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감독
에비사와 야스히사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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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상의 무슨 일이든지간에 때가 중요한 법인데, 이 소설 <야구 감독>은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나왔습니다. 국내에서 거의 최초로 선보이는 본격 야구소설인 이 작품이 나올 즈음해서 한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일본 프로야구가 거의 동시에 개막을 하니 야구라면 밥보다 좋아하고, 술자리에서 침을 튀기며 응원하는 팀 자랑에 여념이 없는 열혈 야구팬들은 소설과 실제 경기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습니다.

저는 사실 일 년에 한 두번 정도 야구 구경을 가는 그렇게까지 야구팬이라고는 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대학교 다닐 때 야구선수가 등장하는 시나리오를 한 번 썼다가 보기 좋게 낙방한 경험이 있어 경기의 박진감을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야구를 어떻게 요리했나, 살펴보고 싶어 읽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손 두 발 다 들고 완전 항복했습니다. 이런 게 바로 스포츠소설이구나, 하면서 완전 감탄했지요. 작가 에비사와 야스히사의 해박한 야구 지식과 마치 지금 야구장 한복판에 있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 간결하면서도 박력있는 문체에 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야구 감독>은 1979년에 나온 작품으로 제 나이와 동갑입니다. 그 시대에 이런 소재를 가지고 이 정도 완성도의 작품을 내다니 확실히 일본 엔터테인먼트 문학의 저력은 넓고도 깊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승엽 선수가 맹활약하고 있는 지금도 그렇지만 1970년대에도 최강의 팀이자 모든 팀을 통틀어 어마어마한 인기를 자랑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쫓겨나다시피 떠난 3루수 히로오카 타쓰로는 최약체 앤젤스의 감독을 맡아 복수전에 나섭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미스터 베이스볼 나가시마, 외다리 타법의 홈런왕 왕정치, 재일교포이자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안타를 가장 많이 때렸던 장훈, 초창기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투수로 활약해 올드팬들은 잘 알고 계실 김일융 등이 한 팀에 있었던 당시 요미우리는 V9(9연속 우승)을 하는 등 설명이 필요없는 강팀입니다. 그런데 앤젤스 선수들은 경기 중에 코를 후비지 않나, 한 시합에 두세 번씩은 필수적으로 알을 까는 집중력 실종에 근성 제로의 낙오자들입니다. 이 한심한 팀을 한 사람의 야구 감독 히로오카가 어떻게 변모시키는가가 핵심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 야구 팀에 관여하고 계시는 분들이 시뮬레이션 삼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 시즌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악재를 다 경험하는 히로오카. 그는 이기려는 의지 자체가 없는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제대로 된 훈련법을 가르쳐주며, 때로는 윽박지르고 때로는 다독이며, 가끔은 경기의 세부 하나하나까지 간섭하고 가끔은 선수들을 완전히 믿고 재량을 주는 등 지혜롭고 현명한 방식으로 팀을 정상권으로 만들어갑니다. 눈치빠른 분들은 여기까지 읽고 아마 깨달으셨을 겁니다. 이 책이 아주 훌륭한 경영서일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예컨대 회사에서 부서장직을 맡은 분들이나 사장님들이 만약 이 책을 읽으면 비단 야구만이 아니라 어떻게 한 조직을 이끌어나가 성공할 수 있는가를 실제 현실에서의 상황과 접목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대개 똑같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얻어가려면 생각이 필요한 법입니다.

다수의 선수들이 실명으로 출현해(앤젤스 팀은 전원 허구지만, 감독 히로오카 타쓰로는 실존 인물로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명승부를 펼치는 이 소설은 야구를 잘 아는 사람에게는 물론 환상적인 재미를 주고, 저 같은 얼치기에게는 야구란 이런 것이다라는 것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가이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야구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은 히로오카의 팀 메이킹에 흥미를 느낄 수는 있겠지만, 경기 자체의 두근거림을 느끼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이 점 주의하세요. 그리고 아무래도 옛날 작품이다 보니 지금 현실과는 맞지 않는 부분도 간혹 나옵니다. 예컨대 앤젤스 구단주인 올림픽 건설회사 사장은 팀이 연이어 승리하자 기분이 좋아져 여비서 엉덩이를 만지는 장난을 치는데, 여비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합니다. 적어도 1979년은 사장님들에겐 좋은 시절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긴 하지만, 사실 지금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성희롱이죠.

번역이 너무 직역투라 약간 아쉽고, 표지가 작품의 격에 맞게 좀더 고급스러우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작품 자체의 재미만은 요즘 나오는 웬만한 소설들은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최고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을 보면서 야구란 단순한 공놀음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승리를 향한 열정과 본래 이기적으로 태어난 인간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화합의 차원에서 그리고 꿈을 향한 도전 정신을 충족시켜주는 야구는 아마도 인간이 만든 것 중에선 가장 재미있는 놀이 중 하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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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문라이트
이재익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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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밤에 <미스터 문라이트>를 읽고 있는데, 어느새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창문을 두드립니다. 읽던 것을 잠시 멈추고 창가에 서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니 묘한 생각이 듭니다. 비라는 것은 원래 땅 위에 흐르는 물이 증발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어 내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을 거쳐 비가 내리면 다시 땅을 적셔주고, 그 물이 또 하늘로 오르고...이렇게 비는 영원한 것,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마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먼 옛날에 사랑하는 연인의 몸과 마음을 적셔주던 그 빗물이 오늘날의 연인들에게 또 내리는 거고...

 

연애소설이란 이런 것인가 봅니다. 평소에는 무심하던 것들에서 괜히 낭만적인 뭔가를 찾게 되네요. 매일매일 전투처럼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전하는 연애소설의 한 페이지는 일종의 쉬어갈 수 있는 간이역 같은 기분으로 다가옵니다. <미스터 문라이트> 역시 마침표나 느낌표가 아닌 쉼표의 연애소설입니다. 누가 읽어도 편안함과 감동, 다소나마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소설이지요. 

 

대학교 때 한 여자를 짝사랑해서 그녀를 위해 온몸을 바쳐 헌신해 결국 사랑을 얻어내지만, 여자의 죽음으로 안타까운 이별을 맞고...그렇습니다. 뻔하디 뻔한 설정의 모음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서로를 희생해 사랑하는 법을 알았던 연인들의 이야기는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하는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물론 죽은 연인과 꼭 닮은 새로운 여인이 등장하는 후반부를 보면서 아, 이거 정말 심하게 뻔하네 하고 실망하긴 했습니다만 다행히 아주 말랑한 소설은 아니고, 결말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전(?) 혹은 그럴 듯한 국면의 전환이 있어 힘을 받습니다. 아마 드라마나 영화로 각색해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는 그런 결말이예요.

 

작가가 현직 음악방송 프로듀서답게 상황에 맞는 노래들이 많이 소개되는데, 건스 앤 로지스부터 엘튼 존, 김현식, 김광석까지 읽으면서 다 한 번씩 들어보고 싶더군요. 글솜씨도 무난하고, 아니 잘 쓰는 수준이구요. <잃어버린 너>부터 <혼자뜨는 달> 까지 국산 연애소설이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옛날 생각도 좀 나더군요. 주인공들의 사랑이 맺어진 곳이 대학교라, 저의 예전 풋풋했던 대학생 시절 짝사랑의 기억도 많이 났습니다. 휴대폰도 없고, 컴퓨터도 없던 시절의 끝물에 대학을 다닌 터라 주인공들의 고풍스런 연애담이 아주 낯설게 다가오지 않더라구요. 그러고 보니 요즘 미스터리에만 너무 심취해 연애소설의 이런 재미들을 다 잊고 있었네요. 앞으로도 좋은 연애소설을 틈틈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스터 문라이트는>는 위에도 지적했듯이 클리쉐의 남발과 대책없는 순애 지상주의 등의 단점이 아쉽지만 더 멋진 다음 작품을 위한 일보 후퇴로 생각하렵니다. 건승하시길!

 

p.s/ 작가가 우연히 들은 실화를 들려주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실제 있었던 일 같지는 않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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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1 밀리언셀러 클럽 51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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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난생 처음으로 휴대폰을 갖게 된 것은 1999년도였다. 그때쯤 휴대폰 값이 많이 내려(그전에는 대당 100만원도 넘었다) 전 국민의 휴대폰 소지화가 가속화되었고, 지금은 아시다시피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아이부터 가정주부, 팔순 노인까지 온 가족이 휴대폰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다. 내가 뭐 그다지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살면서 휴대폰 만큼 빠르게 확산된 물건은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이렇게 휴대폰이 널리고 널렸으니 이것에 관계된 에피소드들도 몇 가지씩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아주 공포스런 일이 하나 있었으니 누군가를 뒤에서 씹는 문자를 실수로 그 욕 먹는 당사자에게 보내 버린 적이 있다. 수습하느라 고생 좀 했다.
 
스티븐 킹의 <셀>은 본인의 휴대폰 공포담과는 차원이 다른 무시무시한 전율과 긴장감을 안겨주는 특급 공포소설이다. 아마도 호러의 제왕 스티븐 킹은 휴대폰이라는 현대 문명의 이기가 '공포스러울 정도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가 공중을 가득 메우며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맹목적인 고리가 되고 있는 현실에 일말의 공포감을 느꼈던 것 같다. 등장한 지 몇 년 만에 세상을 온통 뒤덮는 데 성공한 이 휴대폰이라는 물건에 대한 생리적인 혐오감과 더불어 60년대 유행했던 <새벽의 저주> 같은 좀비 영화, <나는 전설이다> 같은 좀비 소설을 결합함으로써 스티븐 킹은 고전적인 좀비 호러와 휴대폰이라는 최신 트렌드를 하나로 엮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보여준다. 역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놀라운 솜씨다.
 
메인 주(스티븐 킹의 소설은 거의 항상 메인 주를 배경으로 하는 것 같다)의 만화가 지망생 클레이는 몇 년의 고생 끝에 마침내 보스턴의 유명 출판사에 작품을 팔게 된다. 클레이는 아내와는 별거 중이지만 사이가 나쁘지는 않고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 조니 보이는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럽다. 눈 앞에 찾아온 성공에 기뻐하며 보스턴에서 묵고 있던 호텔로 돌아오는 중인데, 갑자기 평화로운 공원의 분위기가 일변한다. 휴대폰 통화 중인 여자가 아이스크림 트럭 아저씨를 공격하며, 멀쩡한 신사가 개의 귀를 물어뜯는다. 자동차끼리 서로 부딪쳐 도로는 베이루트처럼 되어버렸으며, 창공을 날던 경비행기가 9.11 때처럼 빌딩으로 추락한다. 클레이는 식칼을 들고 날뛰는 사이코에게서 곁에 있던 톰이라는 남자를 구해주는데, 두 사람은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가를 추론하다, 사이코들이 모두 휴대폰으로 통화 중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휴대폰을 통해 인간의 정신을 파괴하고 미치광이로 만들어버리는 전파가 퍼져나갔다는 것을 알게 된 클레이는 아들을 구하기 위해 메인 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클레이의 곁에는 톰과 자기 손으로 미친 엄마를 때려 눕히고 탈출한 십대 소녀 엘리스가 있다. 폰 사이코들이 활동하는 낮에는 빈 집에 숨어서 자고, 밤에는 수십 킬로미터를 행군하는 강행군을 펼치는 세 사람. 그러나 폰 사이코들은 맹수 같은 폭력성만을 보였던 초기 몇 일과는 달리 점점 집단 행동을 하고, 텔레파시 같은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하는데...클레이는 진화하는 폰 사이코에게서 살아남아 아들을 만날 수 있을까. 만약 아들을 만난다 해도 아들 역시 폰 사이코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클레이가 아들에게로 가까워질수록 독자의 심장 역시 거칠게 고동치게 될 것이다.
 
이 작품에서 인류를 좀비로 만들어버리는 도구가 휴대폰이라는 것은 부두교 주술이나 죽은 사람들이 공동묘지에서 단체로 깨어나는 옛날 좀비 책들보다는 훨씬 효과적인 설정이다. 전술했다시피 대부분 가지고 있기에 확산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고, 책에도 나오지만 마침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지 않다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전부 미쳐 날뛰면 가족들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그 빌어먹을 휴대폰으로 통화를 시도하지 않겠는가. 그러다가 멀쩡하던 사람도 2차로 폰 사이코로 변해버리는 거고. 작디 작은 휴대폰 하나가 온전히 좀비를 양산하는 공장 역할을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셀>에서는 이 전파를 누가 쏘았는지에 대해서는 추측만 할뿐 시원스레 전모를 밝히지 않아 한층 더 궁금하게 만든다.
 
예전에 읽은 스티븐 킹의 작품 <애완동물 공동묘지>와 단편집 <스켈레톤 크루> 중 '안개'라는 작품과도 느낌이 비슷한데, 세 작품이 모두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부정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유독 부자관계에 천착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셀>을 잡으면서 뭐야, 또 아버지와 아들이야, 하며 약간 실망하긴 했다. 그러나 그 뻔한 부자간의 사랑 이야기에 이렇게 또 가슴 저린 감동을 담아내는 능력을 보고 다시 한 번 작가에게 케이오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마치 두 번 연속 직구에 당하고, 세번째도 직구라는 걸 알면서도 완벽하게 제압당하는 미련한 타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주말 내내 <셀>을 읽으며 보냈다. 개인적으로는 재미와 감동, 문학성과 오락성의 조화에서 완벽했던 다른 몇몇 걸작들에 비교하면 약간 떨어지지는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속도감 있는 진행과 아슬아슬한 탈출을 비롯해 재미만은 최고 수준이다. 현재 영화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다른 스티븐 킹의 작품과는 달리 스펙터클한 장면들(대화재, 대폭발 등)이 많아 영화로도 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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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가 돌아왔다 1
방동규.조우석 지음 / 다산책방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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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경위는 이렇다. 어느 때와 같이 근무 시간을 쪼개 하릴없이 직장 선배와 잡담을 하던 중 선배가 12년 만기 적금을 들었다는 말을 꺼냈다.
 
"이야, 선배. 12년 뒤에 애 대학 등록금 마련했네(참고로 내년에 결혼 예정. 잘 풀리면...정말 잘 풀리면)."

"아, 뭔 소리야. 내가 이제 서른 하나인데. 내년에 결혼해서 내후년에 애를 낳으면 서른 셋인데. 보통 스무살 때 대학을 가니까 쉰 넘어서네."

"중요한 건 일단 선배네 애가 대학을 갈 실력이 되느냐지."

"뭐야! 그건 그렇고 그러고 보면 인생 참 별 거 없어."

"왜요?"

"생각해봐. 애 대학 마칠 때까지만 돈을 벌어도 거짐 육십 다 되서까지 일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어느새 황혼이잖아."

"정말 인생 별 것 없네요."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늘 그냥 그런 하루들의 연속.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한 가정을 일궈 다음 세대를 지탱할 자녀를 낳고 기르며 소박하게 사는 것도 근사한 인생의 한 목적이리라. 그러나 못내 아쉬움이 남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을 터.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돌며 한 세상 호방하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요즘 이런 갈증을 느끼고 있었는데, <배추가 돌아왔다>의 그 '배추' 방동규 선생의 인터뷰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한 세트를 구입했다.

 

책을 읽는 내내 깔깔거리고, 주먹을 불끈 쥐기도 하며, 때로는 눈물도 흘리며 단숨에 상하권을 덮고 말았다. 시대의 풍운아이자 천하의 걸물인 방배추 선생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런데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왜 배추냐고? 학교 다닐 때 옷차림새가 추례해 여학생들이 배추장수 같다고 놀렸는데, 네 자는 길다 해서 두 자 배추로 팍 줄였던 것이다. 개성 최고의 부호였던 할아버지 밑에서 왕처럼 자란 유년기를 거쳐, 6.25 전쟁통에 돼지고기 장사로 짭짤한 맛도 보고, 싸움과 말썽으로 고등학교를 5번 퇴학 당하지만 역도 특기생으로 홍익대 법학대를 다니다 당대의 학생 주먹으로 명성을 날린 것이 배추 인생의 서막이다(1950년대 당시에는 학생 주먹이 무척 많았다. 대학을 나와도 할 일이 없었을 정도로 나라가 가난했기 때문에. 한창 혈기방장할 때 할 일이 없으니 주먹밖에 더 쓰겠는가).

 

그러다 백기완 선생을 만나면서 치기에서 벗어나 사회와 국가, 민족을 보는 나름의 시각을 세우고, 파독 광부로 3년간 일하며 죽을 고비 넘기기를 수 차례, 독일에서 파리로 건너가 집시처럼 방랑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패션 양품점을 차려 직접 디자인한 옷으로 지금 앙드레 김 못지않은 명성을 날리기도 하고, 오랫동안 꿈꿔왔던 공동생산, 공동분배 원칙의 '노느메기 농장'을 만들어 농사일로 땀을 흘리지만 이내 반공법 위반으로 형무소 생활을 하고...그 외에 중동 건설 현장에 파견 근무, 3000명 규모의 회사 CEO, 칠순이 넘은 최근엔 최근엔 경복궁 문화재 안내위원까지 쉴틈없이 멀리도 달려왔다. 하지만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 최근엔 미스터코리아 우승을 목표로 운동 중이니까.

 

보는 내내 아, 이런 인생도 있구나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칠 줄 모르는 배추 선생의 열정과 자유로운 영혼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야말로 공동 저자인 조우석 씨 말처럼 나이드신 분들에게는 추억의 이름이요, 젊은 세대에게는 무엇에든 부딪쳐본다는 도전 정신을 몸으로 직접 가르쳐주는 짱 멋진 할아버지가 아닐 수 없다. 누구나 배추 선생같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배추 선생의 흥미진진한 인생 역정을 곁에서 슬쩍 들여다보기만 해도 흐뭇한 대리만족이 되며,어떤 시련에도 결코 포기해선 안 된다는 당찬 마음가짐까지 덤으로 배울 수 있는 책이다.

 

배추 선생의 눈물나는 군대 탈출기는 기가 막히게 우습고, 파독 광부 시절 박정희 대통령과 영부인이 위로차 찾아와 수천 명의 파독 광부들이 이국땅에서 눈물을 흘리며 함께 운 풍경이나 배추 선생과 친분이 있는 정치인 이부영 씨 어머님의 누구나 못 살던 그 시절 안타까운 사연들에서는 결코 눈물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웃다가 울다가 감탄했다가 기가 막혔다가 결국에는 배추 선생에게 '내가 졌습니다' 절할 수밖에 없게 되는 놀라운 책이다. 내 올해 소원은 배추 할아버지와 술 한 잔 나누는 것이다. 배추 선생의 놀라운 '구라'를 직접 듣는다면 3일 꼬박 마셔도 문제없다. 여기 인생이 심심하신 분들, 꼭 한 번 읽어보시길...

 

p.s/ 배추 선생은 백기완 씨의 부친인 당대의 풍류객 백홍열 선생과 나이를 떠난 지기였다. 이 백홍열 선생의 기가 막힌 멘트 하나. "돈과 권력과 여자는 먼저 빼앗는 놈이 임자. 그러나 세 가지 모두 동냥하거나 구걸해서 얻을 순 없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정말 맞는 말이다.

 

p.s의 p.s/ 오탈자가 많은 편이다. 무슨 책이나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지은이가 살아 계신데, 책 만드는 사람들이 누를 끼쳐서야 되겠는가.     

 

 

  



 

                                                         <실제 배추 할아버지 사진. 저 근육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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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 랜덤하우스 히가시노 게이고 문학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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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엄마, 가난한 형, 가난한 동생으로 이뤄진 가난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지긋지긋한 악령 같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형제에게 공부로 성공할 것을 종용합니다만, 형 츠요시는 공부를 그다지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점점 나쁜 길로 빠지고, 방황하며 고교생활을 보냅니다. 어느 날, 과로에 지친 엄마가 쓰러졌고 다시 일어서지 못합니다. 츠요시는 크게 반성하며 학교를 그만두고 엄마의 소원이었던, 동생 나오키를 대학에 보내는 것을 이뤄주기 위해 이삿짐을 나릅니다. 그러기를 몇 년, 허리를 다친 츠요시는 이삿짐 센터에서 쫓겨나고 돈이 궁해집니다. 어떻게든 나오키의 대학 입학금 마련을 위해 그는 예전에 이삿짐을 날라주었던 부유한 노파의 집을 털러 갑니다.

 

무사히 돈을 훔치고 나오던 차에 동생이 좋아하는 군밤을 들고 나가려고 식당으로 가다가 마침 집에서 자고 있던 (집에는 없는 줄 알았던) 노파가 깨어나고, 소리를 지르는 노파를 츠요시는 우발적으로 살해합니다. 곧 체포된 츠요시는 15년 형을 받고, 나오키의 가시밭길 같은 인생이 펼쳐집니다. 세상의 지탄을 받는 살인자의 동생으로 온갖 차별과 좌절을 경험하는 나오키. 형 츠요시는 한 달에 한 번 편지를 보내며 동생과의 교감을 기대하지만, 형 때문에 사랑하는 음악과 애인, 무수한 기회들을 날려 버리고, 단 하나 남은 소중한 가족까지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고립되는 걸 목격한 나오키는 형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한 번 태어난 이상 절대로 끊어질 수 없는 관계가 바로 가족일 것입니다. 미워도 예뻐도 함께 나아가야 할 가족인데, 그 구성원 중 한 명이 끔찍한 죄를 저질렀다면, 더구나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욕하는 살인자라면 그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편지>는 내 가족 중 한 사람이 범죄자라면? 이라는 가정 하에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아프게 그리고 있습니다. 뻔한 이야기도 다양하고 현실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재미있게 푸는 법을 아는 당대의 이야기꾼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답게 한 번 책을 손에 들면 쉽사리 놓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형의 범죄로 인해 앨범 녹음 직전인 밴드에서 탈퇴당하고, 사랑하는 여자의 부자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며 이 돈을 줄테니 제발 떨어져다오, 하는 제의를 받는 등의 대목은 70년대 드라마를 연상시켜 다소 통속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히가시노 게이고에게 기대하는 재미는 그런 통속적이고 다소 뻔한 이야기의 곡절을 흥미진진하게 쭉 따라가다 결말에 이르러 펑펑 울려주길 바라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실 저도 한 50 페이지 정도 남았을 때부터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울 준비는 되어 있다, 고나 할까요. 그러나 제가 기대했던 눈물은 흐르지 않았습니다. <편지>는 결단코 뻔한 신파 감동소설이 아닙니다. 결말에서 나오키는 단지 목이 메어서 노래를 하지 못할 뿐입니다. 단지 목이 메어서 노래를 하지 못할 뿐이지 울지는 않습니다. 단지 목이 메어서...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오직 살인이라는 범죄와 그 범죄가 낳은 아픔에 관해 독자들과 함께 여러 가지 생각을 함께 해볼 것을 제의할 뿐입니다. 특별한 정답은 제시하지 않습니다. 하긴 절대로 정답이 나올 수 없는 문제죠. 무엇보다 츠요시가 저지른 죄로 인해 그 자신이 제일 먼저 고통을 받습니다. 15년간 바깥 세상의 공기를 맛볼 수 없고,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회한으로 인해 살아 있어도 산 목숨이 아닐 것입니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사랑하는 어머니(노파는 당연히 누군가의 어머니, 할머니입니다)를 잃었습니다. 나오키는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것들을 포기했고, 지금도 포기 당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누구도 살 수 없고, 필연적으로 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츠요시가 범한 살인이라는 범죄는 피해자가 품고 있던 여러 관계를 단절시켰고, 그 죄값으로 츠요시가 맺고 있던 유일한 관계인 동생과의 관계도 단절됩니다. 물론 나오키도 형과의 관계로 인해 소중한 많은 관계들을 잃어야만 했죠. 살인은 이처럼 무서운 범죄입니다. 관련된 모든 이들의 관계를 낱낱이 파괴하니까요.

 

어디에도 해답은 없습니다. 츠요시는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는 편지를 피해자 가족에게 매달 보내지만 피해자 가족은 오히려 고통이 커집니다. 그날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고, 또 그렇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보내오는 츠요시를 아직 용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리가 너무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오히려 자책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츠요시에게 매달 편지가 오지 않으면 그것은 그것대로 우리에게 사죄하지도 않다니 천하의 악인이로구나, 하고 괴로울 것입니다. 이래도 괴롭고, 저래도 괴로우니 도대체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문제죠. 동생 나오키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으로 인해 숱한 괴로움을 당하고, 그 화가 어린 딸에게까지 미치자 형과의 관계를 단절하지만 잘한 일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니까 차별하는 세상에 당당하게 맞서 싸워야 할지, 내 가족인 형의 일이니 그리고 날 위해 저지른 일이니 빌고 또 빌며 차별을 감내해야 할지 뭐가 맞는 길인지 도통 알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무한히 섞여 돌아가는 카오스처럼 끝없는 혼돈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도달한 지점은 거기까지입니다. 나오키의 선택과 츠요시의 회한에 대해서는 읽는 분들 나름대로 각자의 생각을 세워보시기 바랍니다. '옮긴이의 말'에 실린 것처럼 원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기는 열린 결말이고, 족집게 과외는 바보만을 양산할 뿐이니까요. 사실 이 긴 글보다는 서점에 가셔서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는 게 훨씬 낫겠습니다. <편지>라는 작품에 대한 장단점이 모두 자세히 기술되어 있으니까요. 여성 심리 묘사는 게이고가 자신없는 부분이니 건너뛰고, 작가 자신도 결말을 어떻게 내야할지 고민한 흔적이 많이 보입니다. 한 등장인물(나오키가 일하는 회사 사장)의 입을 빌어 피해자와 가해자 가족이 받는 고통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 역시 종종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모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기야 누구도 명쾌하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니까요. 한 가지 분명한 건 이 소설은 하나의 범죄를 둘러싼 여러 아픔을 성공적으로 그려낸 소설이라는 것, 그리고 죄가 낳은 필연적인 고통과 죄로 인한 안타까운 차별 같은 공감가는 주제에 대해 한 번쯤 깊이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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