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세핀 베이커 - 미드나잇 인 파리

 

  작년 개봉된 영화「미드나잇 인 파리」를 영화관에서 못 본 건 아쉬운 일이었다. 어젯밤 교육방송에서 심야영화로 방영해주는 걸 봤다. 우디 앨런 식 유머를 곱씹는 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웠다. 약혼자와 파리로 떠난 소설가 ‘길’이 192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되는 것이 큰 흐름이다.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콕토와 헤밍웨이, 피카소와 달리, 마네와 고갱 등등 파리 거리를 누볐던 당대의 많은 예술가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영화 자체에 빠지거나 잘 알려진 예술가들을 상기하는 것도 재밌지만, 잘 몰랐던 대중 예술가를 눈 여겨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주인공 ‘길’은 술집에서 혼혈 흑인 무희를 만난다. 조세핀 베이커이다. 흰 드레스에 깃털을 휘날리는 그녀는 고국인 미국이 버렸지만 파리 사교계에서 부활한 실존 인물이다. 불우한 환경과 뉴욕에서의 인종차별 경험은 파리로 진출한 그녀에게 단단한 무기가 되었다. 날렵한 몸매, 매혹적인 표정, 깃털 같은 경쾌함, 천진난만한 분위기 등으로 그녀는 단번에 블랙아메리카 열풍의 핵심이 되었다. 새로운 것, 특히 아프리카적인 것과 재즈 등에 환호했던 파리 상류층 기호에 그녀는 멋지게 화답했다.

 

 

  파리는 그녀에게 열광했다. 여성들은 베이커처럼 피부를 그을리고 머리카락을 풍성하게 틀어 올렸다. 뉴욕에서의 상처를 기억하는 그녀는 그 열풍을 만끽했다. 대신 파리에 대한 고마움을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갚았다. 전후에는 민권 운동과 고아를 위한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1975년 그녀가 죽었을 때 장례식이 프랑스 전역에 중계될 정도였다. 파리와 조세핀 베이커는 궁합이 맞았던 셈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우디 앨런이 전하는 메시지 중 하나는 모든 현재는 모든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그 답은 현재에 있다, 쯤도 될 것이다.  속살거리는 그 유머에다 내 식 깨알 같은 후기를 더하련다. 진정한 자긍심은 이국적이고 새로운 것을 수용하는 너그러움에서 나온다고. 따라서 파리 사람들의 문화적 오만은 열린 시각에서 온 예술적 취향이니 용서할 만하다고.

 

 

 

 

 

 

 

 

 

 

 

 

 

 

 

 

 

  2. 정의보다 지혜 - 카톡방 지상 중계하기

 

  정의는 옳지만 인심이 묻힐 수 있고, 지혜는 그를 수 있어도 사람을 구한다. 가령 소셜 네트워크 대화방에서 있을 수 있는 소란을 중계해보자. 옷 장사 하는 A가 제 하루 일과를 이렇게 보고한다. 오늘 넘 힘들었어. 자꾸만 에누리하려는 손님들 때문에 밑지고 팔다 보니 남는 게 없어.

 

 

 

이때 A를 응원할 겸 평소 원칙에 충실한 B가 나선다. 올바른 상도덕을 위해 의류정찰제가 하루 빨리 정착되어야 함을 피력한다. 그때 C가 나타나 의류정찰제만이 능사는 아니며, 정가제를 한다고 상도덕이 지켜지는 건 아니라며 반박한다. 기분이 상한 B는 자신은 A에게 한 이야기인데 왜 C가 나서서 물을 흐리냐고 재반박을 한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C는 단체방에서 하는 얘기는 누구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냐, 그러니 당사자가 아니라도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흥분을 한다. 이때 평소 방관자였던 D가 나타나 B가 틀린 말 한 건 아니니 이해하라며 슬쩍 B편을 든다. 역시 방관자였던 E도 뒤질세라 제 의견도 맘대로 못 내놓을 것 같으면 단체대화방이 왜 필요하냐고 C를 두둔한다. B는 A를 위로하려는 제 진심이 왜곡되었다며 단체방을 탈퇴한다. 결국 분란이 생기는 대화방은 없느니만 못하다고 방을 개설한 F는 단체 계정을 폭파한다. 그 다음 끼리끼리 모여 대화방을 재개설한다. 그렇다고 평화가 오나? 천만에! 그 안에서 또 새로운 분란은 지속된다. 그렇게 삶은 정반합 계속된다.

 

 

  과장되게 소셜 네트워크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 예를 들었지만 이는 대화법에 대한 여러 시사점을 제시해준다. 특히 정치인들을 둘러싼 알레고리로는 이보다 나은 예도 없다. 그들이 흘리는 말은 보기에 따라 언제나 옳거나 항상 그르다. 옳거나 그른 그 말에 국민들은 별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다면 대화의 방식이다. 위 예에서도 보듯이 내용만 보면 그들 역시 다 옳다. 하지만 형식면에서 보면 그들 모두 그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언제나 정의를 지혜로 실천할 수 있는 타협의 방식이다.

 

 

 

3. 안네와 그 엄마

 

  내 인생 최고의 책 중의 하나는 완전 판『안네의 일기』이다. 그토록 어린 소녀가 그만치 진솔하고 통찰 있는 내면의 목소리를 가지기란 쉽지 않다. 암스테르담 여행 중 예정에도 없던 안네의 은신처를 들르게 되었을 때 누구보다 가슴이 벅차올랐던 건 말할 필요가 없다.

 

 

  안네의 일기는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묘사했다거나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고발하는 내용이 주가 아니다. 선전문구만 보면 그런 것이 주된 내용인 걸로 착각하기 쉬운데 시쳇말로 닥치고 읽어 봐, 라고 말하고 싶다. 한마디로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소녀의 일기이다. 그런데 그게 보통 사춘기 여자애의 감수성이 아니라 몇 단계 뛰어넘는, 말하자면 감당하기 힘든 개성을 보유한 소녀의 기록이라는 데 그 매력이 있다.

 

 

  제한된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과 생활할 수밖에 없던 안네는 불화의 아이콘이다. 고집불통에다 예민하며, 자기 주관적이면서 적극적인 안네는 아버지를 제외한 은신처 사람들 대부분과 부딪힌다. 그런 딸을 가장 버거워한 이는 당연 안네의 엄마였다. 은신 생활을 한 첫날부터 안네와 엄마는 긴장과 대립의 연속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썩 관계가 좋은 건 아니었다.

 

 

  모녀의 기질은 완전히 달랐다. 엄마 에디트는 겉보기에 지루해 보이는 차분함과, 모성에서 비롯된 잔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딸 안네는 과도할 정도로 자기표현에 능한데다, 울음과 흥분으로 제 기분을 표출하는 성격이었다. 모성의 안달과 사춘기의 예민함은 자주 충돌했다. 안네는 ‘엄마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탓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려면 대단한 자제력이 필요하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때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안네의 엄마도 이해되고, 사춘기 안네도 공감된다. 이러한 섬세하고도 진솔한 에피소드들이 안네의 일기에는 차고 넘친다. 위선이나 거짓 감정이 배제된 영특하고 발칙한 소녀의 기록이 인간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좋은 텍스트가 되는지 기회 있을 때마다 나는 강조한다. 단, 안네가 실제 내 딸이라면 버거워서 사절이다!

 

 

   

4. 귀태(鬼胎)

 

  정치판은 말(言)들의 도미노 게임장이다. 말로 흥하고 말로 망한다. 사건이 터진다. 한쪽에서 물고 늘어진다. 별 다를 바 없는 한쪽 역시 자폭의 기회는 오고야 만다. 옳다구나 싶게 기회를 포착한 다른 쪽이 재반격한다. 싸움은 필수요, 동원되는 언어는 선택 사항이다. 그때의 언어는 무너질지라도 자극적일수록 좋다. 무너뜨림의 미적 쾌감이 궁극의 목표인 도미노 게임처럼 그들은 서로 무너뜨리고 무너지는 걸 즐긴다.

 

 

  귀태 논쟁으로 한바탕 소란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일본의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는 ‘귀태’이며,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를 ‘귀태 후손’이라고 비하한 야당 대변인의 말이 발단이 되었다. 청와대와 여당의 격렬한 성토에 당사자와 민주당이 사과하는 선에서 진정 국면을 맞이했다. 귀태 발언에 여론이 호의적일 리가 없다. 정치와 무관하게 인간으로서 그 말 자체를 듣는 게 불쾌하고 불편하다.

 

 

  세상엔 몰라도 되는 말이 있는데 귀태야말로 그런 경우이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 귀신에게서 태어난 아이 또는 불구의 태아 등의 의미로 그 말이 쓰인단다. 재일학자가 쓴『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책에서 인용했다는 데 우리말에서는 흔히 쓰이지 않는다. 사전을 찾아봤다. ‘두려워하고 걱정함’ 또는 ‘나쁜 마음’이라고 되어 있다. 불길한 태생을 걱정하는 데서 오는 극심한 두려움을 나타낼 때 활용할 수 있는 낱말이다. 한데 일본에서는 더 극단적인 예로 쓰이나 보다.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는 없다. 철들면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 중의 하나가 인간존엄에 관한 것이다. 개별자 고유는 모두 소중하다. 지위고하를 떠나 어느 누구도 제 태생이나 자존에 대해 위협받거나 조롱받을 이유는 없다. 비자의적 의지의 으뜸 사례인 탄생은 그 자체로써 존귀하다. 천사표 인간이든 악의 상징이든 태생 자체는 누구에게나 축복이다. 삼자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두 말 필요 없다. 모든 태생은 귀태(鬼胎)가 아니라 귀태(貴態)이다.

 

 

 

 

 

  

5. 투명 프롬프터

 

  얼마 전, 박대통령의 방미 외교 때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는 미의회 연설이었다. 영어로 진행된 연설은 호불호가 엇갈렸다. 차분하고 또박또박한 어조에 감동을 받았다는 이와, 국가원수가 모국어를 버리고 굳이 외국어 연설을 할 필요가 있냐는 이들로 나뉘었다. 둘 다 옳지만 나는 전자 편이었다. 이 글로벌한 시대에 영어의 본무대에서 우리 대통령이 그 나라 말로 연설을 했다고 뭐 그리 자존심이 상할 것인가. 영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박대통령의 발음이 어설퍼 보일지 몰라도 일반 국민으로선 그 정도면 성실한(?) 연설을 한다 싶었다. 발음 가지고 시비 거는 이들은 반기문 유엔 총장더러 같은 시비를 거는 것만큼 이나 무의미하다. 

 

 

  내가 감동한 것은 대통령의 당당한 태도 때문이었다. 영어로 연설을 해서가 아니라 영어로 연설을 하는데도 어쩜 저리 기품 있고 부드러운 시선을 유지할까 싶었다. 의례적이라 해도 미의원들이 기립박수를 보낼 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야 그 비밀을 알았다. 연설을 돕는 투명프롬프터가 연설대 양옆에 있었던 것이다. 밑바닥에 텍스트를 놓고 빛의 반사 원리를 이용하면 투명 프롬프터에 선명한 글씨가 뜬다. 연설자의 눈높이에 맞게 양쪽에 투명 프롬프터를 설치하면 청중들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좌중을 번갈아 보듯 시선을 돌리면 감쪽같이 프롬프터에 뜬 연설문을 읽을 수 있다.

 

 

  내가 몰랐을 뿐, 투명프롬프터는 연설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문명의 이기란다. 오바마 대통령도 안철수 의원도 이것을 활용한단다. 괜히 속은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곰곰 생각하니 이런 감정 또한 허세이다. 연설은 그 내용의 진정성에 있지 그걸 완벽하게 말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아니질 않나. 연설문을 단순 낭독하는 지도자보다 연설 자체를 멋지게 하는 지도자를 원하는 청중이 있는 한 투명프롬프터의 진일보는 계속될 것이다. 달 자체가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도 무시할 수 없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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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07-17 0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중심을 잃지 않으시군요. 팜므 언니 님 !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 의원들이 내뱉는 말을 보면 막말을 참 싸가지없게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 사람은 반대편이니 무조건 나쁘다는 태도는 좀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다크아이즈 2013-07-17 08:46   좋아요 0 | URL
곰발님 중심을 잃지 않은 게 아니라 아예 중심 따윈 없어요.ㅠ
정치를 모르니 그 풍경에만 관심을 갖게 되고 자연 내가 보는 것 안에서만 머물게 되는 거지요.
골수 우파 전원책의 말에 공감해요. 신념 없는(당파성) 없는 정치판은 개판이다, 뭐 이런 논조였는데 그래서 그는 '새누리당'이란 정체성 없는 당명이야말로 코미디라 하더군요.

확실한 신념도, 이데올로기도 갖지 못한 저 같은 사람은 그저 풍경에나 밑줄을 긋고 있는 거지요.ㅠ

Shining 2013-07-17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팜님 글은 정말 좋아요, 슈퍼울트라캡숑!(ㅎㅎㅎ) 저는 글의 톤이 균질하지 못하고 논지도 왔다갔다 하는 사람인데; 팜님의 글은 소재나 주제가 바뀌어도 일정한 속도랄까 흐름이랄까 어떤 단단함이 느껴져서 좋아요. 좋군요 정말 :)

다크아이즈 2013-08-06 22:47   좋아요 0 | URL
샤이닝님 제가 요즘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어요.
어떻게 하루하루 버티는지 헬렐레 하고 있습니다.
알라딘에 몇 십 년 만에 와보는 느낌...
분발하고 싶습니다.
샤이닝님은 여전하시지요?
답글 늦어진 걸 너른 아량으로 봐주시어요^^*

페크pek0501 2013-07-17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태 발언의 신문 기사를 보고 저도 깜짝 놀랐답니다.
막말 논란을 보니 좋은 인생의 비결은 혀를 주의하는 것이라는, 탈무드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투명프롬프터, 라는 이름을 배워 갑니다. 역시 우린 좋은 시대에 살고 있군요.

좋은 하루 되시길... ^()^

다크아이즈 2013-08-06 22:50   좋아요 0 | URL
프롬프터야 널리 쓰이는지 알았지만
투명프롬프터가 나와 대중의 눈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언냐 잘 계시지요?
언능 알라딘을 재접수해야 할 텐데 제가 웬체 갈팡질팡 인생이라ㅠ
알라딘에 자주 올 수 있도록 도와주시어요^^*

세실 2013-07-17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스 진행할때도 투명프롬프터 사용하겠죠?
소셜 네트워크는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내 말만 늘어놓으면서 공허한 메아리만 듣고 있는듯 합니다.
그저 만나서 차 마시는 그런 사랑이 필요한거죠, 우리에겐!
굿 나잇~~~

다크아이즈 2013-08-06 22:51   좋아요 0 | URL
뉴스야 뭐 투명 아니고 그냥 프롬프터 써도 되지 않을까요?
화면에 비치는 건 일부분이니...
공허한 메아리인 게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아닌 경우도 많아요.
세실님과 함께하는 오공주 커뮤니티는 안 그렇잖아요.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