다른 묘미이다. 단체여행에서의 수위 높지 않은 실수담은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여행의 잔재미를 선사해준다. 겪는 당사자로서는 아찔하고 당황할 수도 있지만 지나고 나면 그마저 좋은 추억담이 되어준다.

 

 

  일찍 잠에서 깼다. 말로만 듣던 파리 시내 관광, 그 중 에펠탑과 센느강을 볼 수 있다는 설렘에 마음은 절로 달떴다. 외곽의 숙소를 떠나 버스는 시내로 달렸다. 한참 가고 있는데 전화를 받는 가이드의 얼굴빛이 심상찮다. 두 명의 일행을 숙소에 둔 채 신나게 달려왔던 것이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설마 자신들을 두고 떠났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아직 초기 여정이라 여행객들끼리 통성명조차 없어서 서로를 챙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인원 체크는 당연히 가이드 몫이라고만 생각했다.

 

 

  아뿔싸, 두고 온 멤버는 전날 밤 내게 자신들의 곁잠자리를 내어준 그분들이란다. 그 사실을 알고 나자 가이드보다 내가 더 미안해졌다. 주변을 돌아볼 생각 없이 나만의 여행에만 몰두해있던 스스로에게 실망감이 일었다. 버스는 이미 삼십 분 이상을 달려왔다. 운전대를 되돌릴 상황이 아니었다. 할 수없이 그들은 택시를 타고 뒤따라 와야만 했다. 에펠탑 광장에서 무사히 합류할 수 있었다. 잠시의 이별이었지만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괜히 민망해졌다. 섬세한 마음자리까지 이르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하기만 했다. 둘이였다 해도 낯선 이국의 택시 안에서 그들은 얼마나 불안에 떨며 노심초사했을 것인가. 함께 하는 여행은 서로 챙기고 다시없을 위안이 되어주어야 하는 것임을 깨치게 해주는 해프닝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존재감 없는 사람들이었어?’ 라고 안전지대에 당도했음의 여유를 귀여운 눈 흘김으로 대신하던 그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랬다. 누가 파리까지 와서 택시 일주까지 하는 호사를 누리겠어요? 어느 누구도 쉬 경험하지 못할 파리의 추억을 그대들은 간직한 걸요.

 

 

 

 

 

5.젊은 어깨동무 - 사진은 베드로 성당 근처 피로 푸는 커플 : 이 정도의 여유는 있어야!

 

  ‘오, 삶이여. 삶 그것은 바깥에 있다는 것 / 활활 타는 불꽃 속의 나 / 나를 아는 자 아무도 없다’ 임종 때 남겼다는 릴케의 이 시구는 여행의 목적에도 맞춤하다. 왜 사람들은 저마다 떠나기를 꿈꾸는 것일까. 왜 누군가는 기어이 그것을 실행에 옮기고 마는 것일까. 삶이란 내 안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바깥 어딘가로 향하는 속성을 지닌다. 그 밖을 넘보는 욕망, 자신조차 알지 못하는 활활 타는 불꽃, 그 정념의 뿌리를 찾아 우리는 떠나기도 하는 것이다.

 

 

  누가 봐도 청춘인 여행객 셋. 둘은 쌍둥이 자매였고, 하나는 우연히 포항에서 같이 출발한 아가씨였다. 셋 다 직장 생활을 하는 커리어우먼이었는데 휴가를 내고 여행에 동참한 경우였다. 사회생활에서 터득한 지혜 덕이었을까. 어려보이는 외모와 달리 하나같이 성숙하고 사려 깊은 삼인방이었다. 흔히 기성세대들이 우려하는 젊은이 특유의 철없음도 없었고, 혼자만 잘났다는 이기심과 무관심도 발견할 수 없었다.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엄마 미소가 절로 나온다.

 

 

  카드를 분실했다고 울먹거리다가도 위로의 말에 해맑게 웃던 모습, 약속 장소를 넘겨짚는 바람에 한참 숨바꼭질을 했을 때, 기다리던 우리는 그마저 소소한 재미로 생각했는데 어쩔 줄 몰라 하며 진심으로 미안해하던 모습, 귀찮을 법한데도 티내지 않고 환한 미소로 사진기 셔터를 눌러주던 밝은 심성 등 그들이 뿜은 매혹적인 아우라 덕에 여행은 한층 즐거웠다. 두고 온 걱정거리가 많은 주부들에게는 2주의 여행 기간이 적당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홀가분한 그들로선 못내 아쉽기만 하다고 했다.

 

 

  바깥의 삶을 내 안으로 적극 끌어들이는 데는 젊음, 그것도 어깨동무한 젊음보다 나은 게 없다. 여행이란 꿈꿀수록 이루기 쉽고, 덜 심사숙고할수록 기회가 온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자. 한시라도 젊었을 때 경계로 상징되는 모든 것을 경험하자. 내 안에 머문 나를 밖에서 볼 수 있는 여행이 되도록.

 

 

 

 

 6. 시청박(視聽搏)의 여행 - 사진은 암스테르담 담 광장

 

  몇 박 며칠, 어디를 갔다 왔어? 해외여행자에게 행하는 가장 의례적인 질문 중 하나이다. 그러면 대개 여행자는 이렇게 답한다. 13박으로 영국을 비롯한 9개국을 갔다 왔어, 라고. 꼬박 이틀은 비행기에서 보내고, 하루에 한 도시 겨우 점찍듯 돌아봤으면서도 여행자는 짐짓 자족에 찬 표정까지 지어보이는 것이다. 어차피 묻는 이나 답하는 이 모두 그 편이 가장 부담 없고 안전한 화젯거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를 묻고 답하기엔 여행사의 기획품인 패키지여행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다.

 

 

  <도덕경> 14장에 ‘시지불견(視之不見) 청지불문(廳之不聞) 박지부득(搏之不得)’이란 말이 나온다. 도(道)를 설명하는 명문이지만 ‘제대로 듣고 보고 겪는 것의 어려움’을 비유할 때 쓰이는 어구이기도 하다. 보아도 제대로 못 보는 것, 들어도 제대로 못 듣는 것, 겪어도 제대로 겪지 못하는 것은 도뿐만 아니라 여행에도 적용된다. 짧은 기간 동안 여러 곳을 휘돌았을 때 그것은 ‘시청박’에 머문 것이지 ‘견문득’에 이른 것은 아니다. 냉정하게 돌아보면 비행기 타고 차타고, 창밖 풍광을 보다가 내려, 일견 비슷해 보이는 건축물과 거리를 눈에 담기 무섭게 빛의 속도로 사진 찍고 밥 먹고, 다음 장소로 옮겨 가는 것 이것이 여행의 일반적 과정이었다. 여행에서 가장 필요할지도 모를 자발적 의사와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았기에 뭔가를 깊이 새긴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패키지여행의 한계였다.

 

 

  하지만 합리적인(?) 비용만큼 합당한 결과를 얻는 것이니 그리 나쁠 것도 없다. 이국의 문 닫힌 여염집안의 티타임,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평원에서의 농사꾼의 망중한, 마을을 흐르던 푸르거나 흙빛 시냇물의 감촉 등을 전혀 맛보지 못했다. 위대한 건조물의 껍데기를 배경으로 열심히 인증샷을 눌렀을 뿐 그들 삶 자체를 들여다 볼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하물며 그토록 날 좋은 이국의 밤하늘에 뜬 별 한 번 쳐다볼 여유마저 갖지 못했다.

 

 

  대충 듣고 겪는다는 것은 아무 것도 보고 듣고 겪지 않은 것과 같다. 주마간산식 여행은 견문득과는 한참 멀다. 하지만 시청박에 머문 여행 또한 여행이 아닌 것은 아니니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판이라 위안을 삼아야겠다. 그렇다고 아주 소득이 없는 건 아니다. 국경을 넘는 기차 안에서 바라본 바람결에 제 뒤태를 까불던 은사시나뭇잎들의 반짝임, 그 밑을 흐르는 푸르거나 흙빛 냇물의 도저함, 늦봄의 아쉬움을 달래던 아카시아 물결의 친근함, 가없는 의연함의 향연인 푸른 지평선, 강언덕을 낀 목가적 풍경의 마을들, 그 안에서 묻어나올 신산한 삶의 냄새들을 상상하는 일, 잠시 몽상가의 센티멘털에 빠졌다가도 두고 온 식구들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일, 야윈 얼굴에 쾡한 눈동자를 한 지친 여행객이 되어 보는 일 등 조화와 부조화를 오가던 크고 작은 행보들은 여행자만이 가질 수 있는 감흥이었다.

 

 

  도덕경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을 이(夷)로, 듣자 해도 들리지 않는 것을 희(希)로,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것을 미(微)로 정의하고 있다. 이희미夷希微)는 도가 그러하듯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분명한 실체가 아니다. 실체 없고 닿을 수 없는 한 지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바람을 맞기 위해 길 떠나보는 일, 견문득을 거쳐 이희미를 이해하는 과정 그것이 여행을 하는 궁극의 이유가 아닌지 모르겠다. 실체 없는 도에 이르듯 자아 없는 자아에 이르는 끝없는 과정 그것을 여행이라 부르겠다.

 

 

 

 

 

 

 

 

 

 7. 힌트는 짐 - 사진은 브뤼셀 그랑 광장 비주얼 넘치는 커플

 

  이십 대 초반 동아리 친구들과 지리산 종주를 한 적이 있다. 험한 산을 며칠에 걸쳐 종주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모르던 시절이었다. 합리적인 등반 채비는 안중에도 없었다. 들뜬 나머지 이것저것 꾸러미만 늘렸다. 이틀째였던가. 급경사인 등산로 앞에서 나를 비롯한 여학생 몇은 그만 울음보가 터졌다. 체력은 바닥인데 무거운 배낭마저 어깨를 짓누르니 설움이 북받쳤던 것이다. 하지만 강단 있는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눈썹조차 흔들리지 않았다. 배웅 나왔다가 엉겁결에 뾰족 구두 차림으로 합류한 후배조차 의연한 모습이었다.

 

 

  너그러운 남학생들의 도움으로 겨우 종주를 마칠 수 있었지만 그 일은 내게 꽤 충격이었다. 주량도 모른 채 마신 한 잔 소주에 취해 다음날에야 깨어났던 사건처럼 수치스럽고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자괴와 민폐를 불렀던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정글의 법칙’ 같은 다큐에서 힘든 상황일수록 의연하게 대처하는 여성 출연자를 보면 마구 존경심이 인다. 어쨌든 그 이후로 ‘나 자신을 알자’는 말을 자주 새기게 되었다.

 

 

  명강사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베테랑일수록 꾸러미가 간소하다는 여행전문가의 충고는 내 경우 옳았다. 그 옛날 지리산 종주에서 겪었던 낭패감을 떠올리며 (짐을) 줄이고 또 줄이라는 그 말을 무조건 신봉했다. 최대한 가벼운 짐을 꾸렸다. 얼마나 줄였는지 공간이 남아돌아 가방을 움직이면 덜컥이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그러면 가벼운 짐 싸기만 옳은가. 그럴 리가! 때에 따라 무거운 짐은 생명까지 구할 수 있다.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은 성가셔하면서도 근시와 돋보기용 두 개의 무거운 안경을 지니고 다녔다. 어느 날 저격수는 대통령의 가슴팍을 겨냥했다. 하지만 총알이 주머니 속 강철 안경집에 굴절되는 바람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렇다. 내 짐이 무겁다고 느끼는 자는 덜고, 그 짐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면 챙겨서 떠나면 된다. 인생은 어차피 전세 아니면 월세, 선택의 연속이니까.

 

 

 

 

8.문화의 방식 - 세느 강변의 청춘 :달리는 배 안이라 흔들렸지만 알리고 싶었지, 저 젊음

 

  누구나 제 눈으로 타자와 풍경을 읽는다. 같은 것을 보고도 사람마다 여행의 감흥이 다른 이유이다. 유럽 여행 중 가장 큰 정서적 충격은 센느 강변의 젊음들이었다. 유람선에서 바라본 강변 풍경은 인산인해이다. 평일 저녁인데도 둔덕이나 보도마다 몰려나온 청춘들은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다. 인구 밀집형 도시가 아닌 파리에서 이토록 많은 청소년들이 강변으로 쏟아져 나와 이야기꽃을 피우다니. 서머타임 기간이라 해가 늦게 져 시간이 많은 그들이라 해도, 우리식 문화에 길들여진 나에겐 너무나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일단 우리 청소년들은 평일 저녁, 강변에 떼로 몰려나올 수 있는 환경이 못 된다. 대학입시에 밤 시간을 저당 잡힌 지 오래다. 설사 자유가 주어져도 그들은 강변에서의 수다 삼매경은 택하지 않는다. 피시방이나 노래방 등 폐쇄적인 공간을 선호할 것이다. 그도 아니면 집에서 러닝맨이나 개그콘서트 등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할 것이다. 통째의 젊음이 강변을 점령해 저들만의 소통으로 낭만을 즐기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최첨단 인터넷 환경이 아니라서 그럴까. 스마트폰만 죽어라 들여다보는 청소년들도 거의 없다.

 

 

  세대는 다르지만 문화적 관습은 대를 잇는다. 수다 문화, 고상하게 말해 토론 문화가 발달되다 보니 대를 이어 그게 당연히 학습된 걸까. 흔히 프랑스를 수학과 철학의 나라라고 한다. 대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에서도 수학과 철학에 가산점을 줄 정도이다. 답 자체보다 답에 이르는 과정을 중시하는 문화이다 보니 모여서 이야기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런 모양이다. 주입식 사고와 오지선다형 학습에 익숙한 우리의 청소년 상황이 떠올라 괜히 심란해지는 것이었다.

 

 

  고통 없고 방황 없는 청춘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밤물결을 일렁이는 바람 앞에 제 청춘을 부려놓을 여유가 있는 것과 그 바람의 존재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는 청춘은 다르지 않을까. 문화적 관습으로만 그들의 낭만성을 치부하기엔 우리 청소년들의 현실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보너스 - 스페인에서 온 총각과 나 : 총각이 안 돌아본 건 컨셉이지

             절대 내가 못생겨서가 아님! (절규 버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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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7-04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긴 글을 하나도 빼지 않고 다 읽었어요. 어느 부분엔 밑줄을 긋고 싶었답니다.
문장이 좋군요. 내용을 감상하다가 문장력을 감상하다가 그러면서 읽었어요.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쏟아 놓을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꽤 유익한 여행이었을 듯해요.

질문) 사람들의 사진을 찍을 때 그들의 허락을 받으셨나요?
그래야 될 것 같아서요. ^^

다크아이즈 2013-07-05 09:07   좋아요 0 | URL
길어 보여도 단상이라 금세 읽힐 거라 생각했어요.
밑줄은 페크 언냐 글에 그을 게 많지요. 언냐도 그걸 더 잘 아실 텐데 ㅋ

사진은 당근 허락 받지 않은 파파라치 짓이에요.
찍는다는 걸 알면서도 별 개의치 않았어요. 멀리서 한 짓이니.
글고 될 수 있음 뒷모습 찍었지요. 여행 컨셉이 유럽 연인의 뒷모습이었으니^^*

프레이야 2013-07-04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이 뚫어져라 한 자 한 자 마음을 느끼며 읽어내려갔어요.
끄덕끄덕 공감하고 동감하고 웃고 즐기며 ^^
근데 마지막 사진 코멘트에서 그만 빵~~~ ㅎㅎㅎ
스페인 청년이랑 한 프레임 안에 들어간 게 어디에요?!!! ^~*
추억의 한 장 한 장, 두고두고 행복하실 듯해요.
패키지 여행의 한계는 있었겠지만 언니도 말씀하셨듯 뭐든 내가 지불한 만큼의 소득이
있는 법이니 그만큼도 좋지요^^

다크아이즈 2013-07-05 09:18   좋아요 0 | URL
공감할 게 한둘만 있어도 만족이요.
프레님이 갔다 오심 엄청 섬세하게 쓸 수 있을 거예요.
기대할게요.

스페인 총각 넘 수줍어하드라구요.
그게 더 귀여웠어요.
지불한만큼의 대가, 꼭 그 만큼의 여행이라고 생각해요.^^*

2013-07-04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7-05 0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7-04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 참 좋군요. 인문 에세이를 읽는 듯한 느낌입니다.
앎이란 단어와 어짊'이라는 단어가 묘하게 형태가 비슷하네요....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앎 = 어짊'... 묘하게 닮았어요.
명강사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맞습니다. 약장사나 사기꾼들이 마이크를 잡으면 목소리를 높이지요. 믿숩니까 ? 한마디로 대통령이 된 사람도 그렇고 말이죠..

다크아이즈 2013-07-05 09:21   좋아요 0 | URL
곰발님 많이 아는 것과 어짊은 거리가 멀지만
안다는 것과 어짊은 진짜 상관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어짊을 향해 나아가는 게 진정한 아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안다는 건 한참 멀었고, 힘들다는 생각...

라로 2013-07-04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저도 유럽 갔을 때 화장실 좀 치사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다행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만 급한 상황이 있었어서 잘 넘어갔더랬어요,,,,그 옛날 일이 언니 글 읽고 다시 떠오르네요,,,ㅋㅋㅋㅋ

2.이 글을 보면 언니가 참 멋진 분이라는 것이 더 잘 느껴져요,,,왜인지 설명은 만나서,,,ㅋ

3.번지, 자지,,,아 웃겨~~~~~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공자의 인에 대한 가르침이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였다는 언니의 표현도 좋아요,,,그 유연성 때문에 여전히 공자가 추앙 받는 것 아닐까요???

4.그런 일이 있으셨군요,,,단체 여행인데 그만하길 정말 다행이네요,,,언니가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될 듯 한데 언니는 참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천성이신 것 같아요~~~. 언니의 양반댁 규수 같은 몸가짐이 다시 떠올라요~~~~.^^

5."이것저것 생각하지 말자. 한시라도 젊었을 때 경계로 상징되는 모든 것을 경험하자. 내 안에 머문 나를 밖에서 볼 수 있는 여행이 되도록." 이 글 참 멋지다고 생각했어요,,,특히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자!! 저에게 주시는 충고 같아요~~~.^^

6.이 글은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주역 게사 강의]와도 많이 겹치네요,,,언니는 아는 게 참 많으셔,,,가만 보면!!!

7.어제 본 영화가 [화이트 하우스 다운]이라는 영화였는데 거기서 대통령인 제임스 소이어는 아내가 취임식 때 선물로 준 링컨의 시계를 늘 안주머니에 넣고 다녀요,,그런데 악당이 쏜 총에 맞았는데 그 시계에 총알이 박혀서 살아나게 되는데 거기서 소이어는 이렇게 말해요,,"링컨이 나 대신 두번째로 총을 맞았다."고요. 어쩌면 이 영화 그 아이디어를 루즈벨트 대통령의 일화에서 가져왔나봐요~~~.

8. 마지막 사진 멋져요!!! 일부러 흔들리게 찍은 것 같아요~~~.ㅎㅎㅎㅎ
저는 한국이 참 좋지만 언니가 지적하신 문제가 제가 떠나는 이유 중 하나에요,,우리 아이들은 바람앞에서도 여유를 갖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요,,,

9. 스페인청년과는 컨셉이셨던 거에요!!!!ㅎㅎㅎㅎ 언니표 유머 귀여워요~~~~.ㅋ

언니의 격조있는 글은 어떤 주제이건 참 멋져요!!!!^^

다크아이즈 2013-07-05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아님 댓글달기 클릭이 안 되어요. 몇 번 시도해도ㅠ
아마 시아님의 정성 깃든 의견이 넘쳐서 갸들이 소화를 못하나 봐요. ㅋ
저 감동 먹었잖아요. 글 읽기는 쉬워도 이렇게 오래 시간을 투자해 용기를 주는 건 쉽지 않잖아요.
그나마 초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고 계시는 중일텐데...

화이트 하우스 다운 그 영화의 에피소드는 확실히 루즈벨트 일화를 차용한 듯. 아님 루즈벨트도 신화 만든다고 주변에서 그런 에피소드를 조작했을 수도 ㅋ

여행은 재면 못 떠나는 건 경험으로 알고 있어요.
계획을 덜 할수록 빨리 떠날 수 있는 게 여행이에요.
계획해서 좋은 건 이 세상에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냥 뭐든지 저질러서 얻으면 다행, 밑져야 본 전인 거죠, 뭐.
단, 배우자 고를 때는 계획은 아니더라도 무조건 저지르면 안 되지롱~~
뭔 개소리여~~ 휘리릭 시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