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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연찮게 알라딘 서핑을 하다가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서른살의 다이어리.  알리사 발데스 로드리게즈의 데뷔작이란다. 제목만 보면 삼류 대중소설 필이 확 느껴진다.  하지만 별 망설임 없이 보관함에다 담았다. 누군가 옮겨놓은 도입부의  솔직한 화법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장담컨대 작가가 대중소설을 지향하고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장만은 결코 대중성에 머물러 있지 않을 것 같다. 빨리 읽어 봐야겠다.

  <나는 후진 인생을 살아왔다. 후진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후진 것을 겪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내 직장생활에서는 후지지 않은 것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앞에 말한 모든 후진 것들이 계속 되돌아오는 거다. 나를 후진 년 취급하는 잘 생기고 말 잘 하는 사내새끼들의 형태로 말이다>

  <나는 기자로서는 꽤 유능하지만, 라틴계 여자로서는 별로다. 적어도 그들이 기대하는 라틴계는 아니다. 오늘 오후에 부장이 내 책상으로 와서는 자기 아들의 생일 파티에 쓸 멕시코 튐콩을 어디서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설사 멕시코계 미국인이라 해도 그런 이상한 것을 알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프리다 칼로의 송충이 일자눈썹을 볼 때마다 왕창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다.>

  적어도 도입부부터 이런 솔직하고, 감각적인 문체를 구사할 수 있다면 독자층 확보 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 두 번째 인용 단락의 마지막 문장 때문에 거의 눈물이 날 뻔했다. 근래에 프리다 칼로에 대해서 읽고 있었다. 그녀의 천재적 예술성과 치열한 삶을 의심없이 인정하려는데, 뭔가 2% 부족한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 원인을 찾기는 했다. 남편 디에고 리베라에 대한 융통성 없는 신뢰가 안타깝고 못미더웠던 것이다.  그래도 뭔가 1% 더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데, 오늘 이 문구를 발견하고 10년 묵은 체증을 확 덜어낼 수 있었다. <프리다 칼로의 송충이 일자눈썹을 볼 때마다 왕창 뽑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다.> - 헉, 나도 이런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문장이 되어 나오지는 않았던 것이다. 적어도 쓰거나 읽는 사람이라면 자신 안에 숨어있는 거칠 것 없는 감각을 잘 벼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백 날 벼리기만 하면 뭐하노?  살이 되고, 뼈가 되도록 완성해나가야지. 

  이제 보니 프리다 칼로의 눈썹을 질투하고 있었는지도?  그녀의 갈매기 눈썹을, 강렬한 검은 눈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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