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동물 공동묘지 - 상 밀리언셀러 클럽 33
스티븐 킹 지음, 황유선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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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명소에서 비싸게 돈을 들여 자녀들의 이름을 짓는 분들의 이야기를 자주 접할 수 있다. 솔직히 이름이 뭐 중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자녀가 잘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작명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있으니 그 이름, 바로 미국의 스티븐 킹이다. 이름에 킹(King)이 들어가는 작가답게 스티븐 킹은 작가로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으니 아마 현존하는 작가 중에 가장 많은 책을 팔았을 것이다. 그의 소설은 누적 판매 부수가 3억부를 넘고 대부분 영화화되었다. <캐리> <스탠 바이 미> <샤이닝> <돌로레스 클레이븐> <쇼생크 탈출> <드림 캐처>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아마 그의 소설이든 영화든 한 편도 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원래 호러소설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일까.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을 거의 읽지 않았다. 중학교 때 It이라는 작품을 보다가 내던진 기억도 난다. 공포소설이라는데 무서운 장면이 안 나오길래, '귀신은 언제 나와'를 수십번 외치다가 결국 포기했었다. 유일하게 읽은게 <사계>라는 단편집이었는데 여기 수록된 작품들이 <쇼생크 탈출> <스탠 바이 미> <죽음보다 위험한 비밀 Apt Pupil> <생매장>이다. 이 뛰어난 단편집은 일반 소설에 가까운데 스티븐 킹이 머리 식히는 의미에서 가볍게 썼다는 말을 듣고 경악했던 기억이 있다. 이 작가는 진짜 본인 자체가 괴물인 것을 알고나 있을까. 거의 처음으로 접한 스티븐 킹의 본격 호러소설 <애완동물 공동묘지>를 읽고난 지금의 심정 역시 비슷하다. 한 마디로 대단하다.

 

미국 남부의 한적한 도시로 이사한 크리드 일가는 행복하다. 남편 루이스는 대학에서 근무하는 의사로 벌이도 괜찮고 존경도 받는다. 아내 레이첼과의 사이도 좋고, 유치원에 다니는 귀여운 딸 엘리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갓난쟁이 아들 게이지와 함께 커다란 집에서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고 있는 중이다. 더구나 옆집에는 아버지를 일찍 여윈 루이스에게 유사 부자 관계로 다가오는 저드라는 현명한 노인도 산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다.

 

그러던 어느날, 딸 엘리가 너무나 귀여워하는 고양이 윈스턴 처칠이 교통사고로 죽게 되자 루이스의 주름살이 깊어진다. 딸이 상심할텐데, 걱정하는 그에게 저드는 이 마을의 애완동물 공동묘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그곳에 죽은 애완동물을 묻으면 그날 다시 부활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루이스는 처칠을 애완동물 공동묘지에 묻고 고양이는 부활한다. 그러나 총명했던 처칠의 몸놀림은 굼뜨고, 몸에서는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 무엇보다 가장 충격적인 변모는 처칠에게 새로 생긴 취미였다. 까마귀나 쥐를 잡아 머리를 자르고 내장을 파내는 취미에 빠진 처칠을 보고 루이스는 경악한다. 그럼에도 루이스 일가의 삶은 아직까지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 아들 게이지가 교통사고로 죽기 전까지는. 마르지 않는 슬픔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루이스의 선택을 예상해 보라. 루이스는 생각한다. 고양이가 부활한다면 사람도 부활할 것이 아닌가...

 

호러 제왕의 작품답게 이 작품은 시종일관 소름끼치고 독자를 덜덜 떨게 만든다. 무엇보다 설득력있는 이야기 전개가 압권이다. 특히 아들을 잃은 루이스의 절절한 슬픔을 묘사하는 장면들은 공포소설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필력이었다. 아들 게이지가 커가면서 이룰 수 있었던 가능성에 대해 루이스가 상상하는 모습들. 게이지는 커가며 수영을 즐기고, 나아가 국가대표 선수가 되서 금메달을 딸 수도 있었다. 수영 모자를 쓰고 단상에서 금메달을 수여받는 아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게이지. 그러나 현실에는 아무 것도 없다. 어린 게이지의 모자는 피로 가득차 있었고, 이제 수영은커녕 차디찬 무덤에서 쓸쓸히 잠들어야만 한다. 아니 아들이 수영은 못해도 좋다. 바보라도 좋다. 그저 곁에서 바라볼 수만 있다면 하고 바라는 루이스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줄줄 흘리고 말았다.

 

루이스는 처칠의 변화를 통해 이미 학습했다. 애완동물 공동묘지에서 부활한 존재는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파국을 이미 예상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아들을 살려내야만 했다. 아들에 대한 사랑이 너무 깊었기 때문에, 한 번만이라도 다시 봤으면 하는 욕망 때문에.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본질적으로 금기에 대한 매혹적인 열망, 구역질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유혹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이다. 에드거 앨런 포 이래 미국의 뛰어난 소설가들은 공포소설이라는 외피를 통해 인간의 어두운 면을 천착하고 있다. 스티븐 킹은 선대의 위대한 소설가들에 비교해 전혀 부족할 것이 없는 작가다. 에드거 앨런 포, 헨리 제임스 등의 작가와 비교해 그가 떨어지는 것이 무엇인가. 3억부를 팔았기에 대중소설가로 굳어져 있지만 그의 필력과 작품 세계는 이미 후대에도 빛날 거장의 풍모를 갖추고 있다.

 

스티븐 킹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건 거의 처음이지만 이 정도의 수준과 재미를 다른 작품이 보장한다면 나는 언제든지 그의 작품을 잡을 것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은 조여오는 불안감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심리적인 공포에 능한 작가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애완동물 공동묘지>에는 공포영화나 공포소설의 팬들이 익숙한 여러가지 장치들도 자주 등장한다. 취미로 까마귀의 머리를 찢는 고양이가 등장하는 작품인데 무엇이 부족하겠는가. 긴 분량의 작품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뒷이야기를 살짝 노출시키면서도 김이 빠지지 않고 오히려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그의 필력은 과연 선수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었다.

 

"올림픽 수영 팀도 없었고, 대학에서 3.0을 받는 일도 없었고, 성당을 다니는 어린 여자 친구나 개종도 없었고, 아가왐 캠프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게이지의 운동화는 찢겨져 있었다. 점퍼는 안팎이 뒤집혀 있었다. 그가 사랑하는 조그만 아들의 몸, 그렇게 튼실했던 몸은 거의 갈기갈기 찢어졌다. 아이의 모자에는 피가 가득 차 있었다...그는 침대 위에서 몸을 앞뒤로 흔들며 얼굴을 손으로 감싼 채 흐느끼면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어떤 일이라도."  

 

별점:   ★★★★ 1/2

 

<호러의 제왕, 스티븐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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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5-14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이 고양이 윈스턴 처칠 나오는 책이군요!! 제가 본 가장 무서운 책이었어요. 예전에 '고양이 윈스턴 처칠 어쩌구' 하는 제목으로 나왔어서 몰랐는데,

비로그인 2006-05-14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에 끌렸었는데.. 아이궁.. 제다이님, 저를 더 고민스럽게 하는 유혹적인 리뷰여요..;;;;

상복의랑데뷰 2006-05-14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름신 ㄷㄷㄷ ^^

jedai2000 2006-05-15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국내에 최초 소개된다고 띠지에 써 있었는데 이미 나와있었군요. 저도 상당히 무섭게, 슬프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공포 소설에는 관심 없지만 킹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비숍님...오! 새로운 캐릭터네요. 비숍님의 실제 모습과 비슷한가요? ^^;; 저는 이 작품은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꼭 보시길..^^;;

상복님...지름신에 한 번 홀려도 크게 후회하지 않을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

상복의랑데뷰 2006-05-16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두번인가 번역됐을 겁니다. 신의 작은 늪이라는 이름으로도 번역됐을 거에요. 위에 하이드님이 말씀하신 작품명 말고도. ^^

jedai2000 2006-05-16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황금가지의 무신경한 띠지였군요. 국내 최초 소개라고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더니...^^;; <신의 작은 늪>이라니 작품 중에 그런 곳이 등장하긴 하네요.
 
반도에서 나가라 - 상
무라카미 류 지음, 윤덕주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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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에서 나가라>는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무라카미 류의 작품이다. 일본에서도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의 'TWO무라카미'가 대단한 명성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주로 미스터리 소설만 읽는 본인은 유감스럽게도 별로 읽어보지 못했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마음 속으로 칼을 갈고 있던 차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고 하루키 의무방어전 1차전은 성공리에 끝냈다. 이제 무라카미 류의 작품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만 하다 <반도에서 나가라>의 출간 소식을 듣고 이 작품을 골랐다. 무엇보다 내용이 아주 흥미진진했던 것이다. 일군의 북한 특수부대가 일본 후쿠오카를 점령하고, 부랑아에 진배없는 일본의 불량소년들이 북한군과 대결한다는 내용 자체가 본인의 호기심과 흥미를 끌었던 것이다. 2권이라는 적지 않은 분량을 순식간에 다 읽고 나서 독후감을 남긴다.

 

시간적 배경은 가까운 미래인 2011년. 눈부신 경제력으로 세계를 호령하던 일본의 현재는 암울하기만 하다. 국제 금융과 경제 위기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일본은 경제적으로 파산을 선고하고 살인적인 인플레와 국민의 10%가 실업자에 달하는 초유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동안 경제력으로 모든 난관을 돌파하던 일본의 경제력이 파탄나자 미국과 중국 등의 국제 열강들은 일본에 모두 등을 돌리고 만다. 믿고 따르던 미국이 손바닥 뒤집듯 가볍게 일본을 버리자 국민들은 분노하지만, 그들은 국제 사회의 냉엄한 진리를 몰랐던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의 발언력은 그 나라의 힘의 크기와 비례한다는 것을 말이다.

 

한편 세계의 골칫덩이인 북한은 남한, 미국, 중국 등과 해빙 무드를 조성해 평화 통일의 계기를 맞게 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통일 후에 북경 대저택으로 망명할 예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군부내 대미 강경파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 이에 북한 고위층은 몰락한 일본을 타깃으로 기발한 작전을 구상한다. 대미 강경파가 지휘하는 군단을 일본 후쿠오카로 파병해 점령해 버리는 것이다. 어차피 계륵이니 일본에서 희생당해도 좋고, 후쿠오카를 점령해버리면 그것대로 좋다. 군단의 명칭은 '고려원정대'로 하고 북한 내 반란군으로 발표해 버린다. 이러면 후쿠오카를 점령당한 일본측의 항의도 간단히 무시할 수 있다. 명목상 북한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일본으로 망명하는 셈이니 북한측과는 원칙적으로 무관한 것이다. 이 작전의 이름이 바로 '반도에서 나가라'이다.

 

고려원정대는 치밀한 작전을 세워 후쿠오카를 차근차근 점령해 나간다. 처음에는 9명의 특공대가 후쿠오카 돔의 3만 관중을 인질로 잡고 일본 정부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500명의 추가 부대를 급파해 후쿠오카 시 일부를 점령한다. 12만 명의 추가 군단이 도착하는 예정일은 약 열흘 후, 일본 열도는 충격으로 혼미해진다. 그러나 고려원정대가 한 가지 몰랐던 것은 '이시하라 그룹'이라는 일종의 사회부적응자 집단의 존재였다. 일본인들도 고려원정대도 인간쓰레기 취급을 하며 무시했던 이들은 사실 파괴의 충동을 가슴 깊히 묻고 사는 위험한 아이들이었던 것이다.

 

 

대단히 길게 내용 설명을 했다. 워낙에 방대하고 사실적인 플롯이므로 이해를 돕기 위해 다소 길게 적었다. 독서의 재미를 빼앗는 게 아니냐고 항의하지 마시라. 이 작품에는 워낙 많은 이야기와 다양한 재미가 있기에 이 정도로는 <반도에서 나가라>의 재미를 조금도 훼손시키지 못하니까.

 

무엇보다 이 작품은 테러에 대한 사실적인 접근과 작가의 독창적인 상상력이 돋보인다. 누구도 주인공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물들이 출연해 고려원정군의 테러에 대해 다층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고려원정군의 장교들과 사병들을 비롯해 일본의 정치인들, 불안에 떠는 일반 시민들, 이시하라 그룹의 소년들 등 다채로운 인물의 다채로운 시선으로 미증유의 테러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주요 등장인물만 50명에 가까울 정도인데 그들의 눈에 비친 테러의 실체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911테러' 이후 변화한 테러의 양상도 적절하게 녹여내고 있다. 비행기가 대형 빌딩에 자폭하고, 이어 빌딩이 무너지는 충격적인 영상도 안방에서 생생히 볼 수 있게 된 현대 상황에 맞춰 고려원정군의 테러 장면도 실시간으로 NHK 방송에서 중계하고 있다. 보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기묘한 시대를 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테러하면 연상되는 것은 보통 죽음과 파괴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절묘한 건 그런 테러의 이면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후쿠오카를 점령한 북한군의 여성장교가 하는 일은 통조림이나 햄같은 식재료를 도매하는 업자와의 가격 합의다. 테러분자들도 먹고는 살아야 할 게 아닌가. 12만 군인들의 식품, 의복, 주거지, 분뇨 처리 등의 일상적이지만 꼭 필요한 것들에 대해 짚고 넘어가는 장면은 보통 작가라면 상상해내기 힘든 절묘함이다. 작가 무라카미 류에게 진심으로 감탄하고 말았다.

 

무엇보다 무라카미 류는 작가이기 이전에 일본인이다. 그는 타자(고려원정군)의 눈에 비친 일본인들의 모습을 그리는 데도 힘을 아끼지 않는다. 그가 파악하는 일본인의 실체가 비판적으로 묘사되는데, 최초의 침투 과정에서 9인의 특공대는 그들을 발견한 부자(父子)를 죽이고 기묘한 위화감을 느낀다. 나중에 깨닫게 된 그 위화감의 정체는 부자에게 혼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단 한 번의 공격에 도망도 치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한 그들의 모습이야말로 일본의 현재 모습이 아닐까 하는 작가의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오랫동안 지속된 평화 정세와 부족한 게 없는 경제 호황으로 일본인들이 식물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려원정군과 대결하는 인물들을 '이시하라 그룹'으로 설정한 게 아닌가 싶다. 그들은 일본도로 사람을 죽이고, 47차례의 방화로 수십명의 인물들을 태워죽이는 등의 소년범들이지만 무기력한 식물이 아니다. 원초적인 파괴 본능을 잃지 않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울부짖는 야수같은 존재인 것이다. 물론 작가는 극악한 이시하라 그룹을 주인공으로 내세울 때 받아야 할 비난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를 다소 동정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있고, 섣불리 그들을 영웅으로 묘사하지는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이 잘난 사회에서 약간의 성공이나마 거두기 위해 이빨을 감추고 사는 무기력한 사람들 속에서 거침없는 파괴 본능을 드러내는 그들의 모습에 일정한 통쾌감을 느낀 사람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라 믿는다.    

 

고려원정군의 점령 과정은 분명 신사답지 못했지만 그들도 사람이고, 점령지의 일본인들도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은 교류를 해야만 살 수 있다. 이 세계에서 혼자 살아나갈 수 있는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 작가는 후기에서 이 작품을 쓰게 된 결정적인 이유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그리고 싶었다고 밝힌다. 작가 후기를 발췌해 보면.

"역사도 문화도 가치관도 다르고 이해의 일치조차 없는, 더구나 한쪽은 무장하고 있다는 조건 아래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그려내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나를 이 작품의 집필에 불러 세운 최대의 동기였다."

이 점에서도 작가는 성공을 거뒀다고 본다. 특히 아이를 잃은 북한 여성 장교와 소년병으로 참전해 전쟁과 폭력의 무익함을 깨달은 일본의 노의사가 만나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우리 국민 대다수가 미워하는 일본인과 그래도 우리의 동포인 북한군이 대결하는 이 작품을 가볍게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괜시리 불쾌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엄연히 픽션이고, 사실 우리가 불쾌해할 만한 요소는 작품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대단치 않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이 작품을 놓치는 건 분명히 손해다. 모든 걸 다 떠나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다. 작가 무라카미 류는 어마어마한 양의 취재를 통해 작품을 벽돌성같이 탄탄하게 만들었고, 소설의 대중적 재미 역시 최고 수준이다. 개인적으로는 가정과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해 일그러진 영혼을 가지게 된 이시하라 그룹이 북한군과 마주하면서 함께 하는 일의 의미와 재미를 깨닫게 되는 장면이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그 부분을 발췌하며 맺으려 한다.

 

"어떻게든 작업을 완성시키고 싶다고 히노가 말했을 때,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공동작업 같은 건 해 본 적이 없었다. 함께 서로를 도와가며 일을 분담하여 무언가를 만들어 나간 것은 태어나 처음이다. 자신의 작업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누군가가 자신의 일을 도와준다. 이제까지 아무도 그런 관계를 가져 본 적조차 없다. 모두 고려가 죽도록 무서웠지만, 끝까지 작업하여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싶었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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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muko 2006-05-11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그 적지않은 분량때문에 고민하는 중이었는데 제다이님 리뷰를 보니 마구 땡기는군요. 한동안 잘 참았는데....

jedai2000 2006-05-11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하 1200페이지 정도 되는데 방대한 양에 어울리는 대작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총기 사용과 테러 장면이 다수 등장해 제 취향과는 맞았는데 네무코님이 어떻게 보실지 궁금하네요. 꼭 읽어보세요. 재미있습니다. ^^;;

페일레스 2006-05-11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류가 잘 쓰는 장르 중의 하나가 이런 가상 역사소설인데, 저는 [5분 후의 세계]를 재미있게 봤습니다. [사랑과 환상의 파시즘]은 모셔두기만 하고 있군요. [반도에서 나가라]도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번역본이 나왔으니 읽어봐야겠습니다. 번역은 어떤가요?

jedai2000 2006-05-13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변이 왕창 늦었네요. 지방에 내려왔거든요. <5분 후의 세계> 읽어보겠습니다. 번역은 나쁘지 않은데 간혹 오타가 있습니다. 저는 근데 번역은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서요. 윤덕주 님이 번역하셨는데 그분이 <모든 것이 F가 된다> <링> <화이트 아웃>등을 하셨습니다. 혹시 읽어보신 작품이 있다면 참조해보세요. ^^;;
 
오만과 편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8
제인 오스틴 지음 / 민음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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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출판계의 최대 화제는 뭐니뭐니해도 <오만과 편견>일 것입니다. 연초부터 심상치 않더니 이제는 소설 부문 판매 1위까지 올라 있습니다. 이 작품이 갑자기 이렇게, 시쳇말로 확 떠버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꽃처럼 화사한 키이라 나이틀리가 나오는 동명 영화의 영향도 크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작품 자체가 지금 읽어도 꽤 재미있다는 점일 겁니다. <오만과 편견>은 1813년에 처음으로 출간된 작품입니다. 그러나 100년을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로맨스와 결혼에 관한 글을 쓰는 후배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지요. 아마 연애를 주로 쓰는 드라마 작가들의 집에는 필수적으로 한 권씩 구비되어 있을걸요.

 

영국의 중류층 신분인 베넷 집안에는 망아지같은 딸만 다섯 명이 있습니다. 작가 제인 오스틴은 딸 다섯을 모두 개성 강하고 생동감 넘치게 묘사합니다. 첫째 제인은 천사표, 둘째 엘리자베스는 발랄하고 자기주장 강한 똑순이 느낌입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딸의 모습은 여기가 끝입니다. 셋째 메리는 뻐기는 독서광, 넷째 캐서린은 자기 주관이 없는 무뇌아, 막내 리디아는 남자 밝히는 천덕꾸러기에 불과해요. 거기다 딸들의 결혼 덕을 보려는 대책 없는 엄마와 시니컬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인 아버지까지 가세한 베넷 가는 조용할 틈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물론 가족 소동극은 아니죠. 남녀간의 로맨스가 핵심입니다. 베넷 가의 옆집에 부잣집 도련님 빙리 씨가 머물러 옵니다. 빙리 씨는 기념 무도회를 열고 거기 참석한 제인 베넷을 보고 한 눈에 반해 버립니다. 물론 제인도 마찬가지였죠. 그러나 그곳에는 빙리 씨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빙리 씨의 절친한 친구이자, 훨씬 부자에 신분이 높은 다아시 씨도 참석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아시 씨는 무표정해서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고, 틀에 박힌 사교 활동을 싫어해서 무도회에서 춤도 추지 않는 사람입니다.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거만한 느낌을 주는 다아시 씨를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다아시 씨 역시 그다지 예쁘지 않은 엘리자베스를 별로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품 끝까지 이런 상태가 유지될 거라곤 말씀 못 드립니다. ^^;;

 

위에서 드라마 운운했는데, 사실 <오만과 편견>은 지금도 꾸준히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남녀간의 로맨스를 다룬 소설과 드라마, 영화의 원전 같은 작품입니다. 신데렐라 스토리를 주로 다루고 있는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재벌 아들을 차지하는 건, 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주눅들지 않고 씩씩한 여주인공이죠. 아마 그런 비법(?)을 처음 공개한 게 이 작품일걸요.

 

"건방지다고 해도 될 거예요. 거의 그랬으니까요. 실상은 말이에요. 당신은 예절이라든가, 경의라든가, 괜스러운 친절 같은 것이 지긋지긋했던 거예요. 언제나 당신의 인정을 받으려고 말을 건네고 바라보고 생각하는 여자들에게 염증이 나 있었어요. 제가 그런 여자들하고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당신은 정신이 번쩍 나서 흥미가 생겼던 것이죠."

 

엘리자베스가 본인의 성공 이유를 뻔뻔스럽게 분석하고 있는 광경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신분과 재산이 높은 남자와의 결혼에 결국 골인하는 신데렐라 스토리에 만족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당시의 비뚤어진 결혼관에 대해 깊이있는 묘사와 날카로운 풍자를 곁들이고 있어요. 그 시절 영국에서는 장자만이 상속권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여성은 거의 상속권이 없었구요. 장남만이 상속을 받는다고 쳐도 차남이나 다른 아들들은 남자니까 막노동이라도 해서 돈을 벌지, 여성은 그런 기회마저 원천적으로 차단되니 극도로 궁핍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거의 유일한 방법이 부자집 남자와의 결혼 밖에 없었다는 거죠. 그래서 많은 여자들이 생계를 위해 사랑없는 결혼으로 불행하게 살았다네요.

 

이 작품은 결혼이 남녀간의 진실한 사랑의 결합이 아닌 저잣거리의 물건처럼 사고 파는 현실이 되어버린 세태를 날카롭게 꼬집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특히 베넷 부인의 묘사를 통해 중점적으로 나타나죠.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요즘 결혼도 당시 상황과 비교해 봐서 그렇게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사랑보다는 돈과 능력을 재고, 조건만 맞으면 애정없는 결혼을 하는 모습이 별로 다르지 않잖아요? 이래서 고전이 위대하다는 겁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인간사의 진리를 그리는 게 바로 고전 아니겠습니까. 돈과 신분에만 혈안이 되어 상대를 재는 흉한 풍경들 속에서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결국 아름다운 인연으로 맺어지는 다아시 씨와 엘리자베스 양이 그래서 더욱 빛나 보이는 것 같아요.

 

제목인 <오만과 편견>은 사랑을 할 때 의례 따라오기 마련인 두 가지 나쁜 감정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다아시 씨는 귀족 집안의 총아답게 좋은 성품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약간은 오만한 점이 있었고, 엘리자베스 양은 그런 다아시 씨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편견을 쌓아왔습니다. 이 두 가지 나쁜 감정을 가진 두 사람이 사랑을 알게 되면서 점점 변해가는 모습이 이 작품의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에 빠지고 싶게끔 만드는 이 봄날에 딱 어울리는 책인 것 같아요. 읽다보면 저도 모르게 행복해지는 책이죠. 게다가 덤으로 유머도 풍부합니다. 특히 베넷 씨의 독특하고 시니컬한 유머 감각은 정말 최고예요. 최고급 로맨스와 풍자, 유머를 보증하는 작품입니다. 

 

작가 제인 오스틴은 줄곧 영국 중류 계급의 연애와 결혼이라는 소재로 작품을 썼는데, 알고보니 두 번의 결혼 실패에 대한 아픈 추억이 있더군요. 그중에 한 번은 남자가 결혼식 직전에 돈이 더 많은 여자에게로 떠나고 말았다고 하네요. 그뒤로 결혼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을 버리고 죽을 때까지 노처녀로 살았다고 합니다. 작가란 역시 자신이 잘 알고, 관심 있는 소재에 대해 글을 쓸 때 최고의 실력을 보이나 봅니다. 그런 면에서 제인 오스틴 만큼 결혼을 소재로 잘 쓸수 있는 작가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자기를 가장 큰 적으로 보고 피하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이 우연한 해후에서 친분을 유지하기를 바라마지 않는 듯했고, 둘 사이에만 해당되는 일을 가지고 대놓고 호감을 표시한다거나 눈에 띄는 태도를 보이는 일 없이 자기의 친지들에게 호감을 사려 하고 누이를 소개하려고 마음을 썼던 것이다. 자존심이 대단한 사람이 이렇게 변했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 아니라 감사한 마음까지 생겼다.  사랑, 그것도 열렬한 사랑 때문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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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04-15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다이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jedai2000 2006-04-15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감사합니다. 덕분에 지금 확인했네요. T.T 백수 신분에 밀려드는 추리소설 신간을 어떻게 감당하나 한숨만 쉬고 있었는데 알라딘이 도와주네요. 진정 감동입니다...축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_)

oldhand 2006-04-15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오옷. 축하합니다! 덕분에 신간들 소화할 숨통이 트이시겠네요. ^^

비로그인 2006-04-16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 축하드려요...;;;;

jedai2000 2006-04-17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차가운 학교...>와 <유리망치>를 어떻게 사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천운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뵌 지 너무 오래된 것 같습니다. 길일을 택일하여 맥주 한 잔 하시죠. ^^;;

비숍님...감사합니다. 원래 글 너무 잘 쓰시는 비숍님같은 분께서 되셔야 하는데...^^;;

상복의랑데뷰 2006-04-17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jedai2000 2006-04-17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흑.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__)

paviana 2006-04-17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축하드려요.ㅎㅎ 잘 읽고 갑니다.

jedai2000 2006-04-18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비아나님...너무 감사드립니다. 이런 영광을 누릴 글이 아닌 것 같은데 송구스럽습니다. ^^;

한솔로 2006-04-19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는 있어야 할 일이었어요^^

jedai2000 2006-04-20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로님...허흑. 과찬이옵나이다.
 
나는 전설이다 밀리언셀러 클럽 18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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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설이다>를 처음 잡았을 때는 제목이 아주 호쾌하다고 생각했다. 읽기 전에 귀동냥으로 들은 내용은 전인류가 흡혈귀로 변해버린 세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간 한 명이 생존을 위해 벌이는 투쟁이었다. 과연, 살아남은 인간 한 명이 온갖 특수무기를 들고 흡혈귀 군단과 처절한 대혈투를 벌이는 내용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살아남은 주인공은 하늘을 향해 호방하게 외친다. "나는 전설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나의 상상이다. 실제 읽어본 <나는 전설이다>는 쓸쓸하고 가슴아픈 이야기였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간이 흡혈귀가 된 세상에서 고독과 절망을 느끼며 하루하루 연명해가는 한 남자의 암울한 이야기가 어떤 출구도, 희망도 없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로버트 네빌은 밤에는 마늘과 십자가, 거울로 방어선을 구축해놓은 집에서 자신을 죽이려고 찾아온 흡혈귀들과 대적하며, 낮에는 가가호호 방문해 태양을 피해 잠을 자고 있는 흡혈귀들의 가슴에 말뚝을 박는다. 그게 그가 하는 일의 전부다.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 차라리 나도 그냥 흡혈귀나 될까, 번민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아무 의미없는 투쟁을 계속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소설이 탁월한 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런 류의 소설이 외면하는 로버트 네빌의 성욕을 놓치지 않고 그렸다는 것이다. 발표된 시기가 1954년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욱 대단한 것 같다. 로버트 네빌은 아내와 딸을 잃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남자로서 해소할 수 없는 성욕으로 고통받는다. 여자 흡혈귀들의 유혹에는 거의 모든 걸 포기하기 직전까지 간다. 장르소설에서 이런 성욕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것은 거의 최초의 시도가 아니였을까?

 

또한 이 작품에서는 미국 중산 계급의 일상의 아이러니를 제대로 꿰뚫고 있다. 아마도 3차 세계대전으로 암시되는 핵전쟁 후 아내와 딸이 원폭으로 인한 모래바람에서 발병한 병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도 네빌은 출근을 한다. "누가 우리를 먹여살려주는 것도 아니잖아." 하면서...그렇게 절박한 상황에서도 출근하고, 일을 해야 하는 중산층의 일상이 나중에도 반복된다. 그는 하루 수명의 흡혈귀들 집을 매일매일 방문하여 가슴에 말뚝을 박는다. 끔찍한 일이지만 그것도 그의 일상이다. 리차드 매드슨은 살아가기 위해 일상을 반복해야 하는 미국 중산층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 실체를 이 작품에 녹여낸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나는 전설이다>의 탁월한 점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책의 후반부에서 로버트 네빌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작품 전반의 중요한 주제이기 때문에 새로 읽으실 분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소개할 수는 없지만 본문을 살짝 인용해보겠다.

"나는 이제 비정상적인 존재다. 정상이라는 것은 다수를 의미한다. 다수의 기준이지 한 사람의 기준이 아닌 것이다"

 

<나는 전설이다>는 1954년 출간 이래 2번 영화화되었다. 그중 유명한 것이 60년대 찰톤 헤스톤 주연의 <오메가맨>일 것이다. 그 외에도 조지 로메로의 시체3부작과 <28일 후>같은 최근의 좀비 영화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작가 리차드 매드슨은 미국 SF소설, 판타지 소설, 공포 소설의 대부로 수많은 작품들의 시나리오와 원작을 썼으며, 스티븐 킹과 딘 쿤츠같은 후배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여든 살이 넘은 현재도 살아 있으며 집필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전설이다>에는 표제작 말고도 10편의 단편소설이 있어 작가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기에 무리가 없다. 오래된 작품이지만 시선을 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로버트 네빌이 유일하게 흡혈귀 신세를 면한 개를 만나 친구가 되고 싶어 노력하는 장면들은 더없이 감동적이며, 흡혈귀들의 존재를 과학적으로 해명하고 싶어 연구하는 장면들은 기발하기 이를 데 없다.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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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25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단편도 같이 있나요? 그래도 왠지 손이 가지 않는 작품입니다 ㅠ.ㅠ

jedai2000 2006-03-25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밀리언셀러 클럽에서 이 작품을 추천하시는 분들이 많아 읽어봤는데 꽤 괜찮았어요..그런데 솔직히 단편들은 좀 떨어지는 게 많아요..^^;; 그러니까 <나는 전설이다>가 220쪽 정도 되고, 단편들이 또 220쪽 됩니다. 한 마디로 <나는 전설이다>는 중편이라는 거죠. 손이 안 가시면 <나는 전설이다>만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비밀의 계곡 1
차미언 허시 지음, 크리스토퍼 크럼프 그림, 김시현 옮김 / 평사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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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계곡>은 오랜만에 읽어보는 동화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쓰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해리 포터>같이 요란뻑적지근한 마법이 등장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그보다는 좀 더 마음이 편안해지는, 잊고 있었던 자연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작품입니다.

 

작가 차미언 허시는 원래 고고학 학위를 받았는데, 영국의 유명한 고고학자 맥스 말로완의 초대를 받고 집을 방문해서는 그의 아내를 만나게 됩니다. 그의 아내란 바로 그 유명한 애거서 크리스티! 여기서 차미언 허시는 큰 감명을 받고 언젠가 소설을 쓰겠다는 결심을 하고 <비밀의 계곡>을 통해 마침내 꿈을 이뤄냈습니다. 이 작품에 약간의 추리적 기법이 있는 것이 완전히 우연은 아닌가 봅니다.

 



왼쪽 그림은 <비밀의 계곡>에 수록된 삽화 중의 한 장입니다. 이 작품이 위에 소개한 차미언 허시 만의 노력으로 탄생한 것은 아닙니다. 세밀한 펜화로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스케치해낸 삽화가 크리스토퍼 크럼프의 땀도 아울러 스며들어가 있습니다. 약 80여장의 삽화가 각 챕터의 앞장에 그려져 있어 앞으로 진행될 내용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삽화가 나오면 이 그림은 앞으로 나올 어떤 내용과 연관이 있을까 추측하면서 보았답니다. 

 

 

 영국의 고아 소년, 스티븐은 뜻밖에 유언장을 받습니다. 그 내용은 바로 영국 남부 콘월 지방에 있는 랜즈베리 홀이라는 거대한 저택의 유일한 상속인이 자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니 자신의 큰할아버지 테오도르가 가문의 유일한 생존자인 스티븐에게 랜즈베리 홀을 남겨준 것이었습니다. 스티븐은 혹시 자신의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알 수 있을까 싶어 랜즈베리 홀로 향합니다. 가난한 고아 소년, 스티븐이 하루 아침에 랜즈베리 홀의 왕이 된 것입니다!

 

스티븐이 랜즈베리 홀까지 가는 여정도 참으로 흐뭇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대기오염과 자연 파괴로 얼룩진 런던을 떠나 호젓한 시골길을 걷는 스티븐의 신나는 발걸음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전염이 됩니다. 이 작가는 정말 시골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도 어릴 적에 시골에 살았었는데, 이 책은 제 기억 속의 어느 때 자연이 가장 아름다웠는지 떠올리게끔 만들어주더군요. 

 

보슬비가 내리는 숲 속에 들어가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촉촉한 빗방울이 나뭇잎 아래로 똑똑 떨어집니다. 비를 맞아 한층 더 푸르른 생기에 가득찬 숲의 모든 생명들은 참으로 눈부시기 이를 데 없지요. 이 작품에는 그런 장면들이 많습니다. 자연을 오래 관찰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런 글을 쓸 수 없을 것입니다.  

 

랜즈베리 홀에 도착한 스티븐은 영지를 탐험하기 시작합니다. 이 랜즈베리 홀이 얼마나 넓은지 빅토리아 시대의 대저택, 숲과 밭, 호수, 동굴, 바다가 모두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랜즈베리 홀을 홀로 탐험하는 스티븐이 부럽습니다. 모든 복잡한 것을 버리고 자연으로 떠나고 싶어도 못 떠나는 사람이 보기에는 말예요. 하지만 스티븐은 랜즈베리 홀에서 이상하게 자신을 몰래 훔쳐보는 시선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도 하나도 아니고 수십 개의 눈을 말예요. 묘한 기분을 느낀 스티븐은 테오도르 할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보고 랜즈베리 홀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스티븐이 보는 콘월 지방의 아름다운 자연과 테오도르 할아버지의 일기에서 그리는 아마존 강의 장엄한 자연에 대한 찬가가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린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산으로, 바다로 당장 떠나고 싶게 만들어주는 작품이라고나 할까요. 아이들에게는 자연이 얼마나 소중하고 멋진 것인지를 가르쳐주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팍팍한 일상을 잠시 잊고, 어린 시절 뛰놀았던 자연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어 주고요. 동화이다 보니 곡절이 비교적 적고 단선적으로 흘러가는 약점이 있지만, 아이들에게는 딱 적절한 수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도 테어도르 할아버지의 아마존 여행기가 참으로 흥미진진합니다. 그 부분만큼은 누구나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읽을수록 마음이 편안해지는 마술같은 책이라는 말씀을 드리며 이만 맺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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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e 2006-03-12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쓴 글이더라도 블로그에서 퍼 오는 것 보다는 직접 쓰는 게 더 나을 듯 하네요...^^
자칫하면 오해를 살 수도...


jedai2000 2006-03-12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그런가요. 저는 원래 모든 글을 블로그에서 쓰는 편이라...그럼 블로그 글을 지우면 되겠네요. 충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