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궁의 묘성 - 전4권 세트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보통 하늘의 뜻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원하고 바랐던 일이 잘 되지 않거나, 모든 준비를 완전히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운이 따르지 않아 실패했을 때 특히 하늘을 운운하며 책임을 돌리기 십상이다. 그런데 그런 소리를 자주 듣다보면 불퉁스런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아니, 잘 되면 제 탓이고 못 되면 하늘 탓이란 말인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그 말이 맞구나 하고 납득하게 된다. 60억의 인구 중 하늘을 이고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만큼 광대무비한 하늘의 섭리를 어찌 거역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늘이 내려주는 그늘 아래 사는 한낱 보잘 것 없는 인간이 어찌 불복할 수 있겠는가.

 

 <창궁의 묘성>은 이러한 하늘의 뜻을 받은 인물들이 역사의 거센 파도를 헤쳐나가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리는 역사소설이다. 시대적 배경은 청나라 말기에서 근세로 넘어오는 19세기 말. 일본 작가가 썼지만 중국이 배경인 셈이다. 확실히 중국은 그 넓고 깊은 역사로 인해 동아시아 작가들에게 언제나 마르지 않는 창작의 원천이 되는 것 같다. 하기야 <삼국지>만 해도 벌써 몇 번을 우려내었는가.

 

외세의 침탈로 인해 피폐해진 중국의 시골 마을, 가난한 말똥주이 소년 이춘아와 지방 부호의 서자 양문수가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마을의 점쟁이 백태태에게 각각 미래의 예언을 듣게 된다. 백태태는 춘아에게, 네가 태어났을 때 하늘에는 모든 별의 우두머리인 묘성이 떠 있었다고 말해준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역대로 묘성이 떠 있던 사람은 징키스칸과 건륭제 밖에 없었고, 두 사람은 알다시피 천하의 모든 재물을 움켜쥐었단다. 이제 고달픈 현실을 넘어 꿈을 꾸게 된 춘아에게는 그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일만 남은 셈이다. 한편 양문수에게는, 곧 과거에 장원급제해 ‘진사’가 될 것이며, 황제를 보필해 천하만민을 위한 개혁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 떨어진다. 고난이 가득한 삶이지만 명예를 잃지 말라는 조언과 함께...

 

초반부의 최고 재미는 두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고가 되는 것을 묘사하는 장면에 있다. 춘아는 그토록 원하던 재물을 얻기 위해 살아있는 보살이라 불리우며 당시 조정을 좌지우지한 서태후의 측근으로 들어가길 원한다. 하지만 돈도 없고, 연줄도 없는 그가 어찌 황궁에 입성할 수 있겠는가. 번민하던 그는 자기 손으로 직접 거세를 하고 환관이 된다. 이 과정은 세심한 취재를 통해 너무도 생생히 묘사되어 있어, 특히 남자에게는 말할 수 없이 공포스럽다. 이제 환관이 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서태후는 변덕이 이루 말할 수 없어 실수한 환관을 죽을 때까지 매를 내리는 걸 반찬삼아 식사를 할 정도다. 이런 서태후를 모시고 출세하라니, 일단 살아남는 것 자체가 어렵겠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를 가진 춘아는 약간의 운과 타고난 좋은 성품으로 인해 결국 태후마마가 가장 사랑하는 측근이 된다.

 

한편 양문수는 과거 시험을 보고 하늘의 별을 움직인다는 ‘진사’에 장원급제한다. 중국 수천만의 선비들이 그토록 원하던 문치주의의 정점에 오른 것이다. 이 시험이 어찌나 어렵냐면은 시험 보는 도중 응시자들이 미쳐나갈 정도다. 양문수의 옆자리에서 시험을 보던 응시자는 아흔이 넘은 노선비. 자기 답지를 채워나가기도 바쁜데, 옆에서는 이 노인이 계속 피를 토한다. 노인을 돌봐주느라 시험을 망치기 직전에 온 양문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해보라. 작가 아사다 지로가 공들여 쓴 이 장면의 몰입감은 정말 놀랍다. 결국 예언대로 젊은 황제, 광서제를 보필하게 된 양문수는 갈고닦은 학문으로 황제를 도와 변법을 선언하지만 필연적으로 구세대 정치인 서태후와 격돌하게 된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그러나 이토록 방대하고 촘촘한 이 작품을 몇 마디로 요약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작품은 결국 본인이 읽어보고 그 감동을 느껴볼 수밖에 없다. 역사 시간에나 짤막하게 배운 인물들이 살아 숨쉰다. 영욕의 인생을 산 ‘철의 여인’ 서태후 자희부터, 강유위(캉유웨이), 담사동 등의 변법 동지, 원세계, 영록 등의 매국노, 증국번, 이홍장 등의 청말 명신까지 등장인물들도 다채롭다. 심지어 소년 모택동도 나온다. 다루고 있는 시기도 다양해 청말뿐 아니라 건륭대제와 조혜 대장군, 주세페 카스틸리오네 등의 청나라 건국 초기의 위인들도 출현한다. 여담이지만 건륭제가 짝사랑했던 향비와의 이야기가 특히 안타까웠다. 몸에서 향기가 났다는 이 이국의 공주에게 반한 건륭제는 모든 것을 다바쳐 그녀를 사랑하지만 결국 그녀를 얻지 못한다. 철인 건륭제는 여기서 황제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을 깨닫는다. 이 깨달음은 작품 후반부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동력이기도 하다. 이토록 많은 인물들에게 총천연색 옷을 입힌 작가의 역량에 감탄하고 말았다.

 

작가 아사다 지로는 <철도원> <칼에 지다> <프리즌 호텔> 등으로 유명한 일본의 소설가. 개인적으로는 처음 접해본 작가인데 앞으로 반드시 읽어야 할 작가군에 넣고 싶은 심정이다. 아사다 지로는 마음이 몹시 따뜻한 작가인 듯 등장인물 모두에게 그리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주입한다. 예컨대 폭정을 일삼는 서태후에게도 마찬가지다. 선인과 악인의 대결로 압축되는 기존의 역사소설과는 조금 다른 방향인데 작가의 인본주의적 사상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다고 말했다는데, 그 자신감에 조금도 부족할 것이 없는 대작이다.

 

서두에 하늘의 뜻을 인간이 거역할 수 없다 운운했는데, 사실 이 작품의 진짜 주제는 그게 아니다. 인간의 힘, 마르지 않는 그 정신력으로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는 말을 작가는 하고 싶었단다. 근대 중국에서는 “메이화즈(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자주 썼다 한다. 외세 열강의 압박으로 국토가 조각나고, 국민들의 몸과 마음은 피폐해져감을 상징하는 패배주의적인 말이다. 그러나 작가는 춘아와 양문수, 서태후, 이홍장 등의 인물에게 “네버 기브업” 정신을 주입하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명예롭고 긍지에 찬 인물들로 그려낸다. 결말부 변법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망명하는 양문수가 황제에게 보낸 결코 닿을 수 없는 편지를 눈물을 흘리지 않고 보는 사람이 있다면 신경이 고장난 사람일 것이다. 진실로 감동적인 작품이며 책장을 덮고도 오랜 시간 잊혀지지 않을 걸작이다.

 

 

p.s/ 옛날 한경출판사에서 나온 3권 분책으로 보았습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책은 4권 분량입니다. 혹시 달라진 바가 있을지 모르나, 아쉽게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분들께 소개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새로 창해출판사에서 나온 표지를 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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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의랑데뷰 2006-07-26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쯤 오겠군요. 기대하고 있습니다. ^^;

jedai2000 2006-07-27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당분간은 이 책에 빠져 보내시겠군요. ^^

짱꿀라 2006-07-29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매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jedai2000 2006-07-3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고 좋은 작품이죠. 알아주시는 분이 슬슬 나타나시는군요. ^^
 
스티븐 킹 단편집 - 스켈레톤 크루 - 상 밀리언셀러 클럽 42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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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의 두번째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의 상권이다. 상권에 9개의 단편, 하권에 12개가 각각 수록되어 있고, 두 권 합쳐 10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단편집이다. 미국에서 85년에 나온 작품집이지만 국내에 정식 소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란다. 그의 작품들은 전세계적으로 3억부를 팔았을 만큼 초대형 히트작이지만, 국내에서는 썩 높지 않은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80~90년대를 거치면서 정식 계약을 맺지 않은 비양심적인 출판사가 조악한 만듦새로 그의 책을 마구잡이로 낸 게 그 이유가 아닐까 한다. 공포소설의 범주에 속해 있으면서, 그것을 뛰어넘는 높은 문학성으로 유명한 그의 작품들이 유독 한국에서는 '쌈마이 오락소설'로 평가절하되는 것 같아 슬프다. 다행히 정식 계약을 통해 속속 그의 작품들이 나오고 있으니 제대로 평가할 기회를 가져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턱이 빠질만큼 하품 나오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스티븐 킹은 전형적인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사실 공포소설에서 등장시킬 수 있는 내용이라면 뻔하다. 흡혈귀 아니면 좀비, 괴물, 사이코, 악령, 유령들린 집...대충 이런 정도가 아닐까. 스티븐 킹은 열거한 것들을 수도 없이 써먹었다. 그런데도 재미있다. 한 마디로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무엇보다 문장력이 일품이다. 그의 문장은 시종일관 긴장감을 잃지 않으며, 불길한 느낌이 난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가슴 졸이는 부분은 사실 괴물이 출현해서 난도질하는 순간이 아닌, 괴물 출현 직전의 숨막힐 듯한 긴장감이다. 그는 독자들의 심장을 어떻게 하면 두 배 빨리 뛰게 하는지, 아예 멎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유머를 놓치지 않는다. 감각적이고, 지성적인 위트가 넘실댄다. 책을 읽는 내내 억눌린 듯한 공포감, 신경질적인 웃음, 깊은 감동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마침내 책장을 다 덮으면 이제 끝났다, 하는 해방감을 주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그의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온갖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결국 살아남게 됐을 때, 느끼는 안도감과 비슷하다. 독자와 책 속 인물의 처지가 절묘하게 부합하는 것이다. 이 정도까지 작중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시킬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작가의 역량이라 할 수 있겠다.

 

스티븐 킹이 잘쓰는 수법 중 개인적으로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 예컨대 단편 중 <안개>에 나오는 장면이다.

"...스테파니는 우리 집 서쪽 끝에 있는 채소밭으로 향하는 길 위에 서 있었다. 장갑을 낀 한 손에는 커다란 전지가위가, 다른 한 손엔 제초 노루발이 들려 있었다. 헐렁한 모자 덕분인지 얼굴 위로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보였다. 내가 경적을 두 번 가볍게 울리자 아내는 노루발을 든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는 차를 출발시켰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아내를 만나지 못했다."

평화롭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끝문장 하나로 독자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버린다. 한 시퀀스 안에서 일종의 반전을 주는 것인데 절묘하다. 그리고 뒤에 전개될 이야기(아내가 죽는다는 것)를 살짝 암시하면서도, 김빠지게 하지 않고 오히려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들다니 그저 감탄할 뿐이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은 반 이상의 분량을 차지하는 <안개>다. 이 작품만 봐도 사실 본전은 뽑는 셈이다. 메인 주에 허리케인이 찾아온 다음 날, 정체불명의 안개가 마을을 덮는다. 빌리라는 어린 아들을 둔 데이빗은 아들을 데리고 대형 마트로 향한다. 태풍 때문에 물자가 동나 생필품을 사러간 것이다. 쇼핑을 끝내려는 찰나, 안개 속에서 기괴한 모습을 한 괴물들이 나온다.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죽이는 괴물들. 데이빗과 빌리, 부자(父子)는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마트 안에 고립된다. 평범한 데이빗의 이웃이었던 마을 사람들은 공포감에 점점 미쳐간다. 밖에서는 정체불명의 사악한 괴물들이, 마트 안에는 괴물보다 두 배쯤 더 사악한 인간들이 부자를 노린다. 여러 가지 추측만 난무할 뿐, 끝까지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 괴물들의 묘사는 더욱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원래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가 더 큰 법이니까. 또한 마트라는 좁은 공간이 주는 폐소공포증의 느낌, 극한 상황에 몰리면서 정신의 균형을 잃어가는 인간군상의 모습이 이 작품을 잊을 수 없는 공포소설의 수작으로 만들어준다.

 

그외에도 원숭이 인형이 양손에 들고 있는 심벌즈를  울릴 때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원숭이>와 하이킹을 간 대학생들이 한 명씩 죽어나가는, 10대 슬래셔 영화같은 <뗏목>이 공포소설로는 발군이다. <안개><원숭이> 그리고 다른 작품이지만 <애완동물 공동묘지>등에서 주인공인 화자는 언제나 어린 아들을 둔 아버지이다. 그들은 아들을 구하기 위해 없던 용기도 끌어내며, 목숨까지 버릴 각오로 분투한다. 어쩌면 스티븐 킹은 인간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가정의 파괴가 아닐까 생각하는 것같다. 비록 그가 그리는 세계는 언제나 미국의 중산층 가정이라는 편협한 세계지만, 그래도 킹의 주인공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대체로 성공하는 편이다. 그의 소설에서 나오는 깊은 몰입감의 정체는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가족과 행복은 지켜야 한다는 것 말이다. 다소 미국적이고 뻔한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위에 언급했듯 스티븐 킹은 같은 이야기라도 재미있게 할 줄 안다. 그것도 읽는 동안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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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6-06-23 0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그래요. 똑같은 얘기도 재밌게 말할줄 알죠.
어떻게 하면 독자가 긴장감을 가지고 보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는 듯.
가끔은 이런 노련함도 신선도 부족으로 잘 먹히지 않을때가 있지만요.^^;

jedai2000 2006-06-23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저는 워낙 읽은 게 없어서요. 딱 세 권 읽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저에게 신선합니다. 모르죠. 많이 읽다보면 천편일률같이 느껴질 지도..^^ 아무튼 대단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

물만두 2006-06-2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장 보고 접었어요 ㅠ.ㅠ 역시 스티븐 킹은 저랑 너무 안맞아요 ㅠ.ㅠ

jedai2000 2006-06-23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안개>는 그래도 저는 꽤 좋았어요. 하지만 취향이 안 맞으시면 누가 머래도 어쩔 수 있나요. ^^
 
소오강호 1
김용 지음, 박영창 옮김 / 중원문화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 인간이 무리짓고 살게 된 순간부터 비극의 씨앗은 잉태되었다. 힘이 센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을 지배하게 되고 필연적으로 계급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계급 말이다. 어떻게든 지배자 계급에만 서면 부귀영화를 누리며 안락한 생활을 하게 되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배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그뒤로 인류의 역사라는 것이 지배자가 되기 위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었으니, 사실 정치라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다. 위정자는 사리사욕과 일신의 안녕을 위해 가진 것없는 피지배자들을 조금이라도 더 짜내기 위해 고도의 수법을 개발해냈고, 계급의 차이는 더욱 벌어져 오늘날까지 왔으니 그저 할 말을 잃을 뿐이다.

 

 

중국의 역사는 신화에 가까운 삼황오제 시대를 빼고, 하나라부터 잡아봐도 대략 4,000년이 넘는다. 수천명의 황제와 영웅들이, 중국의 끝을 알 수 없는 광대무비한 땅덩어리와 거기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인적 물적 자원들을 다투다 명멸해갔다. 오늘날 우리는 알고 있다. 하늘의 아들이라는 중국의 패자가 되기 위해 수많은 음모와 협잡이 난무했고, 바다를 이룰만큼 많은 피가 흘러내린 것을. 그래서 고래로 중국의 뜻있는 문사들은 천하의 정상에 서기 위해 갖은 술책을 부리며 피를 부르는 정치꾼들을 나무라는 글들을 자주 지었으니, 다행히 우리 시대에도 손꼽히는 중국 문단의 별이 있어 그 구색을 맞추고 있다. 중국에서 태어나, 홍콩으로 이주해 일간신문 '명보'의 사장으로 재직하며 수많은 걸작 무협소설을 집필한 김용이 바로 그 걸출한 인물 중의 인물이다. 

 

<소오강호>의 세계는 수많은 무협소설들이 반복해 써 먹었던 익숙한 구조를 차용하고 있다. 정파와 사파의 이분법적 대립구조 말이다. 이 작품이 처음 발표된 시기가 1969년이니 아마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양대 이데올로기로 세계가 반으로 쪼개져 으르렁대던 당대 상황을 반영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정파는 무림의 태산북두인 소림사와 무당파, 그리고 오악검파가 있는데 숭산파, 화산파, 형산파, 항산파, 태산파의 5대 검파의 합당 체체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정파는 숙적인 사파를 멸망시키기보다는 오악검파 내부의 헤게모니를 차지하기 위한 당파싸움으로 머리가 더 복잡하다. 특히 두각을 나타나고 있는 인물은 오악검파의 수장, 숭산파의 패권주의자 좌냉선이지만, 협잡의 일인자인 화산파의 '군자검' 악불군도 조용히 그 세력을 기르고 있다. 숭산파 좌냉선은 차제에 아예 오악검파를 합당하고, 소림, 무당의 무릎을 꿇리고 최종적으로 사파를 멸해 천하의 정상에 서려하는 야심을 감추지 않는다.

 

한편 사파라 할 수 있는 '일월교'는 상태가 더 심각하다. 전임교주 임아행을 쿠데타로 몰아낸 신임교주 동방불패는 전임교주 임아행을 추종하는 무리들을 탄압하고, 임아행은 감옥에 갇혀 권토중래를 노린다. 여기나 저기나 추한 정치싸움 일색이다. 정통이라 자처하는 오악검파 안에서도, 종교의 형태를 띈 일월교 안에서도. 이 혼란의 와중에 술 좋아하고 어렸을 때부터 같이 커온 사매 악영산을 좋아하는 화산파의 수제자 영호충이 등장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호충은 재기넘치고 인간적인 성품의 호방한 사나이지만 사실 그리 뛰어난 존재는 아니다. 천하 대세에 영향을 미칠 만한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연히 화산파의 전대 고수 풍청양에게 '독고구검'을 배우며 그의 인생은 달라지고 만다. 절대적인 위력을 가진 독구구검으로 인해 그가 가세하는 쪽이 천하 패권을 움켜쥘 수 있게 된 것이다. 갑작스레 천하 대세의 키 플레이어가 되 버린 영호충은 그를 둘러싼 온갖 음모와 협잡, 회유와 유혹에 당황하게 되며, 이윽고 그는 그 모든 것들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소오강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영호충과 그가 사랑하는 두 여인, 악영산과 임영영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치적 인물이다. 앞서 언급한 좌냉선은 야심을 드러내니 오히려 순진한 인물. 군자검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이미지 정치에 능한 악불군은 뒤로 온갖 모사를 꾸미니 '위군자검'이라 할 수 있다. 일월교 전교주 임아행은 영호충에게 자신의 딸 임영영을 줘서 사위로 삼고 싶어 하는데, 영호충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영호충의 일신의 능력을 높이 치기 때문이다. 항산파의 방장 정한사태는 자신이 죽어가면서 여자로 이뤄진 항산파의 수장 자리를 영호충에게 넘긴다. 문파의 정통성(여자만 가입한다는)을 훼손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비웃어도 영호충만 끌어들이면 된다는 식이다. 음률에 능한 형산파의 막대 장문인은 그래도 괜찮은 인물이지만 정치판(?)을 아예 떠나지는 못한다. 세상을 바꾸고 싶지만 능력이 부족해 예술로 도피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처럼 <소오강호>는 한 편의 완벽한 정치 풍자소설이다. 정치의 소용돌이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들을 소묘하듯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제목 <소오강호 笑傲江湖>는 '강호를 비웃다'라는 뜻이다. 여기서의 강호라 함은 영웅호걸들이 노니며 천하를 다투는 곳이라 할 수 있으니, 바로 정치판을 비웃는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소오강호>는 악곡의 이름이기도 하다. 형산파의 유정풍과 일월교의 곡양이라는 적대 세력의 두 고수가 음악으로 교감해 친구가 된다. 두 사람이 합심해서 만든 곡이 바로 이 '소오강호'곡이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둘 다 죽음을 맞게 되겠지만 죽음도 그들의 우정과 음악혼을 막을 수는 없다. 두 사람에게 이 '소오강호'곡을 배우는 사람이 영호충이다. 정치보다는 우정과 예술을 택한 두 사람이 부르는 이 소오강호 곡이야말로 작품 전체를 꿰뚫는 주제가 아닐까 싶다.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정파와 사파의 우렁찬 구령소리에 가려져 들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역시 우리의 가슴 속에 은은히 파고드는 아름다운 곡조라 아니 할 수 없다.

 

정치판에 뛰어드는 순간, 협잡질부터 배우고 야심으로 눈앞이 흐려진다. 정치의 노예가 된 좌냉선이나 악불군, 임아행, 동방불패 등의 인물에 비하면 우리의 주인공 영호충은 참으로 인간적인 인물이다. 사랑하는 영산 사매의 마음이 점차 멀어져 사제인 임평지에게로 향할 때, 영호충이 느끼는 그 절망감이란. 늘 함께 하며, 자신만을 보고 웃어주던 사매가 임평지가 가르쳐주는 노래를 부를 때, 영호충은 한바탕 취해버리고 만다. 나중에 임평지와 악영산이 결혼하자 지엄한 항산파 방장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젖어버리도록 울어버리는 영호충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소냐. 정치의 노예로 꼭두각시가 되버린 인간군상들 속에서 영호충의 인간다움은 그만큼 특별해진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 한 가지. 사매가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녀를 잊지 못하는 영호충과 그런 영호충을 일심으로 사랑하는 임영영. 사매에 대한 집착으로 괴로워하던 영호충은 사매가 위기에 빠져 있는 걸 알고 임영영과 함께 도와주려 간다. 그러나 예전처럼 세상이 끝난거마냥 서둘지는 않고, 마차 안에서 임영영과 담소를 나누며 유람하듯 사매에게로 간다. 임영영이 말한다. 늘 사매만을 생각하던 영호충의 마음이 이제 나에게로 돌아섰음을 확인했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그순간 영호충은 자신을 그토록 사로잡던 사매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그순간의 벅찬 해방감이란! 집착, 특히 사랑에 대한 집착은 인간의 마음을 미혹시킨다. 이미 아닌 것을, 끝났음을 알면서도 한자락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여. 그러나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그곳이 바로 해탈이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되는데, 미련과 아쉬움에 그걸 못하니 그것이 바로 인간의 가장 큰 병이리라. 정치판도 비슷하다. 집착하기는 오래지만, 벗어나기는 순간이다. 한순간의 깨달음으로 번뇌에서 벗어난 영호충의 깨달음을 정치가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이 작품을 쓴 김용 선생은 '신필'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데, 내 생각엔 그것도 부족하다. 인간이 글로 쓸 수 있는 최상의 작품들을 두루 집필해낸 그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자, 하늘에서 잠시 다니러온 文의 별이다. 홍콩의 일간지 '명보'의 사장이자 주필이라는 언론인의 역할도, 수많은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로서의 역할도 성공적으로 해낸 이 80대의 노작가는 여전히 생존해 있고, 현재 영국에서 필생의 꿈인 중국 역사를 집대성하는 연구에 골몰하고 있다. 그의 무협소설은 총 15편으로 문장의 유려함과 사상의 깊이, 몰아일체의 재미로 인해 이미 현대의 고전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역시 <소오강호>. 부디 인간을 옥죄는 정치판의 온갖 굴레 속에서 벗어나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이 남아있는 자유로운 곳으로 날아가려 하는 영호충의 날개짓을 확인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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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6-17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전 영화보고 책살려니 없어서 ㅠ.ㅠ 근데 무협지는 한번 손에 잡으면 중독성이 넘 강하고 길어서 엄두도 못내고 그러네요^^;;;

jedai2000 2006-06-18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도 소장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정식 발매가 되며 꼭 사놓으려고요. 솔직히 영화와는 비교도 안 되는 명작입니다. 어느 정도 중독되셔도 시간 낭비 절대 아닌 작품이니 꼭 읽어보세요..^^
 
솔로몬의 반지 - 그는 짐승, 새, 물고기와 이야기했다
콘라트 로렌츠 지음, 김천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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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동생과 강아지를 기르게 해달라며 단식투쟁까지 벌인 적이 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결사반대하시던 어머니는 마침내 허락을 해주셨고, 우리는 큰집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얻어올 수 있었다. 조건은 강아지의 뒷치닥꺼리는 전부 우리가 해야한다는 것. 처음엔 무지 좋기만 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슬슬 배설물 청소와 놀아달라고 애걸하는 강아지에 질리기 시작했다. 우리 남매는 강아지의 뒷치닥꺼리 건으로 매일 싸우다시피 했고,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강아지는 강제 송환되었다. 그때 나는 하나의 생명체를 돌보는 데는 큰 희생과 큰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대학교 1학년을 다닐 때,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내 동생이 또 사고를 쳤다. 옛날의 아픈 기억은 벌써 잊었는지 친구로부터 강아지 한 마리를 새로 얻어온 것이다. 그런데 이 강아지가 어찌나 귀여웠는지 그 아이(이름은 '궁상이'였다)와 노느라 수업에 지각하기 일쑤였던 것이다. 궁상이와 동거한 지 한달쯤 지난 5월의 어느 날, 수업이 끝나자마자 날듯이 집에 돌아가보니 강아지는 죽어있었다. 병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사인(?)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찌나 슬펐던지 그뒤로 다시는 애완 동물을 기를 생각이 없다.

 

누구나 살면서 애완동물과 엮인 추억 한가지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비록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친구의 애완동물을 최소한 몇 시간이라도 떠맡은 기억 하나 없을까. 칭얼대고 컹컹 짖으며 놀아달라고 애걸하는 애완동물들이 참을 수 없이 귀찮게 느껴져 그들의 애원을 애써 무시하다가도, 무심코 그들의 눈을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그리고 친구와 함께 놀고 싶어하는 그들의 간절한 눈빛에 마음이 약해지지 않는 사람은 뇌구조가 고장난 냉혈한일 것이다. 결국 나의 안락한 시간을 포기하고 동물과 놀아주게 된다. 그때 동물들의 행복한 얼굴을 보면 아아 이런 것이 바로 사랑이로구나, 기쁨이로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콘라드 로렌츠의 <솔로몬의 반지>는 인간과 동물의 아름다운 공존을 그리고 있다. 콘라드 로렌츠는 독일의 비교행동학자로 1973년에 동학문으로 노벨 생리학, 의학상을 수상했다. 과문한 탓에 비교행동학이 뭔지는 잘 모르나, 대충 설명해 보면 진화를 거쳐온 동물의 행동을 분석해, 역시 진화를 거듭한 인간의 행동 양태를 비교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독일에서 콘라드 로렌츠는 수필가로도 명성을 날렸다. <솔로몬의 반지>는 그의 대표작인데, 어렵고 딱딱한 학술서가 절대 아니다. 그가 동물을 관찰하며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들과 동물에 대한 따스한 사랑이 유쾌하고 세심한 필치로 그려진 뛰어난 수필이다.

 

콘라드 로렌츠의 동거인(?)은 수 마리의 개와 수십 마리의 새, 수족관에 든 수백 마리의 물고기 등이다. 만약 동물학자로서만 이 많은 동물들을 키우라고 한다면 그가 누구든 실패하고 말 것이다. 콘라드 로렌츠는 우수한 동물학자로서 뿐이 아니라 애완동물 애호가로서 어마어마한 정성을 들여 사랑으로 그들을 돌봐줬던 것이다. 이를테면 새끼 새가 길을 잃고 돌아오지 못할 위기에 처하자, 굴뚝 위로 올라가 피에로 분장을 하고 새의 주의를 끌어 마침내 무사귀환시킨다는 식이다. 사람들은 멀쩡한 학자가 왜 굴뚝에서 생쇼(?)를 하는지 미친 사람 취급하지만, 그는 행복할 뿐이다. 기르던 원숭이가 쓰고 있던 논문을 갈가리 찢으며 즐기고 있을 때도 그는 평정을 잃지 않는다. 콘라드 로렌츠의 이러한 동물 사랑은 가끔은 유머러스하고, 때로는 안타깝기까지 하지만 종국에는 깊은 감동을 부른다. 그런데 제목이 왜 <솔로몬의 반지>일까? 본문을 잠깐 인용해보기로 하자.

 

"솔로몬 왕은 짐승, 새, 물고기, 벌레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나도 역시 그렇게 할 수 있다. 솔로몬처럼 모든 동물과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내가 잘 아는 몇몇 동물과는 나도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모든 동물과 이야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나는 솔로몬보다 못하지만, 솔로몬처럼 마법의 반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는 그보다 낫다. 솔로몬은 반지 없이는 가장 친한 동물의 말도 결코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다. 신화 속의 솔로몬이 마법의 반지를 이용해 동물과 대화했다지만, 현재의 콘라드 로렌츠는 한결같은 동물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마침내 동물과 대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솔로몬보다 자신이 뛰어나다는 콘라드 로렌츠의 귀여운 자만심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 속의 에피소드는 기존의 동물 관련 책내용의 오류를 꼬집는 학술적인 것에서부터, 동물과의 사이에서 겪었던 한바탕 웃음짓게 만드는 내용, 애완동물을 선택하고 키우는 요령 같은 실전적인 정보까지 다양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유전정보에 깊숙히 자리한 생명과도 같은 먹이를 포기하고, 자신의 자식을 돌보는 물고기의 이야기였다. 먹고 살기 급급해 제자식도 버리는 인간들도 많은 판에, 인간에 비해 뇌크기가 비교도 안되는 한낱 물고기가 입에 든 먹이를 뱉어버리고, 새끼 물고기를 먼저 구하는 결말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야 말았다.

 

작가 콘라드 로렌츠는 우수한 학자일뿐 아니라 뛰어난 문필가였다. <솔로몬의 반지>에 나오는 온갖 인용들을 보면 고전이나 인문학에도 소양이 깊은 것 같다. 도대체 한국의 그 많은 우수한 과학자들로부터는 언제쯤 이런 지적이면서도 따뜻한 수필을 기대할 수 있을까. 기존의 성과 위주 교육의 탓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흥미로운 가십 한 가지. 그렇게 동물을 사랑했던 마음 따뜻한 사나이 콘라드 로렌츠는 나치 동조자 혐의도 걸려 있다. 그가 연구한 비교행동학이라는 것도 인간과 동물을 비교해 그 우열을 가린다는 점에서 웬지 나치의 '우생학'의 위험한 향기가 풍기지는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혐의일 뿐이니 그냥 흥미거리로만 생각하기 바란다. 무엇보다 <솔로몬의 반지>속의 콘라드 로렌츠의 모습을 보면 그가 악인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게 동물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의 마음 속에 악(惡)이 있으리라고 나는 믿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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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06-0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다이님 리뷰 당선 축하!!! ^^

oldhand 2006-06-0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축하드립니다. 벌써 두번째죠? ^^

jedai2000 2006-06-10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감사합니다. 항상 축하해주시고, 신경써주셔서 고마워요. ^^

올드핸드님...감사합니다. 작년에도 한 번 됐으니 통산 세 번째네요. ^^

상복의랑데뷰 2006-06-17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잠정 은퇴가 아쉬울 ^^;;

jedai2000 2006-06-17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가끔씩은 쓸 테니까요. 하지만 플레잉 코치 정도로요..^^
 
- 밀리언셀러 클럽 한국편 001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
김종일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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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집 화장실 세면대가 물이 잘 안 빠졌던 적이 있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워낙 살림에는 무지한지라 어머니께 이유를 물었더니 막힌 것 같다며 파이프를 열고 청소하라고 하셨다. 파이프를 열었을 때 나는 보고야 말았다. 마치 뱀처럼 구불구불한 수백 개의 긴 머리카락이 공처럼 뭉쳐져 있었던 것을. 때를 비롯한 오래된 이물질들이 온통 머리카락에 붙어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그것을 보고 나는 구토를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 범인은 여동생이었는데, 그 아이의 긴 머리카락이 파이프에 걸려 물이 내려가지 않았던 것이다. 여성의 검고 긴 머리가 햇빛에 찬란하게 빛날 때는 아름답다. 하지만 긴 머리가 빠져 바닥에 꾸물꾸물 뒹굴고 있을 때는 어딘지 징그럽고 불쾌한 느낌이 든다. 신의 조화라고 밖에는 설명이 안되는 너무도 완벽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몸에서 시선을 다른 방향으로 조금만 돌려보면 이처럼 낯설고 불쾌한 감정이 드는 것이다.

 

김종일 작가의 공포소설 <몸>은 바로 이런 류의 공포를 추구하고 있다. 아예 제목을 <몸>으로 붙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통제를 벗어난 몸이라는 인상적인 소재를 선보이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일종의 연작 단편집이라 할 수 있는데, 영화감독 양정모 씨를 찾아온 정체불명의 남자가 던지고 간 <몸>이라는 원고에 담긴 내용을 액자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물론 양정모 씨는 우리 독자와 같은 입장에 서 있다. 원고를 읽으며 양정모 씨가 느낀 공포를 독자도 똑같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몸>은 눈, 입, 얼굴, 귀, 머리카락 등으로 나뉘어진 10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편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각각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가장 마지막 단편인 '공포'에서 모든 단편들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있다. 각 단편마다 정글같이 냉엄한 현대사회 속에서 소외당한 등장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예컨대 '눈'에서는 한쪽 눈을 잃은 소년이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멸시에 눈을 뜨게 된다. '입'과 '얼굴'에서는 능력은 있지만 뚱뚱하거나 외모가 못난 여자가 등장해 사회를 이루는 주류세력들과 갈등을 겪는다. 잘못이 주인공들에게 있는 것이 아닌 경우지만 세상의 가혹한 시선은 여지없다. 결국 <몸>의 주인공들은 세상과의 갈등 속에서 점점 정신과 신체의 균형이 무너지며 이른바 파멸을 맞게 된다. 그 과정에서 지옥같이 끔찍한 신체 변형과 훼손이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지는데,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런 말을 하면 실례겠지만 작가분의 뇌를 해부해보고 싶을 정도였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길래 이토록 엽기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상상을 할 수 있는지 말이다. 이 작품에 쓰인 공포 코드는 날카로운 칼에 손가락이 베이듯 직접적이고 예리하며 불쾌하다. 물론 일상에서 전혀 맛볼 수 없는 이런 불쾌감을 즐기기 위해 이 작품을 집어들 독자가 많겠지만. 작품마다 한 인간의 몸이 산산이 조각나고 파괴된다. 어떤 장면들은 구토가 나올 듯 잔인하고 징그럽지만 오체분시를 일삼는 헐리웃 공포영화의 그것처럼 뻔하거나 익숙하지는 않다. 상상을 해보라. 왜소한 체격으로 인한 세상의 냉대를 견디다 못해 유일한 위안거리인 컴퓨터에 심취한 남자를. 그는 날이면 날마다 컴퓨터를 끼고 살다, 마침내 컴퓨터와 한 몸이 되어버린다. 달팽이 눈처럼 튀어나온 눈이 모니터에 들러붙고, 시뻘건 실핏줄들은 모니터와 엉겨붙어 있다. 컴퓨터의 케이블은 남자의 몸에 가닥가닥 꽂혀 있고. '몸'이라는 단편의 내용이다. <몸>의 공포는 이처럼 우리의 오감을 강하게 자극한다. 상상하면 할수록 더 끔찍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10편의 단편이 모두 특색이 있고 각각 다른 내용들을 다루고 있어 쉽게 질리지 않는다. 신인작가로 알고 있는데 데뷔작부터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능력이 남다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완전히 비인기 장르인(그래서 참조할 만한 선배들의 걸작이 거의 전무한 상황인) 공포소설 분야에서 이정도 수준의 처녀작을 내놓았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그러나 몇몇 문장이나 대사에서는 쉽사리 읽히지 않고 툭툭 걸리는 부분이 있긴 하다. 이런 점은 신인 작가임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서술 면에서 반복 기법을 자주 사용하는 것이 눈에 띈다. 이 작품에서 나온 문장은 아니지만,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찬란한 아침햇살이 빛나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마주오고 있는 여인의 미소 또한 눈부시다. 출근길, 용진의 마음은 더없이 좋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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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아침햇살이 빛나고, 시원한 바람이 분다. 마주오고 있는 여인의 미소 또한 눈부시다. 그러나 출근길, 용진의 마음은 더없이 무겁기만 하다. 어제밤 아내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반복법이 도처에 사용되는데 반복의 묘랄까, 기법 면에서 돋보이지만 너무 남발되는 것같다. 같은 문장을 너무 자주 보면 누구나 당연히 질리게 마련인 것이다. 처녀작을 내는데 있어 이것저것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건 당연한 심사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든 과도하면 안 하느니만 못한 법이다. 앞으로의 작품에서는 화려함 보다는 안정감을, 테크닉보다는 진실성을 더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을 드리며 부족한 독후감을 끝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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